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부활믿을수있나요#레베카맥클러프린 [도서협찬]
예수의 부활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가장 간결하고 강렬하게 답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가?❞
✔ 예수의 부활, 역사적인 증거를 찾고 있다면
✔ 예수의 부활에 확신이 부족하다면
✔ 믿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 책 속으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나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질문에 대해
변호사이자 기독교 작가인 저자가
역사적 증거와 함께
짧고도 깊이있게 설명한다!
1️⃣ 예수님이 실제로 역사 속에 사셨을까?
2️⃣ 예수님의 죽음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3️⃣ 예수님의 부활은 신뢰할 수 있는가?
4️⃣ 예수님의 제안은 매력적인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가?"
수줍게 답했던
"... 네에.."라는 말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목청 높여 외치게 된다.
📢 "네네네!!"
📕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길 _p.83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
참으로 배.타.적.인 것 같지만,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은
참으로 포.괄.적.이다.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답변을 주저하게 된다면,
이 책을 읽으며
확신의 답을 찾아보시길..
📕 한 줄 소감
부활에 관해
간결하고 강력한 답변에
객관적인 역사 자료뿐 아니라,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해리포터> 같은 다양한 책들까지
인용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 빰빰 빠라 빰빰 빠 빰빰~ 🎺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제임스 본드가 언급되는 순간!
예수 부활의 확신과
재미까지 누렸던 책 :)
@북서번트@야다북스 감사합니다.
#사순절#부활절#추천도서
[2026_48]
1300년 3월 25일 목요일 밤, 부활절의 성 금요일을 하루 앞둔 밤. 단테는 잠에서 깨어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 두려움에 떨던 단테 앞에 존경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영원의 세계로 인도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하여 금요일 저녁 지옥에 도착하고, 사후 세계로의 일주일간 순례가 시작된다. 단테는 지옥에서의 사흘, 참회와 회개의 공간 연옥에서 사흘, 그리고 천국에 가기 전 스승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꿈에서만 그리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천국을 경험한다. 이 책은 단테의 여정 중 지옥에서의 사흘간의 여정, 지옥의 9개 원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프리태니커 인포그래픽 백과-광활한 우주>책에서는 우리는 별로 이루어졌단다. 우리 몸은 산소와 탄소 등 여러 가지 화학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소들은 맨 처음에 어디에서 왔냐면 몇몇 원소는 폭발하는 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 다른 원소들은 빅뱅 순간에 생겼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우주로 다시 떠돌게 된다 치더라도, 만약 영혼이 존재한다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우주의 모든 신비로운 현상을 알아낼 수 없듯이, 사후 세계를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확률은 반반이다. 사후세계가 있거나 없거나. 없다면 다행인데, 있으면 어떡하겠는가? 죽어보니 사후세계가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이브날 죽은 친구 유령이 찾아와 사후 세계와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며 회개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나는 단테의 <신곡>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사람들이 실제 겪지 못한 사후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가 있다고 단정하건 없다고 단정하건 확률은 50%다. 그렇다면 지옥에 대한 인식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단테는 지옥을 어떻게 그려놓았는가? <아이네이스> 저자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의 9개 원을 여행한다. 지옥의 원은 죄의 성격에 따라 구분되며,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데 이를 ‘콘트라파소’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 죄에 걸맞은 콘트라파소를 유추해 보길 권한다. 또한 죄에 경중에 따라 형벌의 종류도 천차만별인데, 단테의 상상력은 가히 놀랍도록 상상을 초월한다. 중세 판타지 소설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또한 단테가 살던 시절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로, 중세 말에서 근대로 가고 있던 시점이라 <신곡>에는 중세 가톨릭의 세계관이 곳곳에 드러나기도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뿐만 아니라(단테는 정치활동을 하다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죽기 전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유랑 생활을 하며 집필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당대 인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측근 인물들도 꽤 나온다.) 신화적 인물, 당대의 정치인, 교황, 지식인들까지 지옥에 배치하며 단테 자신만의 윤리적, 정치적 비판을 문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우리 인생길 바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1곡, 1-3행)
단테가 그린 지옥에는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을까? 크게 스스로가 무절제한 자, 타인과 자신과 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 타인을 두고 배반한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 나는 단테가 그린 9고리의 지옥을 간단하게 모두 나열해 보고자 한다.
지옥의 첫 번째 고리에서 다섯 번째 고리까지는 개인의 무절제로 인해 벌은 받은 자들이 있는 곳인데 제일 첫 번째 고리에는 예수 탄생 전에 활동했던 사람들이 있다.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베르길리우스 등 수많은 학자들이 세례를 받지 않은 이유로 림보에 억류되어 있다. 두 번째 고리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는 사랑으로 삶을 버린 아킬레우스, 파리스와 헬레네, 트리스탄 등이 등장한다. 세 번째 고리는 거만하고 시기하며 남을 이기려는 탐욕을 지닌 자들이 영겁의 비에 고통받는다. 네 번째 고리는 세상에 공평하게 주어진 물질을 독점하거나 방탕하게 소비한 자들, 다섯 번째 고리는 스틱스 강의 늪에서 분노의 죄를 지은 자들을 그리고 있다.
천사가 지옥의 문 ‘디스’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무거운 죄를 지은 자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테는 자신의 무절제는 자신만을 타락시키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자연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죄는 무겁게 보고 있다. 여섯 번째 고리는 해로운 사상을 믿고 퍼트린 이단자들이 가는 곳, 일곱 번째 고리에선 3개의 원으로 나뉜다. 제1원에는 폭군과 독재자들이 있는 곳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디오니시우스 1세 등이 있는 곳이다. 제2원은 자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는 곳이다. 자살하거나 재산을 탕진하는 자들이다. 제3원에서는 하느님과 자연의 순리에 해를 끼친 자들이 모이는데 여기는 신성 모독자들, 동성애자, 이상성애자, 고리대금업자들이 있다. 자살하는 자를 포함시킨 것은 당대 기독교에서 범죄로 취급되었기에 그런 듯하다. 여덟 번째 고리는 원어로 말레볼제라 칭하며, 사람만이 범하는 죄, 배신과 기만을 다룬다. 이 고리에서는 10겹의 구덩이에서 10종류의 벌을 받고 있는 곳이다. 폭력보다 배신과 기만죄가 더 아래에 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단테는 사회의 근본과 질서를 더 어지럽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1원은 금전을 목적으로 남을 성적 착취한 뚜쟁이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질을 받는다. 제2원에서는 아첨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아첨을 이용한 자들이 똥물에 처박혀 있다. 제3원은 교황 니콜라우스 3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당시 현직 교황이었음), 교황 클레멘스 5세가 등장한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 금전과 권력을 취한 자들이다. 제4원은 점쟁이, 예언가가 등장한다. 미래는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인간이 예언하는 것에 목이 뒤로 꺾이는 벌을 받고 있다. 제5원에서는 탐관오리들이 끈적끈적한 역청에서 허우적거리며 벌을 받는다. 제6원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 납으로 된 무거운 망토를 덮고 걸어가는 벌을 받는다. 그중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유대인 제사장 가야바는 땅바닥에 못 박힌 채로 다른 죄인들에게 밟히는 벌을 받고 있다. 제8원은 모사꾼이 있는 곳인데 거기서는 불꽃에 휘감겨 있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계획하여 악행을 뒤에서 조장했다며 벌을 받는다. 제9원은 무함마드, 알리가 있다. 그들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를 분리했기에 분열을 조장했다는 죄목이다. 제10원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아버지와 죄를 저지르거나 유서 변조, 화폐 위조, 위증하는 위조자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마지막 9번째 고리는 지구 중심이자 지옥의 최하층이다. 코키토스는 지옥의 강들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얼음 호수다. 이곳도 제1구역부터 제4구역까지로 나뉜다. 제1구역은 ‘카이나’로 가족과 친족들을 배반한 자들이 모여있다. 제2구역은 ‘안테노라’로 조국이나 단체를 배반한 자들이 모여있다. 제3구역은 ‘프톨로마에아’로 손님, 안전을 보장해 줬던 자들을 해한 자들이 모인 곳이다. 제4구역은 이우데카로 은인을 배신,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자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는 유다가 있다.
신곡의 나오는 모든 죄를 적은 이유는 이 죄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살면서 혹시 내가 이런 죄들을 저지른 적은 없었나?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다.
단테의 <신곡>에서 죄인에게 벌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형식을 띄고 있다. 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린다.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에게는 목이 꺾이는 벌을 주고, 탐관오리들에게는 역청을 뒤집어쓰게 만든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또한 현직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혹평이 많이 등장하는데, 잃을 것 없는 단테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의 대담성, 타락한 중세 교회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너는 <윤리학>이 하늘이 원하지 않는
세 가지 마음의 상태를 부절제와 악덕, 수심으로
널리 밝혀 내고 있음을 잊었느냐? (11곡, 79-81행)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단테가 죄를 나눈 기준점은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다. 추가로 키케로의 <의무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도덕철학을 토대로 지옥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책을 읽으며 단테가 죄를 이렇게 나눈 기준을 어디서 참조했을까 궁금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테는 망명길 20여 년 동안 수많은 고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경,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의 저서와 철학자들, 그리스 로마 신화 인물들, 유다, 솔로몬 등 수많은 군상들이 등장한다.
인간이 영원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지금 제가 얼마나 기쁜지는,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할 저의 말로 드러날 것입니다. (15곡, 85-87행)
…
내가 함께 있을 수 없는 무리가 저기 오고 있구나.
나의 책 <보전>을 기억해라.
아직 난 거기에 살아 있다. 다른 부탁은 없다. (15곡, 118-120행)
단테는 지옥에서 실제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루네토 라티니를 만난다. 그는 단테에게 불멸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라티니 또한 <보전>을 썼고, 자신은 불별했다고 자처한다. 단테는 7고리 꽤 깊은 지옥 밑에서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 지옥에 있는 모습을 본 단테의 심경은 애처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단테 아닌가. 그는 스승이더라도 죄목에 대해선 단호했다. 스승은 뛰어난 업적으로 불멸했으나 남색(성적 문란)으로 철저히 심판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 앞에서도 죄의 심판은 피해 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야말로 네가 나태함을 벗어 버릴 때로구나.
베개를 베고 이불 속에 누워 편안함을 즐기다가는
명성을 얻을 수 없느니라!
24곡에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언덕을 오르며 나누는 대화는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이 개개인만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처럼 저마다 인생의 수행과제가 있다. 내 인생의 수행과제는 무엇일까?’
나는 꽤 완전한 인간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옥의 가장 하부의 죄들을 보자.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배신하라는 뜻도 아니다. 배신을 당했어도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뜻이다. 배신한 이에게 앙심을 품고 똑같은 행위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서 일어날 법한 행동이다. 지옥이라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단계 위의 차원으로 즉, 다른 차원으로 노력해야 한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 스승과 힘겹게 언덕을 올랐던 것처럼(그것은 육체적 어려움이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정이 있어야만 내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아닌, 진정 내 영혼이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길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서로 알아가기도 전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라고 숙덕대곤 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여러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원형 경기장에서 죽음을 앞둔 "퍼피투아”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입을 맞추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되세요?
우리 중 누군가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면서 “영혼이 육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세상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 어떻게 표현하시나요?
p26
우리 초대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은 예배가 매력적이어서가 아니고, 사람들을 예배에 초청하였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능력과 사회적 일탈 행동이 저희의 교회를 성장하게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왜 성장하나요?
여러분의 교회에는 '생명을 주는 일탈' 행위가 어떤 것이 있나요?
여러분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p42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삶에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와 화해하시고 인류를 회복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해되고 생동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의 삶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삶이 생동감이 있고 자유로울 때, 자신의 소유를 나누며 원수를 사랑하고,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살아가거나 죽어 가는 모습 속에서 그런 매력적인 힘이 발현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해 주면서 생명을 전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p59
저희를 보고 말이 별로 없다고들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신앙을 전하라고 권유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바르게 사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저희는 가난한 분들, 버려진 아이들, 혼자 된 분들이 늘 마음에 있습니다. 그분들이 예수님처럼 보여서요.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가요?
저희는 '위대한 것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것을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교회의 설교는 그리고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p60
지난 부활절에 우리 교회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분은 우리 교회 가족이 되었지요. 그분은 세례를 받기 전 3년 이상을 우리 교회지도자 그리고 인도자와 만났답니다. 여러분 교회의 새 가족 허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위에서 말한 새 교우가 세례를 받기에 합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그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도자에게 물었고, 그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세례 후보자가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그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지속해서 섬기던가요? 모든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가요?" 여러분의 교회는 세례 전 누구에게 어떤 질문을 하나요?
여러분은 믿음과 행동 그리고 소속감은 어떤 연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믿음이 있으면 행동이 좀 부족해도 교회의 일원이 되고 교회의 일원으로 지내다 보면 삶이 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