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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의 아주 긴 주마등을 지켜본 기분이다.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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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일한 긍정적 리뷰
처음엔 생판 남인 필자가 왜 주인공의 지루한 주마등 얘기를 들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유체이탈(?) 상태의 주인공 시점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살아남길 기도하는 가족, 친척,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왜 주인공 얘기를 들려주었는지 납득은 갔다. 설사 소설을 위해 태어난 인물에 불과할지 몰라도, 주인공에게도 삶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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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면, 왜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가족의 목소리가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 내 가족이 생사의 경계에 놓여 있을 때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네가 있어준다면>이라는 책 제목처럼, 나의 존재가 필요한 사람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는 것.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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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만, 책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주인공에게도 삶과 꿈과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 자체가 정말 매우 끔찍할 정도로 재미없었다. 삶과 꿈과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기 위해, 필자는 소중한 20대 인생 일부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주인공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게 다가오다 보니 금세 집중이 흐트러지곤 했다. 지면의 절반가량이 주인공 과거에 대한 회상인데, 인물도 과거도 흥미롭지 않으면 얼마나 고역일지 짐작할 수 있을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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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방식도 정말 정직하다 못해 무식할 정도인데, 예를 들어 유체이탈 주인공이 자신을 찾아온 누군가를 바라보던가 혹은 누군가를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회상모드로 들어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이쯤 되면 회상의 악몽이라 봐도 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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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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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남자친구가 하이틴장르의 흔하디흔한 ‘모범생과 킹카’인 점도 구역질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아니, 애초에 둘을 떠나 중반 무렵엔 아예 병원 무대로 벌어지는 하이틴영화나 다름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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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가족이 교통사고로 참혹하게 즉사했는데, 가족은 아랑곳 않고 상당 시간을 친구와 남자친구 회상하는 데 할애하는 게 정상인가??? 현실을 도피하는 건지, 정신머리가 출타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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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작자들도 중환자실에 있는 주인공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온갖 민폐를 다 끼치고, 심지어 찰나의 순간이나마 즐거워 보였다. 이들은 스스로 쿨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1분1초가 골든아워인 병원에서 이들로 인해 다른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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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지막 결말을 보고 나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결말 이후의 실제 인생이 어떨지는 몰라도, 적어도 흐름만 봐선 ‘남친과 함께 아픔을 잘 이겨내고, 주위 사람들과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느낌이었다. 이건 뭐 싸구려 동화 결말도 이거보단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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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실은 절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남친과 주위 사람들의 진득한 사랑으로 복에 겨운 건 알겠는데, 지금 본인이 파탄의 길로 접어든 걸 알고는 있는 걸까. 주인공 본인이 세상의 중심인 건 맞지만, 세상은 절대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걸 아직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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