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13권. 최미래 작가의 첫 소설집.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현재 우리의 불안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하나의 궤적을 그리는 작품들은, 슬로모션으로 붕괴되고 층층이 가라앉는 세계를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불안과 그것에 대비하는 방식을 공감각적이고 입체감 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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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녹색 갈증 내용 요약 🌿
최미래 작가의 소설 《녹색 갈증》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내면적 방황과 그들이 겪는 치열한 성장통을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책의 중심을 관통하는 ‘녹색 갈증’은 단순히 목마름을 넘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받으며 느끼는 정서적 고갈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기이한 욕망을 상징합니다. 🍃
이야기는 주인공이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과 성적 지상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며 시작됩니다. 작가는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청소년들의 모습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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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한 빛깔의 청록의 원피스에 연두색 긴 양말을 신고 피아노 대회에 나섰던 꿈을 말하면서 ‘윤조’가 떠오른다고 하는 ‘나’. ‘나’가 들려주는 윤조의 이야기에 빠졌다. ‘네가 나를 헷갈려 해도 내가 윤조 너를 잊을 수야 없지. 인파가 넘치는 거리에서도, 나는 단박에 너를 발견하고 팔목을 붙잡을 자신이 있으니까. … 나는 너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떠어떠한 사람‘에서 ’어떠한‘은 많을수록 좋지만 쉽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15쪽)’라고 한다.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니. 손톱을 깎아주는 행위는 매우 친밀하고 위험하다. 타인이 나를 믿는다는 전제하에 시작할 수 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손을 내민 사람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타인에게 온전히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손가락 사이에 준 힘을 빼고 상대방의 경쾌한 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쯤되니 ‘나’에게 윤조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나는 프롤로그가 끝나고 나서야 ‘나’와 윤조 사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그림책을 읽을 때 단내가 나는 것처럼 네 손을 잡고 있으면 안심된다고 생각한다(60쪽). 툭하면 울어버리는 엄마와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언니 사이에서 얻을 수 없는 안심을 다른 사람에게서 얻고자 했다. 헤어진 연인인 명은 이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203호 할머니가 말하는 산 역시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욕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세 사람이 욕망하는 건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도 사랑에 포함된다면.(97쪽)’이라고 하며 엄마와 언니, 자신에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한다. 다만 그 생각의 끝에는 계속해서 물을 마시는 ‘나’가 있을 뿐이었다.
‘나’의 가족은 진짜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103쪽),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삼킨 채 겉돌기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 사이를 접착제처럼 착 붙이고 분위기를 좋게 바꾸는 윤조가 나타나게 되면서 집안의 흐름이 달라진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다. 공원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을 보면서 ‘실패를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야 할 텐데(123쪽)’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실패라는 단어가 중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연의 실감개일수도 있고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실패(失敗)한 것이라 말하는 걸 수도 있다.
‘나’가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든다. 뒤집어엎었다던 이 소설을 계속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준 최미래 작가님께 감사하다. 소설에 몇 차례 등장한 「설탕으로 만든 사람(아니카 에스테를/비룡소)」은 실재하는 그림책으로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
정상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내가 지금까지 미루어놓았거나 실패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과의 내기 같은 거였다. 터무니없어도 한 번쯤 믿어보는 거.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듯 가슴이 벅찼다. (p.55)
녹색과 갈증. 어떻게 이 두 단어를 합쳐놓았을까.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했던 생각 그거였다. 해설에서 소유정 문학평론가가 풀이해두었듯 에드워드 윌슨은 녹색 갈증을 '다른 형태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는데, 내가 읽은 최미래의 녹색갈등은 에드워드 윌슨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을 담고 있으나, 그녀의 갈증은 한결 목이 마르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 같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내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을 기록할 수 있을지 망설였다. 이 책의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호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 책의 '막힘 속의 해소감'을 내가 스포일러 없이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을 정리하자면, “미칠 것 같은 나날들 사이에 마신 놀랍도록 차가운 맥주의 맛” 같았다. 건조하고 결핍된 이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살아가는 이유, 숨을 쉴 수 있는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 각박한 삶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이유는 존재하는 것. 이 책에서 나는 결핍과 생, 둘 다를 느꼈다.
어렴풋한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고 분명히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지만 착각에 불과할 것이다. 있지도 않은 윤조의 할머니가 종종 저 멀리서 나를 불러내던 것과 같이. (p.144)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도 사람에 포함된다면. (p.97)
고요하고 어떤 의미로는 평온했다. 일정한 균열감이 스트레스가 시야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안개처럼 낮게 깔린 나날이었다. (p.87)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삶의 힘든 순간은 안개와 같다고. 거기를 지나올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지만, 막상 그곳을 지나와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구름이나 수증기, 그런 것일 뿐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내가 안개에 발을 디딜 때의 기분, 그 안개 속을 걷던 답답한 심정, 그리고 그곳에서 빠져나와 돌아보며 느낀 시원하고도 허전한 이상한 기분.
사실 이 책을 읽은 후, 이 책이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작가가 겪은 갈증과 간절히 바라던 해소. 그리고 그것들이 묘하게 얽혀 마치 우리 사는 세상처럼 갈증과 해소 그 어딘가에 머무른 현실.
읽기에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으나, 소설이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생각을 하게 한다니 묘한 일이다. 나의 솜씨가 짧아, 이 책을 더 매력적으로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다. 그러나 자그마한 책에는 훨씬 큰 세상이 담겨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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