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후 주요 감상]
# 미국 달러 패권의 역사적 과정.
책은 비트코인의 의의를 설명하기 전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미국 중심의 달러 패권을 철저하게 해부한다. 저자들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과 1971년 닉슨 쇼크에 이은 금 태환 정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밀약을 통한 페트로 달러 확보 등으로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획득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소개한다. 더 나아가 현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핵심인 '미국 국채'의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경제 기관들은 유동성과 안전성을 이유로 미국 국채를 궁극의 담보 자산으로 활용한다. 이 구조에서, 미국은 자국 통화로 부채를 무한정 발행하며 누리는 특권을 보유하고 있다.
# 미국과 중국의 경제 공생
또 주목했던 내용은 미국과 중국 간의 기묘한 공생 관계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해 달러를 무한정 발행하며 중국의 값싼 공산품을 끝없이 소비한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여 미국의 거대한 재정 적자와 과잉 소비를 지탱해 왔다. 두 대국의 경제적 고리는 각자의 체제 이데올로기를 고려하면 모순적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지탱한 구조물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축통화국으로서 자국의 경제 정책과 세계 경제의 유동성 공급 의무 사이에서 발생하는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가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 스테이블코인의 대두
그 후 책은 새롭게 대두되는 화폐 체계로 시선을 돌린다. 저자들은 제도권 금융이 불안정하거나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국가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현지 법정화폐를 대체하는 현상을 유효하게 간주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은행 망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 콘트랙트와 오라클 네트워크 등의 기술을 통해 즉각적으로 결제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금융 질서의 실험을 통한 산물이란 것이다.
# 미국 정부의 전략 수단, 스테이블코인
하지만 책은 스테이블코인도 미국의 달러 패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표면적으로는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듯 보이지만, 이면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막대한 규모의 미국 단기 국채를 매입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국의 부채를 디지털 세계로 떠넘기고 달러의 지배력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고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40P 이런 의미에서 비트코인은 에너지가 응축되어 구현된 가치물이라 할 수 있다.
≫ 비트코인은 막대한 양의 전기 에너지와 컴퓨터 하드웨어를 통해 탄생한 디지털 장부다.
92P 미국은 달러를 발행해 중국산 제품을 수입했고, 중국은 그 대가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의 재정 적자와 소비를 떠받쳤다. 이는 미국의 과잉 소비가 중국의 과잉 저축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외환 보유는 다시 미국의 금융 인프라를 강화하는 식의 상호 의존적 순환 구조를 낳았다. 그 결과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으로 군림하며, 미국의 소비를 지탱하는 기묘한 힘의 역학을 형성했다.
≫ 미국은 막대한 소비를 통해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돕고, 중국은 국채 매입을 통해 미국의 천문학적 부채 경제와 낮은 금리를 연장해 주는 기형적인 공생 관계를 맺었다.
105P 디지털 위안화는 블록체인 기술이 강조하는 분산성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출발했다. 이는 오히려 국가 주도의 중앙집중적 통화 시스템을 통해 거래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세금 복지 소비 사회질서 전반을 통합 관리하려는 시도였다.
≫ 중국의 디지털 화폐와 미국에서 탄생한 비트코인은 암호학이라는 근원을 일정 부분 공유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완벽히 대척점에 서 있다.
115P 결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공학과 수학에 대한 맹신이 초래할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경제 현상을 복잡한 수학적 확률 모델로 계량화하여 분절하고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월가의 오만함이었다.
120P 중국의 부상은 단순한 경제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백년국치를 극복하고 문명 질서를 재건하려는 역사적 서사로 이해해야 한다.
≫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의 치욕을 씻고 유라시아의 지배자로 거듭나기 위해 이 달러 시스템에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도전하고 있다.
131P 비록 볼테르가 영국의 콘솔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기록은 없지만, 전쟁의 승패를 단순한 군사력의 우열이 아닌 금융 시스템의 성숙도에서 찾은 그의 통찰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이었다.
≫ 장기적인 국가 대 국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단순히 군사력이 강한 국가가 아니라 더 낮은 금리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튼튼한 국채 시장과 투명한 신용 제도를 가진 국가였다.
248P 이런 정서의 분출구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전통적인 안보 동맹의 프레임 자체를 뒤흔들며. 유럽이 더 이상 ‘공짜 안보’를 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단지 특정 정치인의 기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전 이후 30년간 축적된 미국의 구조적 불만과 피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 도널드 트럼프의 자국 고립주의 선회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세계 경찰이자 기축통화국으로서 지급한 엄청난 비용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을 통해 탄생한 괴물이 아닐까. 필연적으로 선출될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지구 전역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250P 이제 미국은 질서의 비용을 각국이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통보하고 있다.
≫ 하지만 어제 이스라엘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그들이 질서의 비용을 만들었고 이란 시민들에게 부과한 것을 보니 이 문장이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반세기 넘게 하메네이를 필두로 한 이란의 이슬람 종교 정권은 악으로써 국민을 괴롭힌 게 명백하고 그들은 천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 어떤 후폭풍을 낳을지 걱정이다. 부디 또 다른 중동전쟁과 테러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65P 기축통화국은 안정적인 외환 수요, 낮은 조달 금리, 그리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우선권이라는 세 가지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은 결코 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구조적 긴장을 수반하는 이중 과제를 부여한다. 자국의 통화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세계의 유동성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이 과제는 근본적으로 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모순을 개념화한 것이 ‘트리핀 딜레마’다.
≫ 세계 경제의 규모가 성장할수록 국제 결제 수단인 달러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미국은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자국의 경상수지 거대한 적자를 감수하며 통화를 해외로 유출해야 한다는 딜레마.
351P 비트코인은 화려한 기능 대신 명료한 구조와 보수적 전략으로 신뢰를 축적했다.
≫ 구조가 극도로 명료하여 누구나 노드를 통해 장부를 검증할 수 있고, 임의로 규칙이 변경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비트코인은 '지독한 보수성'.
이중부양 세대가 현재 경제 시스템의 주축인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을 쓰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부는 민간에게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면 그게 결국 사적 연금이 된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낼 수밖에 없다. (64p)
이렇게 한국 사회에 쌍방 간의 묵인된 약속이 성립되고 강력히 고착화되면서 시장과 정부가 동침하게 되고, 그리하여 '부동산 불패'는 신화가 되었다. (64p)
108. 🌱대화란 본시 성립되지 않는다. '협상'이니 '의견 조율' 따위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결국 끝에 가서는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들)이 굴복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관련자 모두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상대를 위해 ‘양보'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더 많이 양보하고 더 많이 참아야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는, 모든 협상은 결국 전쟁이고, ✔️그 결과는 언제나 어느 한쪽에게 강압적이고 때로 폭력적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는 구라치 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본격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네 편의 단편은 모두 ‘이상한 시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좀비에게 물린 시체, 죽은 자가 산 자를 죽인 듯한 밀실 사건, 여성의 팔이 붙은 남성 시체 등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설정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 비상식을 정교한 논리로 해명하며 ’시체가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가?‘를 추리의 핵심으로 만든다.
단편들은 각각 다른 세계관을 가지지만, ‘시체의 상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바뀐다는 공통의 논리를 지닌다.
좀비 떼가 등장하는 〈본격 오브 더 리빙 데드〉, 세 명의 범인 후보가 자신이 사람을 죽였는지 상담하는 〈당황한 세 명의 범인 후보〉, 40년 전 밀실 동반 자살 사건을 추적하는 〈그것을 동반 자살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여성의 팔이 붙은 남성 시체가 등장하는 표제작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까지 각각의 트릭이 독립적이면서도 마지막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작품 전체의 구조적 묘미가 폭발한다.
시체를 중심에 두었음에도 작품은 전혀 음산하지 않다. 구라치 준 특유의 경쾌한 문체와 위트 덕분에, 공포 대신 기묘한 유머가 흐른다. 그는 시체를 공포의 상징이 아닌 논리의 도구로 삼으며, 엽기와 유머가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다. 긴장과 웃음이 번갈아 터지는 리듬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그의 트릭은 황당하지만 놀랍도록 납득된다. “시체를 이렇게까지 활용할 수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논리의 힘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 — 그것이 바로 구라치 준식 미스터리다.
이 책은 단순히 괴이한 시체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을 논리로 성립시키는 지적 쾌감의 결정체다.
“다음엔 어떤 시체가 나올까?”라는 호기심이 끝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엔 모든 조각이 맞물려 완벽한 퍼즐로 완성된다.
기묘하지만 지적이고, 가볍지만 치밀한 상반된 매력이 완벽히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시체조차 논리의 일부로 만드는, 유머러스하고 치밀한 본격 미스터리의 결정체.”
사소한 인류
전문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학자들의 에세이는 어떨까?
대한민국 1호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첫 에세이 '사소한 인류'는
그런 이유에서 책이 오기를 무척 기다렸다.
사실 고인류학? 인류학은 궁금한 분야이지만 딱딱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런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학자가 쓴 에세이라니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글에 스며들어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일상의 많은 부분에 전문적인 박식함이 스며들어 책 속 이야기가
나에게는 신선한 학문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키우는 '개' 이야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개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킬 때 손가락을 보지 않고
그 대상을 보면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유일한 동물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개와 늑대는 종 분화가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서
지금도 늑대와 개를 교배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개는 스물 여덟 개의 젖니에서 두 달 만에 42개의 영구치를 가지게 된다.
젖니보다 수적으로 크기 면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영구치 덕분에 개의 턱은
길고 깊어진다고 한다.
개의 이빨 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고인류학은 처음부터 과학에 뿌리를 둔 학문이다.
인간의 조상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체 해부학에서 다루는
현대인의 몸만 알아서는 안되며 인간이 되기 전
침팬지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수백 만 년 전
조상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도 알아야 된다.
나는 이미 EBS 방송에서 이상희 교수가 침팬지와 사람 등의
해골을 손으로 들고 '인류의 시작'이란 주제로 강연하던 영상을 보았기에
책을 읽으면서 방송처럼 본인의 삶 전반에 자신이 연구하는
고인류학을 이입해서 설명하는 저자를 상상했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각에 있어서 후각의 중요성도 다시 인지했다.
특정 냄새가 즉각적으로 기억을 자극해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에서 우리네 인간에게
가장 후진 감각인 후각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
후각은 깊은 기억을 관장하는 일에도 관여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희미해져 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냄새는 순식간에 수면 위로 불러낸다.
저자는 미국이란 거대 사회에서 소수민족 아시아인으로 특히 여성으로
겪었던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여자다웠던 순간을 기록한다.
"여자다움은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중 가부장제가 원하는 몇 얼굴만이 여자다움으로 포장되어 왔을 뿐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모든 여자다움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함께 살기 더 좋은 곳이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길 바라나?
사람들은 다양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표현한다.
100을 가지고 있는데 50만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50만 가졌는데 100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그런데 인사 고과에서는 100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승진한다고 한다.
오늘날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여성의 경력 지속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아기가 나온 다음 엄마의 삶에 확신을 줄 수 없다면
저출생 해결은 요원한 일이다.
모성 본이란 없다."
우정과 사랑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 아니라는 것,
사랑은 차라리 우정의 한 형태로 우정이나 협동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성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타성은 20세기 진화론에서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기라고 한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본인의 이야기 속에
저자 특유의 연구 분야에 의한 이야기가 스며있다.
일상의 이야기를 의미 없이 쓰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바램대로
독자들은 삶의 연륜을 통해 경험한 지혜와 함께
그녀가 간직한 지식도 함께 얻게 된다.
사소한 일은 어떤 색의 렌즈를 끼고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 렌즈의 뒤에는 자신과 자신의 눈이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일상의 다양한 주제로 모아 거대 담론으로 이끌어내는
이상희 교수에게 존경을 표한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새로움을 알았고
삶의 지혜도 함께 배운 시간이었다.
#사소한인류#김영사#이상희#고인류학#인류학#교수#책#책추천#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책#독서#독서모임#고고학#서평#인류#미래#생존
시크릿 아류작
끌어당김의 법칙을 자기만의 이론을 더해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저자는 글쓸때 자신의 주장에 대해 근거가 매우 미흡할뿐아니라 아무것이나 연결고리를 강제로 붙여 버린다
온갖 잡지식과 고전 그리고 각종종교 심지어 양자물리학까지 끌어들여서 설명하려고 하지만 억지논리로 끼워맞추기식일뿐이다
모든 자기계발서나 성공학 서적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사용하여 인류를 위해 평화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 있는가?
오직 자기만의 이익인 부와 명예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뿐이다
우주의 법칙을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는 도구인가.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서 무슨 비밀이 있으니 그 비밀을 알아야하고 따라야한다. 그래야 얻을수있다. 라면서 마치 하느님을 안믿으면 지옥간다같은 소리를 계속한다. 가스라이팅인지 세뇌인지 계속 그런소리뿐이다
만약 이 비밀을 알지못하면 부와 성공은 없다라고 겁준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이따위논리이다
만약 내가 그 비밀을 깨우쳐서 전세계 돈을 다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면 이루어지냐?
욕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것같다
중간쯤부터는 철학적 이야기를 하는데 뭔소리인지도 모르겠고 무슨말을 하려는지 이해를 못하게 복잡하게 글을 내뱉는다
프로이트와 논쟁하면 딱이겠다
내가 이책에 대해 굉장히 화가나고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칸트가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법칙에서 생긴다”라고 했다고 명언처럼 써놓았는데 실제로 칸트는 이런문장을 쓴적이 없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슷한 어구가 있다 “대부분의 경험적 인식이 성립하려면 인과성의 범주가 적용되어야한다"라고 있을뿐이다.
문장을 인용하려면 왜곡해서 쓰면 절대안된다.
이것은 저자의 망상에서 나온 지어낸 글일뿐이다
이것은 정말 용납할 수가 없다
이 문장하나로 첵전체가 쓰레기가 되었다
거짓으로 글을 쓰지말자 ㄱㅅㄲㅇ
결론 : 전체 글이 뇌내망상이 주가 이룬다. 실천이 없는 행동은 허상이다
🍉 수박 하나로 온 우주를 다 가진 것만 같던 그때의 우리는 이제 내가 먹을 수박쯤은 직접 손질하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고마운 사람에게, 기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쁜 날을 맞은 사람에게, 과일을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어째서일까. 매일 아침 사과를 깍둑깍둑 썰어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집에 과일이 두 종류 이상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게 된 것은.
🏡 그런데 여름이면 달랐다. 나는 몇 개라도 홀케이크를 가졌다. 그건 아주 둥근 기쁨. 스케치북 한 면을 전부 채우는 충만한 동그라미. 한 계절 내내 이어지는 축복이었다.
언젠가 이사를 한 집 사진을 꼼꼼히 보던 친구가, 틀린 그림을 찾아낸 듯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치고 냉장고가 크다. 별로 안 커. 수박 두 통이 들어가는 정도야. 그러자 친구가 왁 웃었다. 수박이 기준이야? 응. 수박이 기준이야. 내 냉장고는.
🍉 그런데 나는 큰 수박이 먹고 싶었다. 껴안으면 팔이 쑥 밑으로 꺼지는 커다랗고 무거운 수박. 수박을 엮어 묶은 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꿔 쥐면서 걷고 싶었다. 잘 자란 송아지를 데리고 느리게 언덕을 넘듯이, 그런 마음으로 수박을 데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 어두컴컴한 아스팔트. 낮의 뜨거움이 끈질긴 권유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수박이 맛있어진다. 이것은 둥근 여름의 홀케이크 이야기이다. 나는 그래. 때로 나 자신을 위해 한 통의 수박을 산다. 이 홀케이크의 여름은 여러 번 갱신된다.
🍇 뭐 해?
포도 먹고 있어.
대체로 나는 무엇을 해도 과일을 옆에 두고 먹고 있다. 그러자 친구는 자기 집에도 처치 곤란한 포도가 있다고 했다. 처치 곤란한 포도? 그런 성립이 불가능한 단어를 나열해도 합법인가? 친구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포도 농사를 짓고 있고, 그래서 철마다 포도가 늘 대량으로 집에 도착하며, 이번 포도는 샤인머스캣이라는 것이다.
카르텔이다. 왔다, 카르텔.
친구는 내가 카르텔로의 추악한 접근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도를 보내주마 했다. 어차피 남는 포도라는 것이다. 어차피 남는 포도? 또 그런 불법 단어를… 생각했지만 나는 얌전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 깎아낸 사과의 껍질이 종잇장처럼 얇아 어느 때는 뒤가 비쳐 보이기도 했다. 엄마의 과일은 얇은 여름옷을 입은 것 같아. 물론 내 과일은 둔한 패딩이었다. 숙련된 기술이 주는 안정은 놀라워서, 엄마의 과일 깎기를 멍하니 보고 있곤 했다. 엄마의 과일은 어디를 가도 누구에게 보여도 합격이었다.
🥹 세상에 ‘첫’이 많아. 정말 수많은 ‘첫’이 있다. 첫사랑 첫눈 첫마디 첫걸음 첫인상 첫 마음 첫차 첫 키스 또 첫… 너에게 처음을 줄게. 그런 약속을 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의 증명이라고. 나는 그런 것에 별로 감동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같은 것을 가지고, 그것이 둘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면 좋다. 해의 첫 과일. 네 인생의 첫 과일.
해의 첫 과일. 그것을 매해 너와 나의 인사로 할게. 네 인생의 첫 과일. 그것을 내가 주는 것으로 할게. 처음을 나눌게.
올해 첫 수박 먹었니? 첫 딸기는? 올해의 겨울 복숭아는?
요즘은 어린이들도 SNS를 하고, 부모보다 훨씬 '잘' 전자기기들을 사용한다. 그뿐이 아니라 우리 때보다 훨씬 다양한 사회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하긴,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던데 30년 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와 같기만 할까. 그래서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엄마도 자라야 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부지런히 따라 공부해야 한다. 이제 아기 티를 벗고, 조금 더 큰 어린이로 탈바꿈하는 지금,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드는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를 만나보았다.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는 집단 따돌림이나 인터넷 댓글 등, 우리 아이들이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맞춘 “어린이가 알아야 할 법”을 모아놓은 책으로 아이도 부모도 꼭 한번 만나보길 추천해 드리는 책이다. 법이 우리의 울타리이려면 우리가 법안에서 살아야 하듯, 우리 아이들이 모르고 위법을 저지르는 상황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약속의 성립,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학교폭력에 관한 법률, 명예훼손이나 재물손괴 등 우리 아이들이 모르면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기 때문에 무척 유익하다.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의 각각 챕터는 먼저 짤막한 동화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준다. 뒤에 이어지는 설명과 예시 등을 통해 더욱 깊은 이해를 주어 좋았다. 엄마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이 장난삼아 누군가를 괴롭히고, 이에 동조 혹은 방관하는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였는데, 직접적인 가해나 협박 등뿐 아니라 그림자처럼 대하는 것, 소문 등에 동조하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잘 다루고 있어 무척 유익했다. 더욱이 단순히 '법'에 저촉되는 것 이상,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더욱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은 학생들의 권리와 선생님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엄마와 이야기 나누었던 부분들을 기억해내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며 메모를 하는 등 열심히 책을 읽더라. 언제인가 우리 아이가 “엄마, 어떤 애가 선생님께 '우리 아빠가 돈도 더 잘 벌고, 선생님 신고도 할 수 있데요.' 했는데 이거 나쁜 말이죠.”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저런 말을 사용하고,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나쁜 말'이라 느낄 어감을 사용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기에, 이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이 꽤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그 외에도 모르고 한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등, 아이들이 직접 느끼고 배우는 내용이 무척 많았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법'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는 아이들이 배워야 할 사회적 규범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억지로 법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모두 배울 수 있어 참 좋았다. 또 모른다고 하여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명확히 배우기도 했고.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법을 다양한 사례, 재미있는 일러스트 등으로 상세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무심코 단 댓글도 죄가 되나요?』. 우리 아이들이 법을 더 잘 알고, 법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해 드린다.
138.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테니스 치는 걸 보려고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갔던 거라고? 네. 테니스 잘 치니? 아니요. 이런 대화를 할 수는 없으니까.
🌱거짓말을 좋아하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다.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는 눈에 나를 유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자존감이 강해서 누가 뭐라고 해도 화가 나지 않는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화가 나지 않은 척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한 잘못을 자신에게 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보처럼.
훈련은 별 게 아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내 달팽이관을 미끄럼틀 삼아 반대편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 훈련이 성과를 거둘수록 내 성적은 떨어져갔다.
152.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거짓말을 좋아한다고 해서 거짓말쟁이인 것은 아니다. 나는 기분이 상해버렸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속에 있는 ‘거짓말'에는 고상함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153. 내가 거짓말을 좋아하는 것도 아름다움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나는 미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서 아름다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룸메이트한테 거짓말 같은 건 한 적이 없었다.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했던 것 말고는.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말이었다.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나?
"내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죄다 끄집어내서 너한테 일일이 알려 줘야 하는 거야? 그건 너무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올가미에 걸린 것이다. 피장파장의 오류와 우물에 독 풀기의 오류가 함께 있는 올가미에. 그래서 픽 웃어버렸다. 그런 오류가 나오는 맥스 슐먼의 단편 〈너구리 코트〉가 생각나서.
"이거 이거, 이런 웃음 말야"라면서 룸메이트는 내 입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정말 기분 나쁘거든."
룸메이트는 바르르 떨었다.
이 애한테 〈너구리 코트〉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이 폴리 에스피에게 그랬던 것처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155. 폴리는 그야말로 청출어람이어서 남자 주인공한테 배운 오류들로 남자를 골탕 먹인다.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게 바로 ✔️'우물에 독 풀기'다. 다 알지 않나? 우물에 독을 타면 아무도 물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거짓말쟁이라서 믿을 수 없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최하석 = 거짓말쟁이 = 그러니 믿을 수 없음'이라 는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에. '아니야,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야'라고 해도 거짓말이고 '그래, 나는 거짓말쟁이야'라고 해도 진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
연애소설만큼
간질간질하고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소설을 또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감성 로맨스 소설로,
'새드'라는 조미료가
첨가된 소설입니다.
이럴 땐 이 책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미나토 쇼 지음
황누리 옮김입니다.
스노보드 선수인 무로사키 토우야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선수 활동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는 맛집 블로그
"리이의 맛있는 일기"에서
소개하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블로그 주인
사카무라 리이를
만나게 됩니다.
사카무라 리이는
그에게 한 달 동안 함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여행 친구를
제안해옵니다.
토우야는 리이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리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라고
한 번 더 제안해옵니다.
사실 리이는
'여명백식'에 걸린
시한부 환자였습니다.
아흔두 끼를 먹으면
자신이 죽게 된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증거자료를 제시했고
리이에 대해서 궁금해진
토우야는 그녀의 부탁을
승낙하게 됩니다.
신종 희귀 병인
여명백식이란 질병은
치료법이 없었고
병을 진단받는 시점에서
대체로 남은 식사 횟수가
백 끼 정도 되어
여명백식이라고
불렸습니다.
토우야는 리이가
계획하는 일정에 따라
동행했고,
음식과 숙소 모두
리이가 결정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토우야는 리이에게
자신은 백수라고 속였고,
토우야의 종목인 하프파이프에서
그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에
리이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리이는 자신의 병이
치사율 100%이기에
부모님과 친구들을 포함한
지인들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고 혼자 병원을 가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둘은 여행하던 중
리이의 계획 중 한 곳인
스노 보드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토우야의 정체를
알게 된 리이는
은퇴 여부를 물어왔고
둘의 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둘의 싸움은
리이의 발작으로
마무리되고,
숙소로 돌아와서
둘은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리이의 제안으로
둘은 서로의 피어스를
교환하게 되고,
리이와 부적 덕분에
토우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숙소 체크아웃을 기다리던
토우야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리이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프런트 직원으로부터
리이의 편지를 전달받고
그는 리이와의 여행에서
강제 하차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리이와 이별하게 된 토우야
그들의 마지막 여정이
궁금해진다면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책을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책 내용은
시한부 환자와의 사랑을
그린 책이었습니다.
남남으로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시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육체적인 관계없이
정신적인 관계만으로
사랑이 성립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한다는 건
'축복'이 틀림없지만
'이별'이 확정된 시점에서
'사랑'을 마음먹기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사랑'이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상, 네가 유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운명이었다
출판사 필름
서평 후감을 마감합니다.
인생 책으로 꼽는 몇 권의 책 중,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꺼내 읽는 것이 최태성 선생님의 『일생 일문』이다. 내가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때마다 “내 일생으로 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나를 다독여준 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역사서를 읽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을 제대로 살고 싶어서. 『뭉우리돌을 찾아서』의 김동우 작가님의 책에서 “과거가 없는 지금은 성립될 수 없고 지금 없는 미래는 도래할 수 없다”라는 문장을 읽고 가슴이 둥둥 울린 것도, 단 하루도 함부로 살 수 없음을 깨달아서였을까. 아니면 오랫동안 역사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되어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당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나는 학생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사람이지만, 시험에 안 나온다고 넘어가고, 시간이 없어서 넘어가고 하며 “편집된 역사”를 배워야만 하는 입시를 벗어난 나이가 되어서야 역사가 “나보다 앞서 산 이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공부하게 하는 학문”임을 배웠다. 바로,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에서였다. 지금 『다시, 역사의 쓸모』를 마주하는 지금,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져 있을까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그때의 나보다 많이 단순히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매일 물어야 하니 말이다.
다시, 역사를 찾는 이유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이 역사의 발전 방향에 부합한다면 시대정신의 한 조각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나의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사실. (p.28)
『다시, 역사의 쓸모』의 첫 장 “다시, 역사를 찾는 이유”는 정말 그의 강연을 듣듯 술술 넘어갔다. 왜 역사를 공부하는 '지적 유희'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우리가 역사를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의미가 얼마나 단단한 것이 되는지 이야기하는 문장들을 읽으며,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지만,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역사의 매력을 다시 발견했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지만, “진짜 이야기를 알아가는 지적 기쁨”은 우리가 모두 내면 깊은 곳에서 탐하는 요소가 아닐까. 최태성 작가님은 이렇게 또 한 번 우리에게 역사를 탐하게 만든다.
삶의 품위를 지켜주는 역사의 통찰
이것저것 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보다 하나에 매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p.86)
어느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아이에게 맞는 성공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p.100)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그저 올바른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 (p.119)
직접 강의를 들었던 '김득신'의 일화로 문을 열었기 때문인지, 마음에 닿는 문장이 많았기 때문인지 나는 두 번째 장, '삶의 품위를 지켜주는 역사의 통찰'이 유독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최근 사람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며 타인의 잘못에 은근 나의 미운 모습을 당연한 방어라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나의 존엄을 스스로 낮추는 행위일 뿐 정당화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먹었다.
일상에 정성을 더하는 오래된 지혜
만적은 시대에 갇혀 있던 사람이 아니라 시대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p.183)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해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역시 성공적일 것이라 함부로 짐작하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단한 성공 앞에서 우리가 작아지는 것은 결과만을 바라보고 그 결과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과정을 등한시했기 때문일 거에요. (p.215)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의 수고로움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역사의 쓸모』를 읽으며 역사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더욱 배울 것이 많아짐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후대에 남긴 것들. 시대에 준 것들이 무척이나 크고 깊다. 진짜 노력을 바라볼 수 있는 선한 눈들이 많아야, 지혜로운 눈들이 많아야 앞으로의 “역사”가 조금 더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여정의 끝에서 비로소 깨달은 것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 하나는 다채로운 감정을 갖기 위해서예요. (p.263)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크고 원대한 목표에 사로잡혀 소박한 오늘의 행복을 외면하지 말 것. 나의 삶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그리고 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 (p.278)
사실 이 부분을 읽는데 울컥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사는 지금, 행복하고 좋으면서도 종종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지?” 하는 확인을 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역사의 쓸모』를 읽으며 나는 바라봐야 할 곳을 바라보며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주춤했다면, 그걸로도 분명 배운 것이 있겠지. 대신 다시 일어나 잘 걸어봐야겠다. 나의 속도로. 나의 길을.
누군가 내게 『다시, 역사의 쓸모』를 읽어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다시,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알기 위해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19p.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원한다니, 나는 그를 위해 내내 온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6p.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런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44p.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97p.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132p.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189p.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분노했을 법한 일에, 이제 학생들은 분노하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234p.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없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브릴리언트 블루
*작가 함지성
*출판사 잔
지은이는 1996년 출생으로 에세이 우리를 살기 하는 저마다의 방법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 후 브릴리언트 블루를 출간했다. 현재는 다른 소설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브릴리언트 블루는 책 표지에 있는 색상이다.
브릴리언트 블루에서 주인공인 수우키는 여행지에서 만난 모나와 필립 커플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동생과 같이 엑상프로방스로 떠나게 된다.
*출처 : 브릴리언트 블루 16페이지
[[음악의 도시이자 화가 폴 세잔의 도시,
광활한 하늘 아래,
보랏빛 라벤더를 활기차게 품고 있는 엑상프로방스로!]]
프로방스에서 수키는 결혼을 앞둔 모나와 필립 커플과
베스트 브랜드 잭, 그리고 리버를 만나게 된다.
리버와 수키는 연인 사이로 발전을 하게 되지만,
리버는 일본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수키는 같이 가자고 제의를 받게 된다.
*출처: 브릴리언트 블루 83페이지
[[스무 살의 나는 엑상프로방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나를 쳐다보며 눈이 부시게 웃던,
그런 리버를 광폭적으로 사랑했다.]]
[[세상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리버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장거리 연애가 끝이 보이지 않는 이별이라고도 한다.
수키와 리버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브릴리언트 블루에선
표지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블루색처럼,
엑상프로방스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프랑스의 엑방프로방스를
책 묘사를 통해 간접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사랑은 억지로 밀어붙여서 성립되는 관계가 아닌
운명의 불꽃이 튀어야 성립될 수 있는 관계이다.
20살 수키가 광폭적인 사랑을 하듯
우리의 20살 때도 광폭적인 사랑을 했겠지
사귐이 있음 이별도 있듯,
만남과 이별은 세트로 움직이지만,
나 또한 언제나 광폭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
**이 책은 서평단 모임을 통해 "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했다.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일군의 철학자들은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한다.(프랑크프루트 학파)
그러나 하버마스는 인간 이성을 포기하지 않고, 실생활(생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행위의 합리성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이 책 1권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차원의 세계 구조이다.
첫 번째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진 객관세계인데, 이것은 인류가 공유하는 이론과 법칙이 성립하는 세계를 뜻하는 듯 하다.
두 번째는 문화, 관습, 규범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세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조선시대와 현재 우리가 살 고 있는 사회를 비교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주관세계이다.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아들이 나와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가족이 가끔씩 다투기도 하나보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하루를 마치고 차분히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 속에서 얻어지는 감정은 나의 무능과 타인에 대한 분노. 결국, 또다시 우울해진다.
나의 한계에 분노하고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불쾌감이 치솟는다. 그 마음이 나를 어둠 속에 갇히게 한다.
모든 원인은 피로 때문이다.
삶에 지쳐버렸을 땐 냉정한 반성이 불가능하다. 억지로 반성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버린다.
지쳤을 땐 반성하는 것조차 피곤하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것도 지겹고, 일기 같은 걸 쓰는 것도 괴롭다. 생활에 활기가 넘치거나, 즐겁게 활동하거나, 어떤 일에 흠뻑 빠져 집중할 때는 지나간 일을 뒤돌아보지도, 반성하지도,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거나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한심스레 여기고 있으며, 타인을 증오하는 중이고, 영혼과 육신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이럴 땐 그저 쉬는 게 최선이다. 반성은 자기혐오다. 자기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인간은 뭔가 반성할만한 건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인간은 무턱대고 반성하며 자아를 성찰한다.
그럴 바에야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 낫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여행도 도움이 안 되고, 술을 먹어봐야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혐오스러운 오늘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괴롭다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시작을 펼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 이 세상에 나 이상의 존재는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의 문제고, 내가 존재한다는 건 오직 나만의 문제다.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
📚 산책은 직장과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발해 같은 시간에 끝마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산책할 때는 생각할 것들을 챙겨간다. 어려운 과제들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행을 두지 않는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
📚 현명할수록 명예와 체면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안다. 민주주의를 창시한 아테네 정치가들은 술 취한 시민들에게 썩은 채소로 얻어맞아도 옷을 빨면 그만이라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테네의 정치가들은 억울하게 뺨을 맞아도 개나 고양이가 할퀸 것으로 생각했지, 명예가 훼손됐다며 법정으로 사건을 끌고 가지 않았다. 오늘날 체면과 명예가 그 사람의 전부인 양 절대적인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이 시대의 인간관계, 혹은 권위와 신분이 편견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또 권력은 욕심나고, 그러니 스스로 자기 이름에 금칠을 해버리는 것이다.
📚 인생이 고달파지는 까닭은 경쟁적 성공이 행복의 근본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감정이 인생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
돈의 힘으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으로 산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성공은 행복을 부르는 데 지불되는 한 가지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성공을 위해 그밖에 다른 요소를 희생시킨다면 성공을 제값보다 더 비싸게 구입하는 셈이다.
...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인내를 벗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일도 없으리라. 신념을 그대의 양식을 삼아라. 육신의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게 되리라. 신념을 잃은 인간처럼 불행한 인간은 없다. 실패하고 낙오하는 자들은 대개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신념을 갖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던 사람들이다. 시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게을리 걸어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그날의 보람은 없다. 보람 없는 날들의 반복으로 최후의 목표가 달성될 리 없다. 위대한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 부모는 자녀를 개인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자녀의 속성이 자기 안에 갇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결과물이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거룩한 대가로서 주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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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개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의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인식해버린다. 부모에겐 개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일생을 내 노예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주는 하나의 물건으로 부모를 취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됐음을 상기한다면, 사랑이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독서는 인간의 행동 양식 중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지만 자기 내면에 숨겨진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독서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자극이다. 자극만 받고 이를 표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자극에 무뎌진다. 이는 독서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 행복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행복을 활동 그 자체로 본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잘 산다고 느끼는 까닭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요약하자면 행복은 ‘잘하고 있다’는 지속이다.
...
동일한 설명을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원했던 형상 내지는 상태를 획득하는 것을 두고 나는 성숙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행복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모든 과정의 연속이다. 따라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상태와 과정도 행복이다. 행복이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미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살아야 하는데, 잘사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기능의 점진적 향상이 아니다. 잘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성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다.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뉜다. 생식은 식물도 하는 일이며, 감각은 동물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유를 인생의 본질로 삼았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따라서 행복은 사유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 우리가 인간 상호 간의 관계 맺기에 서투른 까닭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거나, 심술을 부리거나, 교만하거나, 질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는 원인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시기하고 어떻게든 깎아 내리려고 고집을 피우는 원인은,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며, 허영이며, 교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생활수칙이다. 이 수칙들을 지킨다면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머릿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제거하면 이 수칙들을 좀 더 쉽게 지킬 수 있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 영화관에 간 철학 《매트릭스 2편》
▶매트릭스 2편 _ 리로디드 (Reloaded 재장전)
1편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하늘로 날아오른 네오.
내일 이 전쟁이 끝난다면, 한번 싸워 볼만하지 않을까?
목숨도 걸어 볼 만 하지 않을까?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전에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네오는 마침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시온이 컴퓨터 군단에게 장악될 위기에 처하면서,
네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갖게 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지구 상에 남은 인류 최후의 보루인
시온이 인간 말살을 목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센티넬
무리에 의해 짓밟히게 될 터.
그러나 시온의 시민들은 오라클의 예언이 이루어져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모피어스의 신념에 용기를 얻고, 네오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얻은 네오와 트리니티는 모피어스와 함께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매트릭스'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매트릭스의 심장부로 그들을 안내할 '키메이커'의 행적을 찾아낸 트리니티와 모피어스.
하지만, '키메이커'는 신출귀몰한 악당 트윈스에게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다.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키메이커' 구출이라는 위험한 임무를 감행하는 세 사람.
한편, 에이전트 스미스(휴고 위빙)는 네오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으로 시스템에 불복종하게 되고, 그 결과 삭제될 위기에 처한다. 이제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계속 네오를 추적한다. 한때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인간성을 어느새 자기 자신도 갖게된 스미스는 복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매트릭스'의 내부 구조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자신의 역할에 눈 떠 갈수록, 네오는 더 큰 저항과 더 무서운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을 강요 받는다. 사랑과 신념, 목적과 명분, 이 모든 것의 합류점에서 네오는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는 자문한다. '만약 내가 못 해낸다면 ?'
'만약 실패한다면...?' 대답은 한 가지뿐이다.
시온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마침내..인류의 운명을 건 필사의 전투가 시작된다.
▶기계가 인류와 세계를 지배하는 미래 《책 30p》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의 등불이라는 오랜 전통을 깨고 인간이
'충동의 동물'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충동을 중시하지만 충동대로 살라고 하지 않는다. 충동을 예술, 학문, 운동으로 승화하면서 살라고 한다.
아키텍트는 수학의 정확성, 완벽성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 정학성 완벽성은 이성에서 나오니까 아키텍트는 감정 없는 기계 신DeuxerMachina)이 만든 프로그램답다.
※3부에서 아키텍스는 기계 신으로 밝혀진다.
아키텍트는 기계신이 만들고 '설계자' 라는 이름대로 매트릭스를 만든 프로그램이다.
▶완벽 대신 통제 가능한 불안정 《책32p》
"매트릭스는 오랫동안 존재했다.
이게 여섯 번째 버전이지
최초의 매트릭스는 완전했지
그런데 어이없이 실패하고 맡았네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된 불완전성이었지
다음엔 인간의 괴팍한 면들을 더 정확히 반영했어
그러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어
나는 나보다 낮은 지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네
적어도완벽에 포함되지 않는 지능
그래서 직관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거야.
원래는 인간 정신의 단면들을 연구하려고 만들었지
내가 매트릭스의 아버지라면 그건 매트릭스의 어머니야:"
매트릭스의 어머니는 오라클이다.
오라클은 직관력 있는 프로그램이다.
직관은 추론과 반대다.
추론은 아키텍트가 하고 직관은 오라클이 한다.
추론은 근거들을 따져 결론에 이르지만 직관은
근거들을 따지지 않고 바로 결론을 내린다.
추론은 이성으로 하고 직관은 감각으로 한다.
그럼 아키텍트가 매트릭스를 만들 때
오라클이 준 도움은 무엇일까?
◈미국 수학자 쿠르트 괴텔(k, Gidle)은 '불완전성 정리'
를 증명했다.불완전성 정리의 내용은 어떤 수학 체계든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괴델은 모는 수학 체계에 대해 그 체계로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고 증명했다.
완전한 수학 체계라면 그 체계로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어선 안 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잘 보여주는 예는 수학 역사에서 2천 년이상 지배한 유클리드 기하학에 맞서 19세기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성립한 것이다.
아키텍트가 만든 첫 번째 매트릭스와 두 번쎄 매트릭스는 완벽한 체계를 지향하다가 둘 다 실패했다.
아키텍트는 문제가 인간의 불완전성, 괴팍한 면들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꼼수다.
반만 맞다. 나머지 반의 문제는 완벽한 수학 체계를 지향한 아키텍트 자신이다.
아키텍트는 자기보다 낮은 지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여전히 잘난 체한다.
하지만 오라클은 덜 완벽한 제계를 지향한다.
그러니까 결국 아키텍트도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아키텍트가 세 번째 매트릭스부터 도입한 아이디어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다.
매트릭스도 아키텍트가 "수학적 정확성의 조화"라고 말하듯이 수학 시스템이다.
아키텍트는 세 번째 매트릭스 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지향하지 않고 통제 가능한 불완전 요인을 도입한다.
매트릭스 시스템의 안전을 위해, 기계 신이 인간과
세계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 매트릭스에서 불완전
요인은 저항군이다.
◈성 충동과 죽음 충동이 작동하고 갈등하고 출동할 때
아키텍트에 따르면 네오는 변종이지만 통제할 수 있다. 매트릭스의 어머니 오라클이 만든 변종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3부에서 오라클은 마지막으로 만난 네오에게 자신의 입무가 아키텍트와 반대라고 말한다.
"그게 그(아키텍트)의 임무야.
방정식의 균형을 맞추는 것.!
당신 임무는?
"그걸 헝크는 것."
오라클은 아키텍트가 설계한 매트릭스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매트릭스에 도입할 불안정성 또는 무질서를 개발한다.
바로 네오와 저항군이다. 오라클이 만든 네오와 저항군의 정체는 <매트릭스) 스미스가 모피어스에게 하는 말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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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를 보면 철학자들의 사상과는 별상관은 없지만
영화의 내용에 빗대서 설명하면 먼저 설명할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와 같이 합리론을 주장하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쯔 이다. 두 철학자는 공히 두가지 문제거리에 사고를 집중했다. 하나는 실체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의 근원이다. 이들 철학자에게 있어서는 '실체' 개념이 철학사상이라는 프로그 램 소스코드로 안내하는 키메이커와 같다.
스피노자를 먼저 보자. 이 사람이 시대적으로 앞선다. 스피노자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 이라는 실체의 개념에 집중한다. 이개념은 최초에 아리스토 텔레스가 정의하고 데카르트가 새롭게 발전시켜 심신2원론 으로 이끌었다.
스피노자는, 실체란 그 개념상 스스로가 원인이 되어야 하고 다른 것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신이며,신과 만물은
같은 것이다 라고 했다. 이러면서 데카르트의 2원론을 비판
했다. 즉 정신과 물질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은 틀렸다는
주장하였다.
라이프니쯔도 실체 개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다른 키메이
커를 따라갔다. 라이프니쯔는 실체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 이라는 전제에 따라서, 실체가 나누
어질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이면서 동일하고 단순하다
고 생각했다. 스피노자와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반대 방향으 로 나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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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장으로 구성된 현직 경찰관의 직업 에세이 및 사회비판 에세이.
은유 작가의 책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 추천으로 리스트 업을 해놓았는데, 새해 독서모임의 첫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의 책으로,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일기로 썼던 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찰관이라는 정형화된 사람의 말과 글이 아니라 여성이면서 현직 경찰관으로, 경찰 공무원도 회사원이라는 문장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직업관과 의식들을 보게 되었다.
1장 산 사람 2장 죽은 사람 3장 남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산 사람
양치기 소녀중에서
솔직히 나도 같은 마음이야, 언니. 어린 나이에 나쁜 것만 배우고 다니는데 제대로 된 인간이 되겠어? 그런데, 그래도, 인간이 안 돼도 괜찮으니까, 그런 식으로 죽지는 마라. 너에게 주어진 목숨 오래오래 술주정하면서 잘 유지해라. 주어진 명만큼 건강하게 살다 가라. 앞으로 허위 신고는 안 하면 좋겠고, 악의적으로 허위 신고를 지속할 경우 형사처벌도 할 거지만, 네가 언제 어디서 신고를 해도 나는 또다시 너를 발 벗고 찾아 나설 거다. 그러니까 부디 잘 살아라. 이를 꽉 물며 되뇌었지. 그리고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길 바라면서.
; 어쩌면 허위 신고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시켜놓은 칼국수가 다 불어 터져서 먹지 못한 일화로 연결된 이 에피소드는 ‘그런데, 그래도,’라는 접속사 다음의 문장들에서 저자의 직업윤리와 인간적 갈등이 함께 드러나는 지점이다. 혹여나 사건이나 시체로 발견될까 두려워서 미치도록 최선을 다해 수색했지만, 끝내 허탕으로 끝나고 배달된 칼국수를 먹지 못했다는 전언으로 끝난다. 나라면 어땠을까 견주어 보면 저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까. 허탕은 싫지만 신고자가 최악의 상태에 치닫는 상황은 아니었으면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말로 중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을 수 없다는 말로 ‘그래도 가족이잖아’ 따위의 말로, 가정 안에서 일어난 명백한 범죄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는 게 더 이상 허용돼선 안돼. 우리는 그런 말을 그만두고 가정폭력 피해자, 특히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해결해 주어야만 해. 그것이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덥썩 미래를 맡겨버린 어른들이 해야 할 책임이니까.
; 어른들의 가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인 대부분 부모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현장에서 본 제일 약자고 소외된 아이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선택한 삶이 아닌데 폭력의 삶으로 던져진 아이들의 어떻게 제대로 성장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덤덤한 듯하지만 놓치지 않는 시선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본다. 연대라는 것, 공동체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 또한 시스템의 오류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현장에서의 관점과 태도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당신이라는 존재 중에서
언니, 그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정말 아내로, 한 명의 사람으로 대했다면 한국말부터 배우도록 돕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살게 됐으면 말을 할 줄 알아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고, 급하면 택시도 타고 할 거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캄캄하게 글자 하나 읽지 못하도록 살게 내버려 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건 어느 형태로 봐서도 사랑이 아닌데.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는데.
“나 ... 노력했어... 남편...”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올해 들은 말 중에 가장 슬픈 세 단어였어.
; 결혼이주로 한국에 온 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신고 현장에서 본 상황을 쓴 글이다. 농촌으로 결혼을 통해 온 동남아 여성들의 삶이라는 것이 학대와 폭력, 매매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다큐나 시골을 배경으로 한 결혼 이민여성과 남성의 예능을 방송을 통해서 볼 때도,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인식이 화면 밖으로도 전해졌다. 작가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이 사회에서 적응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말을 배우지 못한 채, 글을 익히지 못한 채 타국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매매혼이라고 느낀 건 그래서 그렇다. 돈을 주고 사 온 노동력과 성욕을 해소하는 물건 같은 존재. 그런 인식이 나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확인된다는 점 또한 씁쓸한 일이다.
가장 슬픈 세 단어라는 마지막 문장이 그래서 더 슬픈 왜곡된 결혼이주 여성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천원짜리 인생 중에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자신이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버는 돈의 가치는 ‘천한 직업’ 정도의 천한 말로 폄하할 수 없음을, 삶의 현장 한 가운데에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거야.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그 차에서 나오는 매연만큼의 더러움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 위를 전전해도 고고한 양심과 태도까지 길 위에 두고 다니진 않았던 사람이 있었어.
;택시 기사와의 일화를 통해서 귀천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좋은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아닌 듯, 일에 있어서 천하고 귀함의 기준이나 구별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천원짜리 인생이라고 단언하듯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강늡때기 중에서
교육이 주는 힘은 알 수 없어도, 교육이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던 밤이었어. 적어도 세상을 깜깜하게만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지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길 곳이 넓어지도록 하기 위한 원동력. 결국 민들레 홀씨를 날려주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를 멀리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바람과 같은 역할. 그게 교육의 중요성이며 존재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언니, 언니라도 알아줬으면 해. 아는 것을 넘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얼굴이 네모난 편인, ‘강늡때기’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존재를 말이야.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다. 이른바 무적자 출생자라는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되면서 교육에 대한 작가의 견해에 대해서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화하는 자세가 현재의 여성들의 삶의 태도의 경지를 보았다고나 할까.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교육에 대한 인식이 슬픈 현실에서, 타인의 슬픔을 연민으로만 끝나지 않는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진폭이 보인다. 지식이, 앎이, 교육이 결코 자랑하거나 젠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지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어쩌면 너무 진부한, 그러나 진부하지만은 않는 교육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2장 죽은 사람
나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다 중에서
잊혔고, 잊히고 있는 수많은 현장 영웅들과 지금 이 시각에도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경찰관들. 하늘의 별을 다 헤아린대도 현장 영웅들의 숫자는 결코 헤아릴 수 없을 텐데, 그 사람들 모두 미친개였으며 몽둥이로 다스려야만 하는 존재였던 걸까, 언니. 경찰청 인터넷 사이트의 ‘순직경찰관추모’웹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수많은 순직 경찰관은 무얼 위해서 죽었던 걸까.
나는, 우리는, 사냥개나 미친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찰관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나와 내 동료, 선배, 후배들의 최종 목적지가 죽음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 업무 중 죽음을 맞이했는데, 순직이 인정되지 않아서 유가족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인 곳에서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잘 수행해 낼 수 있을까? 경찰관의 공권력이 공권력으로서의 정당한 수행이나 수용이 되지 않을 때, 그 조직의 조직원을 어떤 마음이 들까? 작가는 경찰관으로서 느낀 현장의 불합리나 허점을 말하지만, 꼭 경찰관이 아닐지라도 이런 시스템의 허점과 불합리는 꽤 자주 마주치지 않는가. 경찰 공무원이라는 기대와 요구만 있을 뿐, 그들의 수행능력과 현실에서의 오는 갭과 허점은 보지 못했던 게 더 많다. 비난은 쉽지만, 잘못된 것에 대한 지적뿐만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지켜보고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은가. 잘못된 관행이나 절차도 시정되어 안착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뿐더러 작가는 경찰관 역시 회사원이라는 말로 경찰관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경찰 공무원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과 봉사를 당연한 것으로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걸 지적한다.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고, 사람이라는 인식 아래 경찰관으로서의 정체성이 함께 성립된다는 말로 이해된다.
3장 남은 사람
그들이라는 파편 중에서
민원이라는, 그들이 던진 말의 파편에 맞은 나는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지만 경찰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아프다는 소리를 낼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어. 그들은 자신의 혀가 날카로운 칼인 줄도 모르고 나에게 휘둘렀고, 난 그 칼을 능숙하게 받아낼 실력도, 갖춰 입은 갑옷도 없어서 무척이나 많이 베였어. 언니, 누군가는 경찰 월급에 욕먹는 값이 포함되어 있다고들 해.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억대 연봉자가 아닐까? 어쩌면 웬만한 기업의 순이익만큼 벌지도 몰라.
;공무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라고 할까.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라는 갑질의 행태들은 사람에 대한 생각, 존중이 배제된 채 대하는 태도나 말들이다. 가장 힘든 업무가 민원인 상대라는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공무원인 친구도 가장 싫고 어려운 업무가 민원 업무라고 한다. 소위 진상 혹은 갑질 민원인은 서로의 입장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생각이 좀 달라질까?
내가 너에게 돈을 주니 이런 무례도 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어느 직종에서도 다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욕바지로서의 연봉은 억대 연봉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에서 얼마나 많은 민원에 시달리는지가 짐작된다.
비겁함을 배운다 중에서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겁함을 택한 나의 동료, 선배,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참 괴로워. 현장에서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주춤하는 발걸음, 회피하게 되는 시선을 언제쯤 벗어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경찰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비겁함이야. 구조가 바뀌어야 해. 사회가, 법이 나서서 경찰관의 얼굴에 쓰인 비겁함이란 가면을 하나씩 벗겨줘야만 해. 부디 피해자의 얼굴에서 눈물을 거두고 미소를 선물해 줄 수 있는 경찰관이 되도록, 나의 후배 경찰관들은 비겁함이란 태도를 배울 일이 없도록 도와줘. 그게 비겁한 나의 비겁한 부탁이야.
; 혼자서는 바꿀 수 없는 조직 구조의 문제점을 피해자의 얼굴을 통해서 또렷이 깨닫는 작가는 비겁함이라 키워드를 내세워 꽤 통렬하게 전한다. 몸담고 있는 조직의 문제점에 쓴소리를 한다는 건 아직은 애정이 있기에,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소리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맺는 글중에서
때때로 과거를 정리해 주어야 앞으로 채워나갈 현재도 더 많아진다는 걸.
;아직은 젊음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의 마음결과 생각들, 삶의 태도들이 우울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대단한 희망은 아닐지라도 타인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장을 놓지 않는 모습이 경찰관으로서의 직업적 딜레마와 인권을 인정받고 일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에세이로 의미있게 읽었다. 자신의 조직의 문제를 비난 혹은 비판 이후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의 구조의 문제를 개선되기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또한 앞으로를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맺는 글에서 낙관의 한 빛을 본다.
그렇다. 예술의 본질은 창조, 곧 표현에 있는 것이다. 비록 세부적인 항목들에 있어서 반론의 여지가 있었지만 자연의 모방이 아닌 표현으로부터 예술의 가치를 끌어낸 그에게 호의를 갖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셸링은 라파엘로의 매혹을, 그 가치를 이해하는 인물임에 틀림없고 내가 그를 이해하는 데는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조형과 회화의 단순한 비교는 회화에 비해 보다 현실에 근접해있는 조형의 3차원적 특성을 무시한 탓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자연과 조형예술과의 관계를 다룬 부분은 제법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조형미술을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일반과 자연의 관계 역시 셸링의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아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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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부분
... 즉 자연의 본질과 영혼의 본질의 근원적인 통일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명료하게 관찰자들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대립은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사랑이야말로 모든 본질의 끈이며 순수한 선함이야말로 창조 전체의 근거이자 내용이라는 확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술은 말하자면 자신 너머로 나아가며 또 자기 자신을 다시 수단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정점에서는 감각적 우미 역시 다시 좀더 높은 생명의 외피이자 육체가 될 뿐입니다. 전에는 전체였던 것이 부분으로 다루어지면서 예술은 바로 자연을 자신 속에 있는 영혼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개물로 삼음으로써 자연과 예술 사이에 최고의 관계가 성립됩니다.(48-49p)
예술과 학문은 둘 다 그들 고유의 축을 돌면서 움직일 수 있을 뿐입니다. 정신 활동을 하는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자신의 가슴 속에 신과 자연을 써두었을 뿐 다른 무엇도 쓴 적 없는 법칙을 따를 뿐이지요. 어느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출한 것이 아닌 것은 곧바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에, 설령 그런 것이 있더라도 겉으로나마 그에게 보람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으며 나아가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지정해줄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가 자기 시대와 투쟁을 벌여야 한다 해서 한탄한다면, 이는 시대에 굴복한 이유로 경멸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60-61p)
각 시대마다 각양각색의 감격이 주어집니다. 새롭게 자신을 형성해가는 지금 이 세계가 때로는 외적으로 때로는 내면적으로, 즉 심정 가운데 존재하는 탓에 이제까지의 견해들이 제시한 온갖 척도로는 더 이상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공공연히 좀더 위대한 것을 요구하며 전반적인 갱신을 예고한다는 이유 때문에 막상 이 시대에 대해서는 어떤 감격도 기대해서는 안 됩니까? 자연과 역사가 한층 생동적으로 다시금 꽃핀 그러한 성향이 예술에 고귀한 대상들을 돌려주어서는 안 됩니까? 스러진 잔해에서 불씨를 일으켜 보편적인 불꽃 하나를 다시 살려내려 하는 것은 공허한 노력입니다. 그러나 이념들 자체에서 생겨나는 변화라면, 피로에 지친 예술을 끌어올릴 만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새로운 앎, 새로운 믿음을 가능케 하면서 예술로 하여금 다시 젊어진 생 가운데서 전과 비슷한 환희를 나타내도록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면에서 과거와 같은 식의 예술은 결코 다시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은 결코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라파엘은 다시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에 견줄 만한 독특한 방식으로 예술의 정상에 오른 또 다른 이가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한 근본 조건이 결여되지 않고 또한 소생하는 예술이 과거의 예술처럼 스스로 정한 목표를 그 첫 작품들에 보여주는 한에서 말입니다.(61-62p)
<카인의 후예>
국사 시간에는 해방, 토지개혁이란 사건의 이름만 외웠다면 실제 농민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상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지금까지는 광복 이후 남한의 상황만 생각해보았다면 이 작품을 통해 이북에서는 광복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인간관계 치고 궁극적인 의미에서 어떤 형태로든 상처라는 걸 면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크고 작고 심하고 덜한 차이나,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의 다름은 있을망정 서로 어떤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서는 무릇 인간관계란 성립 되지부터 않는 성싶다. 그것이 친구 간이든 남녀 간이든 심지어는 부모 자식 간이라 하더라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이런 상처 속에서도 그냥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을 망각하기에 애쓰고 또한 거기에 익숙해진 때문인 것이다.
시간, 인생에 관한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여름밤에 시골 툇마루에 앉아 듣는 얘기같았다.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졌지만 여유란 걸 모르고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서 읽고 싶었는데, 작가처럼 어떻게 쓰고 싶은 지 고민하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선도 잠깐 넘어보고 소중함에 감탄해보고 잃었던 순간의 간절함을 잊지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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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 배우고 싶다. 사랑이 가장 쉬운 일이 될 때까지. 그런 게 사랑이지 말하게 될 날까지."
"누구에게나 지금 선 자리가 최선을 다한 자리"
"웃다가 헤어지면 젊은 날의 불안함은 뒤로하고 사는 게 안심이 됐다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함께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때 성립되는 말 같기도 하다"
"삶의 여백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어요"
"시간이 생기면? 하루를 어떻게 쓰고싶어? 그런 물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덜 쓴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조용히 기뻐졌다."
"내가 보낸 하루하루가 모여서 평생이 될테니까. 삶은 결국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썼느냐 일 것이다.
미래가 궁금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바라는 미래를 현재에서 먼저 살아보는 일일테니까."
"대체 가능한 노동자인 내가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곳은 오직 내 삶의 자리라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토록 오래 헤맸는데 그건 그저 살아가는 일이었다니."
"가보지 못한 땅은 더 이상 나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그곳에 있지 못해 우울한 내가 아니라, 언제든 그곳에 갈 수 있는 나와 살고 있다고 느끼니까.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어디든 갈 수 있어. 자유를 손에 쥔 채 자신의 가능성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진짜 조기 인생을 살 수 있는 법이라고."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본 것만 같다.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나 동질감을 느꼈고,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접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살면서 마음이 가난해질 때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31
불교의 법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곳에서 싫은 상대를 만난다면 그는 원수가 아니라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불보살, 즉 은인으로 불렀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습관에 지배받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내가 행동을 바꿔야 한다면 누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여야 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에서 '나는 왜 이 행동을 하고 싶지?'로 질문이 바뀌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P. 161
계획? 다솔아, 그런 거 세우면 안 돼. 아무것도 세우면 안 돼. 모든 걸 버려. 리듬에 너를 맡겨.
P. 219
나의 작은 밥상에 오르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살다가 죽은 이구나. 그 순간 선명해졌다. 나는 외롭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사실 혼자라는 말은 결코 성립될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결코 혼자라고 할 수 없었다.
P. 246
차별을 받아본 집단이 그보다 더 소수의 집단을 더 철저하게 차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을 보며 알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의식이 무엇인지, 의식이 왜 존재하는지, 의식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알지 못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는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왜 그런 물리학 법칙들이 성립하는지, 아니면 대체 왜 물리학 법칙들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신은 다수의 사람들이 내놓는 답이다. 대개의 종교는 창조론에서 출발한다. 그 이야기 중 어느 것도 사실은 아니다. 만약에 사실이라 해도 그게 세상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지는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그저 수수께끼를 다른 곳으로 밀어낼 뿐이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면? 그래도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신은 왜 존재하는가?
줄스의 가르침은 두 가지였다. 첫째, 견해를 가진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견해를 가지게 되면 그 견해를 방어하기 위해 고집을 피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듣기가 어려워진다. 철학자로서 줄스 콜먼의 대표적인 미덕은 자기 견해를 기꺼이 바꾸려는 자세였다. 그건 콜먼이 대답보다 질문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를 원하고, 어떤 답을 얻든 간에 기꺼이 수용하려고 한다. 설령 그가 원래 서 있었던 자리에서 후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지라도.
둘째, 견해는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자기가 방어할 수 없는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방어란 그 견해를 옹호하는 근거를 대고, 반대 의견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나만의 통찰을 획득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보람 있는 일이다. 꼭 세상에서 제일가는 피아니스트라야 피아노를 치는 게 가치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철학자라야 가치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우리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존재를 발견하는 건 멋진 일이다. 그래야 우리가 그들에게서 뭔가를 배울 기회가 생긴다. 다만 우리가 그 철학자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만 해서는 뭔가를 배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전문 지식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의 판단을 그냥 따를 게 아니라, 그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로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에 관한 나의 생각을 말하긴 해도,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만의 견해를 정립해가기를 바란다.
한편, 시간이 흘러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늘어갈수록 농담은 점점 더 많은 맥락을 생략하고서 성립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아는 만큼, 설명도 준비도 필요가 없다. 그럴 때의 농담은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은어처럼 작동한다. 둘만의 비밀을 공유할 때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끼듯, 농담을 통해 서로의 거리는 보다 가까워진다.
(연애와 농담, 28쪽)
단 한 번이라도 본인의 몸을 남과 비교하고, 사회적 미의 잣대에 신경을 쓰고, ‘내’가 아닌 ‘몸’으로서 삶이 환원된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부디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은 여성 화자들이 본인의 몸에 대한 고백을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여성 독자로서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뜻깊게 다가온다. 또한, 선우은실의 작품해설이 이 소설을 더욱 더 이해하기 쉽고 돋보이게 만들었는데 작품 해설 중 ‘단일화되고 일반화되는 여성의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라는 문장이 이 소설에 대해 많은 걸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부제를 읽으면서 드러내고자 하는 책의 주제를 읽는다.
실린 도판과 참고도서 목록들을 보면, 문화적으로 주입시킨 여성성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아이와 미술 전시회를 가거나 혹은 미술 관련 서적에서 누드화가 나오면 불편할 때가 있었다. 성별이 다른 아이와 불편한 지점이 다르긴 했지만, 누드화에서의 관점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새삼 저자의 설명으로 깨닫는다.
들어가며, 익숙함에서 벗어나 달리 본다는 것에서 편에서 캐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대한 인식이 그랬다. 자식을 잃은 슬픔 앞에서 어머니의 여성 작가의 관점과 아버지인 남성 작가의 관점이 예술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의 다른 관점이 그동안은 인식하지 못했는데, 저자의 제시를 통해서 깨닫는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어느 어머니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지! 두 작품의 설명을 통해서 작가의 '자기 확장성'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1장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분법
다섯 개의 이야기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젠더적 차별을 말한다. 아름다움에 대해서 여성과 남성에게 적응할 때 시선과 의미 적용의 차이를 그림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사회에서 바라보는, 기대하는 다른 잣대와 평가들에서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여성성으로 전제한다는 생각이 든다. 앨리슨 래퍼의 일화가 그런 관점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 장애인의 몸을 성적 대상화의 의미로 해석되는 몸이 앨리슨 래퍼와 같은 _ 즉, 우리가 토르소라고 미술시간에 배웠던_ 몸이었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겹쳐져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2장 누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가
누드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성과 여성에 대한 누드화에 대한 다른 인식과 사회적 관점을 말한다. 가령 여성의 성기는 부끄럽거나 가려야 하는 수치스러운 의미로 표현되는데 남성의 누드화에서는 그런 장치나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의 동성애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이유를 고대 역사 속 일화를 가져와 설명하면서 남성 간의 사랑이 국가 공동체의 통치권과 그들의 유대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여성이 거울을 보는 행위는 허영으로 해석되는 반면 남성은 자화상이라는 매개로 자아성찰, 자기 몰두로 해석되어 뒷모습마저도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고 한다.
3장 그녀는 왜 '악녀'가 되었나
판도라와 프로메테우스는 똑같이 금기를 어겼는데, 한 쪽은 어리석은 호기심으로 한 쪽은 주체적 자존감의 표출로 인식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다루는 그녀들은 릴리트, 메두사, 고대의 여신들이다.
문명사의 흐름에서 그녀들_어머니 대지의 여신들_이 어떻게 이미지가 탈바꿈되어 악녀로 인식되었는지를 전한다.
이른바 문명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이라 사회체제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여성성은 부정되거나 남성성에 비해 하등한다는 인식을 성립해야 했기에 과학적이라는 근거를 만들어서 억압과 차별의 관점을 안착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승자만의 해석이라고 해야 할까. 지배계급의 정당성을 위해서 피지배계급은 모든 의미에서 무지몽매하며 이끌어줘야 한다는 제국주의 같은 개념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팜므파탈의 부분에서는 파멸로 이끄는 존재라는 한켠의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성성에 대한 이중적인 의식을 읽는다. 두려움과 경의로움 그리고 시기와 억압.
193쪽
이것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판을 되돌리려는 시도로서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험성을 안고 있는데, 자칫 '영원히 여성적인 것'을 구원자로 보는 남성들의 환상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악마도 아니지만 구원자도 아니다. 남자를 죄로 이끈 것이 여자가 아니듯 그들을 구원하는 것도 여자는 아닐 것이다. 여성을 악마화하는 것이 부당하듯, 모든 것을 받아주는 '영원한 어머니'같은 구원자로 보는 것도 우습다. 일견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발견과 계승이 여권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여성성 혐오와 억압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왜곡된 시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여성성을 최고선으로 두고 이상화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악마나 구원자 둘 다 남성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당신들이 지은 죄는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될 일. 그러니 제발, 구원은 셀프!
4장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그리스 신화는 아폴론의 지극한 사랑으로 회자되는 이야기이지만, 다시 이야기를 천천히 살펴보면 그것은 남성에 의한 일방적인 폭력이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존재를 죽은 후에까지 자신의 월계관으로 만들어 영원히 기억한다는 것이 다프네의 입장에서 그것이 사랑인가? 죽음 이후에도 폭력을 행하는 이와 함께 해야 한다니. 집착과 광기 그 자체다. 얼마 전 지하철 공사 직원의 죽음이 떠오른다. 이것이 어찌 사랑인가.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신화를 조각상으로 만든 조각가 베르니니의 일화와 더불어 그 조각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해석에서 그동안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말하고 있어서 깨닫게 되었다. 이 조각상의 페르세포네의 입장을. 그저 조각상의 생동감만을 바라보았을 뿐 그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걸.
저자는 우리가 흔히 사랑의 신화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사랑인가?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자 편에서 다룬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는 금발, 백치미, 섹시 심벌로 그녀의 본모습이 어떻게 영화계에서 성적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는지를 전한다. 먼로에 관한 최근에 본 영화에서 그녀는 철저히 소비되었다고 생각된다.
5장 여성, 섹스의 발견
이 장은 금기시되는 여성의 성적 욕망과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담고 있다.
여성의 몸을 옥죄는 코르셋을 통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던 분위기가 탈코르셋으로 변화되고 있는 흐름을 전한다. 터기에서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검은 천을 쓰고 다니던 이슬람 여자들이 공중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베일과 치마를 걷어붙이고 세면기에서 찬물을 뒤집어 섰다는 일화였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여자에게만 이런 옷을 입게 하고 식당에서도 식사를 베일에서 입 부분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먹는 그들을 보면서 왜 그들의 삶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몸을 드러내면 이른바 매춘부로 인식하기 때문에 몸을 감싸는 것이 그들과는 다르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자부심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 사회의 맥락은 알겠으나, 역시 여성 인권의 억압의 증거라고 생각된다.
275쪽
천편일률적인 탈코르셋은 오히려 그것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76쪽
만약 탈코르셋의 결과가 누구나 똑같은 차림과 머리라면 ....... 지루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을 것 같지 않은가.
행위예술가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3개의 장은 미술 장르에서도 가장 낯선 분야인데, 저자의 해석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실제 행위를 볼 때는 바로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가장 이해도가 낮기는 하지만, 의도를 전하는 데 있어서는 의도를 알게 되면 메시지의 전달성이 가장 강하리라고 생각된다.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의 제목은 반어적 의미의 맥락으로 읽었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수용되어질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사회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이 보다 평등해지길.
등장인물이 많은 책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면 이해관계가 잘 성립되지않아 책 넘기는 속도가 더뎌질거에요.
저는 밝은밤이 그랬었는데 그 책을 깨고 읽으니 이 책은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어요. 주말 가족드라마 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좀 편하실수도. 저는 외갓집 이모 외삼촌 숙모들 생각하면서 읽어서 좀 편했어요.
책의 진정한 주인공 심시선 여사님의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이라는 책은 꼭 읽어보고 싶네요!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경험으로서 우리는 성장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지언정,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끝없는 실패와 훈련으로 나를 독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도 나를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p.32~33 인감이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인은 각기 목적이고, 목적인 한에서만 동등하며, 서로 수단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p 37 사랑이 없으면 인간성은 하루도 존재하지 못한다.
p.40 성숙한 사랑은...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p.43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 표현이다... 따라서 즐거운 자로서 경험한다...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p. 46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들이 서로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서로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관계한다면- 치유된다.
p.47 "사랑는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 정말 밑줄 많이 그어서 정리하기 힘들다...
2시간 잡아야지 정리 가능할 양이다.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내가 읽을 때의 애정이 보인다.
다시 되돌아보니 정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읽은 책이었던 것 같다.
2022.11.23 ~ 12.04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느새 가져다 놓은 찻주전자를 한 손에 들고 안지가 말을 건넸다. 빈 찻잔에 투명한 녹차를 다시 채웠다.
“원래 복수는 실현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패배의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 복수잖아요. 하지만 무슨 짓을 한다 한들 이미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으니까. 없었던 일이 되지 않죠. 그러니 애초에 복수는 성립될 수 없는 거예요.”
자기 언어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안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았다. 분명 누군가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무척 평온하게 들릴 거라고 미오리는 생각했다. 세계가 까맣게 물들고 만 지금의 미오리에게는 죄인뿐인 이 땅에 울려 퍼지는 하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심판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가토 씨, 당신이 한 짓은 복수가 아니에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잠꼬대하듯 확신 없는 말투로 미오리가 안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한 짓은.... 대체 뭐였을까요?”
“단순한 화풀이었을 뿐이죠.”
“화....풀이.....”
은테 안경의 테두리를 가볍게 손끝으로 눌러 올리면서 안지가 생긋 웃었다.
“당신의 복수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음이 조금도 홀가분하지 않죠. 그렇지 않나요?”
안지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당신은 잘못 생각했어요. 그래서 복수 대신에 화풀이를 하고 만 거죠. 그렇게 화풀이했으니 꼭 해야 할 일이 있겠죠.”
머리가 멍해져서 곧장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안지가 대답해 주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화풀이해서 미안하다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새까맣게 물들었던 미오리의 세계에 작게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