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은 지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때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내용이 전체적으로 어두운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려 더 그런 것 같다.
아무튼 스토리는 폐허가 되어버린 헝가리의 집단 농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의사, 기술자, 교사, 농부 등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했던 농장 주민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지도자를 잃은 후부터 극단적인 무기력증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리더가 농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민들은 희망에 부풀어 마을에 하나뿐인 허름한 술집으로 모여든다.
마치 부활한 예수처럼 술집에 모습을 드러낸 지도자는 현란한 말솜씨로 주민들을 향해 마을을 떠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이미 주체성을 상실한 주민들은 지도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당장 집으로 달려가 집을 부수고 세간을 챙겨 마을을 떠난다.
사실 집단 농장을 관리하는 당 간부인 지도자는 주민들을 자신의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려는 속셈이지만, 주민들은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반전!
저자는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 어떻게 주체성까지 잃게 되는 지를 집단농장 주민들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공산주의 체제를 넌지시 비판하는 것이다.
역시 노벨상 수상 작품은 다르다.
“인간이 자유를 박탈당하면 주체성도 잃게 되는 걸까?”
책을 덮은 후에도 이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 속에 맴돈다😀
사물놀이에서 여성을 다룬 책을 많이 읽었지만,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가 독보적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사건>보다 좋았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의 스토리는 크게 둘로 나뉘어 전개된다. 비출산을 결심했다가 장애아를 낳게 된 알리나와 금쪽이 니콜라스를 키우는 도리스. 비출산을 결심한 주인공 라우라는 자신과 반대되는 두 가정을 오가며 임신과 출산, 가족의 의미를 찾는다. 작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한편 갑작스러운 전개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한다.
일단 재밌어서 좋았다. 이네스가 죽을까? 알리나의 남편은 보모와 바람을 필까? 니콜라스는 어떻게 될까? 작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담론을 찾도록 이끈다. 이네스는 장애아에 대한 사회의 책임, 비출산 여성과 출산 여성의 비교,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 등으로 말이다.
가장 좋은 점은, 따뜻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좋은 사람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자'는 하나의 목표 아래 긴밀히 움직인다. 방법과 사랑하는 대상이 다를지라도 서로를 존중한다. 사회 문제를 다룬 책에서 이런 따뜻함이 보기 드물다. 일례로, 똑같이 출산 문제를 다룬 <지구별 인간>은 완벽히 절망적이었다. <지구별 인간>같은 접근으로는 사회 문제가 고조될 뿐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존중과 사랑을 통해 사회를 끌어가야 한다.
앞으로도 따뜻한 소설과 책이 많아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흑인으로,여성으로, 어머니로서 약자의 위치에서 흑인최초 노벨상을 수여한 작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껴진다. 책은 다른이들과의 인터뷰를 적은글로 흑인여성에대한 백인의 불평등을 말한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서 많은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위치까지 존경받을 만 하다.
북 큐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읽진 않았을 책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 장애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것이니까.
그런데 얼마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언어라는 실타래를 따라 다른 이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 내면과 마주하는 일, 언어가 우리를 이어준다‘는 말을 듣고
책을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이해의 영역은 아니구나,
그저 그 삶을 그대로 바라보고 우리가 서로 의존하고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되는거구나..싶었다.
인상은 있되 의도는 알 수 없는, 무엇을 안다고 해도 그 가치를 따져볼 수 없는 모호한 결말 뒤로 포세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이 따라붙는다. 나는 앞에 실린 작품 <샤이닝>보다도 뒤에 굳이 연설문을 붙인 문학동네의 감각에 감탄한다.
연설문 가운데 각별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그건 그가 저의 첫 작품, 참담하게 실패한 데다 혹평까지 받은 <레드, 블랙>을 언급할 때다.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포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믿고 나만의 것을 고수하리라 결심'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작품은 평단에 의해 발굴되고 주목받는다. 이때도 그는 생각한다. '내 작품을 향한 혹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순풍에도 몸을 맡기지 않고 오직 나만의 글을 쓰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초기의 결심을 고수'해야겠다고.
그는 노벨상 수상 뒤에도 이 결심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와 같은 태도가 포세의 오늘을 만들었다 믿는다. 이 결심이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흥미진진한 소설을 쓰는 평범한 작가가 되었거나, 아예 글을 쓰지 않는 이가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에 충실한 작가, 세상의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이. 그런 태도가 누구와도 다른 저만의 작품을 쓰도록 한다. 욘 포세의 소설에 대한 호오판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써나가는 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천재들의 실패> (2001, 동방미디어, 이승욱 옮김) 로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출판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몰락 스토리를 다룬 책. 노벨상 수상자 2명과 연준 부의장 출신의 석학, 수학과 금융공학의 박사들이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계산된 모델에 의해 투자를 하는 헤지펀드가 5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과도한 차입투기(많았을 때는 레버리지가 50배를 넘었다고 한다)의 결말이 어떠한지 그리고 리스크 관리라는 것이 금융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만든다.
이전에 종고책방에서 읽으려고 사 두었던 책을 노벨상을 받은 작가때운에 책을 찾던중 다행이 꽂혀있어 부리나게 읽었다. 작가의 글은 시제가 왔다갔다. 화자도 욌다갔다 장소도 왔다갔다해서 이해가 퍼뜩가지 않았다. 1980년 중학교 1학년이던 난 지금 기억하면 광주에 북한 지령을 받은 폭도들이 난을 일으켜서 나라에서 진압한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러고 그런줄로만 알았던 내용이 대학가서 대자보와 당시 죽은이의 사진을 보고 전투환의 만행을 접하고 거리로 나가 시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끝까지 죽을때까지 반성을 모르고 죽은 그놈, 역사는 늘 힘센자들만 잘쳐먹고 잘산다. 지금의 윤석열 친일 추종자 김문수 등등. 마지막 엄마의 싯점에서 적은 글은 내내 아릿하게 가슴이 저려온다.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주문한 후 일주일만에 받아든 책. 중의적이고 다분히 촘촘히 배치된 세련된 문장을 읽을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되짚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의도들 중 하나는 인간의 사람에 대한 짙은 사랑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뼈아프게 고통으로 느껴지는 참혹한 사건을 통해 정제하고 추출하여 보여주고 있는것이 아닐까. 여운이 크게 남을 것 같다.
하루키에 대한 저자의 에세이. 지금 20대 초반의 나도 그렇고, 왜 이 나이대에 하루키에 많이들 빠져드는건지. 그 매력을 느껴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작은 실망감은 나와 놀랍도록 비슷했다. 이후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나는 낫배드였는데, 저자는 어떻게 느낄지 궁금)
마지막 노벨상 이야기를 보며, 얼마전 역시나 또 노벨상에 실패한 하루키가 생각나고(하루키의 라이트한 팬이지만, 노벨상 못타는게 웃기네), 한국의 문학 독자로서 한국인 노벨문학상이 나왔다는 것에 너무 감격스러웠다(무려 민음사 유튜브 라이브로 그 순간을 목도했다고 내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다시 접하게 된 <소년이 온다>
책을 읽진 않았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그 구절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의 관점에서 풀어낸 5. 18 민주화 운동이란 그러했다.
시신을 수습한 시민들 대다수는 어린 여고생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역사에서 잊혀졌으며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에게 겉치레적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런데 한강이 <소년이 온다>에서 그 여학생들에게 ‘은숙’과 ‘선주’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이라는 쾌거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한강” 작가 본연의 상이며, 여성교육이 이루어진지 200년도 채 되지 않은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상이다.
신군부의 독재와 조직적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 소설이 세계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인에게 읽힌다는 것이 참으로 경외롭다.
현대사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모두가 희망을 잃어갈 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큰 지지대가 되어 줄 것.
어둠은 빛을 가리지 못하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으니 기적이 일어나나보다.
우리는 왜 죽는가
철학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책 한 권과 함께 한 1주일이다.
노화, 수명, 죽음에 관한 과학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죽는가?
이러한 명제와 마주하고 보니 모호성이 있는 질문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왜 이러한 명제를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질문 자체의 광범위한 포괄적 영역이 범인의 지식으론 감히 넘볼 수 없다는
사전 차단 효과가 우리를 이러한 명제 앞으로 감히 나서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저자 벤키 라마크리슈난은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벨화학상 수상 분자생물학자다.
그는 서두에서 인간의 삶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축제와 같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한 개인이 죽어도 삶 자체는 계속된다.
가족, 지역 공동체, 사회는 우리가 없어도 계속 굴러간다.
나비의 수명은 대개 한 달 미만이다.
짧게 사는 종은 일주일에 불과하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나비는 순간을 살다 갈 뿐이지만 삶의 짧음을 탓하지 않는다." 고 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 그 사람의 수명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아니, 만약 우리가 시한부 판정을 받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시간이 단 하루라면!
중국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제31대 왕으로, 춘추전국 시대를 끝내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한 인물인 시황제는 영원히 살고자 불장생을 꿈 꾸었지만 수은 중독으로 뇌가 완전히 망가져서 49세로 단명했다.
생명에 대한 욕구는 본능이다.
불과 몇 시간만 살고 죽는 생물이 있는가 하면, 한 세기가 넘을 정도로 긴 수명을 지닌 생물도 있다.
인간의 수명에 제한이 있는가? 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 된다.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지만,
1997년 프랑스 남부 아를의 요양원에서 사망한 잔 칼망 이후로 25년 간 그의 기록을 깬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2022년 119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 여성 다나카 카네라가 그 뒤를 잇고,
현재 시점으로 최고 고령자는 스페인의 마리아 브라니아스 모레라이가 116세로 살아있다.
대규모 연구에서는 100세인들은 세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38%는 80세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연령 관련 질병 진단을 받았다.
둘째, 43%는 80세 이후에 한 가지 이상의 질병 진단을 받았다.
세째, 19%는 100세가 될 때까지 가장 흔한 연령 관련 질병 열 가지 중 한 가지도 진단 받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통해 사람의 수명과 관련해서 열량 제한과 운동과 수면이 생명 연장에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단식이나 절식이 열량 섭취 감소를 넘어 건강에 유익한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반복되고 있다.
특히 수면이 부족하면 심혈관 질환, 비만, 암, 알츠하이머병 등 많은 노화 관련 질병의 위험을 높인다고 한다. 즉, 수면이 부족하면 세포 손상의 축척을 막는 복구 기전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세포가 건강하게 수행하려면 다양한 단백질이 조화롭게 작동해야 한다. 노화는 결국 세포 노화와 직결된다.
지금도 세계의 부호들은 불로장생을 꿈 꾸며 사후 전신 냉동보존기술을 이용한다.
세계 부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서 죽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인체냉동보존술 설비를 건설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병으로 사망하자마자 즉시 냉동했다가 나중에 완치법이 발견되면 해동한다는 아이디어다.
거대한 노화 과학 산업계가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지금도 연구 중이다.
과연 무엇인 정답인지는 각자의 생각과 신념에 달렸겠지만 삶의 모든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며 살아가는 나날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난해한 책이라고 잡았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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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감각적인 문체만 돋보이는 노벨상 수상 작품. 무척 재미있었다가 점점 재미없어지는 내용임. 1권에 등장한 청춘들의 얘기는 진심으로 좋았고 중간의 엘라가 배신당한 내용도 그럭저럭 괜찮았음. 2권부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주인공에 대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주인공의 심리와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게 되면서 재미가 없어짐. 멘붕 상태로 멘붕의 주인공 심리를 나열한 것 같음.
어째서 육아는 더럽게 고생스럽고 피눈물 나게 힘든 일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여태 없었을까. 분명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엠바고 같은 거겠지. 아니면 육아에 뒤따르는 희생을 모성과 부성으로 승화시키려 하는 사회 분위기상 갖은 고생담은 경험자들끼리만 쉬쉬하며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증거로 내가 출산하자 주위의 육아 선배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많이...힘들지?" 하며 지옥 구경이라도 하고 온 듯한 경험담을 들려줬으니까. 그들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시간은 가더라." 아이의 미소를 보면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는 거짓말은 누가 먼저 퍼트렸던가. 내 경험상 미소가 사랑스러운 것과 피로는 별개다. 꽃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맡았다고 결린 어깨가 풀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물여섯의 나는 자아를 업무용과 개인용으로 분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속한 팀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했고 그 앞뒤로 종종 "야 이 씨..."가 따라붙었다('발'이 마저 붙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심지어 팀장은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나이는 많았던 차장을 "야! 김XX!"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참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서열이 상대보다 위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사고가 터지면 자기보다 직급 낮고 힘 약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렸다. 인간에 대한 환멸이라는 것을 철저히 맛보던 나날이었다. 더 심각한 점은 그 안에 있다 보니 나도 여지없이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의 노벨상 수상 여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늘 몹시 아름다웠던 그의 수상 연설문을 못 보는 것 정도일까. 실은 내 청춘의 한 조각(?)이 그런 영예로운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는 건 괜스레 멋쩍을 듯도 하다(라기에는 이미 다른 문학상을 너무 많이 받았지만!). 하루키는 나에게 작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경험을 안겨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
20240416 노벨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이념이 중요했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 시각을 감각적인 문체로 서술함. 감정에 대한 묘사가 탁월해서 무척 인상적이었음. 특히 청춘 남녀들에 대한 내용이 가장 좋았고 중후반부터는 산만해서 다소 아쉬웠음. 2권을 기대해봄.
교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삶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수업을 들으러 교실을 옮겨 다닐 때 복도에서 나누는 얘기들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p.198)
대부분 아이는 자기 전자 기기를 뺏기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이런 문제들을 숨기려고 한다. 사회는 이 아이들에게 거대한 짐을 떠넘기고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일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p.268)
『가르친다는 마법』이라는 책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며, 사실은 과연 내가 만났던 '교사' 중에서 또는 아이가 만나고 있는, 만나게 될 교사 중에서 이런 분이 몇 명이나 계실까 고민했다. 아니 몇 명이 무슨 사치인가. 단 하나만 만나도 엄청난 영광인 것을. 그래서 나는 『가르친다는 마법』을 읽는 내내 내가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어디엔가 이런 불씨를 가진 '선생님'들이 이 책을 만나시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게 교사상을 받은 자 안드리아 자피라쿠의 첫 책, 『가르친다는 마법』은 아이들의 삶에서 '미술'이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변화를 끌어냈는지를 경험하고 기록한 책이다. 문화 예술이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깨닫기도 했고, 누군가의 관심이 한 사람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느끼기도 했다.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우리의 공교육이 바라봐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감동적인 묘한 책이라고 느꼈다.
환경에 의해 학습장애를 앓는 아이, 불행한 가정에 놓인 아이, 통제하기 어려운 성향이 있는 아이, 미디어 중독을 겪는 아이. 사실 이런 아이들은 이미 책 속에만 사는 아이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꽤 많은 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작가처럼 바라보는 '선생님'을 가지지 못했고, 그런 '선생님'을 양성할 느긋한 나라를 가지지 못했다. 『가르친다는 마법』을 읽는 내내 우리와 똑같이 경쟁 사회에서 자라기는 하나, 조금은 더 나은 환경에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의 아이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마법』을 부러움으로만 읽는다면 실패한 독서가 아닐까. 나는 『가르친다는 마법』을 읽는 내내 작가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 언어 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교사가 아니지만,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교사보다 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많은 교사가 선생님이 아닌 교사로 살기를 바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기적인 학부모, 교사에게 너무 많은 책임과 인내를 지우는 사회, 돈벌이수단으로 '교사'를 하는 일부 교사 등이 각각의 영역에서 “실력 발휘”를 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문득 이 책, 『가르친다는 마법』이야 말로 요즘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르친다는 마법』은 학부모는 내 아이를 가르치는 이에 대한 존경을, 나라는 온전히 가르치는 업무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가르치는 자는 그 거룩한 일의 진의를 잊지 말라고 쉼 없이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도 이제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EBS <인물사담회>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장도연, 배성재, 곽재식이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런 프로도 있네? 하며 빠져들었다가 여기서 소개된 <만엔 원년의 풋볼>까지 챙겨 읽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결정적이었다고.
바로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달아 읽었기에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장도연이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처럼 책이 무겁다고 했는데 이 책도 만만치 않았다. 몰입이 잘 되지 않아 첫 장만 페이지를 오가며 세 번을 봤다. 다른 책은 제쳐두고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고 씨름하듯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난 뒤엔 정말 대작이다, 하는 감탄이 나왔다. 조선인 부락 얘기가 얽힌 스토리이기도 하고 - 이민진 소설의 파친코가 떠올랐다. 아직도 한국인을 조센징이라며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 중반부터는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서 읽는 데에도 속도가 붙었다.
일단 일본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문학계의 거장이다. 헌법9조 개헌도 반대했고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도 비판한다.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의기소침해 있다가 한국전쟁의 반사이익으로 짧은 시기에 경제와 산업이 눈부시게 부활해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오에 겐자부로는 참으로 소중한 작가다.
작품에서도 대를 이어 계속되는 폭동과 폭력의 문제를 지적한다. 큰 사건을 겪은 주인공은 힘들어하면서도 지나간 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자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입장에 도전장을 던지듯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말 한 마디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약해질 수 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
거대한 우주부터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원자의 세계까지, 우리의 뇌부터 초파리의 날개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부터 몇 해 전 힉스 입자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탄 과학자까지. 빅데이터와 캐리커쳐, 음악과 신화 속에 숨은 과학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강연을 책으로 펴냈기에 구어체로 쓰여졌다는 점도 특색이다. 때문에 잘 읽힌다. 강연에서는 생략되기 쉬운 제반 정보들이 강연 사이사이 사진과 도표로 제공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청소년에게 쉽게 다가선다는 것이 정재승 박사가 지향해 온 과학의 대중화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과 과학자들이 흥미를 심어주고 싶은 부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느껴져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읽을 만한 구석도 있었다.
참 재미있다. 보라스 파스테르나크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작품의 주인공 유리 지바고를 통해 현실을 비판한다. 맹목적인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를 무너뜨리며, 사람들의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리는지를 지바고와 주변인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성을 잃어버린 광기의 시대.
자국에서 출간 할 수 없었고,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그의 책 또한 영원할 것이다.
영화로 다시 봐야겠다.
1.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 쓰기가 내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다. 까뮈의 글 또한 독일 철학자라면 두어줄의 명제로 딱 정리해서 말하고 한 단락 정도 설명으로 끝날 간단한 내용을 말하고 다시 다르게 말하고 또 다르게 말하고 지겹도록 반복한다. 요점을 정리한 책을 읽는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펜하우어나 칸트가 깔끔하게 논리적 구성으로 정리한 글과는 너무나도 비교가 된다. 암튼 이 부분은 내 취향적 문제이다. 수필적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독일철학의 학술적 글쓰기는 얼마나 혐오스럽겠는가. 아참 모든 독일철학자가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니체가 있지 않던가. 물론 모든 프랑스철학자가 그렇지도 않고.
2. 그런 학술적인 글과는 다른 문체라면 문학적 아름다움이나 멋짐이 있는 글이어야 할테고, 까뮈가 그런 글로 인정을 받고 있기는 하다만
내가 읽어보기엔 그닥 문장이 멋진 느낌을 받지는 못하겠다. 비유나 은유적 표현들이 멋있게 써보려한 느낌을 받기는 하는데 딱히 감탄할만한 문장은 만나기 어려웠다.
3. 부조리는 세계의 불합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꾸 그렇게만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까뮈도 스스로의 글에서 그렇게 이해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도 그런 식의 이해가 많은듯 하다. 부조리는 인간의 합리에 대한 추구와 세계의 불합리함이 만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까뮈는 이렇게 단적으로 부조리를 정리하는 것이 싫었기에 이런저런 다른 정의를 계속 반복해서 지겹게 얘기하기는 하지만 암튼 그렇다. 이점에서 까뮈가 왜 그렇게까지 인간의 합리에 대한 욕구를 인간 정신의 본질인양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안타까운 느낌조차 들었다.
그 전제를 하지 않으면 자살의 문제를 내놓을 근거가 부족해지긴 하겠다.
하지만 그러한 합리와 논리를 극한까지 몰고 가려는 기본틀이 까뮈가 현대철학자이면서도 촌스러운 느낌을 들게 하는 부분이다.
차라리 지금 합리성에 대해서 주장한다면 차라리 미래적이고 새로운 느낌을 주긴 하겠다.
까뮈 이후에 더더욱 이성주의가 더 무너지며, 까뮈 때 이미 비합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책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 정신은 본질적으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본인의 개별적 경험을 너무 절대시한 것은 아닐까?
4. 책에서 실존주의자들을 대거 등장시키며 비판의 칠성판 위에 올러놓고 칼로 잘게 잘게 다지기는 하는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철학자에 대한 얘기에서 정작 니체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좀 의아하긴 한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니체의 영향이 보이는데에도 불구하고, 정작 니체에 대한 인용글은 딱히 무게감 있는 내용을 담은 것은 없었다.
5.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에 대해서 도피하지 말고 그대로 맞서서 있는 그대로를 살라는 말이 결론이라면 결론일텐데 사실 애매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방인에서 그것들의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주며 해설해주는 느낌이다. 그 두권을 동시에 써서 발표한 것은 정말 잘 한 것이다.
이방인의 해설서가 시지프이고 시지프의 구체적 보여주기가 이방인이었다. 두 개를 한 쌍으로 본다면 정말 좋은 구성이긴 하다.
6. 까뮈 글의 문학성을 볼 때 그렇게 뛰어난 글 쓰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방인이 나왔을 때 읽어본 프랑스 시민들이 나도 소설 쓰겠다는 말을 했다는 말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사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이긴 하다. 문학적인 기교나 구성 그리고 끌고가는 능력 등 문학적 평가를 할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내가 가장 멋있게 보는 것은 매우 깊이 있는 철학적 내용을 은유적으로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이방인은 매우 좋아하는 소설이다. 작품성에서 그깐 기교나 소설적 완성도보다는 담고 있는 주제와 내용의 깊이를 더 인정하는 내 기준에 따라 매우 좋게 보는 소설이고, 그런 점에서 노벨상도 받지 않았던 것 아니었나 싶다.
7. 이러저러함에도 불구하고 까뮈는 부조리라는 언어를 독취하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이성과 합리성의 성이 무너지고 붕괴한 것에 대해서 부조리라는 단어만큼 쓰기 용이한 것은 없으리라.
삶이 시다 못해 쓰디쓴 레몬을 내민대도 당신은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얻은 큰 배움이었다.
언제나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는 것도 구름 저편은 늘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도 밤은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것도 비로소 깨달았다.
애틀랜타에서 내가 송년 만찬에 참석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19년 3월 16일, 크루거는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였다. 보데인과 스페이드처럼 자살이었다. 자살 방법은 언론에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오바마는 성명서를 발표해 크루거를 “한없는 미소와 다정한 영혼”을 가진 남자로 기억했다. “심지어 잘못을 지적할 때조차”도 말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로 프리스턴대에서는 크루거의 동료교수였고 <뉴욕타임즈>에서는 내 동료 칼럼니스트였던 폴 크루그먼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징후를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어 크루거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임기를 마친 직후 그 자리를 채운 뱃시 스티븐슨은 트위터에서 크루거의 고통에 대한 연구를 언급했다. “이제 나는 크루거 역시 고통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크루거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에 관해 생각하는 통로로 삼았을 것이다.”
스티븐슨은 이렇게 덧붙였다. “진실은, 우리는 모두 세상이 흔히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20230729 한 가문을 중심으로 콜롬비아의 근현대사를 다룬 고전 작품. 굉장히 밀도 높은 작품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인생을 축약하면서 디테일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함. 방대한 양임에도 전개가 매끄러워서 놀랬고, 문체와 내용에 유머와 풍자 섞여있어서 꽤 재미있었음. 다만, 스토리에 템포가 없었고, 5세대에 걸친 가족사를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느낌이 들어서 지루한 면이 다소 있었음.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그리고 문학적 가치 관점에서 노벨상 수상작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 취향은 아니었음.
나카소네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아 놓쳐서는 안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알았다. 요동치는 환율의 변덕이 없다면, 그리고 공장과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수백만 톤의 석탄과 석유를 수입하는 막대한 비용도 없다면, 일본은 빠르게 회복하고 번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년에 “아이젠하워가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일본은 뒤처질 수 없다. 원자력이 다음 시대를 정의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p.59)
근 1년 사이, 후쿠시마에 관련한 책을 몇 권 읽은 것 같다. 같은 내용을 여러 권 읽으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같은 주제로 모두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하여(역사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다. 같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만나며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달까) 오히려 다채롭다는 느낌이었다. 후쿠시마 폭발 자체를 상세히 기록한 책, 후쿠시마를 둘러싼 세계적 정황에 관해 기록한 책을 읽은 후 만난 이번 '후쿠시마'는 일본 내부의 성장과 상황들을 매우 자세히 기록한다. 원자폭탄 피폭국에서 원자력발전을 통한 에너지자립을 꿈꾸는 일본의 역사와 현재를 매우 체계적으로 기록한 '후쿠시마'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나 역시 저자가 기록한 '체르노빌'에 대해 읽었기에 이 책이 더욱 궁금했다. 체르노빌을 참혹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낸 이의 눈에서 바라본 후쿠시마를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인간의 탐욕을 발견하고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감정이 배제되었으나, 오히려 덤덤해서 더 격앙되게 만드는 그의 문체를 통해 지진과 쓰나미라는 그늘에 가려진 후쿠시마, 사건은 있었으나 책임은 없던 후쿠시마의 민낯은, 어쩌면 전 세계인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거리임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하여 도쿄전력, 노벨상을 받은 니시나 요시오 등 일본의 전력에 대한 욕구와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계적 변화를 주시하던 일본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원자력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후쿠시마에 들어선 도쿄전력 자력 1호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발전하는 과정이 빠른 호흡으로 기록된다. 이 과정에서 기록된 방사선 피폭 환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고생은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에도 일본의 대다수 여론은 '원자력 포기'가 아닌 '원자력의 안전한 발전'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로 인해 일본의 원자력이 안전과 발전을 유지하며, 일본의 자긍심을 키우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점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인과관계를 이루었던 듯하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향하며 표면적으로는 쓰나미와 지진,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욕망이 일본과 후쿠시마를 뒤덮는다. 증거조작을 위해 피폭 노동자들에게 한 장기 적출이나 빗자루로 만들어진 '가짜 뼈' 등은 그들의 '잔혹성'은 우리 민족을 핍박한 '야만인' 시절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고, 그들이 가지는 특유의 '민족 자긍심'은 대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시절 지난 분노는 아무런 역할을 갖지 못하는 법. 책의 후반부터 기록되는 재난의 복합성, 안전에 대한 인식, 피난민들의 모습과 현실, 정치와 법적 결과 등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자세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고, 다른 희생자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견해가 더욱 궁금했으나, 400페이지에 달하는 촘촘히 사건 전개에 간단한 작가의 생각 정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이 배제된 덕분에 사건이 더 객관적으로 진행되고, 독자는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을 가장 잘 소화하는 방법은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등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후쿠시마 사건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전사고가 '인재'에서 비롯됨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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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책
80p 정도 되는 양이지만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소설인줄 알고봤다가 작가 실명이 나오길래 실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배경은 프랑스의 1960년대 임신 중절이 불법이었던 시대이다.
임신한 사실을 알게된 그녀는 중절수술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과정을 서술했는데 꽤나 적나라하여.. 슬프기도했다.
22년 노벨상 수상작가라 하여 내용도 모르고 골랐는데 충격적이었지만 후회는 안한다. 좋았던 문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독서후기
잠시 먹기를 멈추면 - 제이슨 펑 외 2명
오스미 요시노리 도쿄공업대학 교수는 오토파지 현상의 작동 원리를 규명하여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우리 몸을 이루는 60조개의 세포 안에서는 매일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기능이 저하된 세포소기관, 변형된 단백질, 세포질의 노폐물과 같은 쓰레기가 발생한다. 이런 쓰레기가 세포 안에 계속 쌓이면 세포는 기능이 떨어지고 결국에 죽고 만다. 그래서 세포 안에는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토파지이다.
2016년에 노벨상을 탄 이후로 오토파지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헐적 단식이 방송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간헐적 단식을 통해 오토파지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단식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드는 법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 저자인 제이슨 펑이다. 제이슨 펑은 신장내과 전문의로 단식을 통한 당뇨병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로 평가를 받는 분이다. 이 책은 제이슨 펑과 이브 메이어 그리고 메건 라모스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에선 단식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단식을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팁들과 방해가 되는 것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단식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5:2 단식은 5일은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고 이틀을 단식하는 방식이고 16:8은 16시간을 공복으로 유지하고 8시간 안에 나머지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18:6은 18시간을 공복으로 유지하고 6시간동안 나머지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20:4는 20시간을 공복으로 유지하고 4시간안에 나머지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16:8과 18:6은 체중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간헐적 단식이고 오토파지가 활성화되려면 최소 24시간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단식이 왜 필요할까?
제이슨 펑은 단식을 삶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수하게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많은 질병이 어느 정도는 과도한 체지방 때문에 발생하고 과체중이 되면 심장병과 뇌졸중, 암의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체중만 줄였더라도 건강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제이슨 펑이 치료한 환자의 예가 많이 나온다.
나타샤는 2012년 초에 제2형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152cm의 작은 체구인 그녀는 메트포르민을 복용하고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했지만 혈당이 조절되지 않았다. 그녀는 탄수화물을 아주 조금만 먹어도 혈당이 치솟았다. 그러나 그녀가 일주일에 두세 번 42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을 하게 된 후 그녀의 혈당 수치는 정상에서 당뇨전단계의 범위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현대 의료계에서는 단식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단식이 어떤 약물이나 다이어트보다도 인슐린 조절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제2형 당뇨병은 근본적으로 당과 인슐린이 과다해서 생긴 병이다. 그럼 과다한 당과 인슐린을 줄이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단식이다. 인슐린이 억제되면 혈당이 억제되고 체중이 안정되거나 감소하며 만성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줄어든다.
단식이 아닌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
칼로리 제한 식단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칼로리를 줄이면 기초대사율이 느려지기 시작하고 인체는 에너지를 절감하기 위해 생식 체계, 호흡 체계, 인지 기능에서 각각 약간씩 줄여 칼로리를 덜 소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칼로리 제한 다이어트가 잘못된 믿음이라는 증거는 또 있다. 탄산음료 한 캔과 생아몬드 한 줌은 모두 160cal이지만 탄산음료는 체중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고 생아몬드는 체중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칼로리가 같아도 결과가 크게 다른 이유는 인체의 호르몬 반응이 음식의 구성 성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체중 조절에 대한 답은 인슐린이다. 환자들에게 인슐린을 투여하자마자 살이 찌고 체중이 증가한다. 그들이 덜먹고 더 움직이든 상관없이 체중이 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만은 거의 없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칼로리를 얼마나 섭취했는지 사실상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날씬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비만에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식단에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첫째, 식단에서 지방을 줄이고 탄수화물 섭취량을 늘리라는 권고가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하루에 세 끼를 먹었다. 그러나 2004년에는 하루에 먹는 횟수가 거의 두 배인 6회로 늘어났다. 이는 값싸고 질 낮은 식품이 대량 생산되는 문화의 산물이다.
현대인들이 먹는 가공심품들은 공장에서 가공할 때 단백질과 지방, 섬유질을 포함한 많은 천연 영양소가 제거된다. 그래서 인체의 자연스러운 포만감 매커니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지방과 단백질이 없으면 포만감 호르몬인 팹티드YY와 콜레시스토키닌이 활성화되지 않아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보낼 수 없다. 섬유질이 없으면 음식물의 부피가 늘어나지 않아 위가 늘어나는 것을 감지하는 위의 신장 수용체가 반응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제 탄수화물(포도당)과 당만 남게 되는데 이들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급증시키고 이 인슐린으로 인해 당분은 지방으로 저장된다. 혈당이 급격히 떨어져 몸은 더 많은 당을 갈망하고 이 주기가 반복된다.
그럼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첫째, 음식이 몹시 당길 때마다 당을 지방으로 대체해야 한다. 지방은 배가 부르니 식욕을 없애라고 뇌에 신호를 보낸다. 둘째, 단식을 해야 한다.
단식을 하기전에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당뇨병이 있다면 "제2형 당뇨병에서 해방되기"와 같은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다.
단순하게 단식 시작하기
단식이 좋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으니 그럼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 처음부터 48시간 단식처럼 강도높은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쉬운 단식부터 시작해서 공복 시간을 점차 늘려나가도록 조언한다.
1단계: 간식 끊기
2단계: 아침 거르기
아침을 거르면 보통 16:8이나 18:6의 단식이 된다. 16:8로 16시간을 공복을 유지한다면 남은 8시간에 두 끼를 먹되 각 끼니는 1시간 이내에 마쳐야 한다. 18시간을 공복으로 유지했다면 남은 6시간 동안에 두 끼를 먹되 각 끼니는 1시간 이내에 마쳐야 한다.
3단계: 점심 거르기
아침을 거른 상태에서 점심도 거르면 공복 시간이 6시간이 더 늘어난다. 처음에 시도해 보고 견딜 수 있으면 날짜를 늘려나간다.
4단계: 36시간 단식하기
36시간 단식에서는 저녁을 7시에 먹고 잔 후 다음날은 하루 종일 단식을 한 후 그 다음날 아침을 먹는 방식이다. 점차 익숙해지면 일주일에 한 번 하도록 한다.
5단계: 2일 단식으로 연장하기
36시간 단식이 적응된다면 시간을 늘려 48시간 단식으로 늘리도록 한다.
단식을 낮은 강도로 시작해서 점차 공복 시간을 늘려나가는 방법으로 단식을 시작하도록 권한다.
이 책을 통해 넘쳐나는 당분과 탄수화물로 망가지고 있는 우리의 몸을 균형잡힌 몸으로 변화시키는데 단식이 좋은 해결책임을 배울 수 있다. 단순히 단식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을 가이드해주는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관심있게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