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심은 우리를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경외심은 물질적인 세계와는 분리된 영역에서 발생한다. 경외심을 일으키는 경험들은 돈, 소유,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과는 무관하다. 대커 켈트너의 연구에 따르면, 경외심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지만, 이는 물질적인 소유나 소비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경외심은 우리가 세속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더 큰 존재와 연결될 때,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인 것이다.
노년에는 도시를 벗어나 마당 있는 집에 사는게 꿈인데, 그 꿈을 나보다 먼저 이룬 인생 선배의 에세이. 제목처럼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는 하루하루의 단상을 사진과 함께 단정하게 담아 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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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모양을 갖추며 올라갈수록 마음의 짐도 조금씩 커진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에는 그만한 부담을 안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그 부담이 싫어서 모든 것을 미루고 양보하며 살았다. (p.29)
📖 새벽. 눈을 뜨니 비가 내린다. 나뭇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숲을 넘어와 집안까지 스며드는 이 냄새가 너무 좋다. (p.82)
📖 집이란 소유나 재산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과 행복을 담는 그릇이다. 이렇게 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 접시 하나에 담은 간단한 식사만으로도 충만하다. (p.106)
이책은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올바른 성경관을 제시합니다. 또한 이혼을 고려하고 있거나, 이미 이혼한 사람에게도 성경적 지침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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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아버지 없는 첫 번째 5월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저는 아내에게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어버이날에 아버지를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러 가면 좋겠어."
우리말 성경에서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히브리 성경에 '로 에제르 커네그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 케네크도는 '그와 상응하는', '그와 맞먹는', '그와 대응하는', '그와 짝을 이루는'의 의미(corresponding to)를 가집니다. 그리고 로는 '그에게' 혹은 '그에 대하여'라는 의미(to him 혹은 for him)를, 에제르는 '도움' 혹은 '구원'이라는 의미(help 혹은 succour)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바른 번역은 "그에게, 그와 상응하는 돕는 자" 혹은 "그에 대하여, 그와 짝을 이루는 구원자"입니다.
'하와'는 곧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적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 정략적 결혼, 즉 상대방의 어떠한 소유나 명예, 그 사람과 결혼했을 때 누릴 이익에 대한 기대로 결혼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제도에 대한 중대한 전이고 모욕입니다(창 34:8-10 참고).
결혼 생활을 꽤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인격적인 연합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부모는 대체로 자신의 자녀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합니다. 그러한 집착은 자녀의 부부 사이의 연합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함으로써 자녀가 부모를 떠날 뿐만 아니라 부모도 자녀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서 어떤 결점이 발견되고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원래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나 받을 수 있는 무한한 자비와 용서의 사랑을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은 불행한 삶을 사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을 나누었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창세기 3장에 가서는 파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창 3:12).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서로 싸웠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더니 부부간의 관계가 깨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의 깨어진 것이었습니다(창 3:16).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셨기에 인간들을 무한히 사랑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아내의 결점과 결함, 심지어 오류를 발견하면서 그것이 나를 이 여자의 남편으로 불러 주신 이유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결혼의 목적은 단지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또 다른 소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사람들끼리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마 5:16).
남편들은 아내를 마음대로 주물러서 자신이 원하는 형체를 만들 수 있는 진흙처럼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들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신의 뜻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아내를 모질게 대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때도는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자녀를 가르치라는 당부입니다(눅 23:28, 엡 6:4).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 바른 사람으로 자라도록 양육하는 부모의 이 소명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왜 살아 있는 식물을 자유롭게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성장 억제제를 주고 구리철사로 온몸을 칭칭 감아서 자기가 원하는 모습이 되도록 하는 것일까요? 혹시 여러분은 자녀를 분재로 키우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자녀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도록 이렇게 저렇게 제약하면서 다그치지는 않습니까?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항상 성경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하셨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 35:1).
이 말씀은 '너는 내 앞에 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곤고함은 하나님을 등진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이제 우리도 야곱과 같이 고백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3).
그때 우리가 꾸었던 꿈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소유나#존재냐#의미있는삶#존재#목적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존재양식의 삶이란 소유양식에서 벗어난 삶, 즉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과 갈망에서 벗어나 세상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 삶이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능동적인 경험을 통해 존재양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새롭게 하는 것, 관심을 가지는 것, 참여하는 것, 베푸는 것, 에고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실천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