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숨은 비극!
📚웃음으로 읽는 사회학!
📚존 케네디 툴 저자 <바보들의 결탁>!
🥸문학적 비주류 감성의 코미디 걸작! <바보들의 결탁>은 미국 문학 사상 가장 잊을 수 없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으로, 걸출한 위트와 진탕한 부조리가 담긴 작품이다. 뉴욕타임스 선정 미국에서 출간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극찬 받은 이 작품은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리바이 팬츠의 80대 비서 겸 경리 , 무기력하고 초췌한 순경, 가금류를 좋아하는 버번 거리의 스트리퍼, 그리고 스페이스에이지 선글라스 낀 수다쟁이 등 다양한 괴짜 주민들이 등장하여 뉴올리언스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여 황당무계하면서도 현실성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작품은 원래 저자가 생전에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다가 자살한 지 수년 후에 어머니가 아들의 원고를 세상에 선보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1981년 소설 부문 퓰리처상 수상했다. 이 작품은 풍자와 유머, 그리고 사회 비판을 아주 절묘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웃음 속에 숨은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풍자 문학의 기념비적 걸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풍자와 희비극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이그네이셔스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통해 1960년대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 체제를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출간 후 큰 방향을 일으킨 이 작품은 미국 문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작품으로, 중세를 흠모하며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뉴올리언스에 사는 30대 백수인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J . 라일리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그네이셔스는 어머니에게 얹혀살며 사회의 자본주의를 조롱한다. 하지만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핫도그를 팔아야 했고, 사무직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사고를 일으킨다. 그의 주변 인물들도 기묘하다. 정말로 기묘하다. 이런 기묘한 인물들 처음본다.사회 개혁을 섹스로 이루려는 전 여자친구가 있는가반면, 상사에게 구박받는 경찰관 등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이그네이셔스의 과장된 행동과 기묘한 사고들은 웃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회 구조와 인간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냈다. 주인공이 겪는 일들은 자본주의 체제와의 충돌을 보여주고, 체제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희극적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단순힌 웃음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 사회 풍자와 인간 군상의 희비극을 담은 걸작 중 걸작이다. 이그네이셔스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작가의 짧은 생애와 뒤늦은 성공이라는 비극적인 맥락이 있지만, 그의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는 이 작품은 모든 인물들을 풍자적 캐릭터로 그려냈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낸다. 이그네이셔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주고, 희극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괴짜 백수 이그네이셔스가 사회와 충돌하며 벌이는 소동극을 그린 이 작품은 1960년대 미국 사회의 모순과 자본주의 체제를 풍자하는 작품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 인간의 부조리와 사회적 모순, 그리고 부적응자의 시선으로 본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그네이셔스는 일자리를 찾으면서 자본주의 사회와 맞닥뜨린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이는 자본주의 상존법을 풍자한다. 이그네이셔스는 중세 철학을 숭배하며 현대 문명을 조롱하는데, 이는 사회와 개인의 불화를 그린다. 웃음을 주는 희극적 요소와 동시에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괴짜스럽고 과장된 캐릭터이지만, 이는 사회적 군상들의 부조리를 보여준다.
🥸재미있다 이상의 문학적 가치와 사회적 풍자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사회 풍자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모든 인물들이 희극적이면서도 사회적 문제를 상징하여,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출간 실패로 좌절하여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노력으로 작품이 세상에 나와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뒤늦게 빛을 본 걸작이라는 점에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와 비극성을 더하는 작품으로, 희극과 풍자를 통해 사회 비판을 이끌어내어, 지금 읽어도 아주 신선한 작품이다. 괴짜들의 향연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단순히 재미 이상의 생각할 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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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읽는 책 마다 약간의 보릿고개 였다.
보릿고개라고 표현하고 보니 읽은 책의 내용적 부실, 읽고 있는 책의 함양 부족, 곁에 두고 있는 책의 의미론적 결핍이 연상 될 수도 있을듯 하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를 따지자면 나의 정신상태다.
한 동안 멀리했던 신학과 종교 관련 서적에 올인 하려니 부족한 것은 집중력이요, 딸리는 것은 이해력이었다. 그래도 나이가 들 수록 느는 것은 아집이라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책을 완파 했다. 단순히 눈으로 텍스트의 궤적을 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집이 차오른 높이 만큼의 고집으로 이해가 되어질 수 있을 때 까지 또 읽고, 보고, 생각하고, 봤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개인적 오해와 의혹의 시선들...
하지만 괜히 고집이고, 아집이련가.
여전히 내 노력은 빛이 바래듯, 비참하게 머리에 각인 없이 많은 텍스트가 그저 모래알 흩어지듯 날려만 갔다. 책을 읽는다는 쾌감이 고통으로 빛이 바래지 무렵 리디 셀렉트에 눈에 띄는 책 한권이 결초 되어 다리에 걸렸다.
'자전거를 탄 세 남자'
제목을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아, 이거. 혹시, 제롬 k 제롬의????'
아니나 다를까 제롬 k 제롬라는 이름이 책의 판본위에 딱 박혀 있었다.
느낌이 왔다. 이 책은 내게 완벽한 휴식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치도 못한 독서라는 행위의, 특히나 취미로서의 책 읽기에 고통이 머리를 어지러이 할 무렵, 이 책은 내게 완벽한 터인 포인트가 되리라고 생각이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빅토리아 시대 배경의 포복절도할 슬랩스틱 코미디 였기 때문이다. 정말 문단을 따라가며, 문장을 흔적을 쫓으며, 단어 하나하나 되새기며 이렇게도 재미난 여행기는 그 당시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허풍으로 비롯 되어, 그 뒤에 도사려 있는 애잔한 고생기.... 제롬의 고난은 그 하나하나가 내게는 흥미진진하며 한하나도 놓칠 수 없는 유희꺼리였다.
그런데 그 후속편이라니 어찌 내가 취미로서의 독서가 힘겨워질 무렵 그 존재를 발견하고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겠냐는 말이다. 바로 위시리스트에 추가하여 다운로드 후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제롬 k 제롬이며, 역시나 세남자다......
라고 시작하는 글이면 좋으련만 그러하지 못하다.
처음에는 독일에 대한 영국인의 시선이려나? 오호, 좋아. 그럼 기왕에 자전거 기행을 통해 유럽 각지를 경험하며 당시 '해가 지지 않아갈 나라'로서 'Pax Britanica'의 시점으로 유럽에 대한 이야기로서 기대를 모았다. 단편적으로나마 당시 유럽에 대한 각국의 이미지에 대해 하나씩 알아 갈 수 있는 귀중한 책이려니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 세 남자'는 결과론적으로는 독일 유람기다. 살짝 체코를 경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에는 독일 유람기다. 그냥저냥 독일을 자전거 포함해서 이런저런 교통수단의 도움으로 이래저래 독일을 횡단하는 피카레스크 노블일 뿐이다. 그냥 쉽게 말해 독일 여행기다.
그렇다면 당시의 독일"만" 여행 하는 것이 뭐가 문제 이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문제다.
첫째.
예전의 '보트 위의 세남자' 같은 위트가 없다.
'보트 위의 세 남자'의 경우 주요 인물의 고생과 자연적, 인적 불운을 통해 겪게 되는 다양한 외삽이 불러오는 지극히 원초적이지만 다분히 일상적 유머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 남자'는 다분히도 평면적이다. 문화가 다르기에 발생 할 수 있는 뻔한 에피소드, 같은 그리스로마 문자 계열이기에 발생 할 법한 혼란... -물론 백년도 넘은 글에 대해 뻔하네, 어쩌네 하기도 애매하다만 시간이라는 통곡의 벽을 관통하는 글도 있기에 살짝 무시하려 한다-
그리고 다분히 논란이 될 법한 타민족에 대한 단방향적 이해다.
"독일에 있으면 공기에서 질서에 대한 사랑의 냄새를 맡게 된다."
"중국 개야말로 딱 독일인들을 위한 이상적인 개다. 갖다 놓은 지점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가는 법이 없다."
"독일인들은 유머 감각이 도대체 없어."
(아, 이게 이렇게도 오래 된 이야기였다니 놀라울 따름이긴 했다. 정말로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유머 감각이 없길래. 개인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반서으이 차원으로 유머감각을 자가비판 하에 일부 소거 또는 약화가 된 것이 아닌가 했다.)
"경찰과 소동을 벌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영국 젊은이들은 유모차를 끌고 독일로 건너오면 그만이다."
등등등....
물론 합리성으로 무장한 독일의 관점으로 영국의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얼간이적 유머의 저변으로서 타 민족에 대한 이해 없이 놀림감을 삼는 것은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개운치 않다기 보다는 오히려 입안에 많은 껄끄러움을 남긴다. 그리고 한 때 나를 무장해제 시켰던 그들의 슬랩스틱은 '자전거 위의 세 남자'에 이르러서는 아무래도 비슷한 민족적 편견에 고통을 받은 선조를 둔 나로써는 을씨년스러울 따름이다.
결국 휴식은 예상 밖의 큰 의식이 되어 달갑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