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한 책 속 문장]
10P 뚱뚱한 소년도 상대방이 자기 이름을 물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알고 지내자는 제의가 오지를 않았다. 랠프라는 금발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띠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초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열등한 외모를 지닌 새끼 돼지는 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통성명을 갈구한다. 하지만 우월한 육체 조건을 지닌 랠프는 그를 무시하고 배척한다.
14P 랠프는 새끼 돼지 발치의 모래에 머리를 박으며 깔깔 웃으면서 벌렁 누웠다.
> 새끼 돼지를 비웃는 놀이터가 된 모래사장이 랠프가 사냥개처럼 쫓기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있어야 하는 공간이 되는 미래를 생각하면 극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64P “나는 랠프의 의견에 찬성한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야. 우리는 영국 국민이야. 영국 국민은 무슨 일이든 잘 해결해. 우리는 정당한 일을 해야 해.”
> 대영제국주의적 우월감과 '문명인'이라는 허위의식이 투영된 잭의 발언이다. 훗날 잭은 섬의 질서를 가장 앞장서서 파괴하고, 가장 먼저 짐승의 가면을 쓴 채 잔혹한 살육을 주도한다.
108P 한편에는 사냥과 술책과 신나는 희열과 전략의 세계가 있었고 또 한편에는 동경과 좌절된 상식의 세계가 있었다.
> 섬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극심하게 양극화되었음을 선언하는 문장이다
200P 그(잭)는 바위판으로부터 뛰어내려 모래사장을 따라 달렸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랠프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랠프의 리더십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소년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 잭이 수치심에 눈물을 흘리며 무리를 이탈하는 장면이다. 잭이 흘리는 눈물은 아직 그에게 남아있던 어린아이로서 마지막 정체성이지만, 잔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세력을 잉태하는 씨앗이 되었다.
202P 이야기를 마친 사이먼은 새끼 돼지가 자기 손에서 소라를 빼앗아드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 오만에 찬 새끼 돼지는 사이먼에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며 그의 손에서 소라를 빼앗는다. 그와 더불어 경험론적 논리와 가시적 현실에만 갇힌 새끼돼지의 소라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3P 가장 위대한 착상은 가장 단순한 법이다. 이제 무언가 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일했다. 잭이 그곳을 떠나서 새끼돼지는 기쁨과 충만한 해방감을 만끽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기여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 새끼돼지는 갈등을 일으키는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잠시의 평화는 폭력 집단의 거대한 위협에 쉽게 부숴졌다.
208P 그는 소년들을 하나하나 평가하며 쳐다보았다. 모두들 제각기 떨어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들은 정연하게 두 줄로 서서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던가.
> 기독교 질서 안에서 찬양을 부르던 성가대원들은 섬에서 가장 끔찍한 살육을 전담하는 사냥부대로 전락했다. 종교 의례나 사회 규범이 단순히 피상적인 훈련에 불과하면, 그들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따라 인간성이 얼마나 순식간에 악으로 추락할 수 있는지 섬뜩하게 고발하는 장면이다.
213P 잭이 낄낄대며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피투성이가 된 그의 손바닥을 보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 생명 존중과 죄책감이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동물의 피가 단순한 유희와 놀이로 전락한 광기의 장면이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맹목적인 웃음은 도덕성의 완전한 마비를 보여주고 있다.
216P 파리 떼는 시커멓고 다양한 색이 섞인 초록색을 띠었고 헤아릴 수 없이 수가 많았다. 그런데 사이먼의 정면에는 파리대왕이 자기의 지팡이에 매달려서 밝게 웃고 있었다.
> 소설의 표제인 '파리대왕'이 그로테스크한 실체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희생당한 멧돼지의 잘린 머리에 파리 떼가 들끓는 모습은 악마 벨제붑을 시각화한 것으로 보인다.
220P 그(잭)는 말을 끊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얼굴에 칠한 가면 덕택으로 수치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소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 잭은 가면 뒤에 숨어 자아를 은폐하고 수치심을 완벽히 덜어낸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대중을 억압하고 조종하는 폭군으로 등극한다.
231P 즈크와 고무가 여러 겹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깨끗이 썩어가야 할 시체가 아직 비참하게 묶여 있었다. 다시 바람이 불어오자 그 시체는 들린 채 절을 꾸벅하고 그를 향해 끔찍하게 악취를 내뿜었다.
>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맹목적인 공포에 떨며 제물까지 바쳐 숭배했던 미지의 '짐승'이 실은 어른들의 전쟁이 만들어낸 추락한 낙하산병의 부패한 시체였다. 소설 속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야만적 무인도와 다를 바 없이 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져 있다
238P 갑자기 천둥소리가 났다. 우르릉 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폭발하는 듯한 날카롭고도 충격적인 소리였다.
> 잭과 휘하 집단의 광기가 춤과 주문을 통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증폭되어 희생양을 도륙하기 직전의 긴장감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악천후의 소리는 곧 대지에 흩뿌려질 피를 예고하는 진혼곡이 아닐까.
242P 곧 소년의 무리는 물밀 듯이 그 뒤를 따라 바위를 내려가 짐승에게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고 주먹질을 했다. 물어뜯고 할퀼 뿐이었다.
> 도구조차 내버려둔 채 이빨과 손톱만으로 친구를 살육 행위는, 소년들이 완전한 야수의 상태로 퇴행했음을 단언하는 뼈아픈 비극이다.
287P 바위는 턱에서 무릎을 스치면서 새끼돼지를 쳤다. 소라는 산산조각이 나서 흔적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 민주적 규칙과 제도를 의미하는 소라와 그를 중시하는 새끼돼지가 일거에 파괴되는 장면이다. 이후 남은 것은 오직 힘과 피의 논리가 지배하는 생존 투쟁뿐이었다.
289P 교수형 집행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섬뜩함이 그(로저)에게 매달려 있었다.
> 바위를 굴려 새끼돼지를 살해한 로저의 폭력은 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즐기는 순수한 형태의 사디즘이다.
316P 배의 뒤쪽에는 또 한 사람의 해군이 경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 표면적으로는 문명에 의한 구조를 의미하지만, 그들을 데리러 온 순양함의 병사는 대량 살상 무기인 '경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소년들이 섬 안에서 창으로 동족을 찌르는 것과 섬 밖의 어른들이 첨단 무기 서로를 학살하는 것의 본질은 동일하다.
319P 그는 몸부림치며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온 이래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온몸을 뒤흔드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떠맡긴 채 그는 울었다.
> 잭의 오열은 섬에서 경험으로 인간성의 가장 밑바닥을 겪은 랠프가 겪은 PTSD의 발현이다. 잭은 직면한 마음속 어둠과 유년기의 순수성을 완전한 상실한 것으로 평생 고통받을 것이고 그것이 마땅하다.
319P 소년들의 울음에 휩싸인 장교는 감동해 다소 난처해했다. 그는 그들이 원상태로 돌아가 기운을 차릴 시간적 여유를 주려고 외면해버렸다. 멀찍이 보이는 산뜻하기만 한 순양함에다 눈길을 주며 그는 기다렸다.
> 장교는 통곡하는 아이들이 직면한 깊은 비극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영국 소년들이 잠시 이성을 잃고 벌인 철없는 전쟁놀이쯤으로 치부한다. 인간을 찢어 죽일 수 있는 살육 기계인 순양함을 산뜻하게 바라보는 장교의 시선은, 문명사회 역시 파리대왕의 지배하에 있는 또 다른 광기의 무인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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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사명은 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체포함으로써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악당을 법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진실을 덮으려 한다면 관전둬는 자기 자신을 시커먼 늪에 던져 넣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방식 그대로 그들을 상대할 것이다.
어쩌면 관전둬의 방식은 검은색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흰색이다.
📃 어쩌면 세상일이란 전부 정해진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시작과 끝이 모두 보통 사람은 꿰뚫어볼 수 없는 우연의 일치로 이뤄진다면, 시간의 도도한 물줄기 속에서 인간은 작디작은 모래알과 같은 존재로 무력하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 지금 우리는 광기와 이성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무엇이 이성이고 무엇이 광기인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죄악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어졌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안락함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은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 “당신은 ‘경찰의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1호차의 폭탄을 해체했어. 그런데 어제는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 당신이 보호해야 하는 건 경찰이야, 시민이야? 당신이 충성하는 건 홍콩 정부야, 홍콩 시민이야?” 나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 도대체 왜 경찰이 된 거야?”
#중고신입차윤슬이야기를시작합니다#김지혜 [도서협찬]
살아남기 위해 해내야만 했던 프로젝트가
사람의 마음을 담는 내일이 되는 이야기
❝그래도... 겨울은 봄을 못 이기잖아요❞
✔ 버거운 일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의 쉼을 찾고 싶다면
✔ 따뜻한 이야기를 읽으며 글쓰기에 관해 배우고 싶다면
✔ 가식적인 감동이 아닌,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감동과 힐링을 느끼고 싶다면
📕 책 속으로
★ 전 세계 22개국 출간
★ 10만 독자를 사로잡은 <책들의 부엌> 작가의 신작
데뷔작인 <책들의 부엌>이
'책 읽기'의 위로를 그렸다면,
이 책은 '글 쓰기'가 전하는
위로와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잡지 폐간 후, 계열사 백화점의
'중고신입'으로 입사하게 된 '차윤슬'
경력사원이지만 브랜딩은 처음인
윤슬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프로젝트에
팀의 존폐 위기가 걸렸다!
과연 윤슬은
운화백화점의 40주년을 기념해
제대로 된 이야기로 만들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 인생의 장르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분명 하늘에 떠 있지만
한낮에는 보이지 않는 초승달을 찾는 일,
멜로 드라마에서는 새드 엔딩이지만
시트콤에서는 어이없는 일일 수도 있다.
어떤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나의 시선은
내 안과 밖 중 어느 곳에 있는가.
우리 인생의 장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며
어떤 장르로 해석하는가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라는
저자의 메시지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 한 줄 소감
한 편의 따뜻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글 쓰기'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운 느낌이다.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시길.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이가 없다면
구름을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터였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역시,
결국 구름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는 게 아닐까." _p.73
📺 p.s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나의 최애 미드 중 하나였던
시트콤 <앨리 맥빌>이라고 한다.
엉뚱하고 사랑스럽던 앨리와
그때 그 시절의 엉뚱함이 떠올라,
마지막 문장까지 애정어린 시선으로 읽었다.
🌿 덕분에 마음이 포근해졌어요. 감사합니다
@ofanhouse.official @hanki_books@ekida_library
[추천합니다] [강추]
#책들의부엌#신간소설
[2026_46]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의 여정!
📚질주하는 운명, 멈출 수 없는 아이러니!
📚이사카 고타로 저자 ' 불릿 트레인'
🚆초고속 열차에서 펼쳐지는 고스펙 킬러들의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선로이탈 추격적! <불릿 트레인>은 일본 신칸센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얽히고 설킨 사건을 다룬 이야기로, 블랙코미디와 스릴러가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마리아비틀로 출간된 바 있는 작품으로, 2022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불릿 트레인' 으로 개봉된 바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22년 영국추리작가협회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저자의 대표작이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액션, 그리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지는 유머들, 인간의 폭력과 악에 대한 근원적 이야기까지! 이만큼 좋은 엔터테인먼트를 가진 소설이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웃긴 대사까지! 쾌감이 짜릿한 액션 소설로, 읽는내내 지루할 틈 없을 정도로 페이지터너인 작품이다. 킬러 시리즈 두번째인 이 작품은 우연히 신칸센에 올라탄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적을 그린 작품으로,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과 속도감을 극대화시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잘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악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냈다. 아들을 해친 범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칸센에 탑승한 전직 킬러, 그리고 납치된 아이의 몸값 트렁크를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은 쌍둥이 킬러,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 각자의 목적을 가진 킬러들이 한 열차안에서 충돌하면서 사건은 점점 꼬여가는 상황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잔혹한 상황을 그려냈지만, 그 안에서 유머와 풍자가 잘 섞여 있어서 읽는내내 긴장감과 웃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단순한 액션만 있는게 아니라, 각 인물들의 성격과 불운, 욕망이 맞물리는 이야기, 그리고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사건이 압축적으로 진행되는데, 읽는내내 몰입감이 최고인 작품이다.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이 작품은 운명, 불운,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담아낸 작품이다. 폐쇄된 공간인 신칸센 안에서 킬러들이 서로의 목적과 계획이 충돌하고, 결국 운명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요소로 잘 풀어낸 작품으로,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추격적에 넋 놓고 읽게 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나오(일명: 레이디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킬러이다. 단순한 임무조차 꼬여버리는 ... 그의 불운은 인간이 운명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돈, 권력, 가족, 복수 등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지고 열차에 오르는데, 이는 서로 충돌하게 되고, 결국 모두를 파멸을 불러오게 되는 결과가 된다.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인간의 갈등으로 극대화 시키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는 시간의 긴박함과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그려낸다.잔혹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풍자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폭력과 죽음도 우스꽝스럽게 소비되는 지금 현대 사회를 풍자하기도 한다.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원작에서는 인물들의 내면과 불운의 아이러니를 더 깊게 그려냈고, 운명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가 강조되는 반면에, 영화는 액션과 블랙 코미디가 강조되고, 오락성이 높지만, 운명과 불운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잔혹한 킬러들의 대립 속에서도 유머와 풍자가 끊임없이 그려내어, 읽는내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불운한 킬러, 복수에 불타는 아버지, 철학적인 킬러 형제 등 각 인물들의 개성을 뚜렷하게 그려내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신칸센이라는 제한된 공간, 그리고 시간 속에서 사건을 압축적으로 그려내어, 읽기 시작하면 손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이 강한 작품이다. 인간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블랙코미디적 방식으로 잘 풀어낸 작품으로, 단순한 오락을 넘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스릴러와 코미디, 철학적 요소까지! 가볍게 즐기면서도 여운을 주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영화 <불릿 트레인>을 봤다면 소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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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나’라고 부를 수 없으니 ‘그’라고 지칭하겠다.
📃 지킬은 지극히 불안해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열정으로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에 동참했다. 그러나 하이드는 지킬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산적이 쫓길 때 몸을 숨기는 동굴 정도로 지킬을 기억할 뿐이었다. 지킬은 여느 아버지 이상의 관심을 보였지만, 하이드는 여느 아들보다 무관심했다.
📃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은 하이드였다. 하이드가 단독으로 죄를 지은 것이다. 지킬이 악해진 건 아니지 않은가.
📃 그럼에도 거울에서 그 추한 형상을 보았을 때 혐오감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웠다. 이 또한 나 자신이므로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 영혼을 눈앞에 생생히 구현한 것 같았다. 여태껏 익숙하게 나라고 여겼던 불완전하고 분열된 얼굴보다 정확하고 꾸밈없는 형체였다.
📃 “만약 두 요소를 각각 별개의 육신에 담을 수 있다면 견딜 수 없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하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부정한 자아는 한결 올바른 쌍둥이 자아의 열망과 가책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정의로운 자아는 자신과 관련 없는 사악한 자아가 저지른 행위 때문에 망신당하거나 부끄러워할 일 없이, 선행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향상의 길로 굳건하고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 함께 묶여 있다는 것, 즉 극단적으로 다른 쌍둥이가 고통스러운 의식의 자궁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워야 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저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발췌한 책 속 문장]
95P 사랑은 그렇게 영원한 것인지 모르겠다. 윤리학자들은 삶의 선과 악을 말한다. 삶이 끝나면 선과 악은 사라진다. 그런데 예술인들은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영원하기에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사랑은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사랑은 빼앗는 것이 아니다. 베푸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랑은 영원히 존속된다.
107P 부를 차지하고 누리면서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옆집의 가족을 멀리하는 사회는 부를 누릴 자격이 없다.
116P “일제강점기라는 슬픈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에 있었던 작은 잘못에 돌을 던지는 일은 정치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116P 정치에 관심이 있고 배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김성수나 백낙준 같은 저명인사를 친일파로 추가함으로써 친일파 배척을 목표로 출범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보편적으로 통할 만한 메시지의 내용으로 어찌어찌 억누른 노인의 편협된 가치관이 결국 이 흑백논리로 가득 찬 문장을 통해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독서에서 울림을 느낄 사람들도 확연히 줄어들어 특정 정치 이념을 지닌 이들만 환호하게 될 것이다. 첨예한 독서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이 문장의 논리로 활화산 같은 주제를 산출할 것이다. 때에 따라선 격화된 감정싸움도 일어날 수 있고.
120P 악을 악으로 보복하는 역사는 패망을 초래한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보복적 정의에만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저자가 규정하는 악이 어떤 것인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122P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선진 국가들은 진보나 보수를 넘어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공존의 정신과 질서로 방향을 바꾼 지 오래다.
≫ 선진 국가들에서도 폐쇄적인 극단주의 정치 계파들이 들끓고 있다. 당장 대한민국이 피로 얼룩진 억압의 사회로 격하될 뻔한 시기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당장 트럼프가 화약고로 만든 중동 정세를 저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167P 고정 관념이나 선입 관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치유할 수 없는 역사의 병폐를 자초할 뿐이다.
≫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속한 시대, 교육, 환경적 배경이 만들어낸 선입견 속에 갇혀 세계를 인식하는 한계적 존재다. 저자도 이 문장 앞뒤의 내용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몸소” 증명하고 있다. 당장 작년에 저자가 참석한 행사와 그가 작성한 칼럼을 조금만 탐구하더라도 그의 이념이 어디에 치우쳐있는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74P 우리 사회가 눈앞의 결과보다 긴 안목을 기를 때 진정한 영재가 탄생하고 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문화가 함께 열매 맺게 될 것이다.
180P 하물며 수십만 명의 지적 성장을 획일적으로 대학입시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구상 자체가 잘못이다.
181P 대학입시는 책임자인 대학으로 환원시키고 국민 교육은 사랑이 있는 사제 관계로 열매를 거두도록 방향을 개선하기 바란다.
≫ 교육의 본질을 고찰하게 하는 주제 의식으로 책을 저술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편협한 생각들을 덧붙여선.
215P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 근로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혜택을 크게 누리며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을 위해 이 땅을 찾은 이주 노동자들을 경제적 도구로 취급하며 차별하고 배제하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16P 특히 스위스의 정신적 기본이 무엇인가를 역사적으로 찾아보면 역시 기독교 정신이 전통과 정신계를 형성한 인상을 준다. 교회는 줄어가고 있으나 기독교 정신이 사회와 역사의 지류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 은근스레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려는 것이 불편하다. 특정 종교에 대한 나쁜 편견을 지니면 안되지만, 이 문장이 내 생각을 녹이는 것을 방해한다.
250P 모든 독서는 나를 키운다. 어떤 교리나 선입관념 또는 자신이 믿는 이념에 안주하거나 몰입하는 불행을 치유해 준다. 독서는 인간적 성장과 발전을 돕는다.
≫ 첫 문장에만 동의한다. 저자가 어떤 의도를 지니고 책을 저술했는지와 그 책을 읽는 독자의 배경들에 따라 선입견이 굳어지고 극단적인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다. 독서는 무조건 명검이 아니라 마검이 될 수 있다. 결국 독서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 작용을 원한다면 설계에 숙고가 필요하다.
<우리들>은 전체주의 디스토피아의 효시이고 참신한 SF이지만 동시에 이후의 너무 많은 명작들에게 영향을 줬고 그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상징적인 요소가 강하고 이러한 상징들을 파헤치다 보면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매우 많다는 점입니다. 이번 서평에서는 작품 속 상징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며 인간의 이성과 본능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인테그랄 호를 조선하는 공학자이자 주인공인 D-503이 I-330이라는 여성을 만나며 감정을 느끼고 그녀의 묘하게 반항적인 태도에 끌리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I-330이 이 시스템을 전복하기 위한 혁명 세력인 메피에 협력하며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그리고 결국 ‘은혜로운 분’이 사회에 퍼진 이러한 낌새를 눈치채고 상상력 제거 수술이라는 정책을 펼치며 D-503은 수술을 받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게 됩니다.
처음으로 살펴볼 것은 인물들의 이름입니다. (물론 엄밀히는 이름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이름이라고 표현해보겠습니다.) 주인공인 D-503의 이름에서는 숫자에 집중해봐야 합니다. 이 소설은 제목에도 우리라는 복수에 들을 더할 정도로 가상 세상의 집단성과 전체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작가는 이런 소설 속의 세상, 이면적으로는 전체주의적인 소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503이라는 숫자는 소수입니다. 여러 개수들의 수들의 곱으로 표현되는 수가 아닌 자기 자신과 1로만 나누어지는, 인문학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수입니다. 주인공이 처음에는 전체주의적인 단일제국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주인공 역시 인간이고 자기 자신의 개인성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과 생존의 주체라고 생각했던 생물 개체 하나하나는 사실 이 진화의 사이클에서 주체가 아니고 진짜 주체는 유전자 그 자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들>에서는 이성이 극단으로 발전하니 오히려 유전자의 보존과 번식만을 위해 도구로써 개체가 사용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단일제국’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전체의 보존을 위해 개인이 사용되는 것이겠지요. 즉 저희는 이성이 인간만의 특징, 동물의 본능은 무지성이다라고 생각해왔지만 오히려 고도로 발달한 이성은 몇억년간 쌓여온 본능과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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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변화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바닥을 치는 삶에도 좋은 점은 있습니다. 삶이라는 벽돌을 바닥에서부터 하나씩 다시 쌓아 올릴 수 있으니까요. 변화를 다짐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저 자신과의 관계 회복임을 깨달았습니다.
가벼운 듯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독서 후 주요 감상]
#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전문성
한 명의 이야기로도 하나의 책이 나올 수 있는 각 분야 15인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대담이 실려있는 책. 종사하는 필드에서 굵직한 업적을 남겼던 이들답게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들의 말은 혼란한 현대 사회에서 독자들이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능동적 주체성을 안내하는 이정표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각 대담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제작 그림을 삽입하는 등 현대 기술과 협업 시도도 돋보인다.
# 참신했지만, 어딘가 아쉬운
하지만 AI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자 한 목적이 있음에도 인터뷰이들의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한 나머지 본 주제의 얘기가 묻히는 대담들이 존재한다. 또한 AI의 답변과 실제 인간 전문가의 육성 답변을 병치한 시도는 참신했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독서에 방해가 되었다. 챕터 끄트머리에 이러이러한 점에서 답변 간에 차이가 있다고 언급을 넘어 구별되는 부분에 강조 표시를 하거나 비교표라도 삽입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10P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두려움과 기대를 갖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이를 우리는 호모메디우스Homo Medius, 즉 ‘사이 인간’이라 명명하기로 했다. _「프롤로그」 10쪽
≫ 인간은 기술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객체가 아니라, 문명의 균형추를 잡는 주체임을 선언하고 다짐하는 문구.
27P 저는 공존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대립의 관점에서 계속 AI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공포 때문이죠. 이 두려움을 빨리 걷어내고, 어떻게 AI와 공존할지, 또는 더 현명하게 이용할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인터뷰 中
59P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존재죠.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 소설가 장강명 인터뷰 中
79P 건축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공간이 삶을 바꾸고 관계를 정리하며 사회를 설계하는 틀’이기 때문이에요.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위한 구조’를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의 싸움이 아닐까 싶어요.
- 건축가 유현준 인터뷰 中
96P 어쩌면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가 이제 인간을 빼닮은 인공지능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역설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뇌과학자 김대식)는 칼럼에서 사실관계의 왜곡이나 거짓말이 오히려 "인간을 빼닮은 지능"의 발현 증거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간의 뇌 역시 입력된 감각 데이터를 그대로 출력하지 않는다. 파편화된 기억을 조합하고 때론 존재하지 않는 서사를 덧붙이는 것이 인간이다. AI의 환각을 인간의 서사 창조와 비슷하게 여기는 인터뷰이의 상상력이 참신하다.
145P 물론 시대적 맥락이나 장식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인간의 본질을 잘 드러내느냐가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 연출가 이대웅 인터뷰 中
160P 인도를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에 있습니다.
- 인도학자 강성용 인터뷰 中
192P 생물학적ㆍ물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에 인간과 기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철학자 최진석 인터뷰 中
196P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지,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철학자 최진석 인터뷰 中
220P 따라서 자신이 타자를 맞이하거나 혹은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행위가 예술이나 문학을 접하는 행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학평론가 이광호 인터뷰 中
230P 흔히 사진을 ‘찰나를 포착하는 예술’이라 말하죠. 하지만 그 찰나는 오랜 준비와 숙고 끝에 만들어진 계산된 순간일 수 있어요.
- 사진가 김용호 인터뷰 中
≫ 예술의 진면모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예술가가 감내한 시간과 고민의 궤적에 있음을 말하는 대목.
234P 예술이란 단순한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안에 감상방식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 사진가 김용호 인터뷰 中
≫ 누군가 비슷한 방식으로 감상을 해도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가치관은 결코 같을 수 없기에 오늘날 수많은 예술의 변주가 펼쳐지고 있다.
244P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일상 속 대화 파트너로 자리 잡을수록, 우리는 더욱 정교하게 언어를 사용하면서 비언어적 요소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면접자의 눈빛과 표정, 말투까지 샅샅이 분석하는 AI에게 굽혀야 하는 취업 구직자의 서글픈 현실이 떠올라 씁쓸해진다.
248P 즉 호칭과 높임법 문제는 단순한 언어 사용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위계와 관계 설정 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요구합니다.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대한민국만큼 세분된 호칭과 높임법 문체를 지닌 나라도 극히 드물지.
249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가치관 차이가 아니라, 언어적 구조와 위계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관계 설정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언어학자 신지영 인터뷰 中
≫ 공식적인 자리에선 금지되어있지만 아직도 암암리레 사용되는 압존법이 대표적이지 않을지.
#아무튼빵은정신건강에이롭습니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
브런치 작가 9명의 빵 에세이
❝지금의 나는 누구를 위해 어떤 기쁨을 고르고 있을까❞
✔ 빵이 좋은, 자타공인 빵순이라면
✔ 빵과 관련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 나만의 애정하는 무언가로 하루를 위로하고 싶다면
📕 책 속으로
빵순이 브런치 작가 9명이
맛있는 빵을먹으며
빵을 먹던 추억을 되새기고
그 기억으로 글을 엮었다.
행복한 웃음부터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
든든한 힘이 되는 빵의 마법 같은 존재감까지.
갓 구워낸 빵의
따뜻하고 고소한 향기가
책 속에서 퍼져나오는 듯한
달콤고소한 #에세이
📕 나는 무슨 빵일까?
"지피티야, 나는 이런 사람인데, 빵에 비유한다면 무슨 빵일까?" _p.225
작가님처럼 지피티에게 질문을 던지고
받은 답은...
❝조용히 잘 익은 통밀 사워도우❞
좋은 말 가득하지만,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담은 지피티의 설명 ↓ ↓
[통밀 사워도우는
빠르게 만들 수 없고,
억지로 부풀릴 수도 없고,
매일 조금씩 잘 살아낸 시간이 맛으로 쌓여.
파티 테이블의 중앙에 놓이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은 꼭 다시 찾는 빵이야.
“오늘 하루, 내 몸과 마음에 무리 없었나”
스스로를 살피는 이에게 잘 어울리는 빵.
그래서 너는
👉 조용하지만 깊은, 통밀 사워도우야.]
지피티가 내 최애빵이
깜빠뉴와 통밀 샤워도우인 것을 아는 걸까?
좋은 말 일색이라 기분이 좋다. ^^;;
📕 한 줄 소감
어릴 적 매일 고로케 하나씩 챙겨 먹으며
뱃살을 찌웠던 기억,
고등학교 친구들과
붕어빵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들,
주7일 수영 후,
스스로에게 주는 기특상, '무화과 깜빠뉴'까지.
빵과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과
소중한 인연이 떠오르는 이야기
밥 먹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또 먹고 싶다, 빵 먹고 싶다~~~
#빵에세이#브런치북#브런치작가
[2026_40]
https://m.blog.naver.com/typeface_/224199972452
📃 마침내 마흔일곱의 나이에 그는 그에게 종종 즐거움을 주는, 행복하고 꽤 유머러스한 착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쉰 살 생일날을 자신에게 자살을 허용해도 되는 날로 잡아 놓은 것이다. 그날엔 그날 기분에 따라서 비상 출구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자유라고 그는 자신과 합의했다. 이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병에 걸리든, 가난해지든, 고통과 참담함을 경험하든 상관없다. 모든 것에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까.
📃 그는 고도의 개성화 때문에 시민이 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성화가 고도로 진행되면, 개성은 자아에 반역하고 나아가 자아를 파괴하려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그는 성자 쪽으로도 탕아 쪽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어딘가 허약한 구석이 있어서 혹은 게으르기 때문에 자유롭고 거친 세계로 도약할 수 없고 시민 사회라는 무겁고 버거우면서도 포근한 별에 사로잡혀 있다.
📃 그러나 실제로 어떤 자아도, 그것이 아무리 소박한 것이라 해도,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지극히 다양한 세계, 별들이 빛나는 작은 하늘, 형식과 단계와 상태들의 혼돈, 유산과 가능성의 카오스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혼돈을 통일체로 보고, 자아가 마치 확고한 형태와 분명한 윤곽을 지닌 소박한 현상인 양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 그리고 가면이 벗겨지고 이상이 무너질 때면 언제나 그에 앞서 나에게 엄습한 것은, 지금 또다시 겪고 있는 바와 같은 이 무시무시한 공허와 적막감, 이 끔찍한 위축 상태, 사랑받지 못하고 절망한 자의 이 텅 비고 황량한 지옥이었다.
📃 삶이 그렇게 동요할 때마다 끝에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 정신, 깊이 같은 것이었고 또한 고독,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냉정함 같은 것이었다.
📃 자살이 어리석고 비겁하고 초라한 일이고, 명예롭지 못하고 치욕스러운 비상구라 할지라도 이 고통의 물레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떤 출구라도, 그것이 아주 굴욕적인 출구라도,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이다.
📃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나에게는 목적도 계획도 의무도 없었다. 인생은 지독히도 쓴맛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끓어오르던 구역질이 절정에 달하는 것을, 삶이 나를 내던지고 튕겨 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나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했다. 절망감과 소심함 사이의 싸움에서 오늘은 어쩌면 소심함이 승리할지 몰라도, 내일 또 매일 새로운 절망이 내 앞에 맞서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자기 경멸에 의해 고조된 절망이.
📃 당신의 투쟁이 아무런 성과가 없으리란 걸 당신이 알고 있다 해도, 당신의 삶은 천박하고 무미건조해지지 않아. 하리, 당신이 어떤 훌륭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천박해. 이상이란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 우리 인간은 죽음을 없애기 위해 사는 건가? 아니,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런 다음 다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보잘것없는 인생도 어느 순간 그렇게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거고.
📃 당신은 이 단순하고 쾌적하고 사소한 것들에 만족하는 요즘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 그래서 이 세상이 당신을 밖으로 내쫓아 버린 거야.
📃 나는 약간 흐릿하고 얼룩진 거울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 속으로 파고드는 자의 모습, 격렬하게 활동하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면을 가진 자의 모습이었다. 그건 나였다. 하리 할러였다. 이 하리의 내면에 있는 황야의 이리였다. 아름답고 소심한, 그러나 길을 잃고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는 이리, 때론 악의에 찬, 때론 슬픔에 젖은 눈을 반짝거리는 이리였다.
📃 언젠가는 체스 말 놀이를 더 잘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웃음을 배우게 되겠지. 파블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췌한 책 속 문장]
41P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 비행기라는 최첨단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도 인간을 심리적이고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73P 그저 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리하여 그 존재가 나의 밤을 가득 채워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 끝없는 야간 비행의 고독 속에서도 저자의 이성을 잃지 않게 붙잡아 준 것은, 멀리 있어도 자신을 기다려주는 누군가의 믿음이었다.
122P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그녀들은 놀라지 않았다. 사람에겐 누구나 이름이 있는 법이고 아주 먼 곳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 모하메드의 기적적인 생환조차도 인간 군상의 흐름 속에서는 무던한 삶의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숭고한 모험은 책을 통해 수많은 지구촌 사람에게 공유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리.
124P 그는 자유로웠으므로 이미 본질적인 재산을 소유한 것이다. 사랑받을 권리, 북쪽 혹은 남쪽으로 걸어갈 권리, 일을 해서 빵 살 돈을 벌 권리 같은 본질적인 인간의 부를 말이다.
■ 진정한 부는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과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음을 선언하는 저자의 말.
184P 물, 너는 맛도 색도 향기도 없다. 그러니 너는 정의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를 알지도 못한 채 너를 맛본다. 너는 생명에 필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다.
■ 저자와 프레보 일행은 사하라 사막의 태양에 말라 죽어가던 찰나 한 유목민을 만나게 된다. 유목민은 그들에게 물을 주어 갈증을 해소했다. 이로써 유목민은 저자에게 구세주이자 신으로 묘사된다. 일상에서 간과되던 물이 극한의 결핍을 통과해 성스러움으로 환원시키는 아름다운 문장.
209P 하지만 혈통이란 참으로 단순하고도 솔직하다. 변신을 거듭하며 알지 못할 진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도 백발의 아름다운 허물을 그 가는 길에 차례차례 버리고 가니 말이다.
■ 인간의 생애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변모하고 진화하는 과정.
p.26 이 일을 하려면 그가 내면 언어의 볼륨을 올려야 한다. 나는 그를 향한 감각의 해상도를 높여야 하고.
p.273 "넌 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싶냐? 나는 모르고 싶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도 모르고 싶을 것 같았다. 다 안다면 과연 열렬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열렬하게 산다는 건 내가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그 존중마저 없었다면 나는 험상궂은 내 삶을 진즉에 포기했을 터였다.
p.388 억겁을 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
p.519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p.522 욕망과 추구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정말로 평화로워질까. 평화로운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p.523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p.388 억겁을 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
p.519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일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p.522 욕망과 추구에서 벗어난다면 인간은 정말로 평화로워질까. 평화로운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p.523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습관만들기#오독완
권력은 어떻게 부패하는가,
그리고 무너진 공동체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우화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불편해지고, 생각할수록 서늘해지는 작품.
이번 서평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다시 한 번 사유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문 보기 : https://m.blog.naver.com/jellyfish_club/224191494559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월든』과 꽤 긴 시간 사투를 벌여왔다. 사투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아무튼 나에게 있어 『월든』은 유달리 읽히지 않고, 그러면서도 유달리 포기가 되지 않아 계속 되찾게 되는 책이다. 그 시작은 2017년이었고, 2019년에도 한번, 2022년에 또 다시 읽었다. (시도까지 합치면 2023년, 2024년도 포함할 수 있다.) 때로는 이해 못하는 게 너무 분해서(?) 도전했고,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소로를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또 도전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또 『월든』을 읽었다.
솔직히, 『월든』을 두번 째 완독했을 때에도 여전히 문장의 길이나 호흡 등에 지침을 느꼈더랬다. 그런데 세번 째 완독 (바로 지금)을 하면서는 이 느림조차 소로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사실 책을 읽는 속도마저 삶의 태도가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항상 많은 책을 갈망하고, 더 많이 읽고 싶어하는 나의 조바심에 내가 소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독서는 단순히 힘든 과정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성급하게 살아왔는지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클로츠 출판사에서 출간한 『월든』으로 다시 소로를 만나며, 고독의 가치를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며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느껴가곤 하는데, 이번 『월든』 을 통해 나의 고독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야 문득, 소로가 말하는 고독이 결핍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깊이 아는 충만이 아닌가 생각했다.
또 과거에 『월든』을 읽으며 한참이나 머물렀던 소리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과거의 나는 "소리들"을 두고, 글씨만 읽고 소리를 듣지 못한 나를 많이 생각해보게 했었는데, 이번에 『월든』을 읽는데 그때의 감상 위로 나의 소리, 내 주변의 소리, 가족의 소리,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는 연결과 소비를 요구하지만, 오히려 소로의 말처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용기"야말로 불필요한 소리들을 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소로가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불편함이 어떤 집중을 가져오는지를 느끼며, 나도 더욱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소로가 말하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소로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돈보다 귀한 시간, 자연 속에서 끝없이 성찰하라 말하는 그의 메시지, 한 발 거리두고 조금 더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그의 시각적 거리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느끼며 이것이 『월든』의 매력임을 조금 느낀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월든』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고 무겁게만 느꼈던 첫번째 독서, 여전히 나는 알지 못했다는 결핍을 주는 두번째 독서를 지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조차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번 독서를 경험하며, 오히려 나는 이로인해 또 『월든』을 찾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의 정석도 아닌 『월든』을 왜 이렇게 앞장만 읽다 지쳤던가. 욕심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오히려 삶의 어러 계절, 조금씩 느끼고 만나야 하는 책은 아니었나 싶다. 『월든』을 그저 "자연 속에서 느끼는 단순한 삶"이라 느꼈던 어린 나에게, 그때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깨닫기엔 너무 어렸던 것 뿐이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혹시 나처럼, 여전히 『월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온 사람이 있다면 조바심을 내지 말아달라고 말해주고 싶다. 분명 힘들긴 했으나 『월든』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질문과 만나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나는 정말 나에게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준 『월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한번 새 계절을 맞을 나의 곁에도 『월든』이 꼭 필요한 질문을 던져주기를.
500여 년 전, 토마스 모어가 그려낸 이상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가 상상한 ‘유토피아’는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향과 얼마나 닮아 있고, 또 얼마나 다를까요?
소설<유토피아>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의 반의어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기에, 이 표현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정치 체제이고, 사회주의는 '재산과 생산 수단을 어떻게 소유하고 분배하는가'를 다루는 경제 체제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반드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는 시민이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공동 소유와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는 체제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는 현실에서도 가능할까요?
(중략)
사유 재산이 없고, 모두가 동일한 시간 동안 노동하는 유토피아의 제도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 있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혁신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해파리들과 토론을 진행하면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모든 사회에 끊임없는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가?'
오늘날의 기술 발전은 분명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발전은 이미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더 편리하게 만들 뿐,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발전의 속도보다, 그 방향과 목적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유토피아』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더 빠른 발전’이 아니라 ‘안정된 삶의 유지’입니다. 이 체제의 핵심은 발전의 속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입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성장하는 것보다, 모두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유토피아 인들에겐 더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전문보기 : https://m.blog.naver.com/jellyfish_club/224186640792
죽은 시인의 사회 책 줄거리 요약 및 감상
1. 한 줄평
"오 캡틴, 나의 캡틴" 나답게 산다는 것의 무게
2.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소설 코너를 구경하다 첫 장을 읽었는데, 문장이 막힘없이 술술 읽히더군요. 학교가 배경이라 자칫 유치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청춘'이라는 소재가 주는 특유의 자극과 설렘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명문대의 문턱 앞에서 나를 잃어가는 소년들이 어떤 답을 찾아낼지 궁금해졌습니다.
2. 죽은 시인의 사회: 웰튼 아카데미의 파격적인 스승
이 책은 부모와 학교의 엄격한 규율 아래 아이비리그 진학만을 목표로 달리는 명문 웰튼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합니다.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파격적인 교육관을 가진 존 키팅 선생님을 만나며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영화를 각색한 소설답게 전개가 빠르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 화두를 던져줍니다. 사랑, 교육, 그리고 성장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입니다.
3. 추천독자
규율과 통제 속에서 '진짜 나'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분
가슴 뛰는 청춘의 성장 드라마를 통해 열정을 되찾고 싶은 분
교육의 본질과 주체적인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고 싶은 교육자 및 부모님
더 자세한 책 내용 및 제 인사이트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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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리뷰 | 우리가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그날의 눈동자 (한강)
1. 서론: 드디어 완독한 소년이 온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지만, 이제야 이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한국인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소식과 함께, 그 수상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진 작품이죠.
이 책은 평소 역사 소재의 소설을 자주 접하지 않았던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2. 소년이 온다 소개: 5.18,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지만,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지않습니다. 대신 그 일을 겪어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고통'에 주목합니다.
또 소년이 온다는 아래와 같은 독특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시점: 챕터마다 서술자가 바뀌며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독특한 편집: 기울임 꼴, 행 간격 등을 활용해 죽은 자의 증언, 슬픔의 침묵 등을 형상화했습니다.
문체: 한강 작가님 특유의 담백하고 깨끗하면서도, 날카로운 슬픔이 담긴 시적 산문이 돋보입니다.
3. 소년이 온다 추천독자
한강 작가님 특유의 섬세하고 처절한 문장을 경험하고 싶은 분
5.18 역사적 사실보다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싶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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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줄거리 및 핵심요약 |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진실일까? (알베르 카뮈)
1. 내가 이방인을 읽은 이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시절,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마치 제 모습처럼 느껴져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구절이 저를 이끌었습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2. 이방인의 주인공: 가식 없는 영혼, 뫼르소
이 책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한 나머지, 사회적 가식을 일절 부리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입니다. 카뮈는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인물의 성격을 극대화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처음엔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태도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만큼, 뫼르소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을 거부합니다.
3. 이 책의 추천 독자
세상이 정한 도덕적 기준에 문득 회의감이 드는 분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져 외로웠던 분
고전 문학을 통해 생각의 틀을 깨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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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우 쾌감은 바로, 자신의 굴욕을 너무도 선명하게 의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즉,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건 추악하기 짝이 없지만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출구도 없고 절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령 뭐든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자기 스스로 그 변화를 원하지 않을 것임을, 설령 원한다고 한들 사실상 마땅히 변할 대상이 전혀 없을 테니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 그나저나 여러분, 내 심술의 요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겠는가? 문제의 핵심이, 그러니까 가장 지저분한 것이 뭐냐 하면, 나란 놈은 심술궂은 인간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악에 받친 인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괜스레 참새들이나 놀래는 주제에 그걸 자기 위안거리로 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시각각, 심지어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속으로 수치스럽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그렇다, 19세기의 현명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우선적으로 성격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면 성격이 있는 인간, 즉 활동가는 우선적으로 꽉 막힌 존재가 되어야 한다.
📃 물론 그래 본들 생쥐로선 한 손을 내젓고 그 자신도 믿지 않는 썰렁한 경멸의 미소를 지으며 창피스럽게 자신의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갈 도리밖에 없다. 그곳, 구린내 나고 추악한 자신의 지하에서 우리 생쥐는 모욕과 조롱에 짓이겨진 채로 그 즉시 싸늘한 독기를 품은, 무엇보다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악의 속으로 침잠한다. 그러곤 사십 년을 내리 자신의 모욕을 가장 극악하고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까지 죄다 기억해 내고 그때마다 자기 쪽에서 훨씬 더 수치스러운 세부 사항을 덧붙이면서 자신의 환상을 통해 표독스럽게 스스로를 약 올리고 짜증나게 만들 것이다.
📃 오, 만약 내가 오직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맙소사,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존경했을까. 비록 게으름일망정 뭐라도 나의 내부에 지닐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나 자신을 존경했을 것이다. 비록 하나라도 나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성질이 나의 내부에 있다면 말이다.
📃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 나는 밤마다 고립 속에서 남몰래 두려움에 떨며 더러운 방탕에 빠지곤 했는데, 가장 역겨운 순간에도 수치심은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런 순간이면 심지어 나 자신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에 이미 나는 내 영혼 속에 지하를 담고 다녔다.
📃 천하기 짝이 없는 학우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와중에 나만 그놈과 한판 붙었는데, 이건 절대 그 처자들이나 그 아버지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냥 저런 버러지 같은 놈이 박수갈채를 받았기 때문이다.
거장들의 사례를 통해 본 비독서의 미학
저자 바야르는 자신의 도발적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세계 문학사의 대가들을 증인으로 소환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서의 전통적 관념을 전복시킨다.
몽테뉴와 망각의 유익함
몽테뉴는 자신의 지독한 망각 증세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쓴 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나, 저자는 이를 독서가 개인의 내면으로 완전히 용해되어 ‘탈개성화’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잊히더라도 그 독서의 흔적은 독자의 사고 방식과 문체 속에 녹아들어 새로운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와 비평적 자율성
오스카 와일드는 비평가가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끝까지 읽는 행위를 경계했다. 너무 많은 정보는 비평가의 주관적 감상과 창의적 판단력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일드에게 비평은 텍스트의 해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인 예술 형태였으며, 비독서는 비평가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방어 기제였다.
자기 생각의 투사와 창조적 변형
더 나아가바야르는 독자가 책의 줄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내용을 꾸며내거나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것을 권한다. 타인이 그 책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독자의 주관적이고 열정적인 해석은 실제 텍스트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독서는 수동적인 수용이 아닌 능동적인 ‘자기 발견’의 과정이다.
비판적 고찰 : 비독서론의 한계와 위험성
바야르의 주장은 지적 성실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비평가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한다. 정독과 깊이 있는 사유를 생략한 채 ‘위치 파악’에만 골몰하는 지식인은 자칫 경박한 수사학의 달인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고유성과 독자의 책임
모든 독서가 주관적 변용이라 할지라도, 작가가 고심하여 배치한 문장과 서사 구조에는 분명 고유한 가치가 존재한다. 바야르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독자는 텍스트와 진지하게 마주하기보다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는 데만 그칠 수 있다. 이는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독서 본연의 윤리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정보 과잉 시대의 역설
바야르의 제안처럼 모든 책을 읽지 않고 그 위치만 파악하려 할 때,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정보에 압도당할 수 있다. 서평, 요약본, 대화의 파편들을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정독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해방은 독서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책과 맺는 관계에서 ‘나’라는 주체를 얼마나 견고하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 책을 읽은 뒤 공유하고 싶은 질문들
Q1 독서의 본질과 정의
바야르는 독서와 비독서 사이에는 수많은 층위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책을 읽었다'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예: 마지막 장까지 넘기기, 핵심 주제 파악하기, 남에게 설명할 수 있기 등)
Q2 잊어버린 책
분명히 읽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잊어버린 책(FB, Forgotten Book)'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기억나지 않는 독서도 가치가 있을까요?
Q3 독서의 탈개성화
"독서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함과 동시에 탈개성화 작용을 발생시킨다"는 문장에 동의하시나요? 책에 너무 깊이 빠지는 것이 자아를 잃게 만들까요?
Q4 교양인으로서 독서가 주는 압박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 혹은 '교양인'에게 기대하는 독서량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이러한 사회적 기대가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요?
Q5 독서 목록이 주는 권위에 대한 의문
권위 있다 여겨지는 추천 도서 목록(예 : 서울대 필독서)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드나요? 그것이 독서 의욕을 고취시키나요, 아니면 부채감을 주나요?
Q6 독서에서 망각은 죄악일까?
망각은 독서의 실패일까요, 아니면 지식이 체화되어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까요? 몽테뉴의 사례가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었나요?
Q7 독자는 창조자로서 어디까자 나아갈 수 있을까
바야르는 "독자가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완성일까요?
※ 인상깊은 책 속 구절
p79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걸쳐 연이어 이루어지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망각에 의해, 그 내용들은 들어올 때처럼 빠르게 하나씩 차례로 증발해버린다.
p87 독서는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해줌과 동시에 탈개성화 작용을 발생시킨다.
p121 집단적 내면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내면의 책들은 다른 텍스트들을 수용하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며,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물론 재구성하는 데도 개입한다.
p175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흔히있는 경우이며, 부끄러움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 즉 책이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담론 상황에 관심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p193 저자도 변하고 책 역시 동일한 것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p219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228 작품과 거리를 두라는 것, 바로 이것이 와일드가 책읽기와 문학 비평에 대한 상황에서 무언가 되풀이 하는 주장이다.
p233 자기 자신이 창조자가 되는 것, 바로 이 계획이 이 책에서 우리가 일련의 예들을 바탕으로 행한 모든 사실 확인의 귀착점이며, 이는 내적 진전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다는 느낌으루보터 해방된 이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계획이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 세상이 제일 불행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만 빼고 행복해 보였던 다른 사람들 역시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 아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전부였던 나와 달리 그 아이는 훨씬 더 넓은 세상에서 타인의 삶도 들여다보며 살고 있었다.
P.123 중에서
나는 자전거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삶의 끝에 선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좌절하고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지 모른다. 세상은 그들을 나약하고 어리석다고 또는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만 난 그게 그들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P.134 중에서
눈앞에 펼쳐진 골동품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본래 주인도, 이 가게로 흘러 들어온 경로도 다른 물건들은 삶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모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숼 때가 된 것들. 그 쉼의 느낌은 지친 삶을 내려놓고 싶어 하던 나의 쉼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 세상을 살다간 이들의 흔적으로 남은 골동품들이 평온함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P.183 중에서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하고, 누구에게나 가혹하지. 그렇다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옳은 선택이 될 수는 없어.
P.203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마음이 나약해질 때면 의지할 곳을 찾곤 하지. 그것이 잘못됐다고 욕할 수는 없어.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자기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네.
P.203 중에서
누구에게나 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더 의미가 깊고 소중한 것이다. 그걸 모르는 이는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되지. 허나 그래 봐야 소용없다. 말 그대로 이미 늦은 뒤거든.
P.220 중에서
사실 나도 좋은 삶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돈이 많은 게 좋은 삶이라 해도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고, 행복한 게 좋은 삶이라 해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한결같이 좋거나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좋은 삶이라는 건 어떤 걸까. 그가 의문을 던졌듯 좋은 삶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P.276 중에서
신은 언제나 인간 곁에 머문다. 어떤 존재로든, 어떤 이름으로든. 인간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돕고, 때로는 벌을 내리며. 그리고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지금'에 머문다. 그대들은 잘 살고 있는가?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대들의 한 순간에 머물다 가겠네. 그러니 너무 자만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마시게.
P.29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