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지원 >
📚가족,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감옥!
📚사랑과 억압의 경계에서!
📚마태 저자 <누에나방>!
🐛엄마라는 이름의 공포! <누에나방>은 가족이라는 가장 익숙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공포를 느끼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불편함과 등골이 오싹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이다. 엄마라는 존재를 절대적인 선으로만 바라보던 시각을 완전히 뒤짚어놓은 이 작품은 무한한 자기 희생으로 나의 세계를 만든 공포스러운 엄마를 그려냈다.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리셋된 삶을 살고 있는 딸, 그녀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준 엄마, 딸의 과거이자 미래로 여겨졌던 존재가 과연 딸을 위한 존재가 맞을지 의심하면서 읽게 되는 이 작품은 숨 가쁘게 읽을 정도로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이다. 그런 엄마를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자식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엄마가 어떻게 하면 자식의 인생을 파멸의 길로 이끌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는내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였다. 가족애의 어두운 이면을 그린 이 작품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이야기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오던 가족 내의 균열과 폭력을 마치 현미경을 확대하듯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국사회에서 은폐된 가정 내 억압과 사육의 현실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고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아이에게 세상을 새로 만들어준 엄마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엄마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적인 가족에 집착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모성애는 한없이 숭고하고 고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엄마라는 사회적 테두리에 가두고 사회적 위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한미다로 모성을 욕망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따뜻하고 끈끈해야 할 엄마, 그리고 딸 사이를 공포스럽고 스릴있게 그려내어, 마치 한 편의 호러영화를 보는 듯하다.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와 다른 존재로 변태하는 게 바로 누에나방이다. 누에나방이 그런듯이, 딸은 엄마의 세계 속에서 억압과 파괴를 겪고,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는다. 나방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누에의 고치를 삶아 먹고 껍질에서 실을 뽑아 실크를 만들어내는 인간들이 누에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는 모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를 가장 섬뜩하고 공포의 원천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불편하고 읽는내내 숨 막혀오지만, 우리가 외면해 온 가족의 어두운 진실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큰 힘을 보여준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믿어야 할 존재! 엄마, 엄마가 공포의 원천이 되는 역설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익숙한 것이 낯설게 한다. 예를 들어, 일상적인 발소리, 방문 소리 등! 귀신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다루는 호러소설하고는 달리, 이 작품은 누에나방, 즉 엄마라는 가장 친밀한 존재를 공포의 중심으로 놓였다는 점, 일상적인 가정의 풍경조차 낯설고 불안하게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엄마,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성애와 가족주의라는 한국 사회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그리는 작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억압과 통제를 잘 그려냈고, 가정 내 숨겨진 폭력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불편했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강렬한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다. 인간 관계의 본질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그림자를 그린 작품! 엄마와 딸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관계가 어떻게 공포와 억압으로 바뀌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과연 딸을 잡아먹은 것이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어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본 도서는 해피북스투유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누에나방#마태#호러소설#도서지원#해피북스투유#책추천#한국소설#가정소설#가정폭력#엄마와딸#모성애#책리뷰
#습기#마태
간절히 원했던 내 집 장만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집에 스며드는 눅눅한 습기
❝광기와 집착이 만들어낸 욕망의 사슬 ❞
✔ 서서히 스며드는 눅진한 음산한 이야기를 선호한다면
✔ 허를 찌르는 반전이 주는 도파민이 짜릿한 분이라면
📕 책 소개
모두가 꿈꾸는 '내 집 마련'이
어떻게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평범했던 집이
점차 음침하고 축축한 기운에 휩싸인다.
이 모든 불길함의 뒤에 사이비 종교가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고조되는 불안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 즈음
반전에 놀라 입을 쩌___억 벌리게 된다. 😱
📗 <입속 지느러미> vs <습기>
조예은 작가의 <입속 지느러미>가 생각났다.
두 작품 다 눅눅하게 스며드는 불안감이 있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입속지느러미 는
비오는 날, 수산 시장에서 느끼는 생선 비린내 같다면
#습기 는 비 오는 날 저녁,
불이 모두 꺼진 학교 지하에서
출구를 찾으며 헤메는
음산하고 으스스한 눅눅함이랄까.
📘 이 책을 '맛'본다면? _ ' 눅눅해진 새우깡'
바삭해야만 맛있을 것 같은 '새우깡'
눅눅해도 손이 가요 손이가~
눅눅한데 계속 먹게 되는
'눅눅해진 새우깡' 같은 작품
음침하고 음침한데
몰입도 높고 매력적이다.
📍 기괴한 분위기 + 사소한 불안감에서 점점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연결고리 = 처음 만난 마태 작가님에 대한 호감도 상승!!
#소설추천#반전소설#미스터리소설#2025_208
☕길잡이 말 (13p~42p)
📚 공자는 하느님 아들이다
기원전 5세기에 석가, 노자, 공자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사람의 역사는 없었다. 오직 짐승의 나라(동물의 세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석가, 노자, 공자가 와서 짐승인 제나로 죽고 하느님 아들인 얼나로 솟나 비로소 사람의 나라인 영성 시대가 열렸다. 영성 시대는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나서서 하신 첫 말씀이 '얼나로 솟나라(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여기에 왔다."
하느님 나라(영성 시대)가 열렸으니 짐승인 제나(自我, ago) 죽고 하느님 아들인 얼나, (道, 德)라는 말이었다. 비
(마태오 24 : 14, 박영호 의역)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였다. 록 짐승인 몸을 지녔으나 짐승 노릇은 그만하고 하느님 아들 노릇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
사람은 제 집을 떠나서 나그네가 되어 애쓰고 고생하며
생각하는 데서 철이 나고 속알이 영근다.
공자가 섭길 임금을 찾아 이 나라 저 니라로 들아
다나느라고 않은 차리가 더위질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공지자는 집에서 밥을 먹울 때가 없었다. 밤낮으로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얻은 인간지 人間智가 유교의 가르침이다. 유교가 오늘에도 우리에게 소용이 있다면 (그것은 유교가) 고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난을 떠나 안일
(安逸)을 찾으면 유교의 정신은 죽고 만다. 사람은 안일에 죽고 부귀에 썩는다.p18
공자도 예수, 석가처럼 얼나를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것은 예수, 석가는 하느님 나라 (니르바나)에 들어가는 진리에 치중하였는데
공자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치중하였다 "
공자에게서는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한 예수의 말이나 "이 세상 마음 둘 데가 없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 )라고" 한 석가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류영모도 예수, 석가의 길을 좋아했다
얼나밖에 정신이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는 상대 세계에서는 없다. 그러므로 상대 세계에 한눈팔 겨를이 없다. 이 상대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참 나인 얼나에 맘을 두고 깨달아야 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구하되 결사적으로 구하지 말 것이며 두드리되 열릴 때까지 목숨 걸고 두드리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공자에게는 그래도 하느님을 밝히는 형이상의 말이
보이는데, 공자의 제자들에게는 그마저 없고 주된 말은 이 세상살이의 禮가 대부분이다. 증자의 孝조차도 예에 속하는 것이다. 공자 뒤에 나온 것이 禮記 인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예기)> 속에 (중용)이 들어 있었다니 진주 가운데서도 가장 값진 진주가 아닐 수없다.
📚 분서갱유의 역정울 이겨낸 <중용>
◈톨스토이는 권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 권러의 토대는 백이다. 물리적 폭력 행사가 가능한 짓은 집킨자 한 사람의 의지 따라 일치단결하여 행동하는 무장 병력 조직 덕분이다.
군대는 언제나 그래 왔고 현재도 여전히 권력의 근간이 되고 있다. 권력은 언제나 군대를 지휘하는 자의 손아귀에 있다. 그리하여 원뿔의 꼭짓점과 같은 최고 권력자가 앉은 정상의 자리는 대개 다른 사람들보다 사악하고 교활하고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집권한 이는 권력을 소유했다는
사실 때문에 권력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보다 악을 저지르기
쉽다. 그러므로 권력은 완전무결한 사람에게 맡겨져야 한다. 적어도 해롭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국가는 폭력이다>)
국가 권력이 폭력이라는 말은, 국가가 사람이 지닌 수성
(獸性)의 소산(所産)이란 뜻이다. 따라서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은 대개 수성이 더 강한 사람들이다. 역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국가가 나타난 것을 인류역사의 발전으로 기술하는
데. 발전이 아니라 타락으로 보아야 바로보는 정견(正見)이다
동물행동학자 드 발은 이렇게 말하였다.
침팬지의 행동을 좌우하는 주요 동기는 권력이다. 권력을 가지면 크나 큰 혜택을 얻지만 권력을 잃으면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 때문에 권력은 침팬지 사이에서 하나의 강한 강박관념 으로 지리 잠고 있다."(드 발, <내 안의 유인원>)
공자와 맹자가 정치에 관심을 두있던 것은 국가가 지닌 수성을 정화시켜보려는 이상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와 맹자가 인간의 수성이 맹위를 떨치던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접을 기억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770년~ 기원전 257년까지 513년 동안을 말한다.
공자는 기원전 552년에서 기원전 479년까지 73년을 살았고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서 기원전 289년까지 83년을 살았다.
소로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 드는 이는 실성한 놈이라 정신 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밖에 없는테, 싸움을 일삼는 실성한 국가를 입원시킬 병원은 어디 있느냐고 한탄.
마하트마 간디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수도 생활이나 하라는 말을 듣자 정치가 독사처럼 내 몸을 감고 조여 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였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괴물)'이라고 한 국가를 수성에서 건질 길이 없는가? 민주주의 정치 제도로 무해유익한 지도자 를 뽑는 길밖에 없다. 어쨌던 권존민비(權尊民卑)는 버려야 할 동물 집단의 법칙이다.
◈맹자의 바람과는 달리 기원전 213년에 탐욕스럽고 포악한 정(政)이 진나라 진시황제에 올랐다. 진시황 못지않게
교활하고 잔혹한 신하들이 차례로 시황제의 등국을 찬양하
는데 '순우월'이 유식한 경전을 끌어대며 칭송하였다.
그러자 시샘이 많은 이사(李斯) 지금은 새 시대인데 낡은 경전을 잇대는 것은 황제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며
모든 경전을 불태워야 한다는 주청을 하였다. 미련한
진시황은 '이사'의 궤변을 받아들여 온 나라에 있는 경전을 불태우라는 국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고을마다 경전을 불사르는 야만적인 풍경이 벌어겠다. 뜻 있는 유학자들은 들고 일어나 진시황제의 야만적인 정책을 규탄하였다. 그러자 진시황은 유학자 460여 명을 잡아다 생매장을 하여 죽여다.
이것이 듣기도 끔찍한 분서갱유이다.
맹자의 예언이 헛되지만은 않아 진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이 후 가장 센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었다. 장기판
의 초나라, 한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는 맹자의
예언이 맞아 조금 덜 포악한 유방의 승리로4년 만에
싸움이 끝나고 기원전 202년 漢나라 시대가 열렸다.
공자도 위정자는 반드시 백성을 잘살게 하고
다음은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라를 일으키기는 칼로 하였지만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글이라야 한다. 한나라 7대 황제인 한무제는 대학을 세워 오경박사를 두어 가르치게 하였다. p32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격은 뒤라 가르칠 스승이 될 만한 선비와 교재로 쓸 경전이 귀하였다.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제후 헌왕(獻王)이 분서갱유를 겪는
가운데 그래도 살아남은 유학자와 불타지 않은 문헌을 모았다. 그 가운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문헌을 모은 것이 131편이 되었다
이것이 훗날 <예기(禮記) 가 된 원본인 셈이다. 이를 유학자 유향(劉向)이 교열하여 214편이 되었다. 한나라 10대 황제인 선제(宣帝)때 이름난 유학자들을 불러 모아 <예기> 원본의 진위를 가리는 석거각회의를 열었다. 석거각 회의에 참석한 바 있는 대덕(戴德)이 214편을 85 편으로 정리하고다시 대성(戴聖)이 85편을 49편으로 간추렸다
오늘날 우리 손에 전해 오는 <예기)>가 바로 대성이 간추린 49편이다.책을 불태운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나온 <예기> 속에 <중용)과 (대학)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예기)에는 아직도 <중용)과 <대학)의 본문은 빠졌으나 목차가 남아 있어 <예기>가 <중용>과 <대학)의 모본(母本)임을 실증하고 있다.
<예기>가 골라지고 다듬어진 것이 여러 차례인 것은 곧 지금의 <중용>도 그런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예기 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예절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공자 사상을 배우고
익힌 후학들이 주로 예(禮)에 치중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기>에 저자 이름이 없듯이 <중용>에도 저자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전한 시대 사람인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9~기원전 86?)의 사기에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쓴 것이라고 밝혀 놓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중용은 예기에서 분리되어 독자적 경전이고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 가운데 한권으로 중요한 경서이다.
중용은 앞쪽은 (中庸) 뒷쪽은 지성(至誠)을 말하다
그러므로 중용은 자사 혼자 썼다고 말 할 수 없다
중용에는 하느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공자의 아들이나 손자라도 스스로 정진하여 얼나(영원한 생명)를 깨달아야만 공자의
진리정신을 이을 수있다.
하느님의 말씀이 누구를 통해서 나왔는가도 궁금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온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중용)에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소중한 말씀이 있다. 비록 쌍끌이 어망에 걸려 나와 세상에 알려졌지만
고전이 될 만한 가치는 있다.
최호(崔浩)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다석
의 글씨. 집주인의 '호(浩)' 자의 뜻을 살리기 위해
(중용) 32월의 문구 '순순기인 연연기연 호호기천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 중에서
인(仁), 연(淵), 천(天)을 빼고 썼다.
즉 "지극히 정성되게 어질고, 연못처럼 깊고 심오하며
하늘처럼 크고 넓으라" 는 뜻이다.
작가가 설치한 재미와 스릴을 갖춘 음습한 장치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 장담하건대 읽고 나서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다시 앞 부분이나. 특정 부분을 다시 읽게 된다. 긴장감을 놓칠 수 없도록 곳곳에 장치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러한 장치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어려서 부터 음습한 이야기를 좋아했다는 작가 마태는 “습기‘를 통해 자기가 원했던 음습함을 마음 껏 뿌렸다.
'드림힐' 이라는 신도시 아파트에 이사를 온 미연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미연의 걱정과 상황은 마치 작가도 경험했던 이야기를 쓴거 거 처럼 디테일해 픽션 보다는 논픽션이라 생각되게 몰입을 시킨다. 하지만, 평범한 미연의 생활은 여기까지다. 이사온 곳은 아이들 실종 사건이 있었고, 왠지 탐탐치 않은 이웃인 영희 엄마! 이상한 여자가 차를 가로 막고, 지역 카페에서는 강퇴 당하고, 우연히 초대한 단체방의 사람을 실제로 만났을때, 단체방의 존재에 대해 누구도 알지 못한다.
종교, 이웃 그리고 아이! 금기된 것을 건들이지 않았지만. 금기된 것을 넘어선 기분이 든다. 제발 내가 상상한 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는 평범한 이야기가 지루해 질 때 쯤 갑자기 다른 장면과 상황을 알 수 없는 전개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소설의 전개가 잔잔함과 휘모라치는 강한 무언가가 같이 공존한다. 그래서 궁금하고 책을 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표현하는 장면이나, 등장 인물의 묘사가 매력적이고 디테일하다. 인물에 대한 감정을 애둘러 표현하는 문장과 작가가 숨겨놓은 복선을 뒤늦게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재미이다.
“그녀는 오늘도 두꺼운 메이크업에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몸에서 진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 중략.. 발톱에도 새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는데 그녀는 맨발을 소파 위에 오려두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중이었다. ”
미연의 시각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느 문장보다 영희 엄마에 대한 거부감은 강력히 전달이 된다. 이런 전달에도 복선이 있고 왠지 음습하다!
점점 직장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아들의 이상한 행동, 이웃의 의심, 남편의 수상함등을 추적할 수록 고립되어지는 미연의 상황이 더 강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스포라서 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 하나 잘 연결된 구조를 만든 스토리를 오랜만에 읽었다.
작가는 끝까지 음습하다. 엄청난 사건으로 이야기가 절정에 오르고, 모든 것이 평온으로 찾아가는 듯했지만, 지호와 할머니 대화를 통해 음습하고 찝찝한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가 좋아하는 꺼름직한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계속된다.
여러 소설책을 읽었지만 꺼림직하고 음습한 소설을 추천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