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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거는 기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10대 초반 무렵,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그에게 물어봤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 장학금을 받기 위해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느꼈던, 뒷걸음질치고 싶은 절박한 느낌. 지금 자신이 운명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른쪽과 왼쪽,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후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리라.
📃 불행이라는 존재는 그것을 보는 타인 입장인지, 직접 겪는 당사자 입장인지에 따라 완전히 견해가 달랐다.
📃 사실 진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그저 사회에 나올 각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연구직에 딱히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학에 들어간 이래로 줄곧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약학이나 유기 합성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20년만 지나면 아버지처럼 과학계 곁다리에 맴도는 하찮은 연구자로 남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불운이었다. 리디아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불치병으로 고통 받을 일이 없었을 터였다. 마찬가지로 리디아도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그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상대에게 던진 공격의 칼끝이 같은 날카로움으로 자신에게도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 도중에 들렀던 모텔에서 차를 멈춘 아버지가 혼자 프런트에 가서 체크인 수속을 마치는 것을 예거는 뒷자리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두 어른. 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사인을 하기 위해 받은 볼펜. 소년이었던 예거는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가 되어 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보기여야 할 존재는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은 채 가정을 떠났다.
📃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 이 어리석은 짓을 근절하려면 우리 자신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세대 인류에게 다음을 부탁할 수밖에.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평화를 바라는 이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이즈먼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하지. 알겠나, 전쟁이라는 것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서로 잡아먹는 건 똑같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을 써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본능을 은폐하려 하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핑계를 주물럭대고 있지. 하지만 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짐승하고 똑같은 욕구일세. 영토를 둘러싸고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침팬지가 미쳐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어디가 다른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 “자네에겐 안됐지만, 펜타곤 작전에는 협력할 수 없네.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면, 기쁜 일이지.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 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 오네카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눈에서 솟아난 눈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계속 뛰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 것을.
새나 짐승으로 태어나서 아빠와 엄마, 형, 여동생과 함께 맞대고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살고 싶었다.
📃 믹을 미워하고, 죽이고, 유해를 방치하고 떠났던 일에 대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 사라지지 않을 죄책감이 느껴져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생명이란 것이 너무나 여려서, 인간의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부분 때문에, 선(善)의 무력함에, 그리고 선악의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예거는 화가 나서 소리를 죽인 채 비통하게 울었다.
📃 멀리 희게 빛나기 시작한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니 예거 일행이 바로 아래까지 와 있었다. 콘크리트 계단을 밟으며, 국도 옆에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겐토는 긴장하고 기다렸다. 이윽고 두꺼운 두 팔을 흔들면서 묵직해 보이는 미국인이 가로등 빛 속에 나타났다.
겐토는 영어로 첫인사를 머릿속에서 골랐다. 하지만 그 문장은 필요하지 않았다. 계단을 다 올라온 예거가 겐토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끌어안았다. 억센 용병에게 온몸을 조여서 등을 팡팡 두들겨 맞고 나니 등뼈가 부러지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집 풍경,
함께 살던 고모들의 얼굴,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 호되게 맞았던 기억,
대학교 때 처음 얻었던 자취방,
입대 전 둑방길에 서서 바라보던 강물.
이러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건 나의 최초 기억이다.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기 전에 둥글고 기다란 고무 통 속에 나를 내려놓는 장면인데, 눈을 말똥말똥 뜬 나는 중력을 느끼며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좁다란 하늘과 나를 내려놓는 팔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팔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게 나의 최초 기억으로 아마 두 세살 때가 아닐까 한다.
책에선 최초의 기억이 자아의 탄생과 일치하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왜냐하면 내가 고무통으로 들어간 다는 것을 알려면 ‘나’라는 경험의 주체가, 그 상황이 싫고 두렵다는 것들 느끼기 위해서라면 감정의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억은 나를 만들어 내는 필수 요소이다.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기억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고, 또 미래에 대한 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손상되면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도 잃는 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거든 미래든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활동인 기억과 상상은 뿌리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기억의 실체를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억과 나 사이의 관계를 아주 멋지게 표현해주었다.
과거의 나는 과거의 기억에 메달려있고, 현재의 나는 현재의 기억에 메달려 있다.
기억은 각각의 다른 나를 연결시켜 나에게 정체성이라는 태양을 선물한다.
나는 경험을 다시 체험한다기보다는 경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위대한훈련병#이소영#고유동#도서제공
책 속에 담긴, 모든 부모의 위대한 기다림
❝자식을 군대에 보낸 모든 부모의 심장이 담겼다!❞
✔ 군 입대를 앞둔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 지금 군 복무 중인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면 (바로, 접니다 😅)
✔ 군인 가족의 애틋한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면
📕 책 소개
막둥이를 군에 보낸 엄마와
전직 신병교육대대장이
훈련병을 떠올리며 나눈 대화를 담았다.
지금까지 '군대'와 관련한 이야기는
군에 아들을 보낸
엄마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며
걱정, 불안, 불만, 두려움이 가득했다.
무섭고 딱딱하고 비인간적일 거라고 😅
생각했던 지휘관, 간부들이
사실은 부대 안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며칠 뒤면 큰 아들이 병장이 되는데,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이
이제서야 안도로 바뀌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
"대한민국 남자는 다 군대에 가는거니 괜찮다."
등 어설픈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12개의 챕터
입대 직전부터 훈련소의 마지막 날까지
엄마의 마음과 지휘관의 마음을
세세하게 담았다.
이 책을 읽고나면
'알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은 확 줄어들 것이다.
※ 읽기만 해도 뭉클한, 12개의 챕터명
: 입대 전, 입대하는 날, 입대 직후, 첫 전화통화, 택배 상자
: 병원 진료, 훈련, 식사, 취침, 자대배치/선발, 수료식, 마지막날
📞 첫 전화통화 & 📦 택배상자
그 날의 기다림, 떨림, 슬픔이 떠올랐던 이야기다.
입소하고 첫 토요일
핸드폰을 지급받는다.
짧게 주어진 시간 내에
가족과 친구들과 연락을 해야 한다.
중대, 소대마다 돌아가며
핸드폰을 지급받기에
언제 전화가 올 지
정확한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핸드폰 충전 100% + 소리 만땅 키워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날의 떨림이 생각났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통화 후
남편과 함께 말했다.
"정말 통신보약이구나."
왜 첫 전화를 "통신보약"이라고 하고
택배상자를 "눈물상자"라고 하는지
자녀를 군에 보내고
온몸으로 공감했다.
🔖 한 줄 소감
아들의 수료식에 가족이 오지 못한 훈련병이 있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도, 일부러 수료식에 찾아오셔서 대신 경례를 받아주고 안아주던 선배 해병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감사와 존경을 표했었다.
수료식에 가족이 오지 못한 훈련병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지휘관님의 이야기.
이름도 모르는 그 녀석의 표정이 떠올랐다.
+ 그때 그 녀석도, 우리집 녀석도
+ #무적해병#1309기
+ 현재 복무 중인 군인들
모두 #아말다말#무사무탈@hyejin_bookagel (헤세드의 서재) 감사합니다
@gwr_2203@kkuixote 따뜻한 위로, 감사합니다.
#훈련병#입대#군복무#에세이#2025_241
조금도 미련이 없었다. 포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팠다. 온 몸으로 아팠다. 아프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고통이었다. 내가 울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p.218)
제발, 누구든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고 말해줘요. 제바알. 그러나 이 책의 표지에는 그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낸 작가의 웃는 얼굴 밑에 “원조 고딩엄마”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그러나 텔레비전만 돌리면 그저 쾌락의 결과로 아이만 낳아 제멋대로 길러버리는 그런 고딩엄마, 아빠가 아니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낸, 진짜 전쟁같은 이야기,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를 소개한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제 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주)문학동네의 동생(?)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터라, 이 책은 만나기도 전부터 기대중이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발 이 책은 문학동네라고 말해달라는 마음이 마구마구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빌언덕 하나 없는 딱한 아이가 아이를 낳아, 책임을 지고 사랑을 한단 말인가. 누군가 이 책을 두고 “현대판 애순이”라고 적었지만, 정작 애순이는 목숨걸고 사랑하는 엄마라도 있었고, '도희적 장학금'을 주는 새아빠네 새엄마(?)도 있었고, 알뜰살뜰 챙기는 이모들이라도 있었고, 애순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을 등질 수 있는 관식이라도 있었지! 우리의 차이경 작가는 가끔 책임감을 가지는 엄마와, 모진 구박에 병간호까지 얹어주는 시어머니, 얌채같은 동서들, 철없는 남편친구들, '은명이'에 살짝 '관식이'를 묻힌 듯한(중반까지 조마조마하기만 했던) 남편까지 누구하나 기댈 언덕이 없다. 진짜 비빌 언덕하나 없이 혼자다.
그러나 주민등록증도 없이 덜컥 엄마가 되었지만 기가 막히게 아이를 사랑하는 뜨거움과, 착하고 유순한 아이들 덕분인지 그녀는 어찌저찌 살아낸다. 남편의 군입대를 막기 위해 청와대에 편지도 쓰고, 딱 죽기 직전에 사고보상금을 받기도 하고, 죽음의 목전에 서서 절망할 때 처음으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을 맺으며 점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그녀에게 물을 주는 어른은 없었지만, 그녀는 혼자서 물길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다. 누구보다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들 드러낸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화가 치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하며 같이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젠 그 정도에 내 기분이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p.335)”는 문장을 읽으며 그녀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고생했다고, 잘 자랐다고 토닥여주며 말이다.
아직 이 책을 만나지 않은 분들이 여기까지의 감상을 읽는다면, 혹자는 “일부러 눈물 빼려고 쓴 글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절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미리 적어두고 싶다. 만약 청승맞은 시간들을 기록하지만 했다면,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는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깨달음이 가득했다.
“내 삶의 끝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삶의 힘을 믿기로 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삶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우며 견고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힘에 몸을 싣고 나는 또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p.351)”는 그녀의 깨달음은 마치 발레리나의 굳은 살 가득한 발처럼 시큰하다.
“장대비도 결국엔 그친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그녀를 통해 결국 비가 그치고 무지개도 뜬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