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 주요 감상]
#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전문성
한 명의 이야기로도 하나의 책이 나올 수 있는 각 분야 15인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대담이 실려있는 책. 종사하는 필드에서 굵직한 업적을 남겼던 이들답게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들의 말은 혼란한 현대 사회에서 독자들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능동적 주체성을 안내하는 이정표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각 대담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제작 그림을 삽입하는 등 현대 기술과 협업 시도도 돋보인다.
# 참신했지만, 어딘가 아쉬운
하지만 AI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자 한 목적이 있음에도 인터뷰이들의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한 나머지 본 주제의 얘기가 묻히는 대담들이 존재한다. 또한 AI의 답변과 실제 인간 전문가의 육성 답변을 병치한 시도는 참신했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독서에 방해가 되었다. 챕터 끄트머리에 이러이러한 점에서 답변 간에 차이가 있다고 언급을 넘어 구별되는 부분에 강조 표시를 하거나 비교표라도 삽입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10P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이를 우리는 호모메디우스Homo Medius, 즉 ‘사이 인간’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_「프롤로그」 10쪽
≫ 인간은 기술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객체가 아니라, 문명의 균형추를 잡는 주체임을 선언하고 다짐하는 문구.
27P 저는 공존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대립의 관점에서 계속 AI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공포 때문이죠. 이 두려움을 빨리 걷어내고, 어떻게 AI와 공존할지, 또는 더 현명하게 이용할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인터뷰 中
59P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존재죠.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소설가 장강명 인터뷰 中
79P 건축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공간이 삶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며 사회를 설계하는 틀’이기 때문이에요.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위한 구조’를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의 싸움이 아닐까 싶어요.
- 건축가 유현준 인터뷰 中
96P 어쩌면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가 이제 인간을 빼닮은 인공지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역설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뇌과학자 김대식)는 칼럼에서 사실관계의 왜곡이나 거짓말이 오히려 "인간을 빼닮은 지능"의 발현 증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간의 뇌 역시 입력된 감각 데이터를 그대로 출력하지 않는다. 파편화된 기억을 조합하고 때론 존재하지 않는 서사를 덧붙이는 것이 인간이다. AI의 환각을 인간의 서사 창조와 비슷하게 여기는 인터뷰이의 상상력이 참신하다.
145P 물론 시대적 맥락이나 장식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인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느냐가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 연출가 이대웅 인터뷰 中
160P 인도를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에 있습니다.
- 인도학자 강성용 인터뷰 中
192P 생물학적ㆍ물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에 인간과 기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철학자 최진석 인터뷰 中
196P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철학자 최진석 인터뷰 中
220P 따라서 자신이 타자를 맞이하거나 혹은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행위가 예술이나 문학을 접하는 행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학평론가 이광호 인터뷰 中
230P 흔히 사진을 ‘찰나를 포착하는 예술’이라 말하죠. 하지만 그 찰나는 오랜 준비와 숙고 끝에 만들어진 계산된 순간일 수 있어요.
- 사진가 김용호 인터뷰 中
≫ 예술의 진면모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예술가가 감내한 시간과 고민의 궤적에 있음을 말하는 대목.
234P 예술이란 단순한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안에 감상방식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 사진가 김용호 인터뷰 中
≫ 누군가 비슷한 방식으로 감상을 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은 결코 같을 수 없기에 오늘날 수많은 예술의 변주가 펼쳐지고 있다.
244P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일상 속 대화 파트너로 자리 잡을수록, 우리는 더욱 정교하게 언어를 사용하면서 비언어적 요소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면접자의 눈빛과 표정, 말투까지 샅샅이 분석하는 AI에게 굽혀야 하는 취업 구직자의 서글픈 현실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248P 즉 호칭과 높임법 문제는 단순한 언어 사용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위계와 관계 설정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합니다.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대한민국만큼 세분된 호칭과 높임법 문체를 지닌 나라도 극히 드물지.
249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가치관 차이가 아니라, 언어적 구조와 위계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관계 설정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공식적인 자리에선 금지되어있지만 아직도 암암리레 사용되는 압존법이 대표적이지 않을지.
2018-34
“누군가를 좋아하면
하루 중에 그 누군가를 좋아하는 시간이
분명 존재하듯
나도 나를 좋아하는 시간이 분명하게
필요하다.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지만
많은 것을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아깝잖아
어떻게 버티고 살아오는 날 들인데.”
“대화를 할 때는
누구의 옳고 그름도 아닌
서로의 마음만을 알아주었으면
그래서 대화의 끝에는
우위를 선점한 누군가가 아닌
나란히 옆에선 우리가 있었으면”
#내가나를간직할수있도록#이광호#산문집#별빛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복잡한 세상에서 잊혀져가는 자기 자신을
놓으면 안된다는 말이 참 좋다.
남을 좋아하듯이 자신을 좋아해주고
그들과 함께 나란히 살며
좋은 것들을 많이 기억하며 살자.
#휴가
좋겠네요.
뭐가 좋아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요.
아무나 그릴 수 있어요.
아무나 그릴 수 있지만 누구나 그릴 순 없어요.
누구나 그릴 수 있어요. p.46 <종이 위의 욕조-김중혁>
누구나 죽는다. 언젠가 장의 부고도 받게 될 것이다. 장이 양의 부고를 받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었다. 최후의 문장이 누구의 것이든 애도는 남아 있는 자의 의무였다. p.73 <상자의 미래-정이현>
하지가 지나면 밤이 길어지지. 12월이 되면 오후 3시만 돼도 어두워져. 그리고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해는 뜨지 않아. 겨울은 혹독해. 그리고 끔찍하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거든. 사실 추위보다 무서운 것은 어둠이야. 어둠과 추위는 사람들을 변하게 해. 슬프고 날카롭게 만들어. 사랑했던 이들은 이별하고, 말이 많던 이들은 침묵해. 도시는 텅 비고,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어. 밤은 무한하게 늘어나. 마치 영원 같아. 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과학적 약속이 거짓말로 느껴질 정도야. 아무리 대비하고 예상해도 밤은 너무 길게 느껴져. 밤이 깊어지면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 심지어 뒤로 가는 밤도 있어. 모든 감각이 무너지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도 오지.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촛불을 바라보는 새벽엔 어쩌면 세상이 오래전에 멸망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한겨울에는 말야. 그러니까 한겨울에는...... p.96 <미드윈터-정용준>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였어. 좋은 것도 그렇게 표현했고 나쁜 것도 그렇게 표현했지.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하지만 그는 반대로 내 말투가 무미건조하다고 싫어하더군. 나는 대부분의 감상을 '나쁘지 않다'라고 했거든. 나중엔 이것이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우린 자주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말버릇을 흉내 내며 말장난을 즐겼지. 나중에는 서로 조금씩 노력하자고 합의했어. 나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기로, 그는 과장하거나 비약하지 않고 표현하기로. 그랬는데, 지금은 그 약속을 후회해. 그 친구를 내버려둬야 했어. 그랬으면 정말로 죽고 싶어졌을 때 '죽고 싶다'라고 말을 했을까. p.98 <미드윈터-정용준>
그는 말하고 싶었다. 잘못 어른이 돼버린 사람에게도 아주 가끔 어린 시절의 짧은 꿈과 해후하는 순간이 있다고. 그것은 생의 찬란한 진품을 되찾는 순간이며, 그때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고 불꽃의 그림자가 강물에 어리면서 진짜 축제가 시작되는 거라고. p.127 <대용품-은희경>
시간은 지나가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사람 마음속 깊숙한 곳을 향해 탑을 쌓는다. 기억 속에 가라앉은 시간의 끝은 뽀족한 바늘처럼 생겨서 복원해내면 따끔하게 마음의 가장자리를 찌르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카로운 시간의 기억을 다시 찾지 않을 만한,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는다. 그리곤 어디에 그 시간을 두었는지 잊어버리고선 우왕좌왕한다. 서로 사랑할수록, 서로의 시간이 많이 쌓일수록 그 끝은 심해 한가운데 버려진 바늘과 같아진다. 그 끝을 기억하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왜 상처받고 상처주는지 모른 채 시간은 계속하여 흘러만 간다. 깊은 시간을 나눈 우정도 비슷하다. 우정은 시기와 질투 같은 다른 감정으로 얽히기 쉽다. 가족끼리 대화가 안 되는 이유는 대개 서로에 대한 감정이 먼저 튀어나와서인데, 친구 사이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p.165 <네 친구-백가흠>
개인이 누구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간과 공간의 역사, 그의 개인 서사가 다른 언어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대 소설의 문법이다. 소설에서 개인이 보유하고 선택하고 소비하는 물건들이 가지는 의미는 사소하되, 무의미하지 않다. 『THE CLOSET NOVEL』에 등장하는 물건들, 큐레이터가 술자리에 두고 나온 밤색 가죽 가방(김중혁), 신임 학교 이사장의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정이현), 스웨덴 시인의 한국인 친구가 만들어주려던 털모자(정용준), 바꿔 신은 친구의 신발(은희경), 이웃집에 몰래 신고 들어간 깔창(편혜영),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가 남기고 간 신발(백가흠), 암흑가의 남자가 차려입은 수트(손보미) 같은 것 말이다. 이것들은 소설 속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련한 물건이라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불안과 어긋남, 사소한 비밀들을 함축하는 기호들이다. p.219 <닫는 글 보잘것없는 비밀들 -이광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