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내용이 전체적으로 어두운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려 더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스토리는 폐허가 되어버린 헝가리의 집단 농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사, 기술자, 교사, 농부 등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했던 농장 주민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지도자를 잃은 후부터 극단적인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리더가 농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민들은 희망에 부풀어 마을에 하나뿐인 허름한 술집으로 모여든다.
마치 부활한 예수처럼 술집에 모습을 드러낸 지도자는 현란한 말솜씨로 주민들을 향해 마을을 떠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이미 주체성을 상실한 주민들은 지도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당장 집으로 달려가 집을 부수고 세간을 챙겨 마을을 떠난다.
사실 집단 농장을 관리하는 당 간부인 지도자는 주민들을 자신의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이지만, 주민들은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반전!
저자는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 어떻게 주체성까지 잃게 되는 지를 집단농장 주민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공산주의 체제를 넌지시 비판하는 것이다.
역시 노벨상 수상 작품은 다르다.
“인간이 자유를 박탈당하면 주체성도 잃게 되는 걸까?”
책을 덮은 후에도 이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 속에 맴돈다😀
사물놀이에서 여성을 다룬 책을 많이 읽었지만,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가 독보적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건>보다 좋았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의 스토리는 크게 둘로 나뉘어 전개된다. 비출산을 결심했다가 장애아를 낳게 된 알리나와 금쪽이 니콜라스를 키우는 도리스. 비출산을 결심한 주인공 라우라는 자신과 반대되는 두 가정을 오가며 임신과 출산, 가족의 의미를 찾는다. 작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한편 갑작스러운 전개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일단 재밌어서 좋았다. 이네스가 죽을까? 알리나의 남편은 보모와 바람을 필까? 니콜라스는 어떻게 될까? 작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담론을 찾도록 이끈다. 이네스는 장애아에 대한 사회의 책임, 비출산 여성과 출산 여성의 비교,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 등으로 말이다.
가장 좋은 점은, 따뜻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자'는 하나의 목표 아래 긴밀히 움직인다. 방법과 사랑하는 대상이 다를지라도 서로를 존중한다. 사회 문제를 다룬 책에서 이런 따뜻함이 보기 드물다. 일례로, 똑같이 출산 문제를 다룬 <지구별 인간>은 완벽히 절망적이었다. <지구별 인간>같은 접근으로는 사회 문제가 고조될 뿐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존중과 사랑을 통해 사회를 끌어가야 한다.
앞으로도 따뜻한 소설과 책이 많아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