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표지의 <가여운 것들>은 제목만 보면 "레 미제라블"을 떠올린게 한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내용에 곧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제목이 <가여운 것들>인 이유가 있는 법! 결국 주제는 "레 미제라블"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구성이 정말 신기하다. 1970년대 글래스고에 살던 큐레이터 엘스퍼스 킹과 그녀의 조력자 마이클 도널리는 지역 문화의 증거를 취득하고 보존하기 위해 열심히 작업한다. 어느 날 마이클 도널리는 한 법률사무소의 폐기물을 발견하고 좀더 조사하고자 했지만 폐기물은 폐기물이므로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는 소식에 파기한다. 무심코 주머니에 집어넣은 작은 문건 하나를 제외하고. 그 봉인된 꾸러미에는 의학박사 빅토리아 맥캔들리스가 자신의 후손에게 남긴 편지와 더불어 그녀의 남편 아치볼드 맥켄들리스가 쓴 한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마이클은 저자 앨러스데어 그레이에게 책이 출판되어야 한다고(허구이지만 그 재미와 창의적 걸작이므로) 했고 '나'는 그 책 안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곧 아치볼드 맥켄들리스가 쓴 책의 내용이 펼쳐진다.
맥켄들리스가 쓴 책의 내용은 "프랑켄슈타인"의 내용과 무척 흡사하다. 하지만 곧 프랑켄슈타인과 벨라는 얼마나 다른 인물적 성격을 지니는지 구분할 수 있다. 불행의 끝으로 태어나게끔 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몰입하는 프랑켄슈타인과는 달리 벨라는 그의 갓 고드윈으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자유로우며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이미 몸은 완성된 상태이니 뇌의 성장을 말한다)한다. 그리고 곧 벨라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세상 경험을 통해 이 세상 여러 곳에 얼마나 "가여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그들을 돕고 싶어한다.
<가여운 것들>이라는 책을 알기 전에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먼저 접했다. 언제나처럼 원작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오래 기다려서 도서관 대여를 했는데, 아마 영화를 먼저 봤다면 원작 또한 의미 없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책의 풍부함을 다 담았을지 의문스럽다. 그만큼 이 한 권(물론 얇지 않고 꽤나 두꺼운)의 책 속에는 너무나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중반을 넘어서면 이 소설은 사회소설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영국인과 미국인, 벨라와의 대화는 마치 이 인류의 역사와 철학, 사회 구조에 대한 토론을 통해 작가가 이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다는 회의론자와 우월함만을 내세우는 자들 사이에서 여성인 벨라는 당당하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는냐고 부르짖기 때문이다.
책의 종반으로 들어서면 또 한번 놀란다. 빅토리아 맥켄들리스, 이른바 벨라가 직접 쓴 편지를 통해 지금까지의 내용이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 어리둥절해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책과 편지 모두 논리적으로 완벽해 보여서 독자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화려한 영상미를 뽐내는 영화도 볼 예정이지만 한동안은 책 <가여운 것들>이 오래 남을 것 같다.
📌<도서협찬 >
📚비늘 아래 숨겨진 진실!
📚타인의 시선, 나의 껍질!
📚이수현 저자 <비늘>!
🐠얼어붙은 마음에서부터 빚어낸 이야기! <비늘>은 상처와 생존, 그리고 감정의 회복을 그린 작품으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면서 인간 내면의 깊이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정폭력과 감정 무표정증을 겪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법정에서 다양한 사건을 맡으며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은 환상적 존재인 황금빛 인면어를 만난 순간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조금씩 제 몫의 비늘을 벗겨내면서, 누군가에게는 단단한 보호막이 되어주는 우리들의 민낯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과 그로 인해 남겨진 상처를 직시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으로, 리얼리즘 서사 위에 SF적 환상성을 겹쳐놓았다. 그래서 마치 현실의 상처와 환상의 문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물속의 생명체 바로 '인면어' 이다. 인면어는 정면 위에서 보았을 때 머리의 형상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잉어과의 변종이라고 한다. 근데 거기에 황금빛 나는 인면어가 등장하는 작품이라니! 안 읽어볼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이혼전문 변호사인 도희라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도희가 손끝으로 인면어의 비늘을 만지게 되는 순간 서늘한 전류처럼 감정을 깨우는데, 이 때 도희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기게 된다. 바로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비늘일까? 이 작품에서 비늘은 고통을 숨기지 않고 견뎌낸 시간의 표면의 의미로 나타낸다.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연대의 언어로 그려지는 이 작품은 도희가 맡는 사건들, 즉 가정폭력, 양육비 미지급, 파탄난 관계 등 지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도희는 가정폭력 피해자이자 감정 무표정을 앓고 있는 이혼 전문 변호사이다.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며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녀는 법정에서 다양한 사건을 맡으면서 고통과 생존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게 된다. 그리고 도희는 황금빛 인면어와의 환상적 조우를 통해 감정의 재생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환상적 존재 '황금빛 인면어'. 도희가 수족관에서 이 생명체의 비늘을 만지는 순간, 억눌린 감정이 깨어나면서 상징적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인면어는 고통과 생존 본능의 은유로, 이 작품 전체의 상징적인 핵심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법정 사건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가정폭력, 양육비 미지급, 파탄난 관계 등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는 도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연대와 공감을 전달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등장인물들을 통해 상처를 절대 숨기지 않았고, 견뎌낸 시간의 표면을 보여준다. 도희의 여정을 단순한 개인의 치유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연대의 언어로 그려냈다.
🐠마치 한 편의 법정 드라마 보는 듯한 이 작품은 황금빛 인면어를 신화적 상징으로 그려냈고, 거기에 환상적 장치를 더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회소설보다, 형이상학적인 소설로 그려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큰 묘미이다. (*형이상학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나 추상적인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 등 물리적 현실을 넘어선 영역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의미한다.) 상처와 생존, 그리고 감정의 회복을 그린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고통을 이겨낸 존재들의 흔적을 잘 그려냈다. 상처와 생존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 감정의 억압과 회복,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 등을 다루는 이 작품은 법정과 현실을 넘나드는 인간성의 회복을 그린다. 가정 안에서의 폭력, 양육비 미지급, 무너진 관계는 개인의 문제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한 문제이다.그래서 이 작품은 그 어두운 길을 건너는 일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가 빛을 반사하며 구원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처와 생존을 형이상학적으로 풀여낸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률 사건이라는 현실적 배경 위에 환상적 상징을 더하여,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가을 감성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 자신의 내면에 남은 비늘을 발견하고 생존의 의지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배우게 되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깊은 감정적 울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본 도서는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도서모임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푸른 사상 출판사 에서 도서를 협찬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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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평등이 존재하는 사회가 과연 있을까
무아도라는 섬에 있는 학교는 서로의 이름 대신 예명을 부르고
일체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불어 레드,옐로우,블루,블랙이라는
색깔 계급을 가지며 서로가 서로를 돕도록 만든다.
이렇게 무아도에서 완전한 평등을 체득한 이들이 사회에 나가 사회지도층에
포진하게 되면 사회가 더욱더 이로워질 것을 예상하며 만든 것이 무아교이다.
어느날 무아교의 여신 "선샤인"이 죽었다. 그리고 어느날 부터 쪽지 하나가 떠돈다
"내가 선샤인을 죽였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런 사실을 덮고싶은 이사장에 의하여 선샤인의
죽음을 아무렇지않게 만들러나는 명을 받은 "레이"가 졸업작품에 참석한다는 명분으로
선샤인의 죽음에 대한 다큐를 만들기 시작한다. 다큐를 통해 관련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지 못했던 명암과 어둠을 발견하고 점점 변해간다.
나름 반전도 있고,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사회소설이다. 사회 격차가 더욱더 심해지는 현실에서
이 책은 단순히 픽션이라고 할 수 없게 느껴졌다.
안나카레니나/톨스토이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 은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라고 격찬했으며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완벽한 작품으로, 현대 유럽 문학 중에서 이 작품에 비견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책장을 다 덮고서 한 줄 독서평을 쓴다면 이 작품은 '한국판 사랑과 전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쓰고 싶었습니다.
이 책 속에는 사람에 대한 위선, 잘못된 신념, 권력에 대한 욕망, 불타는 사랑 등 사랑과 전쟁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으며 종교관, 결혼관, 계급사회에 대한 사회구조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겪는 모든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얼핏 보면 막장드라마 같은 이 작품이 세계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문학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을 통해 그 모든 문제를 제시하고 사랑의 본질과 인간존재의 문제를 독자 자신들의 속마음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처음과 끝, 그리고 두꺼운 책의 내용 속의 의미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첫 문장의 의미를 통해 이미 안나의 행복이 어떤 불행으로 이어질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시작되어 공교롭게 열차에 몸을 던짐으로써 그 불행이 끝납니다.
전편에 흐르는 내용을 보면 불륜을 저지른 한 여인의 운명적 사랑과 그 사랑이 식어버렸을 때 그 여인이 받았을 충격은 어떤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가는지 잘 보여주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정교사와 바람난 오빠를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무도회장에서 만난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바람이 나게 되고 원래 불꽃같은 사랑은 활활 타올랐다가 불씨가 되는 사랑이 줄어들자 금방 사그라들게 마련이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브론스키의 사랑만 간절히 원한 안나는 결국 사회적 냉대와 브론스키와의 사소한 다툼 등으로 고뇌하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용서 빌며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안나가 생각한 행복한 가정은 브론스키와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사랑, 그 사랑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브론스키와 불행이 시작되고 파멸의 길을 앞에 두고선 수만 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안나가 생각한 불행은 스무 살이나 많은 남편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자 8년 동안이나 부부로서 잘 살아왔던 그녀의 남편은 흉측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무엇이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뭐든 좋게 보이지만 한 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싫은 거랑 같은 거겠죠.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거에요.
여기서부터 불륜의 자기 합리화가 시작됩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내 잘 못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의 무관심과 사랑 없는 결혼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그녀가 브론스키를 떠올린 그 순간, 그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해 아주 따뜻해 타버릴 듯 뜨거워'
무도회에서 처음 마주한 브론스키를 생각하며 안나는 한 번의 만남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껴버립니다. 자신 스스로가 도덕적 순수함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은 첫 만남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립니다.
브본스키는 안나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편의 근엄한 모습을 보면서 '루저의식'을 느끼며 젊은 수컷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그래,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랑할 수 없겠지' 말하며 혼자 상상해버립니다.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양심에 달린 것, 그리고 내 영역 밖의 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해진다'
안나의 남편은 안나가 브론스키와 만남을 의심하면서 안나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말할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소심한 남자의 전형인가요, 아님 아내에 대한 배려일까요.
안나의 남편은 불안과 걱정이 앞서면서도 아내의 사생활과 아내에 대한 믿음으로 질투와 의심은 아내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질투가 대단히 수치스러운 감정이며 아내를 믿는 것이 그가 해야 될 일이라며 감정을 자제합니다. 이 친구 착해도 너무 착한 것 같습니다. 부인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네요.
'저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야. 오로지 사교계 사람들의 눈이 무서운 거지. 그래서 극도로 흥분한 거지'
어렵게 안나에게 꺼낸 한마디가 오히려 안나에게 오해를 사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린 거네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안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고 오히려 남편에게 뒤집에 쒸웁니다.
'어쩔 수 없어.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안나의 마음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하자 '사랑? 사랑? 그가 사랑을 알기나 알까? 마음속에 경멸을 담아 내뱉은 말을 보면 안나의 불타는 마음속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론스키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러시아 사교계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브론스키 어머니는 아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기뻐했다. 그녀의 생각에 매력적인 청년으로 전성기를 맞는 일은 사교계에 불륜을 낳는 것밖에 없었다
'경멸 받아 마땅한 여자가 죄를 지은 것으로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지. 나는 그녀가 내게 넘긴 이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출구를 찾아내는 일만 하면 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이 자식 완전 쓰레기 같은 놈이었군요. 처음엔 불륜을 의심하고도 가정을 지키려는 멋진 남자인 줄 알았더니 자신의 미래가 안나로 인해 걸림돌이 되자 이제 나 몰라라 하는군요.
결국 이 자식은 자신의 위신과 사회적 평판이 더 중요했던 거군요. 사랑은 개뿔
'난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그녀나, 그도 결코 행복해지면 안 되지'
이젠 남 주기는 더 아깝다는 심보 같은데요. 그래서 이혼도 못해주고 별거로 지내기로 한 건가 봐요. 정말 무서운 남자인 것 같습니다.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안나와 결혼해서 그동안 지내왔던 8년의 세월은 위선과 자신의 안위 때문에 살아왔다는 걸 안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은 지옥과도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은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람을 먼저 미치게 한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신이 원하던 직위 임용 소식의 편지를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익숙해질 수 없는 환경이란 없다.
레닌은 아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말도 안 되는 우정을 나누고 타락한 여자의 집에 찾아가서 아내를 슬프게 하는 이런 상황들로 목적 없는 삶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안나는 브론스키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사랑에 쏠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생각에 브론스키는 이제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있으며 사랑의 일부가 다른 여성에게 옮겨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나는 브론스키가 만나는 모든 여성에 대해 질투하기 시작하고 그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안나는 자신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브론스키의 행동에서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브론스키가 원인이 아니라 안나 자신이 선택한 불안과 초조와 분노가 뒤섞인 감정들이었습니다.
'난 오직 사랑만을 원해. 그런데 그 사랑이 없어졌어. 그러니 모든 게 끝난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 브론스키도 자신에 대한 안나의 이러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많이 부담되었을 것입니다. 안나는 육체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지배를 통해서 주변의 시선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젊은 브론스키는 처음엔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자신에게만 너무 의존하는 안나를 보면서 사랑보단 집착과 애욕의 감정을 더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사랑과 쾌락에 대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평생 온전한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랑 이외에도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친인척뿐만 아니라 직장, 친구, 육아와 경제적 여건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고요?'
행복한 결혼생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랑이라는 특징적인 것이 아닌 여러 구성요소들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아이의 순진한 미소가 버텨주고 아이가 자라 부모 곁을 떠나면 '살아온 정'이라는 감성의 추억으로, 어느 한 가지 부족하면 나머지 부족분을 채워가는 부부생활이 되어야 그 결혼생활은 오래 유지될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안나와 브론스키, 키티, 레빈의 개인 심리 묘사를 감정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나가 보여준 의식의 흐름은 인간이 과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을 갈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가정을 버린 대가로 모든 원죄를 품에 안고 떠난 안나, 시대의 사회 규범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사랑을 찾고 싶어 감정에 충실한 안나, 우리는 안나의 도덕성과 불륜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인간과 사회적 비난과 냉대보다는 이해와 믿음으로 성숙한 사랑을 지향할 수 있는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