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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꿈의 공간들

듀나 지음
씨네21북스 펴냄

책을 읽으며 이죽거리고 비아냥대는 문장이 지나치게 많아 불편함을 느꼈다. 더불어 실린 글마다 그 완성도나 문체에 편차가 적지 않은데 자유로운 형식의 글 묶음임을 감안하더라도 아쉽게 느껴졌다. 그녀에 대해 밝혀진 게 없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정해진 장소에서 안정된 심리상태로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건 장담할 수 있을 듯하다.

듀나는 '추억의 영화' 코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임권택 감독이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한 사례를 언급한다. 당시 임권택 감독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로 <역마차>,<길>,<새>에 더해 <로마의 휴일>을 꼽았는데 듀나는 앞의 영화 리스트에 <로마의 휴일>을 넣는 감독이 몇이나 되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소위 한국 올드 영화팬들의 특정한 코드가 영향을 미친 사례라는 것이다. 그녀는 90년대 영화광, 나아가 시네마테크를 찾는 영화팬과 '추억의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구분짓는데 글에서 단순의 구분을 넘어선 우열의 잣대가 읽히는 듯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 장에 나오는 '아직도 '추억의 영화' 팬들은 "한국 사람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최고의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라고 생각해!"라는 말이 왜 웃긴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문장에선 이와 같은 잣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체 한국 사람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고의 할리우드 뮤지컬로 생각해선 안 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외화가 영화수입사나 TV에 의해 선별되어 상영되었고 그로부터 특정세대 한국 영화팬들의 취향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이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최고의 뮤지컬 영화로 꼽는 걸 조롱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좋은 영화에 감동하고 이를 기억하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며 이와 같은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듀나의 글에선 자신과 다른 것을 마음껏 비꼬고 이죽거리는 경향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 가운데 상당수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의 글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2010년대 영화팬 세대인 나는 90년대 영화팬 세대인 듀나에게서 꼰대스런 인상을 받았는데 그녀가 정영일과 같은 영화저널리스트에 대해 적은 것과 크게 다른 인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책에서 예술가란 젊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듀나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 성숙과 늙음이 다르고 작가란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을 성숙시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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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이 소설을 쓴 뒤 가진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설 가운데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고통과 분노와 절망 따위가 흩뿌려져 있는 듯하다. 마치 더욱 참혹한 고통을 다룬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써낸 뒤 그것이 사랑이야기라고 주장했던 것만큼이나 당혹스럽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위에 발췌한 짤막한 구절에서 엿보이듯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 우정과 사랑에 대한 흔적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너무 흔한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도 한다. 마치 발가벗겨져 쫓겨난 뒤에야 옷과 집, 부모가 준 애정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수의 사랑>은 그래서 아름다움이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를 일이다.

여수의 사랑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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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잠식된, 아니 결탁했단 표현이 보다 어울리는 미술계를 담당하는 기자다. 한때는 호흡이 긴 지면 기자로 일했으나 <TV조선> 이직 후엔 1분40초 내외의 방송리포트로 미술 행사를 꾸려나간다.

박소영이 작품을 대하는 틀은 대체로 생태와 동물권에 깊이 엮여 있다. 다른 생명을 착취하지 않고 자연을 해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 지구와 인류에 가장 주요한 덕목이라 여기기 때문일 테다. 작금의 기후위기를 비롯해 지속가능한 소비를 유지하는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미술과 이와 같은 기준을 엮는 데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다만 그리 길지 않은 책 가운데서도 독자적 통찰이 얼마 보이지 않고 대동소이한 잣대만 거듭 들이대는 게 아쉽다. 생태와 동물권에 대한 잣대가 작품을 평가하는 우선적이자 거의 유일해보이는 기준이 아닌가. 그 시대적 유효성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이라면 그 이상을 내놓아야만 한다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박소영의 해방

박소영 지음
편않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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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 모음집, 그 가운데 드러나는 건 차라리 작가 자신이다. 한강이 희다고 여긴 것들, 그리고 그 이유를 통해 독자는 글쓴이가 어떤 인간인지를 읽어낸다. 그녀가 태어나기 몇 년 전 홀로 낳은 아이의 숨이 끊어지는 걸 보아야 했던 어머니가 있고, 훗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린 작가가 있다. 갓난 아이가 죽어 식어가는 모습을 견뎌야 했던 여자의 이야기는 작가가 안고 있는 슬픔의 근원처럼도 보인다.

단 몇 시간이면 충분히 읽어 내릴 수 있는 글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며칠에 걸쳐 읽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게 한강보다는 다른 이를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을 준 이가 여백마다 빼곡하게 적어둔 메모, 그녀가 인상 깊게 읽었다는 문장들이 자주 호흡을 멈추도록 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다시 찾아 읽으며 어째서 누구는 울림을 얻고, 나는 그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한강 지음
난다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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