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출판사들에서 나온 걸리버 여행기 중 더스토리 출판사에 나온 걸리버 여행기가 표지도 괜찮고, 초판본 일러스트 80 여 컷 수록인데다, 무삭제 완역본, 거기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라서 이걸로 구매했습니다. 참고로 산 지는 좀 됐어요. 영국의 대표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작정하고 비튼 고도의 정치풍자 소설로, 순수청년 걸리버가 겪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극적 자각 여행을 그린 소설입니다. #오독완#독서습관만들기#걸리버여행기#풍자소설
내가 알던 걸리버여행기는 1, 2부구나.....
아니 거의 1부만 알고 있었는데
3부는 왠지 미야자키하야오 애니메이션이 생각나기도 하고,
4부는 아주 이질적인 이야기 이고....
하여튼 읽어보니까 그시절 영국을 아주 지대로 까는 풍자소설이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도 좀 느껴지고....
그냥 재미로만 보기에는 약간 무거울지도
풍자는 신랄했고 상상력은 대단했지만 걸리버가 조나단 스위프트와 별개의 인격이라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걸리버와 그의 모험과정을 통해 보여지는 그 창조자의 깊이는 몹시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어린왕자>, <갈매기의 꿈>과 함께 <걸리버 여행기>의 위대함을 말씀하셨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이전처럼 대단하게 떠올리지 못할 것이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일랜드 출신의 성직자로 영국 국교회 내에서 차별을 겪어야 했던 조나단 스위프트가 인간을 욕망으로 가득 찬 동물로 그려낸 소설로써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인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 천공의 섬과 휘넘국 등을 여행하는 동안 인간의 부정적 측면들과 혐오스러울 정도의 추악함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조나단 스위프트, 아니, 걸리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추악한 것이었던가. 물론 조나단 스위프트야 소설 속에 꾸준히 긍정적 인간형을 등장시키며 걸리버와 자신의 일치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인간혐오의 분위기는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분명 인간의 추악함이 당시 영국의 정치인들과 그들의 정책에서 엿보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의 입을 빌려 법과 정치, 전쟁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온당한 비판일 수 있느냐엔 의문이 남는다. 그는 합리적 논거를 들어 당대 인간들의 추함을 증명하고 드러내는 대신 일부의 악행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인간 일반과 동일시하고 스스로의 부족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당대의 제도를 거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소설 자체의 진행에 있어서도 그는 인간사회를 거의 열등하게 보이게 할 만큼의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휘넘국의 말들을 그저 이상적이라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걸리버와의 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현재의 인간사회 이상의 사회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실생활에서 느낀 좌절감을 바탕으로 현재사회의 추한 모습을 마치 그 게 전부인양 이야기하는 작자의 태도는 내게 소인국의 그것 만큼이나 역겹게 느껴졌다.
자신의 부족한 통찰과 이해력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인간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에 제일의 가치를 두고 있는 그의 태도가 나는 몹시도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인간은 물론이고 당대의 정치상황과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갖지 못했던 인간에 불과하고 이 소설은 그런 원작자의 한계가 고스란히 투영된 반쪽짜리 풍자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조나단 스위프트의 상상력과 비판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으나 그건 이 책이 가진 단점들을 모두 메울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실망하였다.
그리고 작자의 허락을 받지 못한 소설의 동화화는 절대 허용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완역판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그저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한 한 인간의 동화적 여행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당혹스런 기분을 느껴야 했는지 굳이 여기에 적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소설을 동화화하여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원작자인 조나단 스위프트에 대해서 뿐아니라 동화를 읽는 아이들에 대한 기만이다.
박지원은 역사책에 꼭 나오는 인물이다. '실학' 중에 '중상학파' 또는 '북학파' 인물로 소개된다. '수레와 화폐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시험 단골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지원은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양반의 위선과 조선후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풍자소설을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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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허생은 남산 밑에 가난한 선비로, 10년을 목표로 공부를 하다가 아내의 불평 때문에 3년을 남겨 놓고 중단한 뒤, 집을 나간다. 장안의 갑부 변씨를 찾아가 만 냥을 빌린다. 그 길로 안성으로 가 전국의 과일을 매점한 뒤, 값이 오르길 기다려 10배에 팔아 10만 냥을 손에 거머쥔다. 그 돈을 가지고 제주도로 건너간 그는 제주도의 특산물인 말총을 사들여 망건 값이 오른 후 팔아 다시 10배의 이익을 올린다. 그리고 나서 도적떼의 소굴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하여 한 사람 당 백 냥씩 주고 여자와 소 한 마리를 데리고 오게 하여 이천여 명을 무인도에 정착시킨다. 3년 후, 일본 나가사키에 흉년이 들자 그들에게 곡식을 팔아 은 백만 냥을 갖고 본국에 돌아온 허생은 백만 냥이란 돈이 쓸데가 없다 생각하여 50만 냥을 바다 속에 던져 넣고 남은 50만냥 중 10만 냥을 변씨에게 주고 나머지는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쓴다.
#호질
한 밤 중에 호랑이가 부하들을 모아 놓고 저녁거리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의원의 고기를 먹으려 하나 의심이 나서 먹을 수 없고, 무당의 고기를 먹으려 하나 불결해서 먹을 수 없고, 결국 맛 좋은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한다. 이에 큰 호랑이는 부하들을 남겨 놓고 골짜기를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때, 정지읍에 사는 청렴함으로 유명한 유학자 북곽선생이 이웃 마을의 동리자라고 하는 과부의 집에 가서 그 과부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성이 다른 아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엄마의 방에서 남자의 음성을 듣고 엿보니, 그 남자는 북곽선생이었다. 그들은 북곽선생이 밤중에 찾아 올 리가 없고, 여우가 엄마의 아름다움을 탐내고 북곽선생으로 변하여 엄마를 홀리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여우를 잡으려고 몽둥이를 가지고 엄마의 방에 뛰어든다. 북곽선생은 겨우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북곽선생은 캄캄한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밭뚝을 가다가 그만 똥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그는 겨우 발버둥을 쳐서 똥구덩이에서 간신히 기어 올라왔다. 거기에는 큰 호랑이가 앉아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에 북곽선생은 호랑이에게 '호왕'의 인격을 칭찬하며 한 번만 자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빈다. 호랑이는 북곽선생을 향하여 크게 질책을 하며 양반의 위선적인 생활을 꾸짖는다.
#양반전
강원도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다. 그는 학식이 높고 현명하고 정직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양반은 너무 가난해서 나라에서 빌려주는 곡식을 타먹고 살았다.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 천 석이나 되었다. 이 고을에 순찰차 들린 관찰사가 관곡을 조사하다가 천 석이 빈 것을 발견하였다. 화가 난 관찰사는 그 이유를 알고 당장 그 양반을 투옥하라고 했다. 군수는 양반을 투옥할 수도 그 빚을 갚도록 할 수도 없이 난감했다. 양반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울기만 하고 양반의 아내는 양반의 무능을 질타하였다. 이때 이웃에 사는 동네 평민 부자가 그러한 소문을 듣고 양반의 신분을 동경하던 중이라 이 기회에 양반을 사서 양반 노릇을 해보겠다고 작정하고 양반을 찾아가서 양반을 팔라고 한다. 양반은 기꺼이 승낙하고 평민 부자는 대신 환곡을 갚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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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양반이면서 양반을 신랄하게 까는(?) 독특한 사람 박지원. 이게 바로 조선판 스웨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