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집어들면서 한숨을 쉬었다. 대선후보자들의 책을 다 읽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책을 고를 때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 없고, 자서전을 읽고 싶은 것이 아니므로, 대선 후보자들 스스로 출마 의지를 담아 내보인 책을 읽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가장 최신작을 골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써준 평전이 아니라 자신의 글로 자신을 나타내는 책이길 바랐다. 그렇게 자기를 표현해낼줄 아는 사람 또한 정치하는 사람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서다. 문재인 말하고, 문형렬 엮다. 결국 인터뷰다. 원래 책은 출판사의 편집자에 의해 다시금 태어나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물음에 대해 답한 것이 어디까지가 문재인 후보고 어디까지가 문형렬씨의 감상인지.
소년처럼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는 부분이나, 문재인씨의 외모를 성자처럼 표현하는 것이 무척 불편하고 오그라들었지 결국 대담 형식 또한 한명의 후보가 택한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재인 씨는 어쩌면 스스로 얘기 하는 것 보다, 지지자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도. 감상적인 평가가 개입할 때마다 한국영화의 쥐어짜내는 신파를 볼 때 처럼 짜증 내다가도 정말 가슴이 애잔해 창 밖을 내다보며 울먹거렸다.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어도 현 정권이 내 신뢰를 너무 박살내놔서 그렇다. 하지만 질문에 응하는 한결같은 태도는 타인의 눈을 거쳐도 묻어나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올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 된다. 안희정 후보의 한국과 문재인 후보의 한국은 다르다. 두 후보의 적도, 지향점도 비슷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평화, 자유, 정의는 서로에게 필수 불가결하지만,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 재화가 한정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반비례한다. 안후보의 핵심이 자유라면, 문후보의 핵심은 정의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들어, 새로운 정치를 위해 안후보가 강조하는 것은 지방자지단체의 강화와 권력분립이라면, 문후보에게 먼저인 것은 기존 부정부패 세력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과 보상이다. 둘다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우선순위는 있어야한다. 나는 안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린 내 눈에 문후보는 옛날 사람이고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시간을 역행해왔는지 생각하면, 2017년은 아직 문후보의 고리타분한 혁명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한국이, 동아시아가 전근대와 근대의 늪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머리만 동동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는 없으니, 숨을 참고 수면 아래 진흙탕에 파묻힌 발목 부터 빼내야 한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읽었어요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1
- 주요 대선 후보 책들을 다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의도가 뻔한 책들이지만 그래도 후보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퀄리티 있게 본인을 드러낼 줄 아는지, 혹여나 실제 행동들과 너무 차이가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검증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은 첫 책이 '콜라보네이션'이다.
- 편집이 상당히 잘 되었다. 기존에 대선 후보들이 급하게 들고 나오던 회고록과는 달리 현 시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한 아젠다 셋팅에 노력한 것이 좋았다. 물론 곳곳에 인간 안희정에 대한 홍보가 스며 들어있지만, 적어도 '신화는 없다'의 신화적 이명박씨 같은 모습은 아니다. 스리체어스의 직원분들의 뛰어난 안목인지 안희정 후보의 세심함인지 모르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참 꼼꼼하게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x안희정이라는 저자명에 알맞도록 빈칸을 두고 채워 읽어나가게 하거나, 곳곳에 안희정 후보의 필체를 넣어 투명성을 강조하는 정치 철학을 드러내는 식으로 책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했다.
- 최근 포탈에서 안희정씨와 관련된 글이 하나 올라온 것을 봤다. 반값 등록금에 대해 안희정씨가 한 발언이 그 내용이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 내 형편으로 보면 반값 등록금까지 도저히 돈을 쓸 수가 없어요.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볼터인데, 당장에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못하겠어요. 미안합니다." 20대 여성이 주축인 커뮤니티이기 때문인지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했다"는 식의 댓글들이 달렸다.
'콜라보네이션'에도 같은 발언이 소개되고 있으나,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절대적인 약자에는 노약자, 장애인, 어린아이, 여성이 있다. 노약자와 장애인, 어린아이는 물리적 요소를 인해 지원이 필요하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 있고, 전쟁이 닥치면 남성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약자다. 그런 다음 사회적 약자가 있다." "절대적인 돌봄이 필요한 부문에도 국가 재정이 턱없이 부족하다. 복지의 근간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의무이자 모두의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우리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래서 저자가 반값 등록금에 앞서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부분은 여성에 대해 가해지는 "시민 사회 내부에 잠재한 문화적 차별"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젠더 보다 경제적 위치가 훨씬 크게 삶을 위협하는 요소일 수 있겠고, 반대인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두 가지를 개별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한정적인 국가 자원과 복지라는 정책적 틀 안에서 둘을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나름의 논리를 적용하여 어떤 것을 우선시할지 설정하는 노력은 상당히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고려대에서는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장학금을 확대했다. 가장 이상적으로는 두 장학금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고려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절대적"이라고 생각 되는 약자를 설정하고 과감하게 분산보다 집중을 선택했다.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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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 편집 경험도 조금 있고 북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서 읽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 또는 펭귄 출판사의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 가장 유명한 출판사 답게 실험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구성을 했다. 속에 담긴 그 어떤 책 만큼이나 이 책의 편집도 구경할 만 하다. 애초에 아트 디렉터와 디자이너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한꺼번에 엿보며 출판계의 단면을 드러내주는 대담한 기획이 펭귄이 아니라면 어디서 할 수 있을까.
- 디자인 서적 같지만, 책에 대한 (meta) 책이다 보니 자동으로 서지학(bibliography)에 대한 탐구 또는 서지학 연구에 필요한 1/2차 출처로서도 유의미한 책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 가장 웃겼던 부분: "...출판사에서 말했다. "음, 그러면 혹시 이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으신지요?" 우리는 영국/아일랜드 판본의 커버를 보여 주었다. 마치 1970년대 말에 나온 교양 상식 책, 또는 백과사전 같은 모양새였다. 크림색, 갈색, 베이지색에 금색 레터링 그리고 판다 한 마리가 썰렁해 보이는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 커버를 보자마자 출판사에 있던 한 여자 직원은 구토를 했고, 또 한 남자 직원은 자기 눈을 찌르더니 총을 쏘아 자살하고 말았다...."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
폴 버클리 지음
미메시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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