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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영혼을 위해 우리가 입을 모아 낭송하는 동안, 엘리스는 어머니의 몸 위에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의 영혼을 풀어주려나느 듯 손가락을 펼쳐 머리에서부터 온몸을 쓸어 내렸다. 낭소잉 끝나날수록 손놀림도 점점 더 길고 묵직해졌다. 일종의 정화과정이었다.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라면 엘리스는 어머니가 무사히 여행하기를 바랐다. (p.276)
얼마 전, 『미 비 포유』를 다시 읽으며, 진정한 사랑 등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었지만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존엄사”. 내가 조금 더 어릴 때에는 『미 비 포유』를 읽으며 사랑이 먼저 눈에 보였다면, 마흔이 넘어 읽은 『미 비 포유』에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정신 상태의 삶”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그래서일까. 『내가 죽는 날』을 받아들고, 읽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과연 나는 이 책을 감정없이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
『내가 죽는 날』은 문화인류학자인 애니타 해닉의 글로, 의료진과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을 동행하는 참여관찰자로서 가까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보니 단순히 누군가의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배경, 법적 사회적 쟁점, 개인의 감정과 신념, 문화적 차원에서의 의미까지의 존엄사를 다루고 있어, 다소 묵직한 점이 있기도 하고 또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도 하는 깊이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니다. 마치 소설을 읽듯 편안하게 읽히지만, 그 안에서 죽음에 대해, 진정한 삶의 영역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고, 현재의 내 삶까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존엄사에 대해 내가 가졌던 가장 큰 부정적 생각은 책을 50장도 읽기 전에 한 문장 앞에 드러났다. “자기 삶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죽음의 과정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를 원하되 그 결정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않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도 공감과 관심, 그리고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선의가 주어져야 마땅하다.(p.48)” 사실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이 딱 그 사람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에 존엄사를 반대해온 사람이다. 가령 나의 목숨은 내것이겠지만, 나의 부모님이나 아이를 생각하면 오직 나만을 생각하여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내가 죽는 날』의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생각이 너무 단편적인가, 아직 닿지않은 문제의 것이라 막연하게만 생각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또 내가 평소 조력사망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상세하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내가 죽는 날』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너무 막연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점들을 깨닫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나는, 종교적 관점에서도 개인적 신념에서도 조력 사망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내가 죽는 날』을 통해 이미 조력사망은 세계 여러곳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우려하는 부분들에 대한 어두운 측면 대신 보다 의학적인 접근, 인권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음에 나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내가 죽는 날』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곳은 “건너가다”라는 장이었다. 우리가 농담처럼 사용하곤 하는 “가는데 순서없다”등의 말들 뒤에 숨겨진 죽음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임종 전의 용서와 작별, 추모와 애도 등을 보다 계획적으로 맞이하게 하는 측면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엄한 상태에서 준비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죽는 날』을 다 읽은지 며칠이나 지났다. 그런데도 선뜻 리뷰를 남길 수 없었던 것은 긴 세월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마구 흔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결론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생명이 길어지고 여러가지 독한 질병들이 발생하는 요즈음, 존엄사를 완전히 미래의 이야기로 미뤄둘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내가 죽는 날』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생각을 여는 책이 되고야 말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완전히 닫힌 문이 아닌 채 존엄사에 대해 생각을 열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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