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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독리뷰
열린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시리즈 세 번째 권 『보다』는
다섯 명의 작가가 ‘본다’는 행위를 각자의 감각으로 풀어낸 단편집이다.
보는 자의 불안, 보지 못하는 자의 슬픔,
그리고 시선을 거두는 자의 연민까지.
‘본다’는 말이 이렇게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1️⃣ 모토부에서 — 김남숙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시점에서 언니의 기억을 더듬는다.
과거를 본다는 건 결국 자신을 벌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문장은 차분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고통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읽다 보면 내 안의 묻어둔 기억 하나가 천천히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다시 보게’ 된다.
2️⃣ 별 세 개가 떨어진다 — 김채원
손녀와 할아버지의 일상 속에서 ‘보지 않음’의 다정함이 빛난다.
응시는 때로 잔인하지만, 시선을 거두는 일은 배려가 된다.
따뜻한 거리감이 오히려 사랑의 온도를 만든다.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부드럽게 데워졌다.
끝까지 보지 않는다는 건, 끝까지 사랑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3️⃣ 왓카나이 — 민병훈
눈보라에 덮인 일본 최북단의 설원.
하얀 세계 속에서 시야는 닫히지만, 감각은 오히려 예민해진다.
세상이 너무 선명할 때 숨이 막히는데,
이 소설은 ‘보이지 않음’ 속에서의 평온을 가르쳐준다.
침묵과 공백이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니, 이상할 만큼 위로받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존재는 또렷해진다.
4️⃣ 하얀 손님 — 양선형
운전석에 앉은 인물이 길을 잃듯,
독자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잠시 방황한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나타난 ‘하얀 손님’은 죽음이자 세계의 이면이다.
불명확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의 감각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시선의 끝자락에서, 세계는 가장 낯설고 진실하게 빛난다.
5️⃣ 이사하는 사이 — 한유주
새집으로 이사한 ‘나’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마주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선의 구조가 붕괴한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먼저 바라보는 듯한 섬뜩한 순간,
그 깨달음이 오래 머문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보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다섯 편을 다 읽고 나니까,
‘본다’는 게 그냥 시선을 두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끝까지 보려 하면 아프고,
외면하면 미안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겨우 사람으로 산다.
완벽히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꾸 다시 보게 되고,
그 불완전함 덕분에 아직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제 ‘본다’는 말을 함부로 못 하겠다.
조금 더 조심히, 조금 더 따뜻하게
그게 이 책이 내게 남긴 감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빗나간 것들 사이에서, 천천히.
이 소설에서는,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답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 앞에 서서, 천천히 그것을 바라보는 과정을 보여줄 뿐이었다. 아버지의 부재 이후 흩어진 가족들, 서로를 탓하고 멀어졌던 시간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꿈꾸지만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
읽는 내내 ‘나’가 묻는 질문들이 낯설지 않았다. 과연 내가 누군가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 있으면서도 자꾸만 멀어지는 이 감각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민병훈 작가는 이 물음들을 억지로 풀려 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와 현재를 겹쳐 놓으며, 빗나간 순간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달라질 수도 있었을 가능성들을 조용히 가정해보면서,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임을 받아들여간다.
누나가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준’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계속 걷는다. 그 여정이 외롭고 더디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여기’에 있기를 선택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내 안의 무언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오래 외면해왔던 질문들, 애써 덮어두었던 감정들. 그것들을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명확한 결말이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어떤 시간. 완전히 치유되지도, 완전히 해결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민병훈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보여주며, 당신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당신의 이야기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그 다정한 손길이, 오래 남을 것 같다..
공통되는 것은 감각이다. 화자가 느끼는 감각이 독자에게 전해지기까지 오롯이 작가의 선택을 거친 언어가 곧 소설의 전부라 해도 좋겠다.
통상 소설에 대해 기대하는 것, 이를테면 주인공이 맞이하는 사건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갈등, 그 해소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를 이 작품으로부터는 찾을 수 없다. 소설은 분명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읽는 이의 기대를 벗어나기 일쑤다. 말하자면 독자는 첫 사건으로부터 다음 사건을, 또 그로부터 그 다음 사건으로의 연결을 기대하게 마련이지만 소설은 첫 문장과 다음 문장조차 독자가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내어주지 않는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읽고 나서도 그것이 대체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좌절감을 맞닥뜨리는 한편으로, 각 글이 남기는 감각이 또 선명하게 남는 탓에 '무의식의 리얼리티'라 불리는 이 소설에 대한 평가에도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만약 소설로부터 문학성이며 줄거리나 어떤 이해, 또 상징 따위를 제하고 오로지 감각만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민병훈의 문학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Axt』 2021년 3/4월호에 실린 민병훈 소설가의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다. 어떤 사람의 한순간의 선택이 그를 얼만큼의 파멸의 길로 이끄는지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여온 삶의 끝에서 진실과 맞닥뜨려야 했던 순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리고 그 순간 그가 한 선택은 또한 얼마나 악한지를 말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거짓말쟁이가 스스로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올 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뺨에 눈물을 흘리게 할 때, 그것은 여전히 그를 속이고 있는 적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일은 단지 죄악이 아니라면 기도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216쪽). 이런 문장이 당신의 마음에 가닿는다면, 10월에는 이 책을 읽어보는 것 어떨까. 그러나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셔야 한다. 이 책에서 당신이 마주하는 것은 악(惡) 그 자체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