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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설공주 이야기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의 표지 이미지

흑설공주 이야기

바바라 G. 워커 지음
뜨인돌 펴냄

여성학자 바바라 G. 워커가 널리 알려진 동화 열네편을 페미니즘적 관점에 입각해 각색한 동화집이다. 어린시절부터 직간접적으로 접하여 어린이들의 의식 속에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동화들을 해부함으로써 그 속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각종 편견과 부당한 의식들을 꺼내어 해체하고 있는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 원대한 포부만큼은 무척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동화들은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과 마찬가지로 남과 여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타파함으로써 독자의 고정관념에 의식적 충격을 가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벌거벗은 여왕님>, <개구리 공주>, <질과 콩나무>, <알라딘과 신기한 램프> 등의 작품에서 원작에선 남성이었던 주인공을 여성으로 교체한 부분에서 잘 나타난다.

이 동화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못난이와 야수> 등에서 기존의 수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주인공을 예쁘진 않지만 적극적인 인물로 바꾸는 등 동화라는 이름아래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편견에 전면으로 부딪히는 선택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문제제기 되어지지 않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저항이란 언제나 그렇듯 불편하면서도 짜릿한 것이어서 바바라 G. 워커의 이 시도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저 문제의 의식화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랄까. 다시말해 원작을 발판으로 어떠한 새로운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다.

시도는 참신했지만 깊이는 얕았던 이 이야기들에서 독자의 가슴에 울릴 수 있는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던 걸까. 바바라 G. 워커의 개작은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고 재미가 없다는 말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경쟁력 없는 이야기는 도태되기 마련이니 이 소설들은 페미니즘 어쩌고 하는 타이틀을 달지 못한다면 사라지고 말 운명임에 분명하다. 안쓰럽다.
2024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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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지오와 유찬 모두가 저마다 원치 않는 변화 앞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간다. 제 멋대로 닥쳐오는 불행은 어찌할 수 없다지만, 대응만큼은 내 몫이란 걸 이해하게 된다. 그 또한 성장이다.

기억은 편의적이다. 한때는 간절했던 순간조차 지나치고 나면 흐릿해진다. 오늘의 내가 어느 순간 뚝 떨어진 것이 아닐 텐데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지난 시간을 충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이 우리가 지나온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단 건 분명한 매력이다.

지오와 유찬의 앞길에 다시는 고통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또 다른 상실이, 아픔과 좌절이 닥쳐올지 모른다. 여전히 제 의사 따윈 고려하지 않고서 삶 전체를 망가뜨릴 듯 달려들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앞에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용서하고 응원하며 지지하려는 마음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으리라고 이 착한 소설이 이야기한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지음
문학동네 펴냄

2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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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인간보다 땅을 잘 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정신에 있다 말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두게 되었을 때, 인간은 인간다움이 예술에 있다고 하였다. 이제와 기계가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소설까지 쓰는데, 인간은 인간다움이 무언지 찾으려 들지도 않는다.

에르베 르 텔리에가 AI와 소설 쓰기 대결을 벌여 간신히 승리한 사실을 처음 한국에 전했다. 흥미로운 건 르 텔리에와 같은 탁월한 작가가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단 것. 놀랄 일도 아닌 것이 AI가 당장이라도 써낼 수 있는 졸작이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대단히 훌륭한 저술도 수백권을 팔지 못하고 절판되는 게 현실인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진실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탁월함을 추앙하는지를 의심한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시시각각 닥쳐온다. 떠밀려 익사하지 않기 위해 무얼 하긴 해야 할 텐데. 늦된 데다 어설픈 이 책은 한숨만 깊게 할 뿐.

먼저 온 미래

장강명 지음
동아시아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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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이었으면 좋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 열리는 독립영화 상영회가 있다. 서울 홍대입구역 인디스페이스에서 평일 저녁 진행되는 독립영화 쇼케이스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회원이 만든 작품을 정식 개봉에 앞서 선보이는 행사로, 따로 만나보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를 극장서 접할 수 있단 점에서 유익한 자리다.

책은 2024년 독립영화 쇼케이스의 기록이다. 상영된 작품 모두의 출발부터 제작과정, 비평과 상영 뒤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까지를 글로 정리해 묶어냈다. 개중엔 <해야 할 일>처럼 나름 주목할 만한 작품도 있고, 다분히 실험적이고 대중성을 아예 상실한 듯한 영화도 있다.

영화에 따른 기록인지라 영화의 가치가 곧 책으로 이어진단 건 어찌할 수 없는 일. 한국 독립영화가 아직은 갈 길이 구만리란 걸 이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는 건 언제고 훌륭한 작품을 이 행사를 통해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겠다.

2024 독립영화 쇼케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편집부 지음
한국독립영화협회 펴냄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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