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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밝은세상 펴냄
1.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젊은 시절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반드시 끝날 운명은 오늘일까 내일일까, 아니면 10년 후일까?
2.
우리가 돈도 없고 그럴 듯한 직업도 없던 그때 그 시절, 스치듯 만난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왜일까.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를 좋아해줘서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무엇하나 내세울 게 없던 시절, 그런 나에게서도 좋은 점을 찾아주고 믿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70억 인구 중에서 나를 선택하고 나를 긍정해주었다. 그래서일까? 되돌아보면 그때의 그 긍정이 있었기에, 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수많은 문턱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듯한 직장에서 돈도 벌고, 매너며 교양을 조금씩 갖추게 되자 앳된 대학생시절보다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으면서 순수하게 상대의 좋은 점을 찾기보다 겉으로 드러난 배경과 따라붙는 수식어에 연연하게 되고만 것 같다.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그저 단순히 속물이 되고만 걸까.
나를 조건 없이 순수하게 바라봐준 상대가 그립고, 어리석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어떤 수식에도 집착하지 않은 내 모습이 그립다.
3.
많은 연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상대와의 첫 만남은 스치듯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아무런 의도도 목적도 없던 그런 순간에 말이다. 만일 내가 그녀와 관계된 사람을 몰랐다면, 만일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어렵게 시작된 인연이었기에, 더욱 애착이 가고 소중하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들수록 스치듯 시작되는 인연은 좀처럼 없게 되었다. 반복적인 일상도 일상이지만 이젠 새로운 상대에게 호기심보다 경계가 앞서기 때문이다. 우연을 믿지 않게 됐다.
4.
얼마나 오래 만났고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부를 떠나 아름다운 시절의 일부를 온전히 공유한 상대를 완전히 잊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린 나이를 먹고 환경이 바뀌는 등 일상에 치이면서도 이따금 지난날에 사랑한 상대를 떠올려보곤 한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는지, 원하는 목표엔 조금 더 가까워졌을지 등.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SNS를 비롯한 다양한 경로로 상대 안부를 확인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옳은 행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의 일부를 소중하게 만들어준 가장 소중했던 존재의 안위를 알고 싶어 하는 그 심정을 알 것 같긴 하다.
5.
물론 개인적으로는 헤어진 연인의 SNS를 염탐(?)하는 걸 썩 내켜하지 않는다. 싱숭생숭하면서도 미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있어서 같은데, 그 이유는 역시 ‘상대가 이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서 아닐까 생각한다. 한때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고 좋아했던 그 상대가 완전히 남이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난 아직 상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할 수 있을 만큼 어른스럽진 못한가보다.
6.
지난날 나 자신보다 더 소중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은 내게 있어 구원자였고, 소중한 젊은 시절의 일부였고, 어리석은 내 자신의 거울이었다.
나도, 그녀도 나이를 먹으면서 천천히 진짜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따금 지난날의 자신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비록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고 따스하게 안아준 사실엔 변함이 없지 않은가. 부디 자신의 길에서 앞으로도 멋진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7.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제목이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쭉 고민했다.
혹시 이런 의미는 아니었을까? 지난 어리석은 시절을 함께한 친구, 연인, 동료와는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고 주름이 늘어도 서로에게 있어 여전히 어른이 아닌 풋내기일 뿐이라는 내용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내게 있어 사춘기 소년들이었고, 대학생이 되어 만난 친구들은 삶에 대한 고민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새내기였다.
나의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간직해주는 모든 가까운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있어 난 때때로 어른이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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