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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청년 극우의 성차별, 인종주의, 여성혐오의 정신분석 - 여성혐오와 남성문화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심층 연구한 최초의 성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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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요한센

학지사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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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 맥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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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메두사의 시선 1) (페미니즘 국제정치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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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리어든

나무연필

성차별 관련 판례와 결정례 연구 - 광복 후 2012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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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엘림

에피스테메(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판례로 본 성차별, 성인지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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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암마이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차별과 다양성 사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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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디 미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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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빈

@seohabin
2025. 01. 16. - 필독서 - 📖 52 또한 그러한 요구는, 모든 부분에서 여성보다 이성적•과학적이라고 주 장하는 남성들이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성욕을 억제할 수 없다.’ 며 스스로를 '동물'의 수준에 놓는 것처럼, 남성 스스로가 자신을 여성과 동등한 대화 상대자가 아니라 마치 성장이 멈춘 아이'라 고 주장하는 것이다. 📖 58 여성은 특정 연령층이 되면(아마도 30대부터), 혹은 소위 아줌마 체형을 갖게 되면, 결혼과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어머니로 호명되고 어머니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모든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돌보기를 즐기고 좋아할 것이라고 기 대된다. 결혼했으나 자녀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여성은 끊임없는 사회적 비난과 호기심을 견뎌야 한다. 📖 108 남성이 ‘더럽다'고 간주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규정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이 연상된다. / 남성 권력의 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이기 때문에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을 가질수록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가질 수 있다‘). 반면,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남성들은 한 여성을 다른 남성과 공유한다. 계급과 섹스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정반대로 나타난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명의 남성하고만 섹스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한다. 성매매와 성폭력은 이처럼 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상황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적 현상들이다. 📖 112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섹스와 음식 만들기는 가부장제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다. 즉, 음식과 성을 노동으로 강요받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은 음식과 성을 즐길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남성은 수천 년 전부터 생식이나 쾌락, 자기 실현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성을 즐겨왔지만, 여성의 성은 지금까지도 출산의 영역에 한정할 것을 강요받는다. 여성의 성욕이 부계 가족 유지-아들 낳기만을 위해 허용되듯, 여성의 식욕이 찬양되는 시기는 임신했을 때뿐이다. / 남성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이중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음식을 만들되 먹지 말라, 말라깽이가 되되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라, 정숙하면서도 섹시하라•••••. 식욕•성욕•수면욕은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니라 남성의 3대 욕구인 셈이다. 📖 127 해결 방법 중 하나라는'화학적 거세의 사고방식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의혹은 또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지나친 도덕적 낙인(변태, 괴물 등)과 '참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경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의 모든 통계조사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주장하는 입장은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성 문화는 왜 이 토록 성범죄가 아니라 성범죄'자'를 혐오할까. "나는 아니다."를 증명 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성범죄의 원인은 일상의 성차별, 성역할 구조인데, 이를 수용하게 되면 모든 남성은 피곤해진다. 남성은 잠재적 피고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존의 여성관, 세계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 '변태'의 문제로 축소하면 성범죄는 남성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특수화, 엽기화된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밤거리나 여행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등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와 사회를 통치하는 '안 걸린' 남성들은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보호자, 시혜자, 감시자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것이 '화학적 거세'의 배경이다. 📖 192 서구 항공사 승무원들은 중/노년의 남녀인 경우가 많은 데 반해,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항공사 승무원은 ‘젊고 예쁜’ 여성 일색이다. 이러한 대비는 서구 항공사 노동자들이 벌인 노동운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성별화된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기도 하다. 📖 225 이제까지 성을 사는 남성은 문제화되지도 않았고 사회적 낙인의 대상도 아니었다. 만일 성매매가 더러운 것'이라면,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말대로, 성을 파는 여성은 일부지만 성을 사는 남성은 대다수이 므로 더 더러운' 것은 남성 집단이 아닌가? 성을 사는 남성은 타자가 아닌데, 왜 성을 파는 여성은 타자인가? 남성은 여성보다 더 섹스를 필요로 하고 남성의 성욕은 거의 무한대로 인정받음에도 불구하고, 왜 남성은 성적 존재나 성적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가? 왜 남성은 가난해도 성을 팔지 않는가? 왜 여성은 남성만큼 이성의 성을 사지 않는가? 성판매 여성이 겪는 고통은 성매매가 불법이어서 발 생한 문제일까, 아니면 성의 이중 윤리(double standard)에서 비롯된 여성의 성에 대한 혐오 때문일까? 왜 '창녀에 대한 낙인과 비하는 모든 여성에게로 연결, 확대될까? 서구에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탄생한 급진주의 페미니즘 이론은 성매매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고 명쾌한 그리고 여성주의 진영의 '전통적인' 논리를 제공한다. 📖 227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성매매 와 포르노그래피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정상화, 정당 화하는 남성 중심 시스템의 핵심이다. 성매매는 성폭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법 시행 이후 "성매매 방지법은 남성 인권 침해", “18~32살 남성의 성욕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성매매를 금지하면 강간이 증가하므로, 성매매 허용은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남성 들의 분노와 흥분은, 이제까지 한국 남성들에게 성이 얼마나 성매매, 성폭력과 동일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성매매는 강간할 권리를 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다. 이는 성판매 여성이 성을 파는 것이 아ㅂ니라 팔리는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주,성매매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을) 남성에게 파는 것이다. 특히,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매매는 더욱 인신매매적 성격을 띠고 있다.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교양인
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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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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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274870
Review content 1
📌<도서협찬 > 📚마법이 필요한 순간, 우리 모두의 보건실! 📚보건실에서 만난 마법 같은 하루! 📚이시카와 히로치카 저자 <보건실에는 마녀가 필요해>! 💊마법과 상처가 교차하는 공간! <보건실에는 마녀가 필요해>는 각종 주술과 유혹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불편함에 맞서 싸우는 정의 실현 마녀 판타지 소설로, 만화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설정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마녀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취약한 10대 여성 청소년의 현실과 성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까지 다루는 이 작품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보건 교사인 주인공에게 서로 다른 여학생들이 각자의 고민을 상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외모에 대한 고민부터 친구 관계, 부모와의 갈등, 성차별과 성희롱까지! 여성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겪는 고민과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 보건 교사이자 마녀인 주인공은 학생들에게 아주 섬세하고 진지한 상담을 해주고, 자신의 만든 주술을 학생들에게 권하는데, 주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내면의 변화와 함께 성숙한 여성으로 한층 성장하게 되는 작품으로, 판타지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10대이면서 여성인 존재, 그리고 가장 약한 것 같아도, 실은 가장 강한 존재인 그녀들을 위한 소설인 이 작품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아주 재미있게 그려내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읽어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법과 현실이 교차하는 보건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청소년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따뜻한 치유를 그려낸 감성적인 판타지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민 선생뿐만 아니라, 주술을 생산하는 많은 동료 마녀들이 등장한다. 서로 더 많은 , 더 훌륭한 주술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결투를 진행한다. 또, 주술은 늘 어리고 약한 존재인 소녀들을 구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췄다. 그렇다고 약한 존재인 소녀들만 구원하는게 아니다. 때로 남학생들을 구원하기도 한다. 여성이 스스로 어둠의 영웅이 되어 같은 여성들을, 모두를 구원하는 이야기인 이 작품은 마녀들은 가장 여리고 취약해 보이는 계층인 10대 여성 청소년이 얼마나 스스로 당당하게 강해질 수 있는지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비록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고 소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조용하고 은밀한 공간인 보건실을 학생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그곳에서 마녀로서의 능력보다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태도로 아이들을 치유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또한 마녀들의 철학적 경쟁인 '일곱 마녀 결정전' 을 단순한 마법 대결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선한 영향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민 선생은 단순한 마녀가 아니다.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는 존재이다. 그녀의 마법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공감과 위로을 해주는 능력이다. 꾀병을 부리는 아이,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 가정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까지 청소년이 겪을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독창적인 설정으로 인해 긴장감뿐만 아니라, 마녀들이 인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이야기도 담고 있어서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저자의 잔잔하고 따뜻한 문체, 그리고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마법보다 강한 치유는 이해와 공감을 담고 있다. 청소년의 현실적인 고민을 마녀라는 소재를 통해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단순한 판타지보다 청소년의 내면을 이해하고 성장을 이끄는 작품이다.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 각종 유혹과 불편함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마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불편함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된다. 마법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현실의 아픔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되는 이 작품은 현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감성적인 치유 소설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읽는내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본 도서는 북멘토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보건실에는마녀가필요해 #이시카와히로치카 #힐링판타지 #감성판타지 #청소년판타지 #판타지소설 #힐링 #감성 #청소년소설 #성장소설 #치유소설 #마법 #마녀 #신간 #신작도서 #서평단 #도서협찬 #도서리뷰 #일본소설 #소설리뷰 #소설추천 #책리뷰 #책추천 #도서추천 #북멘토
보건실에는 마녀가 필요해

보건실에는 마녀가 필요해

이시카와 히로치카|북멘토(도서출판)
4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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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쥬리

@happy_j
Review content 1
⭐️ 지적 허기를 채워 보세요 ⠀ 오늘의 세상을 만든 단어들이 품은 이야기! ⠀ ⠀ ⠀ #인텔리전스랩 #조니톰슨 #윌북 ⠀ ⠀ 지식 쌓기에 좋은 책이죠 상식과 유래로 풀어낸 이런 책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 ⠀ <필로소피 랩>의 작가 <조니 톰슨>의 신작입니다 ⠀ ⠀ 전작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면 이번은 생물학, 화학, 물리학, 의학, 사회, 정치, 기술, 문화, 종교와 신앙에 대한 많은 개념정리를 해 준 책이예요 ⠀ ⠀ ⠀ 저는 이 중에서 중합체의 플라스틱 이야기와 민주주의, 페미니즘, 문화의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 ⠀ ⠀ ⠀ ☪️ ⠀ 플라스틱으로 인한 폐기물과 환경 오염 문제가 넘쳐 나는데도 플라스틱이 곧 사라질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오히려 반대로 플라스틱이 곧 미래가 되었죠 나노기술, 최신 항공기, 스마트폰, 인공 보철물, 자동차, 3D 프린팅 등에 전부 플라스틱이 쓰이니까요 ⠀ ⠀ ⠀ ⠀ ☪️ ⠀ 민주주의는 고정된 개념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국가 체제를 변화시켰듯 민주주의 제도 자체도 끊임없이 달라지고 변모하죠 외국의 간섭과 사이버 공격, 허위 정보 유포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 ⠀ ☪️ ⠀ 문화란 삶을 빛나게 하는 인간의 창의성이 작용한 결과물을 아우르는 말입니다. 문화는 우리에게 공감을 가르치고 ,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우리 마음이 날아오르게 합니다 ⠀ ⠀ ⠀ 💭💭 ⠀ 성차별이 없는 개념이 페미니즘인데 여성 우월이나 남성 혐오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물론 정의하기가 쉬운 단어는 아니지만 정치나 사회적으로도 우월한 여성 통지자나 운동가가 있다는 건 명백하죠 ⠀ ⠀ 페미니즘에 대해서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전 존중과 균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녀 평등은 가정에서도 일에서도,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단 생각입니다 ⠀ ⠀ ⠀ ⠀ 읽는 내내"오~!" 를 연발하며 페이지를 넘겼어요 지적 허기를 제대로 달래 줄 책입니다 ⠀ ⠀ ⠀ 결론! 지금 읽어야 할 교양서이다 내 지식이 쌓이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 ⠀ ⠀ ⠀
인텔리전스 랩 (내 삶을 바꾸는 오늘의 지식 연구소)

인텔리전스 랩 (내 삶을 바꾸는 오늘의 지식 연구소)

조니 톰슨|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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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어요
1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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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쓰

@gyeongsss
세상 지식이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여성, 여성주의에 무지한 것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아직도 여성주의를 아는 것 자체로 비난받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지식은 아는 것이 힘이지만,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이다. 두 경우 모두 지식이 특정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위계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의 교양과 예의뿐 아니라 권력을 드러낸다. 왜 여자들이 취업하려고 하지? 장애인도 애를 낳을 수 있나? 왜 노인이 사랑을 해요? 동성애자도 실연당해요? 흑인도 철학자가 될 수 있나? (이주 노동자에게) 왜 한국에 왔나? 이 같은 질문은 남성, 비장애인, 젊은 사람, 이성애자, 백인, 한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혹은 용서받지 못할 욕망으로 간주된다. 여성은 ‘약자’일수록 여성으로 인식되며, 남성은 ‘강자’일수록 남성으로 간주된다. 이제까지 여성은 인식 주체가 아니었다. 따라서 세계를 창조할 수 없었다. 단지, 말해지는 대상, 남자 갈비뼈의 한 조각, 남자가 만든 판타지, 국민·시민·민중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가장 비싼 동산(動産)일 뿐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장애인이나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때와는 다르게, 자기 권리를 외치는 여성을 사회가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창녀’일 뿐, 지식인이나 중산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과학적’ 여성운동은, 여성을 불쌍한 피해자로 재현하여 시혜자인 남성 주체의 권력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희생자화는 타자화의 가장 세련된 형태일 뿐이다). ‘정신 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상적인 모성애의 대상은 아들일 뿐이다. 이에 대한 가장 적실한 사례는 여아 낙태일 것이다. 딸은 자식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수백만 명의 (여성이 아니라) 어머니들은 ‘어미의 본능’마저 거부하며 자발적으로 아이를 살해한다. 자녀는 성별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다. 사실 ‘생계 부양자 남성/가사 노동자 여성’이라는 성역할 모델은 극히 일부 중산층만의 전형일 뿐, 대부분의 가정에서 여성은 생계 부양자이자 가사 노동자다. 하지만 여성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을 받고, 남성은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보다 더 많이 받는다. 잠재적 어머니로 분류되는 여성 노동자는 노동 시장 진입에서부터 임금, 승진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냐, 노동자냐’라는 정체성을 택일할 것을 강요받거나, 택일하지 못할 바에야 둘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라는 생각 때문에 여성은 다 같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한 여성의 실수나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남성은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남성 명사에는 인(人)이 붙지만, 여성 명사에는 녀(女)가 붙는다. 우리말 여성형 지칭에서 유일하게 인자(人字)가 붙는 경우는 미망인(未亡人,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여자)뿐이다(이 용어는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가 뒤따라 죽는 인도의 사티 풍습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도 자신이 사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의 연장으로 본다. 그들의 ‘휴식처’인 가정에서 만나는 어머니·누이와 ‘놀이터’인 술집에서 만나는 접대 여성이, 남성이 여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과 동료나 경쟁자로 관계 맺어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아버지에게 강간당하는 것은 가부장제를 조금도 위협하지 않는 사건이지만,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는 그것이 강간이든 상간이든, 사회적 추방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지만, 유독 어머니만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출세‘시키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변화시켜야 하고(피해자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는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자녀들에게는 모성애를 발휘해야 한다. 아이를 남기고 폭력 가정을 탈출하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순결이 그러하듯이 모성애 역시 여성의 목숨과 맞바꿔야 한다는 남성 사회의 메시지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는 여성은 자신을 파괴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역할에 충실하며 집에만 머무를 때,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집 밖으로 나올 때, 남의 어머니일 때 그녀는 아줌마다. 그녀가 집에서 내게 밥을 해줄 때는 어머니지만, 그녀 자신이 음식점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을 때는 아줌마다.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은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자기 욕망으로 젖가슴을 드러낼 때 그녀는 필시 몸을 파는 여성이거나 ‘미친 년’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성스럽고 숭고하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없으며, 성폭력과 성관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가장 섹시한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믿고 있다. 하긴, 어차피 외로움이란 삶의 조건이어서, 결혼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롭다. 시인 신현림의 표현대로, “여자에게 독신은 홀로 광야에서 우는 일이고, 결혼은 홀로 한 평짜리 감옥에서 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배려, 보살핌, 사랑의 생산을 위해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별 분업인데, 남성들은 주로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사적’인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가족이나 연애 관계에서 관계성을 경시 혹은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육체 노동, 감정 노동, 정신 노동에 무임승차한다. 관계에서 남성의 ‘과묵함’이나 모든 면에서 감정적이지 않으려는 심리는 이 때문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차별적인) 규범이 적용된다. 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섹스를 잘하거나 못할 때, 그녀에게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자,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여성은 남성의 벗은 몸을 보고 공포를 느끼지만, 남성에게 여성의 벗은 몸은 쾌락의 대상이다. 남성은 돈을 지불하면서 여성의 몸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무게는 절제와 인내력 등 자기 관리의 지표일 뿐 아니라, 여성의 인격과 정체성의 기준이 된 지 오래다. 물론 뚱뚱한 남성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몸무게가 일상적으로 남성의 삶을 통제하거나 규율하지는 않는다. 여성의 체중은 곧바로 취업·결혼·대인 관계·자존감으로 연결되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여성의 거식증은 연속체로 존재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먹는 양을 조절하지 않는 여성은 거의 없다. 성범죄의 원인은 일상의 성차별, 성역할 구조인데, 이를 수용하게 되면 모든 남성은 피곤해진다. 남성은 잠재적 피고인이 되지 않기 위해 기존의 여성관, 세계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소수 ‘변태’의 문제로 축소하면 성범죄는 남성 문화의 결과가 아니라 특수화, 엽기화된다. 그래서 여성운동은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 아니라 “맞아 죽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미국의 시각이 걸러지지 않은 보도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최근 어느 시사 잡지는 소말리아 내전에 자원한 여성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녀는 전쟁 상태가 훨씬 살 만하다고 말한다. 군인으로 음식을 배급받고 남편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이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언어는 누구의 경험인가? 여성에게 무엇이 일상이고 무엇이 전쟁인가? 성별을 독자적인 사회적 모순, 정치 제도로 인정하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죽이는 것은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 무엇이 사회이며,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가정과 사회는 다른가? 남편에게 당하는 고문과 국가로부터 당하는 고문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 있긴 하다. 국가 기관에서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 가해자에게 밥을 차려주지는 않아도 되며, 평생 맞는 것도 아니다.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결국 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가정은 치외법권 지대이며 아내를 구타하는 남성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를 받는다.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성역할 규범이 남편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폭력 상황에서도 가해 남편의 권력(=‘버릇’)을 고치고 가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전쟁, 조직폭력, 학교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감동시켜 폭력을 멈추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아내일 때는 예외이다. 그 인간이 여성이라면, 여성이 아내가 되면, 맞지 않을 인간의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가 더 강조된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가정폭력 방지법으로 고소당한 폭력 남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집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억울해한다. 가정폭력은 피해가 명백히 가시화되어야만 ‘진실’이 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피해 이후에 논의된다. 여성운동가들이 가정폭력이 사회적 문제임을 주장하기 위해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당하는 폭력은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므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피해가 끔찍하고 심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을 사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인가, 아니면, ‘남성으로서의 권력’인가? 남성들은 ‘양성 평등’을 위해 여성과 같아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가사 노동, 자녀 양육 등 주로 여성이 해 왔던 재생산 노동은 경시되고 비하된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적인 노동’을 하는 것은 수치와 무능력으로 여겨진다. 현재의 인권 개념에도, 보살핌과 돌봄, 배려의 가치 같은 ‘여성적 경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 개인을 여성이라는 전체 집단의 속성에 귀속시키지만, 사실 남성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개념은 대단히 협소하다. 정숙하고 젊고 예쁜 여성만이 여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흡연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있지만 모든 여성에 대해 그런 것은 아니다. ‘술집 여자’나 할머니 혹은 여성 지식인의 흡연은 자연스럽다. 한국 사회는 젊은 미혼 여성의 흡연만 처벌한다. 이는 젊은 여성만이 진정한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흡연은 여성성을 위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집 여자’와 할머니는 남성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흡연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성이 성산업에 종사하는 것은, 그녀가 가난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난하지 않은 여성도 인신매매에 의해 성판매 여성이 된다. 가난한 남성이라 할지라도 여성에게 성을 팔지는 않는다. 성매매는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의 문제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파는 것은 몸이지 성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성으로 간주되며, 여성의 성은 팔거나, 팔리는 상품이 된다. 남성 노동자가 파는 것은 성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 팔리는 노예가 아니다.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규범적인 여성성을 대표하는 중산층 여성은 군대에서 허드렛일을 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남자들 틈에서 살기로 작정한, ‘고귀함을 잃어버린’ 가난한 여성들은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으며, 이들에 대한 성적 비하는 남성 군인들의 성 정체성 확립과 남성 연대를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성성은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전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후방에서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할 여성이 남성과 참호에 같이 있는 것은 남성의 자아를 짓밟는다.(“내가 기집애랑 이러려고 군대에 왔나.”) 여성이 전투직에 종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남성 정체성을 위협하는 성역할 파괴를 의미한다. 군대가 젠더의 산물이며, 폭력과 섹스가 결합한 제도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기지촌은 이미 그 자체로 성별화된 공간이다. 군대 내 성매매를 ‘위안’이나 ‘휴식’ 등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적 권력 행위로서의 성폭력 문제를 ‘신체의 요구’라는 생물학적 주제로 이동시켜, 가해 남성의 책임을 비가시화하고 여성의 고통을 주변화한다. 폭력은 원래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사회운동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파악해 그것을 ‘제거’하고 제약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교양인
1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