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영원 히 살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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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버클리가 암시했던 것과 같죠. 바로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것도요. p.72
노벨의학상 수상자였던 왓킨스 박사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거액에 판 후 어디론가 잠적해버려요.
바로 이 연구를 위해...!
양자역학이 설명하는 양자거품론에선, 관찰자가 대상을 인식하기 전까진 그대상은 존재하지않는 양자상태라 해요. 결국 의식이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상의 시간은 흐른다는 거죠.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왓킨스 박사는 뇌 심부에 칩을 이식하는 것으로 의식 속 세상에서 계속 살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연구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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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나 아원자 입자'가 서로 얽힐 수는 있어도,
캐로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양자 수준이 아닌 거시 세계였다. p.165
프로젝트 핵심인물이었던 신경외과의사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왓킨스박사는 자신의 조카손녀되는 캐로(케로로 아님) 에게 비밀리에 연구를 제안해요.
당시 캐로는 미투사건에 얽혀 실력과 무관하게 사내와 언론에서 낙인이 찍혀 사회적,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거액의 프로젝트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어요. 의심을 품고 간 섬의 독특한 풍경과 비밀스러운 연구소, 거기다 양자역학을 통해 우주의 다른 분기를 창조하는 뇌 심부 자극술(DBS)의 가능성과 안전성을 두고 캐롤은 오래 방황하게 되요.
(*실재 파킨슨 환자에게 적용되는 DBS를 확장하는 이론)
왓킨스 박사는 이 DBS를 통해 '육체는 죽어도' 우주의 한 부분에서 영생이 가능할거라는데요...
우리가 나이를 먹는 것을 경험하는 이유는 관찰자인 우리에게 기억이 있고. 우리는 과거에 관찰한 사건들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양자 역학적 관점에서 '미래에서 과거' 로 가는 경로는 기억의 소멸과 연결됩니다. p.252
우리가 나이를 먹는 것이 단순히 시간이 지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을 소비하며 기억하고 변화하다 또 잊어가는 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로 향하는 중이라는 건데요. 지금을 살고 있다는 건 스스로가 '관찰자'로서 지금을 마주하기 때문이라면 이 현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생성될 우주의 갯수도 무한해지겠죠.
하지만 그 우주의 부분에서 내가 본 것으로 나의 시간을 시작시키고, 나의 미래로 이어가기 위해선 과거의 어떤 것을 버려야만 해요. 이렇게라도 '영생'이 가능한 기술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잘' 산다는 것, '잘' 죽는 다는 것의 구분마저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캐로가 이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기 까지, 그리고 그 후폭풍으로 겪은 일들을 직접 처리하기 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연구와 방황이 있었어요. 결국 캐로가 '어떤 삶'을 선택할지가 궁금했기에 어려운 과학이론을 피하지 않고 읽어냈습니다 (모두 함께 👏 👏)
양자역학 이야기에서 머리가 많이 복잡했어요. 그러다 감이 잡히기 시작하자 철학적인 문제에서 또 한참을 고민했어요. 이 책의 작가들이 영생이란 문제 중 '영원'과 '생'의 기준을 정의하는 데에서 부터 과학적인 근거를 주기위해 작가들이 무진장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졌고요. 또 물리학과 의학의 업적만으로 볼 수 있을지, 윤리적인 딜레마나 인간의 욕망이 우주만큼 끝없어지는 건 아닐지, 영상 속 삶이 '진짜 삶'일 수 있을지... 답 할 수 없는 질문이 계속 아른거립니다.
『옵서버』의 탄탄한 전개에 놀랐고요. 이 소설에 끝은 있지만 결론이 없다는 것에서 또 우주를 경험했어요.
🫧 두께만큼 탄탄했다. 두께보다 더 거대했다.
+ 란프하우스 @lanfhouse 의 페이지마크랑 너무 찰떡입니다!
++ 이 안에 담고 싶은 우주를 떠올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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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울림을 나누는 울림zzzz입니다
🫧 이 울림이 오래 이어지기를.... @uz_z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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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
📚영화 <캐롤> 원작소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자의 <캐롤>!
💭두 여인의 금기된 사랑! 미국 아카데미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른 영화 <캐롤>의 원작소설! <캐롤>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로, 첫 작품 집필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에 얼마라도 벌기 위해 맨해튼에 있는 대형 백화점에서 인형 판매 사원으로 일하던 중 딸의 선물을 사로 온 모피 코트를 걸친 금발 여성에게 매혹된 후 바로 플롯을 짜로 스토리를 썼고, 그 다음날 본격적인 창작에 돌입해 완성시킨 작품이 바로 <캐롤>이다. 동성애자였던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95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 배경에 사회적 지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란 듯이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을 주는 이 작품은 캐롤이라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자신들의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자 하는 삶을 변화시키려는 두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저자가 레즈비언 소설가 딱지가 붙을 것을 염려하여, 1952년 '클레어 모건' 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 이 작품은 저자가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말년에 이를 때까지 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캐롤> 이 아니라 <소금의 값>으로 출간했었고, 1990년에 <캐롤>로 재출간하여 자신이 이 작품의 저자였다고 밝혔다. 참고로 <캐롤>은 출간 당시 100만부가 팔려나갔다고...
💭이 작품은 2015년 토드 헤인즈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이 되었다.(주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6개 부문 노미네이트). 이 작품은 퀴어 로맨스 형식을 띠는 작품이지만, 사랑의 본질, 자기 정체성의 발견, 그 당시에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대해 그린 작품으로 그 시대에 대한 저항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두 여성은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금기된 사랑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랑의 진정성과 감정의 깊이를 강조하여 테레즈와 캐롤과의 관계를 그려냈다. 테레즈는 처음엔 수동적이고 불확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캐롤과의 여행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삶의 방향을 자각하게 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한 작품이다. 캐롤은 이혼 소송 중이며, 딸의 양육권을 두고 사회적 압력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데, 이는 사회적 지위와 가족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동성애를 사랑의 한 형태로 그려냈다. 성별이나 사회적 조건을 넘어서, 사랑 그 자체의 힘과 아름다움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였고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모습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인물인 캐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페미니즘적 시선을 갖게 된다.
💭사랑의 이야기이자, 자아와 사회, 자유와 억압, 여성성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젊은 무대 디자이너 지망생 테레즈와 상류층 여성 캐롤의 만남과 사랑! 문체가 절제되고, 감정의 과잉 없는 소설이지만, 충분히 읽는이의 마음을 흔드는데 충분한 작품이다. 테레즈의 내면 독백은 혼란과 설렘을 느끼게 하고, 두려움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캐롤을 단순한 이상형을 그려낸게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냈다는 점.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자유와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1952년 당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대부분 끝에서는 비극으로 끝낸다. 하지만 이 작품은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시대를 앞선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감정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 문학적, 사회적, 감정적 깊이를 모두 갖춘 이 시대의 보기 드문 작품이다. 저자의 진심과 경험이 녹아든 작품이라 그런지, 감정의 진정성이 강하게 느껴지고, 영화와 함께 소설로 다시 주목받음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저자는 유명한 범죄 소설의 대가이다. 그녀가 쓴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 바로 <캐롤>이다. 저자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 사랑의 본질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문학적 성취가 있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읽다보면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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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서막
-주둔병단 한네스 등장.
-미카사 아커만, 아르민 알레르토 등장.
-아빠 그리샤 예거가 지하실을 보여주기로 약속.
-초대형 거인 등장.
-엄마 카를라 예거 사망.
-갑옷 거인 등장.
-104기 훈련병 졸업(5위).
-초대형 거인 재등장(5년만).
-엘런 예거반 전멸(토마스 와그너, 나크 티어스, 밀리우스 제름스키, 미나 캐롤라이나, 엘런 예거).
-아르민이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표현함.
-엘런 예거가 아르민 대신 거인에게 먹힘.
-시간시나 구 함락 사건.
강에서 찾은 하늘색 약병으로 교차되어 보여지는 현재와 18세기의 런던.
약병은 18세기의 엘리자와 현재의 캐롤라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매개체이다.
캐롤라인과 게이너, 엘리자와 넬라의 우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였으며, 역사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주류를 연구하고 찾아헤매는 캐롤라인에 의해 밝혀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약병은 다시 강가로 놓여지는데, 200년만에 캐롤라인이 약병을 발견한게 아니라 그 전에도 여러 명의 캐롤라인이 발견해서 다른 캐롤라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돌려놓은 게 아닐까.
개봉 당시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했던 영화인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해서 읽게 됐다.
백화점에서 임시로 일을 하던 테레즈와 손님으로 들른 캐롤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다.
캐롤은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테레즈는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했고 함께 여행을 다니다 캐럴과 그녀의 남편 하지의 이혼과정에서의 문제로 멀어지게 된다.
버림 받은 거라 느꼈던 테레즈는 뉴욕으로 돌아와 다시 캐롤을 만났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 중에는 비극적인 결말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여느 사랑이야기와 다르지 않게 재회를 통해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주어서 책을 덮으면서 맘이 한결 가벼웠다. (참고로 이 책을 쓴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1960년대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만약에 비극적인 결말이었다면 별점 2개도 못줬을 것만 같다.
옮긴이: 김미정
“죽여야만해!!”
“…기차에서 만난 그 여자 때문이지?”
레이먼드 보인턴은 깨달았다. 무기력해진 형 레녹스, 어머니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형수 네이딘, 자신과 똑같이 주눅이 들고 있는 동생 캐롤, 나날이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막내 동생 지네브라…
이 모든건 다 어머니때문이다. 이제는 벗어나야만한다.
📖스포주의
내용의 70프로까지는 흥미로워서 단숨의 읽다가 작가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서 사용했던 푸아로의 추리 방식을 사용하면서 지루함을 조금 느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너무 억지이지않나? 싶었다. 단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몰아 부치는 게 아닌지… 작가는 글을 쓰다가 보인턴 가족에게 애정을 느껴 불행만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팀 쿡이 스티브의 뒤를 이어 CEO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팀 쿡 칭찬의 책인데, 팀 쿡의 검수를 받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애플과 관련된 여러 이슈들에 팀 쿡의 조치와 성과 그리고 미진했던 부분들이 기술되어 있다. 스티브 이후의 애플의 역사를 이 책으로 쉽게 훑어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의 38개 주와 D.C.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만큼, 이 책에서 언급하는 팀 쿡의 성적 성향을 이용한 다양성 옹호에 대해서는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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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앞도적 성과
쿡은 잡스의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의 시기를 잘 헤쳐나가도록 애플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갈등을 조성하거나 드라마를 연출하는 몇몇 간부를 떠나보내고, 각기 ‘사일로Silo(회사 안에 담을 쌓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부서)’처럼 따로 놀던 팀 간에 교차 협력이 원활해지도록 조처했다.
1장 스티브 잡스의 죽음
만약 쿡이 그런 중차대한 시기에 차분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애플은 잡스의 죽음 이후 훨씬 더 일하기 힘든 직장이 되었을 것이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애플의 직원들은 쿡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고 있었다. 조스위악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그는 초기에 부당한 비판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 세상 사람들은 그를 스티브에 비유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 스티브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참으로 영리한 친구지요. 누구도 스티브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대신에 그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주력했습니다.”
2장 남부 시골 소년의 세계관
부모가 신을 믿었기에 쿡 역시 자연스럽게 신앙심을 키웠다. 그는 사회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내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곤 했다. “어린 시절 침례교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가 2015년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의 신앙심이 친절하고 관대한 리더의 페르소나(지혜와 자유의사를 갖는 독립된 인격적 실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블룸버그》 기고문을 통해 자신이 게이임을 밝혔을 때도 그는 신을 언급했다. “나는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신이 내게 준 큰 선물이라고 여긴다.” 비록 요즘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로버츠데일에는 미국 남부 도시의 전형인 고풍스러운 매력과 친절이 넘쳤지만, 인종차별주의라는 불쾌한 저류도 흐르고 있었다. 쿡이 어린 시절 로버츠데일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은 그의 세계관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평등을 특히 강조하는 그의 태도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앨라배마주 하원의원 퍼트리샤 토드Patricia Todd는 쿡이 어린 나이였던 그 시절에 KKK단이 활발하게 활동했을 뿐 아니라, 요즘에도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쿡은 다른 곳에서나 애플에서 경력을 쌓는 내내 그 나름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2015년 조지워싱턴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비록 수차례 시험을 거치긴 했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애플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5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전미공공정책연구센터National Center for Public Policy Research, NCPPR의 한 연구원은 쿡에게 지속가능성 지향 프로그램이 애플의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쿡은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우리의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안을 고민할 때, 나는 빌어먹을 투자자본수익률Return On Investment, ROI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애플의 환경 구상이나 근로자 안전 등의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오직 ROI만을 보고 일을 진행해주길 원하는 사람은 우리 회사 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면 됩니다.” 그는 이렇게 단호한 어조로 딱 잘라 말했다. 이후 NCPPR은 쿡의 입장을 매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늘의 회합 이후 투자자들은 애플이 실로 엄청나게 많은 주주의 돈을 이른바 기후변화와 싸우는 데 낭비할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쿡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원칙을 고수했다.
3장 ‘빅 블루’에서 사업을 배우다
쿡이 IBM에 들어가 제일 처음에 한 일은 JIT 방식의 복잡한 모든 내용을 속속들이 배우는 것이었다(그는 훗날 이 지식을 활용해 애플의 생산 프로세스 전반을 정비한다). 그에게 맡겨진 첫 번째 직무는 제품 조립라인에서 쓸 부품의 조달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PC를 만들기에 충분한 부품이 공장에 항상 구비되어 있도록 관리하는 그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힘든 직무였다.
컴팩은 또한 ODM을 통해 제조 파트너들에 재고 비용을 이전할 수 있었다. 제조 파트너는 주문을 접수한 후에만 완성 제품을 배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컴팩은 팔려나갈 때까지 오랜 시간 제품을 쌓아둬야 하는 대형 창고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쿡은 컴팩의 ODM 채택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런 그의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잡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쿡은 컴팩과 위탁생산업체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뛰며 ODM 체계로의 전환을 성공시켰다.
4장 파산 직전 회사에서 맞이한 일생일대의 기회
쿡은 본래 분석적 사고의 소유자였을지 모르지만 잡스의 열정과 오라는 처음부터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첫 면접 자리에서 나는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경계심이나 논리 따위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애플에 합류하고픈 마음에 휩싸였지요.” 쿡의 말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애플에 합류하는 것이 창의적인 천재와 일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의 직감은 더 이상 정확할 수 없었다. 2010년 오번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말했다. “애플에서 일하는 것은 제 스스로 짜보았던 어떤 계획에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조달 업무에 잔뼈가 굵었던 쿡은 당시 애플에 최고로 적합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잡스에게도 아주 잘 어울렸다. 쿡을 만나자마자 잡스는 제조를 보는 둘의 눈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우리는 서로 시각이 같아서 고도로 전략적인 수준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었지요.” 잡스가 생전에 한 말이다. 잡스는 많은 부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파트너를 얻은 셈이었다.
쿡이 장악한 새로운 체제의 만트라는 ‘재고는 적을수록 좋다’였다. “창고가 있으면 재고가 쌓이기 마련이지요.” 쿡이 한 말이다. “우리는 제조 공장에서 고객에게 곧바로 배송하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어요.”
잡스가 조잡한 디자인을 경멸하는 것 못지않게 쿡은 과도한 재고를 증오했다. 심지어 그는 과도한 재고가 회사의 재정을 좀먹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도덕적 관점에 투영해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재고관리가 이상적으로 이뤄지려면 판매량에 대한 사전 예측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애플은 그 부분과 관련해 그리 자랑스럽지 못했다. 각기 다른 시점에 판매량을 너무 적게 또는 너무 많게 예상해 낭패를 본 길고도 슬픈 역사가 있었다.
쿡은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SAP에서 개발한 최첨단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 ERP 시스템을 도입해 애플의 부품 공급업체와 조립 공장, 그리고 전매업체의 IT 시스템을 서로 연결시켰다. 이 복합 시스템 덕분에 쿡의 운영팀은 원자재에서부터 얼마 전 신설한 온라인 스토어의 고객 주문에 이르기까지 전체 공급망에 대한 극도로 상세한 조감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R/3 ERP가 애플의 새로운 린 방식인 JIT 생산의 중추 신경망이 된 것이다. 부품은 필요할 때만 공급업체에 주문했고 제품은 즉각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정도만 생산했다.
쿡은 추수감사절에서 신년 초에 이르는 그 중요한 축제 시즌에 고객에게 컴퓨터가 시기적절하게 배송되도록 1억 달러 상당의 항공화물 공간을 수개월 앞서 미리 예약했다. 이 전례 없던 조치는 애플에 큰 성과를 안겨주었다. 덕분에 애플은 제품을 빠른 속도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한편, 컴팩과 같은 경쟁사는 갑작스러운 선적 공간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선적 공간을 예약하는 애플의 새로운 접근은 여타 기업에게도 자체의 사업 운영 전략을 재고하도록 이끌었다. 쿡은 그렇게 애플의 사업 운영을 개선했을 뿐 아니라 기술 업계 전반의 생산 프로세스 관리와 해당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까지도 바꿔놓았다.
5장 아웃소싱으로 애플을 구하다
쿡은 직원들에게 엄청난 양의 세부사항을 요구했다. “직원들은 그와 미팅하는 순간을 두려워했어요.” 당시부터 쿡의 운영 그룹을 속속들이 알았다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D열의 514행에 적힌 이 변화량은 무엇인가요? 그런 변화가 생기는 근원이 무엇인가요?’ 이런 식으로 질문합니다. 만약 담당자가 세부사항을 모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신랄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애플의 하드웨어 그룹에 속한 한 관리자는 쿡이 주도하는 회의를 우연히 엿들었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순간 직원 한 명이 쿡이 알고 있던 수치 하나를 틀리게 제시하자, “그 숫자가 맞아요? 여기서 나가세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쿡은 애플에 입사해서 12년 동안은 비교적 조용히 경력을 쌓았다. 잡스는 항상 홍보의 전면에 나섰고 조너선 아이브를 비롯한 주요 인물은 그 나름대로 대중적 이미지를 관리했지만, 쿡은 익명성에 감사하며 애플의 비밀스러운 커튼 뒤에 숨어 지냈다. 그런 쿡의 상황은 잡스가 간 이식 수술로 어쩔 수 없이 6개월간 병가를 내면서, 처음으로 임시 CEO 역할을 맡았던 2009년 1월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잡스의 병세가 악화되어 쿡이 CEO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조차 그는 뭇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쨌거나 잡스가 여전히 회사의 얼굴 역할을 수행하리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6장 스티브 잡스를 대체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의 환경 및 노동 정책 담당 부교수인 다라 오로크Dara O’Rourke는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쿡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공론화한 부분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점에 대해 팀 쿡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평판 관리 전문가인 노스웨스턴대학 교수 대니얼 디어메이어Daniel Diermeier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물론 언론의 비난이 쿡에게 행동하도록 자극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의 지위를 적절히 활용해 긍정적인 변화를 갖는 기회로 삼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필경 이런 문제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타의 경영인보다는 더욱 사적인 감정으로 이 문제를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애플의 공장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노동 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해 3월 말 그는 중국 정저우鄭州로 직접 날아갔다. 12만 명의 직원이 있는 신설 폭스콘 조립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직원이 아이폰 조립에 투입된 공장이었다. 애플은 조립라인을 시찰하는 쿡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 사진은 곧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쿡이 공급망 관리에 그렇게 깊이 관여하는 건 사소한 사건이 아니었다. 잡스는 조립라인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냉소적인 블로거 다수는 이미지 관리용 촬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전반적으로는 애플과 폭스콘이 노동 환경 개혁에서 상당 부분 진전을 이루었다는 것이 FLA 보고서의 골자였다. FLA는 몇몇 항목의 경우 마감 시한이 15개월로 늘었지만, 이미 애플과 폭스콘이 권장 개선책 가운데 284가지 항목을 예정보다 이른 시간에 구현했다고 보고했다. FLA의 오렛 밴 히어든Auret van Heerden CEO는 성명서에서 “보건 및 안전의 개선 등 시급한 조치가 필요했던 변화는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 우리의 검증 결과”라고 밝혔다. “우리는 애플이 폭스콘에 인턴 프로그램을 개혁하겠다는 약속 이행을 포함하여 행동 계획을 책임감 있게 준수하도록 실사를 수행해왔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이렇게 쿡은 CEO로 재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공급업체의 책임의식 측면에서 잡스가 재임한 전체 기간에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개선을 이끌어냈다. 그는 2012년 초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우리 업계에서 애플처럼 근로자를 위해 환경 개선에 열중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껏 애플은 공급망을 개선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따금씩 발생하는 노동운동가들과 관련 단체로부터의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많은 사람이 애플 정도의 파워와 이윤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거니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공급업체 공장들의 노동 환경이 여전히 비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애플 공급망의 끔찍한 노동 환경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도체 하나의 목숨 값을 구하라」의 제작자로 뉴욕에서 활동한 헤더 화이트Heather White는 가장 혹독하게 정곡을 찔렀다. 그녀는 도대체 애플이 왜 중국에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은 공정한 노동 관행과는 거리가 먼 전력으로 악명이 높은 데다, 억압적이고 부패한 정권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냐는 것이다. “전자제품 업계에 종사하는 기업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자신들이 웹사이트에 올린 자사의 윤리강령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또 실로 주주들에게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중국을 떠나는 것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그녀는 이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애플과 쿡이 그들의 윤리강령을 진정으로 준수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결사의 자유와 노동권을 보장하도록 독려하고 보건과 안전 기준 위반을 엄중히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쿡의 CEO 재임 첫해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근로 여건이 끔찍한 폭스콘과의 관계는 한때 애플에 치명상을 입힐 만큼 비판을 모으기도 했다. 여기에 인사 문제에 대한 그의 대담한 결정은 도마에 올랐으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신제품은 고스란히 비난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폭스콘 문제에서만큼은 전반적으로 훌륭히 대응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공급망을 개선하는 데 갈수록 많은 재원을 투여했기 때문이다. ‘패스Path 스캔들(패스 앱이 비밀리에 유저의 데이터를 업로드한 사건)’ 이후 애플의 프라이버시 보호 강화 정책도 크게 인정받았고, 갈수록 애플의 신제품은 이류로 전락할 거라는 초기의 우려도 깨끗이 불식시켰다. 새로운 아이폰 출시가 초대형 흥행을 연출한 것이다.
적잖은 우려와 달리 애플은 잡스가 떠난 후에도 실패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오히려 쿡은 회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세상은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 2012년 12월, 쿡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었다.
쿡이 CEO로 취임한 지 정확히 만 1년이 된 8월, 주가는 역대 최고치인 665.15달러를 기록하며 시가총액 6229억 8000만 달러가 되었다.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운 기록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그때까지의 상장기업 가운데 최고로 높은 시가총액이었다. 아이폰의 질주는 미친 듯이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했고, 월스트리트가 그 점을 놓칠 리 없었다. 애플이 역사상 최대 상장기업이 된 순간이었다.
7장 신제품 대히트로 의구심을 떨쳐내다
대학에서 코딩을 배운 쿡은 기회만 되면 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외국어보다 코딩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러한 내 생각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딩은 글로벌 언어입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70억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지요.” 또 한 번은 이렇게도 말했다. “코딩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꿀 능력을 줍니다. 내 생각에 코딩은 가장 중요한 제2의 언어이자 유일한 글로벌 언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쿡은 사람들에게 코드 작성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머지않아 출범한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다Everyone Can Code’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그 노력의 결과다(10장 참조). “우리는 하드웨어 측면뿐만 아니라 개발자의 도구로서도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도구가 훌륭해야 그들이 최상의 방법으로 하드웨어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2017년 초 《인디펜던트Independent》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당시 스위프트 도입과 관련해 그가 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코딩 소프트웨어인 스위프트의 핵심적인 존재 이유입니다. 이 언어를 만든 우리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코딩을 배워 최신의 하드웨어를 보다 잘 활용하기를 희망합니다.”
코딩을 이렇게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애플에도 일면 도움이 됐다. 스위프트는 애플의 플랫폼용 앱 개발자들 사이에서 갈수록 인기가 높아졌고, iOS와 맥을 위한 앱이 많아질수록 그만큼 애플에는 더 이로워지기 때문이다.
2013년과 2014년, 쿡은 애플의 신임 리더로서 역할을 더욱 굳히기 위해 새로운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 흥미로운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한편 아이폰을 가차 없이 혁신하며 애플워치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014년 11월 말 애플의 시가총액은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구글보다 두 배나 많았고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기업인 엑손모빌을 3000억 달러나 따돌린 액수였다. 쿡이 잡스를 대체하고 애플을 훨씬 더 대단한 성공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이제 진정으로 땅속에 묻히고 있었다.
8장 그린, 그린, 그린
2009년 애플은 아이폰 3GS를 출시하면서 ‘최초로 PVC와 브롬계 난연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플은 그 후로도 수년간 그린피스가 눈여겨보는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성공 덕분에 회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2009년 6월 그린피스는 분기별로 발간하는 「전자제품의 환경친화 가이드」에서 “PVC와 브롬계 난연제의 허용 한도를 부당하게 높게 잡아놓고는 제품에 그것들이 없다고 주장한다”라며 또 한 번 애플을 비난했다. 애플이 없앴다고 말한 물질이 실제로 제거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공급업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아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오늘날 애플은 쿡의 지침에 따라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화학물질을 포함해 모든 부품과 부품의 하위 구성요소까지 엄격한 사양을 갖추도록 철저히 감사하고 있다). 또한 그린피스는 재활용 플라스틱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애플의 노력에 낮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다만 그해 12월에 발간한 그린피스 가이드에서는 애플의 순위를 몇 계단 올려주었다. 케이블을 제외한 모든 제품에서 PVC를 없애기 위해 공을 들인 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재생에너지의 사용을 늘린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향후 그린피스는 환경을 둘러싼 애플의 고민 가운데 가장 미미한 걱정거리가 되고 만다.
환경에 대한 쿡의 지대한 관심은 그가 애플에서 취한 이니셔티브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애플의 환경 정책과 지속가능한 접근 방식을 하나둘 개선하기 시작했다. 쿡이 CEO가 되고 몇 주 뒤, 사업운영팀의 고위 간부인 빌 프레더릭Bill Frederick은 워싱턴 D.C.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천연자원보호협의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의 소속 환경독성학자(인위적인 화학물질이 환경에 유입될 경우 그것이 생태계에 어떤 독성을 일으키는지 연구하는 학자)인 린다 그리어Linda Greer에게 개선책을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프레더릭은 잡스가 경영하던 시대에 애플은 환경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업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회사의 경영진이 공급업체를 보다 꼼꼼하게 감시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확언했다. 애플은 NRDC에 미팅을 요청했고, NRDC는 함께 일하기 시작한 마 준도 참석하는 조건으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애플의 경영진은 그들의 영향력을 ‘선하게’ 사용해 클라우드를 재생에너지로 돌아가게 하라는 수십만 명의 목소리를 아직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린피스USA의 전무이사 필 래드퍼드Phil Radford가 항의 시위와 관련해 언론에 한 말이다. “우리는 애플의 고객으로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석탄의 더러운 스모그에 휩싸인 아이클라우드를 사용할 마음이 없습니다.”
잡스의 리더십 아래서 이런 종류의 시위는 가볍게 무시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쿡의 지휘로 의식과 자각을 일깨우던 애플은 빠르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불과 이틀 만에 성명을 발표해 2012년 말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세울 데이터센터의 동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애플은 이미 100에이커 규모의 면적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양의 에너지는 석탄으로 전기를 만드는 듀크에너지Duke Energy에서 구입하고 있었다. 애플은 해당 지역의 재생에너지 공급업체로부터 대체에너지를 조달하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캘리포니아주 뉴어크Newark에 있는 다른 데이터센터에서도 2013년 초부터는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린피스는 애플의 노력을 칭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오늘 애플의 발표는 청정에너지로 작동하는 아이클라우드에 대한 수십만 고객의 요청을 애플이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커다란 신호다.” 그런데도 그린피스는 모든 데이터센터에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약속하는 날까지 관련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고객은 아이클라우드가 성장할수록 환경이 더 깨끗해질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아이폰에서 수거한 재활용 알루미늄은 그 품질이 매우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종종 공급업체에서 들여오는 원자재보다 품질이 우수할 정도다. 원자재는 품질이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애플은 알코아앤드리오틴토알루미늄Alcoa and Rio Tinto Aluminum과의 협업으로 온실가스의 배출을 제거하는 알루미늄 제련 방법을 고안해냈다. 애플은 그것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금속을 제조하는 방법에서 거둔 혁명적인 진보”라고 일컬었다. 그 방법을 이용하면 캐나다에서만 연간 65억 톤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었다.
알루미늄은 1886년 알코아코퍼레이션Alcoa Corporation의 설립자인 찰스 홀Charles Hall이 개척한 방식으로 130년간 동일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이 방식은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자연 발생한 산화알루미늄에 강한 전류를 흘려보낸다. 이 과정은 탄소 재료로 바닥을 두른 큰 용광로에서 진행되는데, 전극 역할을 하는 바닥의 탄소 재료들이 타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오늘날 산업 부문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21퍼센트에 달한다.
9장 사법 당국과 싸워서 이기다
애플은 2014년 9월 iOS 8을 출시하며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기능을 한층 더 강화했다. 더불어 법 집행 기관이 요청한다고 해도(심지어 영장을 들고 오는 경우에도) iOS 기기의 잠금 해제를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은 새로운 개인정보 취급 방침도 발표했다. 영리하게도 애플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iOS 기기 데이터에 대한 암호화 방식을 교묘하게 변경했다. 미국 정부가 군사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시스템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고객의 iOS 패스코드에 기기별로 고유한 일련의 비밀번호를 결합시켜 암호 키를 생성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생성된 암호 키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애플에서도 소유자의 패스코드 없이는 데이터를 해독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법원에서 애플에 정부 기관의 요구에 응하라고 명령해도 기기를 잠금 해제하거나 보호된 백업을 열 수 있는 방도가 사라진 것이다.
애플의 암호화 기능은 2015년 9월 iOS 9이 출시되면서 보다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전까지는 유저가 기기에 설치한 모든 것을 완벽히 보호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 또한 iOS 9은 광고와 쿠키Cookie(특정 웹사이트에 방문했을 때 만들어지는 임시 정보를 담은 파일) 그리고 iOS의 웹브라우저인 사파리Safari의 데이터 수집 도구 등을 유저가 더욱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콘텐츠 차단 기능도 지원했다. 그보다 3개월 전에는 쿡이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Electronic Privacy Information Center, EPIC의 ‘자유의 투사상Champions of Freedom Awards’을 수상한 재계 최초의 리더가 되었다. 그는 EPIC 시상식의 디너파티 연설에서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기본권으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라고 재천명했다.
세상 사람들은 언론의 집중 포화를 헤쳐나가는 애플을 보며 어떤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사실 쿡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대중이 개인 보안과 프라이버시, 암호화 등에 관해 더 잘 알게 되기를 원했다. 익명을 요구한 홍보 담당자는 “많은 기자가 애플의 새 얼굴, 애플의 새로운 버전을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팀 쿡의 결정으로 그렇게 된 겁니다. 예전의 우리와는 아주 달랐지요. 하루에 서너 번씩 업데이트한 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낸다? 잡스 시절의 애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0장 다양성에 승부를 걸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이러한 사적인 주제에 무게를 두고, 그 발표가 애플의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하는 게 다소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게이라는 걸 공개하기로 한 쿡의 결정은 주가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만큼 잠재력을 보유했으며,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 반응을 궁금해했다. 다행히도 투자자들은 팀 쿡이 그런 발표를 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능력 있는 CEO라는 데 표를 던졌고, 그 결과 주가에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는 팀 쿡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와 애플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 결과였다. “애플이 보여준 재정적 성과와 눈부신 신기술만으로도 그 강철 같은 CEO가 2014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미스터 쿡은 자신의 가치관을 용감히 피력하며 독보적인 후보가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팀 브래드쇼Tim Bradshaw와 리처드 워터스Richard Waters가 내놓은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쿡이 ‘잡스 없는 애플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일각의 불신과 투자자들의 공격을 침착한 태도로 이겨낸 데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또한 다양성과 지속가능성, 공급망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헌신한 점 모두 무척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성 지향성을 공개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2013년 11월 쿡은 CEO가 되고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논평을 기고했다. 「평등성을 갖춘 일터가 비즈니스에 이롭다」라는 제목의 이 기고문은 ‘인종과 성별, 국적, 성 지향성 등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을 환영하는 안전한 직장’에 대한 쿡의 헌신을 재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애플의 CEO가 되기 오래전부터 근본적인 진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인정받을 때, 보다 기꺼이 헌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을 고용할 때 성 지향성이나 성 정체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행태를 금지하는 ‘고용차별금지법Employment Nondiscrimination Act’의 지지를 상원에 촉구했다. “게이나 레즈비언이 직장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에 대해 법이 계속해서 침묵하는 한, 국민으로서 사실상 우리 모두가 그들의 차별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의회는 고용차별금지법을 승인하여 그러한 편협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법안은 2013년 11월 말 찬성 64표, 반대 32표라는 높은 지지로 상원을 통과했다.
“애플의 제품이 실로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엔지니어와 컴퓨터공학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술가와 음악가도 있지요. 바로 그런 공학과 인문학의 교차가 마법과도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근원입니다.”
“우리는 소수집단의 구성원이 애플에서 생애 첫 일자리를 얻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당시 애플의 포용성 및 다양성 부문 책임자였던 영 스미스가 한 말이다. “우리는 포용성과 다양성 없이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하며, 이런 식의 교육 투자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2017년 12월에 발표한 연례 포용성 및 다양성 보고서를 살펴보면, 회사에 여성 직원의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플은 30세 미만의 직원 가운데 36퍼센트가 여성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 5퍼센트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증가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 직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2퍼센트였다. 간부급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29퍼센트였으나, 30세 미만만 놓고 보면 39퍼센트에 달했다. 애플이 30세 미만의 데이터를 따로 도출한 까닭은 그들이 회사의 ‘젊은 피’로서 애플의 미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다 젊은 친구들이 새로 합류하면서 회사는 천천히 그 다양성을 높여가고 있다.
11장 로봇 자동차와 애플의 미래
프로젝트 타이탄은 애플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다. 결과적으로 쿡은 애플과 같은 기능 위주의 조직에서 그 기본을 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너무 많은 수의 외부인을 너무 급속히 끌어들인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애플은 1000명이 넘는 외부 자동차 전문가를 고용해 2~3년 사이에 그 대부분을 정리 해고했다. 애플은 프로젝트가 보다 유기적으로 자라나도록 조처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만 성장시켰다. 어쨌든 프로젝트 타이탄이 결국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건축 및 디자인 전문 작가 앨리슨 아리프Allison Arieff는 애플의 새로운 캠퍼스가 주거 지역이나 대중교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녀는 왜 하필 지옥 같은 출퇴근길로 악명이 높은 지역에 그런 고충을 더할 사옥을 지어놨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고립된 교외 지역에 캠퍼스를 세우면 직원들의 통근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물론, 같은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교통난도 극심해진다. 애플 캠퍼스는 그런 측면에서 이 나라 최악의 사례에 속한다.” 이렇게 쓰고 나서 그녀는 그 건물이 사무 공간과 동일한 정도의 면적을 주차 공간으로 만들어놓고는 보육 시설은 단 하나도 설치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그녀는 애플 캠퍼스를 1950년대 교외 업무단지와 비교하면서, 왜 애플이 보다 전향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해했다. “기존 규범의 파괴를 가장 중시하는 집단에서 왜 이런 수십 년 전의 사무실에 국한된 패러다임을 집요하게 존속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12장 애플 역사상 최고의 CEO
그는 커밍아웃을 통해 소외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성 지향성과 성 정체성에 당당해질 수 있도록 앞장섰다. 게이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를 유능하게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는 가능한 한 다양한 원천에서 인재를 찾기 위한 이니셔티브도 출범시켰다. “미국 최고의 기업은 가장 다양한 구성원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그의 말은 진정으로 옳았다. 애플은 보다 다양한 인력을 보유하기 위해 중대한 길에 올라섰다. 비록 느리게 진척되고 있지만, 2017년에 애플이 미국에서 고용한 인력 중 절반이 소수집단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꽤 고무적이다.
쿡은 ‘잘하면서 동시에 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기업이란 사람들을 같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쿡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는 기업이 상업적인 것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기업은 사람들의 집합일 뿐이다. 사람이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면, 기업 역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애플은 쿡의 지휘 아래 세계에서 최초로 1조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지만, 그가 한 일은 그 이상임에 틀림없다. 그는 애플을 더 나은 회사로 만들었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Epic 3. 대학입학인가 삶의 준비인가?
이장에서 저자가 소개한 여러 학교 중, 노스캐롤라이나 주 올림픽 고등학교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 학교는 다섯 학과(1. 생물학, 보건, 행정학, 2. 경영 리더십 및 기업개발, 3. 기술, 창업 첨단제조, 4. 수학, 공학, 기술, 과학, 5. 예술과 기술)이라는 5가지 직업학교로 나뉘어져 있다. 세상에는 수 많은 직업이 있으며, 세상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장 유무가 사회적 차별인식을 뿌리뽑고 능력으로서 평등한 위치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인식이 퍼져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고등학교는 40곳과의 지역 기업과 협업 관계를 맺어 일찍이 학생들에게 단순 직업 체험이 아닌 관심이 있는 직업에 대한 훈련과 멘토링을 통해 동기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사회적으로는 직업의 의미와 자신들이 하고 싶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목적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느꼈다. 즉, 대학입학이 목적이 아닌 삶 자체를 준비하는 교육시스템인 것이다.
토저의 기도(http://blog.naver.com/neobarabbas/221865406298)에서는 기도라는 주제로 바로 다이빙을 하는 반면, 팀 켈러의 기도에서는 기도를 정의하려고 노력하며, 여러 종교에서 사용하는 기도들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들에 대해 Bench Marking을 하며, 형식이 있음을 알아본다. 그리고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기본 원리원칙 제시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열심을 낼수록 나의 내면과 실생활이 풍성해지며, 게을리할수록 내 삶은 빈궁을 경험하게 된다.
별점: ★★★★★
J.I 패커와 캐롤린 나이스트롬이 쓴 기도에 관한 책에는 이 모든 내용을 멋지게 함축하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 찾기." 기도란 그런 여정이다.
기도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과 이웃보다 성공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은 심령에 각질을 입혀 감정과 감각을 떨어트린다.
기도는 또 다른 존재와 함께일 때만 가능하다. 그 존재는 하나님이시며 대단히 독특한 분이다. 그분께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준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믿고 다가가 부르짖게 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 영과 나란히 동행하면서 더 많은 증거들을 더하여 보여주신다.
크리스천은 주님과 실감 나는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수 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벧전 1: 8, 새번역)"
그러므로 기도를 배워야 한다. 우선, 몇 달에 걸쳐 시편을 통독하면서 한 편 한 편 요약하고 정리했다.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내 마음과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평온한 경험뿐 아니라 악을 밟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기 위한 힘겨운 씨름도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다.
기도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에베소서 1장 15-19절에 있는 기도를 빌립보서 1장과 골로새서 1장, 그리고 에베소서 3장의 간구와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바울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장면을 금방 포착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2장에 바울은 독자들에게 평화를 위해, 선량한 정부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예수님과 달리 보편적인 기도 모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동료 크리스천들에게 주실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한 가지를 끊임없이 구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님을 더 잘 아는 것'이었다. 바울은 크리스천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이나 상황에 토대를 두고 내면생활을 가꿔 간다. 남들의 평가, 사회적 지위, 물리적인 번영, 성과 등에서 내면의 평안을 찾는다. 크리스천도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딛고 서지 않으면 크리스천들 역시 "세상이 그렇다고 장담하는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성공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행복과 불행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정체성까지 시대가 제시하는 견적에 맞출 게 틀림없다.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기 직전,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5-6절을 비롯해 몇 가지 사전 아이디어를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데서 이뤄지는 개인적인 기도 생활이야말로 영적 상태를 족집게처럼 진단해내는 영적 시험지다.
사사로운 기도 생활을 풍성하게 가꾸지 않아도 공적으로는 현란하며 신학적으로 견실하고 열성적인 기도를 드리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분과 더불어 대화하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특징만큼 흉내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은밀히 드리는 개인적인 기도와 공적인 기도는 나란히 깊이를 더해 가게 마련이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곧 인간의 삶 가운데 미치는 하나님의 손길과 영광이 크고 넓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 진리를 증언하는 길고 긴 간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로 백성들을 고쳤으며,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변질되고 타락했음을 통렬히 비판하는가 하면, 오로지 기도로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주님은 시시때때로 자주 뜨겁게 부르짖으며 눈물로(히 5:7) 기도하셨으며 더러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셨다. 성령이 내리고 임한 것도(눅 3:21-22),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용모가 변한 것도(눅 9:29) 모두 기도하실 때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더없이 큰 위기 앞에서도 주님은 기도하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는 제자들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고(요 17:1-26)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하며 숨을 거두셨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기도는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이 마음에 들어오셨음을 보여 주는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기도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신앙이나 기도가 완전히 배제된 문화를 찾아보려 안간힘을 써 본들 백발백중 허사로 돌아갈 따름이다. 아주 외전 곳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부족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사이의 소통"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상존하게 마련이다. 인간의 내면에 기도하고자 하는 본능이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것을 '하나님을 향한 불치의 향수병'이라고 불렀다.
북미 원주민 샤먼은 의식 중에 곧잘 황홀경에 빠지고,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찬트를 음송하며, 맨하튼 사무실에서는 수행자들이 요가에 열을 올리고, 17세기 청교도 사역자들은 몇 시간씩 목회기도를 드렸으며,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에게서는 방언기도를 흔히 볼 수 있고, 무슬림들은 이마와 양손, 두 무릎과 두 다리를 땅에 대고 메카 방향으로 엎드려 수주드를 행하며, 하시딤은 몸을 앞뒤로 흔들고 절하며 간구하고, 성공회 사제는 공동기도서를 낭송한다.
신비적인 기도에는 "신이 보이는 높이까지 오르고 또 올라서 마침내 그 거룩한 존재와 하나가 되는" 길고 긴 '정화' 절차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배자가 순수한 사랑에 도달해서 신 앞에 나서기에 적합한 자격을 얻는 과정인 셈인다. 그러나 예언자들과 시편 기자들의 경우, 기도는 자신을 정화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주님의 은혜에 기대는 일이었다. 인류가 찾아내거나 이뤄 낸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내면에서 행하시는 역사라는 뜻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은 간혹 믿지 않는 이들의 기도에도 흔쾌히 응답하신다"라고 했다. 니느웨 사람들(요나서 3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악한 왕 아합(왕상 21:27-28)의 부르짖음에까지 귀를 기울이셨던 사례만 보더라도 주님께 그래야 할 무슨 의무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백 퍼센트 그분의 '긍휼'과 '주권적인 자비'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런 점들ㅇ르 종합해 보면, 기도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인격적으로 소통하는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록 허공에 대고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몸짓에 그치더라도, 기도는 바로 그 존재와 실재에 닿고 또 반응하기를 추가하는 행위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반응'으로 기도를 규정하는 한, 그 지식의 진량과 순도에 다라 기도는 변화무쌍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님을 통해 거듭나는 순간(요 1:12-13, 3:5), 주님은 우리에게 그저 하나님의 피조물에 그치지 않고 자녀의 신분이 되었으며 하늘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음을 알려 주신다(갈 4:5-6).
크리스천들은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된 성경과 그 중심 메시지인 복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공급받는다.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인 성경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로 반응(그저 ‘반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기는 하지만) 할 수 있다. 성경 말씀과 성령님 덕에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답변’이 될 수 있다. 온전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가장 온전한 의미의 기도란 어떤 것일까? 기도란 하나님이 거룩한 말씀과 은혜로 시작하신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가서 마침내 주님과 온전히 만나는 단계에 이르는 일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실해질수록 기도는 더 풍성해졌으며 변화의 폭이 인생 전반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기도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또는 기교가 아니라 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비극이다
성령님의 선물로서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대화로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화가 진전되고 무르익으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발전한다. 일생 속에 하늘나라가 이뤄지는 셈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기도 패턴에는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시 86:11-12)라는 고백과 함께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기까지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과정이 어김없이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성경을 통해서다. 성경은 기록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도를 하려면 먼저 성경을 펴고 그 간구를 들으신 분에 관해 배워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깨달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된다.
하나님이 초점임을 아는 이들이 드리는 기도가 가능하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만 아니라 … 그분에 대한 교리와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일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경과 기도는 한 덩이가 되어 크리스천을 참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준다.
마르틴 루터는 누구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가선’ 안 되며 그랬다간 기도를 하면서도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는지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고 못 박아 말한다.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성령님이 마음에 역사하신다. 미리 뜻하신 이들의 마음에 미리 뜻하신 방식으로 역사하시지만 말씀 없이는 결코 일하지 않으신다.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제각기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고 전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 경이로움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말과 감탄사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패커는 말한다. “침묵기도는 기도의 정점이 아니라 … 말로 드리는 간구 사이사이에 찍힌 쉼표와 같다.
크리스천이 드리는 기도라 할지라도,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 응답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기도하면서 알아 가고 싶은 미지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이스라엘의 역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잘 알려진 하나님께 아뢰는 것 사이에는 또렷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제 입맛대로 신앙적인 성취를 탐닉하지만, 후자는 순종하는 믿음을 행동에 옮긴다. 기도의 핵심은 자기표현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답하는 법을 체득하는 데 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걸 확인할 길이 없다.
그들은 믿는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집’, 즉 ‘살아 있는 돌들로 지은 성령님이 머무시는 성전(벧전 2:4-5, 엡 2:20-22)’이 된다.
다윗은 왕좌에 앉히고 집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고 나서 기도할 마음을 찾았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그보다 무한정 더 크고 위대한 약속을 이미 받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그저 집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을 좇는 이들 하나하나로 그분의 집을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임재와 아름다움, 영광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할 때마다 크리스천의 가슴에는 그 엄청난 약속의 말씀이 사무치고 번번이 기도할 마음을 찾을 것이다.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티머시 워드는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주셨던 말씀,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주님을 만나는 으뜸가는 길임을 강조한다.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공급받는 관계에 들어간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따라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서슴없이 아버지 품으로 달려갈 수 있다. 기도는 이처럼 친밀한 관계와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느끼고 누리는 방법인 동시에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토대로 평안하고 기운찬 삶을 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4-16).
기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하나님이 원만하게 이끌고 계시며, 나쁜 일들도 결국은 유익한 열매를 맺으며, 좋은 선물들을 결코 가둬 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멋진 미래가 찾아오리라는 점을 또렷이 확인 시켜 주는 중요한 도구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신다(딤전 2:5, 히 8:6, 12:24). 이제 크리스천들에게는 궁극적인 중보자요 지극히 높으신 대제사장이 생겼다(히 4:14-15). 커다란 간격을 없애서 주님과 친구처럼 사귈 수 있게 하신 것이다(출 33:11 비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요 14:13-14), 15:16, 16:23-2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건 … 그분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 창조주와 소통하는 외길임을 인정하고 간구한다는 뜻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화해시키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셨다.
인생만사가 순조롭게 심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안전하다 싶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것저것 해 달라고 간청하는 데 큰 몫의 시간을 할애하고 가물에 콩 나듯(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 때) 죄를 고백한다. 오랜 시간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경우는 드물거나 전혀 없다. 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 계시다는 걸 알지만 무언가를 얻어 내거나 행복해지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대부분은 그분을 행보 그 자체로 삼지 않는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감수하신 크고도 놀라운 희생을 깨닫고, 소망의 대상을 물질에서 그리스도로 바꾸며, 예수님께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유익과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섬기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아는 참되고 거룩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제대로 된 아빠 엄마 밑에서 자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중얼거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엄연하게 말해서 ‘제대로 된’ 부모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거스틴과 루터, 기도를 말하다
어거스틴은 무얼 어떻게 기도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첫 번째 원리로 내세운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요소들이 엉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지 않았는지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장 큰 사랑을 드리는 게 마땅하지만 주님을 막연히 의식하기만 할 뿐, 실질적으로는 그분의 은혜와 임재를 지상에서 누리는 번영과 성공, 지위, 애정, 또는 쾌락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어거스틴은 마음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그리스도와 동떨어져 황폐해진 상태임을 받아들이면 그때 비로소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이 제시하는 첫 번째 기도 원리를 받아들였다면, 세상이 주는 안락함과 보상이나 쾌락 따위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인 기쁨을 줄 따름이며, 거기에 마음을 둬 봐야 그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구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나님을 으뜸으로 사랑하며 그분을 알고 흡족하게 해 드리는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긴다면, 기도하는 제목과 방법은 두루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거스틴은 잠언 30장 8-9절 말씀을 본보기로 내놓는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어거스틴이 내놓는 세 번째 지침은 주기도문을 연구하며 구체적인 기도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네 번째 원리는 암흑기에 드리는 기도에 관한 것이다. “고난은 … 큰 유익을 끼칠 수 있다. … 하지만 고되고 아파서 … 시련을 거두시길 간청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건을 바꿔 주시길 구해야 할까, 아니면 견뎌 낼 힘을 청해야 할까? 어거스틴은 솔직한 소망(“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과 하나님을 향한 순종(“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가리킨다. 어거스틴은 마음의 소원을 쏟아 놓는 중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루터는 규칙적인 훈련으로 기도를 몸에 배게 하라고 조언했다. 하루에 두 번식 하나님과 만나기를 권했다.
크리스천은 감정을 떠나 반드시 기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마음을 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므로(에 3:41) 자발적으로 기꺼이 간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십계명이나 그리스도의 말씀 같은” 성경 본문을 혼자 읊조리는 이른바 ‘음송’을 추천한다. 루터는 이런 훈련을 통해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리며 … 기도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라고 했다.
묵상을 권유하면서 루터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는, 명령을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며 가르침, 즉 그 말씀을 주신 참뜻이 무엇인지 살펴 하나님이 무얼 요구하시는지 진지하게 고찰한다. 둘째는 그 깨달음을 감사로, 세 번째는 고백으로, 네 번째는 기도로 연결시킨다.
루터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도하기 전에, 주기도문의 간구를 한 구절 한 구절 끌어내어 기도하기를 권한다. 주기도문에 맞춰 저마다의 필요와 관심사를 다른 말로 표현하거나 개인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바탕에 깔고 기도하는 연습은 정신세계를 철저히 장악하게 해 주며 하나님께만 온 신경을 쓰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나라가 임하오시며”에 기대면 공동체와 사회, 인간관계 가운데 복음이 들어가 퍼지길 기도하게 된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최근에 저지른 죄와 실수를 열거한 목록에 눈길을 돌리게 이끈다.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를 하다가 선한 생각들이 샘솟는다면 다른 기도 제목들은 잠시 미뤄 두고 그런 생각이 마음에 깃들일 여지를 확보하라. 침묵 가운데 귀를 기울이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령님이 친히 말씀을 선포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보통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믿었다. 루터는 내면의 느낌을 하나님의 계시로 여겼던 조지 휫필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뜻을 전하신다.
칼뱅, 기도의 원칙을 논하다
칼뱅이 내놓는 첫 번째 기도 원칙은 ‘경외’ 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기도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관해 무얼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상대에게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불쑥 내뱉을까 봐 진심으로 염려하고 겁을 내는 것이다. 경외하는 마음이 깊은 까닭에 엉망진창이 되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아무 자격 없이 영원토록 한결같은 은혜를 받는 수혜자가 되었음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주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한다. 칼뱅은 이 경외감이야말로 기도의 핵심부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기도 원칙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의식은 허구를 몰아낸다”는 것이다. 열매 맺는 기도를 드리려면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에 무자비하리만치 정직해야 한다.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쓰는 ‘허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알고 회의와 두려움, 허무 따위를 솔직히 인정하며 그분 앞에 나와야 한다. ‘거지와 같은 성향’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허구’를 벗어 버릴수록 기도 생활이 그만큼 풍성하고 깊어질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원칙은 크리스천은 확신과 소망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확신과 소망을 품고 구하라. 그릇된 청을 드리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당연히 그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지혜로 그 결과를 조절하신다. 응답이 없거나 기대했던 답이 아니더라도 기도로 그의 큰 뜻 안에서 평안을 갖도록 하라.
다섯 번째 원리는 ‘원리’라는 단어의 한정적인 면을 설명하고 있다. 칼뱅은 말한다. “제대로 기도하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원칙에 관해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야 할 철칙이어서 완벽한 믿음과 회개가 없거나 열성이 부족하고 간구하는 내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단박에 물리쳐 버리시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점 흠 없이 올바르게 기도했던 이는 어디에도 없다. … 이러한 자비가 없다면 누구도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다섯 번째 원칙은 은혜의 원칙이다. 칼뱅은 크리스천들에게 원칙을 잘 따르면 응답받을 만한 가치를 얻는다는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하나님께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기도는 은혜로, 은혜를 좇아 빚어져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선물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었기에 행복한 두려움을 누리거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원칙은 크리스천이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의 속성(값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에 맞추어 조절하고 그리하여 주님과 점점 하나가 되게 만드는 수단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건 요술 주문 같은 게 아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든,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의 간구도 듣고 응답하실 수 있다. 짓눌려 사는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시는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그분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엄청난 권한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선한 행실에 기댈 게 아니라 주님의 청구권에 의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기도 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말하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크리스천이라면 존귀한 이름을 품은 존재로서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표하므로, 부름을 받은 그 호칭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선하고 거룩해질 힘을 주시도록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서 주님을 드높여 드리고 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게 되길 요청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그저 착하게 사는 차원을 넘어 늘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더 나아가 그 아름다움에 경이감을 품는다는 뜻이다.
“나라가 임하오시며”
왕이신 하나님이 감정과 욕구, 사상과 헌신을 비롯한 삶의 모든 영역에 왕권을 펼쳐 주시길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려 주셔서 온 마음을 다해 기쁨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생각이 가득하길 구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이 우리 가운데서 시작하신 나라의 완결과 완성”을 구하는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루터는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셔서 온갖 질병과 가난, 수치와 고통, 역경을 기꺼이 견디며 주님의 거룩한 뜻이 그 가운데서 우리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음을 알게 해 주소서”라고 풀이했다.
칼뱅은 어떤 환경이 닥치든 낙담하거나,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거나, 냉담하지 않도록 제 의지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하나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어거스틴이 여기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칼뱅은 일용할 양식에 관해 언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는 게 아니라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이 되는 것들을 구하라”고 강조하며 어거스틴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분만을 신뢰하는 마음가짐이 전제되어야 한다. 루터는 사업과 거래, 노동 시장에서 ‘가난한 이들을 짓밟고 하루하루 끼닛거리를 앗아 가는 악의적인 착취’에 대적하는 기도다. 루터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번영과 공정한 사회 질서를 갈구하는 간구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루터는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간구를 교만에 도전일 뿐 아니라, 영적인 실상에 대한 검증으로 규정했다.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쓰라린 상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다. 원한을 그대로 품고 있다면 스스로는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죄만큼은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구하는 위선과 마주칠 따름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어거스틴은 이 간구를 두고 “이는 시험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시험에 끌려들어 가서는 안 된다는 기도다”라고 구분 지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시험에 들지 않게”(마 26:41)는 죄에 굴복할 가능성이란 개념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원문은 “악마(사탄)에게서 구하시옵소서”로도 번역할 수 있다. 루터는 이를 두고 “악한 나라에서 뿜어 나오는 구체적인 폐해 … 가난, 수치, 죽음 … 한마디로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는 기도”라고 썼다. 어거스틴은 곧 세상의 사악한 세력, 특히 호시탐탐 해칠 기회를 노리는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길 구하는 기도라고 해석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초기 성경 문서나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성경에선 찾아볼 수 없는 구절이다. 칼뱅은 세상의 그 무엇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챌 수 없음을 기억하고 ‘평온한 안식’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의 시금석을 따르라
성경 말씀은 구절구절, 올바르게 기도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요 16:24-26)과 믿음(약 1:6)에 기대어 구하지 않고, 이기적인 동기(약 4:3)를 가지고 간구한다면 삶의 어느 영역에서든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가운데 부르짖는다면(시 66:18) 기도는 ‘큰 효력’을 내지 못할 것이다(약 5:16).
1 기도는 의무이자 훈련이다
기도는 좋든 싫든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작심하고, 끈덕지게 드려야 한다. 설령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기도를 멈춰 선 안 된다.
2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다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드리는 기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나누었던 더없이 소중한 경험, 즉 거리낌 없는 대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기도를 대화로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마음속에 주관적으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것을 기도로 보는 방식과 하나님이 주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보는 방식이 있다. 루터의 경우에서 보듯, 성경을 읽을 때마다 확신과 깨달음이 드는데 거기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크리스천이 따라야 할 바른 방향은 후자 쪽이라는 예기는 이 책의 전반에서 이미 나누었다.
패커는 습관적으로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성경을 읽고, 본문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려 주는지 깊이 생각하며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찬양으로 이어 간다”면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이만큼 중요한 도구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 기도는 찬양과 고백과 간구가 어우러진 상호작용
주기도문은 찬양과 경배로 시작해서, 필요를 채워 주시길 요청하고, 죄를 고백하고 내면의 변화를 간구한 뒤에, 베풀어 주신 은총은 물론이고 역경에 대해서까지 감사하는 쪽으로 넘어간다. 성경의 기도서 등을 보면 이런 기도 ‘문법’, 또는 차원들이 하나같이 중요한 쓰임새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도 형식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하다. 주께 간구할 때마다 이런 기도 방식들이 빠짐없이 드러나고 서로 어울리며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4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드려야 한다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참 아들이신 예수님이 헤아릴 수 없이 큰 희생을 치르셨고, 성령님이 거룩한 자녀의 신분을 내면에서 규정하신 덕분에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임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감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주님의 거룩한 인격과 구원사역을 압축해 놓은 일종의 속기록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궁금증이 생긴다. 성자나 성령님은 안 되고 오로지 성부 하나님께만 기도드려야 하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마 11:28). 그렇지만 주기도문에서는 아버지께 간구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이나 성령님께 구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예기는 전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기도는 아들에게 감사하고 성령님께 의지하는 마음으로 하늘 아버지께 드린다.
5 기도는 애정과 경외감이 공존하는 마음가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기도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 여태까지 나온 기도와 관련한 훌륭한 서적들 가운데는 기도와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짚어 보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면에서 기도는 그저 철저하게 무기력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며, 백 퍼센트 의존적인 인간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일 뿐이다. 너무나도 무력해서 무얼 기도해야 좋을지도 모를 때 성령님이 도우신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이를 강력히 뒷받침한다(롬 8:26). 무얼 하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주께 갈 수 없다(요 6:44). 극도의 무력감을 느낄수록 주님이 함께하시며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신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7 기도는 하나님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한다
기도는 형식과 관계없이(찬양, 고백, 감사, 간구 등) 세상 만물과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으며 실제로는 아무 탈도 없음을 알게 된다. 정반대로 허상을 무너뜨리고 영적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위태로움을 일깨운다. 이처럼 기도는 자아를 요란하게 흔들며 소리친다.
8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연합이다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사랑, 성령님이 약속하신 내주하심, 용서를 받았다는 인식, 주님의 임재 앞에 나가는 특권, 죄스러운 습관을 이겨 내는 능력 등은 마음으로 받아서 실생활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하나같이 추상적인 개념에 그치고 만다.
기도란 그리스도가 이루셨으며 크리스천이 믿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우리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진리가 마음에 작용해서 새로운 본성과 반응, 기질을 만들어내는 외길이기도 하다.
9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려는 노력이다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지식은 기도를 통해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이슈가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믿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감각적으로 감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게 아니라 마음에 거룩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걸 느끼게 된다.
10 기도는 정직한 자기 인식
기도는 단순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넘어 자신과 극도로 솔직하게 마주 서는 단계까지 이끌어 가야 한다.
11 기도는 철저하게 신뢰하는 마음가짐
어떤 기도를 드리든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손수 보내 주시는 선물을 따지거나 가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도록 도와주시길 구하는 간구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루터는 무모하리만치 끈덕지게 조르며 기도하는 걸 일컬어 ‘하나님 공략’이라고 했다. 기도는 수동적이고, 차분하며, 조용한 행위가 아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인정하는 자세에 토대를 두지 않고 그저 ‘끈기’와 강청하는 기도만 강조하면, 원하는 응답을 받아내지 못할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성숙한 크리스천들일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긋지긋한 상황을 견뎌내는 게 풍성한 생활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끈기와 순종이 기도 안에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12 기도는 온 삶을 하나님 사랑에 굴복시키는 마음가짐
주님께 온전히 충성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그저 기도를 이미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요소들을 더 얻어 내기 위해 동원하는 이기적인 방편으로 사용할 공산이 크다. 바로 이런 진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람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라는 말씀 이면에 깔린 진리다. 핵심은 세상에서 갖고 싶어 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욱 소망하고 애지중지하는 자세에 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안에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기도를 시작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해, 내게 꼭 필요한 건 하나님뿐임을 절감하지 못한다면 온갖 간구와 간청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걱정과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라
기도가 참으로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가 되려면 규칙적으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거룩한 음성을 듣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을 깊이 체험하는 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지만, 영적으로 더 깊이 기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상적인 경로는 바로 말씀 묵상이다. 시편 1편을 찬찬히 짚어 보면, 적어도 묵상의 세 가지 유익을 약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안정이다. 둘째로, 묵상은 속사람 또는 성품의 변화를 약속한다. 셋째로, 묵상은 복을 부른다.
성경 어느 본문을 묵상한다는 말에는 미리 치열한 연구와 해석을 거쳐 그 뜻을 파악한 상태라는 전재가 깔려 있다. 성경적인 묵상은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공부한 결과를 토대로 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묵상은 이성적인 사고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라 … 스스로 신이 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을 묵상하는 갖가지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지만, 영국의 신학자 존 오웬은 세 가지 기본적인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일단 성경 공부와 기도, 그리고 묵상을 구별하는 데서 출발한다.
묵상은 진리를 공부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는 말씀 공부와 다르다. 또한 하나님 자신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상정하는 기도와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 묵상은 … 사랑과 기쁨, 그리고 겸손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단계는 성경의 진리를 바라보는 명료한 시각을 선택하고 확보하는 이른바 ‘생각의 초점’을 잡는 과정이다.
말씀을 묵상하는 으뜸가는 방법은 암송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눈앞에 벌어진 이러저러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할 때 암송했던 말씀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오웬은 생각을 가다듬었으면 이제 묵상의 두 번째 단계인 ‘마음 쏟기’로 넘어가라고 말한다. 생각을 정리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구원과 영원, 인간의 상태 따위에 관해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정확히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면 더욱 온전하게 거기에 소망을 두고 만족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 성경의 진리에 기대어 삶을 바꿔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깨달음을 주시는 시점을 헤아리는 노력이다. 하나님이 하필 오늘 그 말씀을 보여 주신 까닭은 무엇일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큰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진리를 깊이 파고들다 보면 허물을 지적받고, 낮아지며, 곤란한 처지에 몰리거나, 평안과 위로를 찾는다든지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감격과 기쁨을 맛본다. 묵상은 이 지점, 이런 마음자리를 목표로 한다.
세 번째 단계는 무엇인가? 오웬은 하나님의 임재와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실상을 알고 감격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머물며 마음껏 누리라고 권한다. 고상한 풍미에 젖은 이들은 경험적으로 자애로우신 하나님, 포도주보다 더 달콤한 그리스도의 사랑, 그밖에 무엇이 됐든 짜릿하게 미각을 자극하는 더없이 상쾌한 향취를 맛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벧전 1:8) 하는 타당한 근거가 된다.
묵상을 할수록 “스스로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절감하는 겸허한 자각”만 돌아온다손 치더라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런 경험은 영적인 실상과 마주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로 이끌어 간다.
오웬에 따르자면, 묵상은 정신으로 진리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감정과 태도, 마음을 쏟는 자리 등 삶의 온갖 영역에 반영하며, 성령님이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인 현실을 좇아 반응하는 걸 가리킨다. 그러므로 기도를 위한 묵상은 생각하고, 마음을 돌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거나 주님의 부재를 인정하고 거룩한 자비와 도우심을 구하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다 안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 사랑이 얼마나 넓고, 크고, 높고, 깊은지 절감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는 갑부였는데 쪼들리며 살았다니! 바울은 크리스천들에게 그것만은 피하라고 당부한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만나야만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오웬은 “하나님을 직접 뵙는 환상을 품고 묵상하는 습관이야말로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길러야 할 중요한 소양”이라고 끈질기고도 단호하게 주장했다. “크리스천의 삶과 생각은 하늘의 복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는 쪽으로 흘러가야 하며, 지금 여기서 맛보기들을 경험하며 빚어져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는 말은 주님의 성품과 말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이 중심으로부터 만족스럽고, 즐겁고, 위로와 힘이 되는 걸 가리킨다.
오웬은 시시때때로 하나님 안에서 희열을 맛보며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주님의 손길을 체감하는 경험만이 세상의 가짜 하나님이 주는 질 낮고 부분적인 위안에 넋을 빼앗기며 격정과 욕망의 노예가 되는 비극을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이나 고난,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감정적인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오웬은 침묵기도가 가끔은 괜찮지만 그런 방식으로 간구하도록 주문하거나 이상적인 형태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다시 말해 주기도문에는 찬양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과 올바르게 교통하는 데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며 다른 종류의 기도를 이끌어 내는 자극제다. 곧장 간구나 고백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기도 생활 전반에 걸쳐 찬양과 경배가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찬양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해로운 부분들을 바로잡고 영적으로 건강한 내면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악조건이 아니라면, 대체로 찬양은 내면의 건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드러내는 지표가 되는 듯하다.
어거스틴은 인간이란 너나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바로 그 집착을 사랑으로 인식하고 경험한다.
인간이 마주한 비참한 현실은 하나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자녀와 배우자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배우자가 기대만큼 지지와 애정을 보여 주지 않을 때마다 폭발적으로 분통을 터트리거나 깊은 좌절에 빠지기 십상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을 으뜸으로 소중하게 여기면 배우자를 제대로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
인간 됨됨이의 뼈대를 다시 짤 수 있을까? 어떻게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섬기고 높여야 한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 찬양과 경배 말고는 그런 마음을 키울 방도가 없다.
불행한 사건들이 간구와 간청을 불러일으킨다면 행복한 일이 생기면 감사하고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로마서 1장 18-21절에서 바울은 인간의 죄가 지닌 특성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 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 커녕”(새번역)이라고 꼬집는다.
루이스는 거의 반사적으로 “어던 하나님이 이를 지으시고 내게 주셨을까?”를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면서, 항상 그럴 수는 없을지라도 그런 훈련은 일상생활 가운데 더 풍성한 기쁨을 찾고 밀도 높은 기도 시간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단언한다. 아울러 “가장 낮아졌을 때 경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지극히 높아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는 몹시 어렵다"라고 조언한다.
위대한 종교 개혁가로 처음으로 공동기도서를 펴냈던 토머스 그랜머는 다음과 같은 일반 원칙을 따랐다.
1 찬양 - 하나님의 이름
2 신조 - 기도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진리
3 간구 - 구하고자 하는 일들
4 염원 - 요청을 들어주셨을 때 찾아올 선한 결과
5 예수님의 이름으로 - 예수님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기억
그랜머가 쓴 유명한 성만찬 개회 기도회에서도 이와 같은 구조를 볼 수 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2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3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케 하시어,
4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케 하소서.
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스코틀랜드 대요리문답은 “인간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주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죄의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치르셨다. 죄를 뉘우치고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죄의 저주가 미치지 못한다(롬 8:1). 이를 잊으면 고백이 복음적인 회개가 아니라 스스로를 가혹하게 자책하는 식의 참회에 가까워진다.
스토트는 죄를 고백한다는 말은 곧 죄를 등지고 결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백과 결별은 결코 분리되면 안 될 요소들이지만, 크리스천 중 열에 아홉은 고백과 동시에 죄와 절연하고 마음을 돌이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결단 없이 죄와 허물을 털어놓는데 그친다. 그러므로 스토트는 참다운 회개는 인정과 거부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오웬은 오로지 율법의 정죄, 곧 스스로 공덕을 쌓아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출발한 멸살은 죄에 물든 심령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인정과 칭찬을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소중히 여겨선 안 된다. 주님의 은혜에 잠기면 다른 이의 눈에 괜찮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욕구를 떨쳐 버릴 수 있다.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다 무겁기까지 한 짐이다. 감사가 넘치고 불안감이 걷힌 순전한 기쁨을 맛보기까지 값없이 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남에게 무정한 말을 하거나 고약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속으로 누군가를 희화화함으로써 자신을 합리화하지는 않았는가? 내게 쏟아 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생각하며 냉정하고 불친절한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참아 주신 주님의 인내를 기억하며 짜증을 내지 않을 때까지, 냉담함이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무한한 관심을 내게 보이셨는지 돌아보며 온정과 애정이 느껴질 때까지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되 하나님께서 다른 일들을 행하신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따름이다. J.I 패커는 여기에 적어도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하나님께 간구할 때, “우리가 구하는 제목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을 기도에 반드시 포함시켜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이는 대단히 명철하고 현실적인 생각이다. 필요를 고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와)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편이 더 선하며 (우리가 최선이라고 여기는 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계획하신 대로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여러 사례들을 볼 때, 간구에는 요청하고, 불평하고, 조르는 등 대략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로, 자신과 남들의 필요를 아뢰는 통상적인 기도가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와 세상을 향한 기도’를 보통 중보라고 부른다. 간구의 두 번째 범주는 성경 전반에 걸쳐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시편에 나타난 이런 형식의 기도를 전통적으로 ‘애가’라고 부른다. 고통과 환난을 겪으며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힘겨운 씨름을 벌이면서 주님이 역사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한편, 거룩한 속내를 깨달아 알고 현실을 견뎌 내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이들의 기도다. 간구의 세 번째, 그리고 가장 광범위한 범주는 이른바 ‘하나님께 조르는 기도’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을 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의 때를 끈덕지게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받아야 할 ‘고난의 잔’을 옮겨 주시길 기도했지만 간곡한 요청은 기각되었다. 어째서 그랬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나 합당한 처분을 예수님께 내리셨다 인류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께 대신 내리셨다. 덕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성자에게나 합당한 대우를 우리에게 해주신다(고후 5:21).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치시는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셨기에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크리스천은 하나님께 담대하고 구체적이며 열심히, 정직하게, 그리고 부지런히 소원을 아뢰어야 한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사랑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순종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 덕분이며, 그러기에 무엇이든 그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매일 기도하라
통상적으로 하루에 한 번 갖는 경건의 시간에 만족할 게 아니라 더 자주 기도할 필요가 있다. 루터는 하루에 두 번 기도하길 권했고 칼뱅은 간단하게 자주 드려야 한다는 쪽이다. 하루의 틀을 잡을 때, 24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번 이상 시간을 정해서 온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모든 크리스천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14세기에 활동했던 아프리카의 신학자 아타나시우스는 적었다. “무슨 필요나 어려움이 됐든지 간에, 같은 책(시편)에서 거기에 맞춤한 말씀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 병을 고칠 방도를 알게 되는 겁니다.” 이어서 시편은 그때그때 ‘합당한’ 말씀을 제시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죄를 회개하며, 감사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생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이 거룩한 노래들은 우리 자신과 잘 들어맞으며 굽이굽이마다 영혼의 필요를 채워 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 번째는 원문 그대로 기도하는 방법이 있다. 시편 90편은 그런 식으로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두 번째는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시편을 자신의 말로 바꾸어 개인화하는 기도 방법이다. 시편으로 드리는 세 번째 기본적인 형태는 ‘반응하며 기도하기’라고도 불린다. 전문이 아니라 주제나 주장만 가져다가 찬양과 고백, 간구의 실마리로 삼는 방식이다.
시편에는 그리스도를 대단히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편이 많아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풍부한 관점을 제공한다. 2편과 110편은 보좌에 앉으신 메시아를, 118편은 거절당한 메시아를, 63편과 109편은 배반당한 메시아를, 22편과 16편은 죽고 부활하신 메시아를, 45편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하늘의 신랑이 되시는 메시아를, 68편과 72편은 승리하신 메시아를 보여 준다. 이런 시편들은 예수님의 뛰어나심과 아름다움을 묵상하고 찬양하며 그 안에서 쉼을 누릴 기회를 준다.
조지 허버트는 기도를 ‘교회들의 잔치’라고 불렀다. 드와이트 무디 또한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나서 “하나님이 내게 오셨다. 얼마나 강렬한 사랑을 경험했는지 제발 주님의 손안에 머물게 해 달라고 간청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그날 밤은 시간 속에 고립된 섬이 되어
가슴과 추억 속 어딘가에 그 모습 그대로
절대적 존재로 박제됐다.
테레즈는 이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완벽해서 귀하디귀한 존재.
대단히 귀해서
이런 행복이 있는지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지만
그 행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다른 존재,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모했다.
캐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영화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작가는 16개의 영화를 통해 질문한다.
9개의 영화를 보고 7개의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이미 보았던 영화도 책을 통해 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다.
01 쿵푸팬더
“세상에 우연은 없다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무한한 힘의 비밀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02 스파이더맨
자신의 변화를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지닌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시행착오를 단순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만 표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알아가려는 노력과 과정으로 봐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03 인생은 아름다워
이 영화의 모티브는 러시아 혁명 당시 뛰어난 전략가이자 연설가였던 트로츠키가 남긴 글에서 얻었다고 한다. 트로츠키가 스탈린과 대립하다 실각하게 되고 인생 말년에 암살을 피해 국외를 전전하는 도망자 신세로 살다가 결국 암살을 당하게 되는데, 암살당하기 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 세상이 어떻든 상관없이 그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자신을 둘러싼 세게, 이것을 움벨트(umwelt)라고 하는데 독일어로 welt는 세계라는 뜻이고, um은 둘러싼이란 뜻이다.
“우리는 소리치는 나쁜 사람 역할을 맡았다. 겁을 내는 사람은 점수를 깎겠다.”
04. 마션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젠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 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다. 무작정 시작하는 거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진짜 긍정이란 긍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인 ‘마음’도 아닌 그냥 행동이다.
사람은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대한다고 한다.
05 어벤져스2
<어벤져스2> 역시 많은 영웅들의 두려움과 용기를 통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나에게 두려움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나는 두려움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06 크리스마스 캐롤
현재의 키워드 웃음.
‘메리’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매일’크리스마스
07 포레스트 검프
이리 재보고 저리 살펴보고 무엇이 더 나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
순응은 주어지는 것을 향한 온전한 신뢰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불행이나 고난으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나 감사로 받는 것이 순응이다.
‘하나님과 화해한 것 같았다’
그저 깃털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다줄 바람을 믿는 것뿐이지. 날지 않으려고 버티거나 바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순응하는 것이 깃털이 할 일이다.
08 몬스터 대학교
09 헬로우 고스트
원가족의 힘이란 나에게 그 연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부모의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 부모의 힘을 물려받은 존재이며 나와 피를 나눈 형제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원가족은 있다 없다의 개념이 아니라 있음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있음의 인정이 나라는 존재를 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10 인사이드 아웃
안에 있는 것을 뒤집어 본다는 의미
11 8월의 크리스마스
사랑이란 일상에 스며드는 것
사진, 그 ‘현재’들에 대하여
‘멈춤’은 영원을 꿈꾼다
12 씽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여 안녕하십니까?”
13 페넬로피
물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 도 있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런 면을 모두 사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사랑의 개념에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 : 나는 사랑받고 싶다.
2단계 : 나는 사랑할 수 있다.
3단계 : 나는 나를 사랑한다.
4단계 :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보편적인 사항,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해)
14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소피가 타고난 마법은 하울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었는데 말을 하면 다 이루어지는 마법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국 에너지의 힘을 말하는데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빛알이론, 즉 양자역학이랑도 연결된다.
15 꾸뻬씨의 행복여행
내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15퍼센트 증가하고,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 10퍼센트 증가하며,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약6퍼센트 증가
“이것은 모든 것이야. 행복은 모든 것이지.”
불안과 공포아 슬픔과 기대와 후련함과 깨달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헥터의 머릿속은 말 그대로 우주의 모습을 닮아 있다.
16 굿 윌 헌팅
한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도 보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아닐까?
숀 교수가 윌을 향해 보여준 마음의 핵심으 ㄴ무엇이었을까? 믿음과 진실성 그리고 기다림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부록
유명하지 않은 유명 배우, 앤디 서키스
‘러팔로화된다’의 주인공, 마크 러팔로
800번의 오디션, 뇌종양, 환경운동
인생역전이란 갑작스러운 기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만들어갈 단단한 내면의 힘을 갖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 바꿔 말하자면 인생역전이 아니라 인생주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발췌글
p11 삶에서 만나게 되는 고난과 좌절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도록 해준다. 고난과 좌절 속에서 무너져내릴 때 우리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과 만나다. 나는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괜찮은지, 이렇게 힘겨워하는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p24 영화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하나, 나에게 인상 깊은 장면이나 대사 생각해보기 혹은 기록하기
둘, 내가 감독이라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기
셋, 모든 장면에는 이유가 있다. 왜 저 장면을 굳이 길게 그리고 줌화면으로 보여줬을지 생각해보기
넷, 영화 제목이 왜 그것인지 생각해보기
다섯,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즐기는 것
p28 감독의 세계관
‘세상’을 보는 관점
‘사람’을 보는 관점
‘나’를 보는 관점
‘지금’을 보는 관점
미셸 오바마의 성장 과정과 오바마를 만나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퇴임까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악관에서의 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미셸 오바마의 가식적이지 않은 가치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바마 정부에서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동성 커플 결혼의 합법화를 추진하고 미셀 오바마 또한 인권 운동의 승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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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다
우리는 부모님이 담뱃불을 붙이면 일부러 콜록거렸고, 종종 담배 심부름에 반항했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은 선반에 놓인 새 뉴포트 담뱃갑을 뜯어서 그 속의 담배들을 줄기콩 분지르듯이 싱크대에서 똑똑 분질렀다. 담배 끄트머리에 일일이 핫소스를 묻혀서 도로 넣어두기도 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폐암에 대해 설교하면서, 학교 보건 시간에 시청한 영상 속 끔찍한 장면을 중계했다. 흡연자의 폐는 숯처럼 메마르고 새카맸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의 죽음이요, 몸속에 죽음을 품고 사는 셈이었다. 반면 담배 연기에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폐는 발그레한 분홍색이었다. 이토록 명백한 대비가 또 어딨나 싶어서, 우리는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연은 좋고, 흡연은 나쁘다. 금연은 건강이고, 흡연은 질병이다.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온 바가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도, 부모님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담배를 끊었다.
우리가 되다
사우스사이드에서 흑인으로 자란 탓에, 정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정치는 전통적으로 흑인을 억압하는 수단이었다. 정치는 내내 흑인을 고립시키고 배제했고, 흑인이 교육과 고용과 고소득을 누리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막았다. 나의 두 할아버지는 끔찍한 짐 크로 법과 굴욕적인 주거 차별의 시대를 살았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모든 권위를 불신했다(앞에서 말했듯이 외할아버지는 치과 의사조차 자신을 박해하려 든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대부분을 공무원으로 살면서 사실상 반강제로 동원되어 민주당 선거구 관리자로 일했는데, 승진을 꿈이라도 꾸려면 그래야 했다. 아버지는 그 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좋아했지만 시청의 족벌주의는 늘 못마땅해했다.
시카고로 돌아온 버락은 나를 달래는 해독제가 되어주었다. 그는 내 걱정을 들어주었고, 돈 문제를 들어주었고, 자신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도 우리가 둘 다 안락하고 예측 가능한 변호사 생활에 안주할 의향이 없으니 정확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는 알 수 없다고 인정했지만, 이것저것 다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전혀 가난하지 않으며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어쩌면 쉽게 계획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더 밝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사람, 걱정을 지우고 행복할 것 같은 방향으로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버락뿐이었다. 그는 내게 미지의 세계로 도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왜냐하면—그리고 이 주장은 나의 두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친척에게는 충격적인 소리로 들릴 말이었다—사람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고 해서 꼭 죽는다는 법은 없으니까.
걱정마, 우리는 할 수 있어, 어떻게든 해날 거야, 이것이 버락의 생각이었다.
몸소 체험하기 전에는 남들로부터 아무 이야기도 들을 수 없는 일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첫 항목은 유산으로 하겠다. 유산은 외롭고, 괴롭고, 거의 세포 수준에서 상심하게 되는 일이다. 유산을 겪은 여성은 그것을 개인적 실패로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혹은 비극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 순간에는 물론 비참하겠지만 그 또한 오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사실 유산은 늘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유산을 겪는다. 다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주제일 뿐이다. 나 역시 친구 두어 명에게 유산 사실을 털어놓고서야 알았다. 친구들은 애정과 지지를 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유산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렇다고 내 괴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같은 괴로움을 겪었다는 친구들 이야기 덕에 조금은 더 잘 견딜 수 있었다. 이때 비로소 유산은 생물학적 딸꾹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타당한 이유에서 수정란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편이 좋겠기에 벌어지는 정상적인 일이었다.
처음에 버락은 부부 상담을 내키지 않아 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직접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낯선 사람 앞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좀 드라마 같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불편한 일이었다.
상담사는—우드처치 박사라고 부르자—부드러운 말투의 백인 남성으로, 좋은 대학을 나왔고 늘 면바지를 입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버락과 내 이야기를 다 들어본 뒤 즉각 내 불만이 모두 타당하다고 인정해줄 거라 예상했다. 내 입장에서야 내 불만은 전부 절대적으로 타당했으니까. 모르면 몰라도 버락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겪어보니, 상담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드처치 박사는 누구의 불만도 승인해주지 않았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대목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표를 던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대신 공감하며 참을성 있게 들어주었고, 우리가 각자 감정의 미로에서 헤어나도록 도왔으며, 개인의 상처 때문에 자동으로 상대에게 무기를 휘두르지 않도록 타일렀다. 우리가 너무 변호사처럼 따지고 들면 주의를 주었고, 세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이야기하다 보니 서서히 매듭이 풀렸다. 상담실을 나설 때마다 버락과 나는 서로에게 좀 더 연결된 기분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 같은 반 남자아이 하나가 나를 때렸다. 그 아이의 주먹은 혜성처럼, 난데없이, 온 힘으로 내 얼굴에 날아들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서서, 예닐곱 살짜리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가장 빨리 달리는지, 크레용 색깔의 이름들은 왜 그렇게 이상한지. 그런데 그때, 퍽 하고 주먹이 날아왔다.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 아이의 이름도 잊었다. 하지만 아픈 데다가 어안이 벙벙해서, 벌써 붓기 시작한 아랫입술과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멍하니 그 아이를 보았던 것은 기억난다. 나는 너무 놀라서 화도 못 내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야단맞았다. 우리 어머니도 학교로 가서 직접 그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가 내게 가한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가늠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그날 우리 집에 와 있었던 외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답게 발끈하여 자신도 학교에 따라가겠다고 우겼다. 나는 내막을 전해 듣지 못했지만, 어른들끼리 모종의 대화를 나누었고 모종의 처벌이 내려졌다. 그 아이는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내게 사과했고, 어른들은 또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 아이는 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일 때문에 겁먹고 화났던 거야.” 나중에 어머니가 부엌에서 저녁을 지으면서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게는 말해줄 수 없지만 속사정이 다 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아이는 자기만의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단다.”
우리는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그렇게 대처했다. 어릴 때는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웠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는 사실 자신이 겁나기 때문에 남을 겁주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의 터프한 여자아이 디디가 그런 경우였다. 아내에게까지 무례하고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우리 친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였다. 그런 사람이 남을 휘갈기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되,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했다. 아마도 묘비에 “인생은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것” 같은 말을 새기고 싶어 할 어머니에 따르면, 그런 상황에서 유념할 점은 상대의 모욕이나 공격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면, 그때는 정말 상처가 된다.
내가 이 문제를 진지한 숙제로 맞닥뜨린 것은 훨씬 뒷날이었다. 40대 초반이 되어 남편의 대선 선거운동을 돕는 처지가 되어서야,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급식 줄에서 얼굴을 맞았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난데없는 공격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아무 경고 없이 얼굴을 강타당한 것이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났다.
나는 2008년의 대부분을 그런 주먹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보냈다.
그 이상이 되다
백악관에 텃밭을 일구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활동의 시작이 되기를 바랐다. 버락의 행정부는 더 많은 미국인이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집중했는데, 텃밭은 그것과 연관된 건강한 생활 방식에 관해서도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또한 텃밭은 내가 퍼스트레이디로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시운전 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텃밭은 일종의 야외 교실, 아이들이 먹거리를 기르는 일에 관해서 배울 수 있는 장소였다. 게다가 자연에 관한 일일뿐 정치와는 무관해 보였고, 내가 부삽을 쥔 여성의 모습으로 수행하는 무해하고 순수한 활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우리의 행동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칠까 염려하여 노상 대중의 ‘시선’을 들먹이는 웨스트윙 고문들도 달가워할 것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텃밭을 통해서 사람들과, 특히 각급 학교 및 부모들과 영양에 관한 대화를 나눠볼 계획이었다. 그 대화가 더 나아가서 오늘날 식품의 생산방식, 성분표 기입 방식, 마케팅 방식을 살펴보고 그 현실이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진행되면 좋을 듯했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그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거대 식품 및 음료 회사들이 수십 년간 추구해온 사업 방식에 암묵적으로 도전하는 셈일 터였다.
2011년 겨울, TV 리얼리티쇼 진행자이자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버락이 재선에 나설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예비선거에 도전하겠다는 말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전반적인 인상으로, 그냥 소음만 빚어내다가 말 것 같았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서 버락의 대외 정책에 대하여 전문적이지도 않은 비판을 늘어놓았고, 버락의 시민권에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이른바 ‘벌서birth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버락의 하와이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것이고 그는 사실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을 퍼뜨렸는데, 트럼프가 그 주장을 되살리려고 발 벗고 나선 것이었다. 그는 방송에 나와서 갈수록 허황된 주장을 펼쳤다. 1961년 호놀룰루 신문에 버락의 출생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는 이야기는 사기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버락이 다녔다는 유치원의 급우들이 아무도 버락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는 거짓 주장도 펼쳤다. 조회수와 시청률에 목매는 뉴스 매체들은—특히 보수적인 매체들은—그런 근거 없는 주장을 희희낙락 부채질하기에 바빴다.
물론 그것은 야비하고 정신 나간 소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속에 담긴 편견과 외국인 혐오는 누가 봐도 뚜렷했다. 하지만 그래도 위험했다. 그것은 극우파나 정신 나간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고의적 발언이었다. 사람들 반응이 두려웠다. 가끔 심각한 위협이 인지될 때면 비밀경호국이 내게도 알려주었는데, 세상에는 정말로 그런 소리에 선동되는 사람이 있다는 데 놀랐다. 걱정하지 않으려 해도 걱정될 때가 있었다. 웬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이 총을 갖고 워싱턴으로 들이닥치면 어쩌나? 그 사람이 우리 딸들을 찾아가면 어쩌나? 도널드 트럼프는 무모한 암시가 담긴 시끄러운 발언으로 우리 가족의 안전을 위협했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영원히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걱정을 접어두고, 여러 보호조치를 믿으면서 그냥 살아가야 했다. 우리를 ‘타자’로 규정하려는 이들은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버락과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방식을 본다면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런 이들의 거짓말과 왜곡을 초월하려고 애써왔다. 일찍이 버락이 대통령 출마를 결심한 때부터, 많은 사람이 진심과 선의로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말을 건네왔다. 사람들은 유세장에서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도록 늘 기도한답니다.” 모든 인종, 모든 배경,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이 나라에 선량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다.
“당신과 가족을 위해서 매일 기도한답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 우리의 안전을 기도해주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느꼈다. 버락과 나는 각자의 신앙심에도 기댔다. 이제 우리가 교회에 나가는 일은 드물었다. 예배하러 걸어 들어가는 우리에게 기자들이 고래고래 질문을 던지는 등 야단법석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대선 기간 중 제러마이아 라이트 목사에 대한 사상 검증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고 정적들이 신앙을 무기 삼아—그들은 버락이 ‘은밀한 무슬림’이라고 주장했다—공격하는 것을 본 후 종교 활동은 집에서 사적으로만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 전에 기도를 올렸고, 딸들을 위해 백악관에서 몇 차례 교리 강습을 열기도 했다. 워싱턴의 특정 교회에 적을 두지는 않았다. 우리가 시카고에서 다녔던 트리니티 교회의 신자들이 우리 때문에 겪었던 부당한 공격을 다른 교회의 신자들에게 또 겪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결정에는 희생이 따랐다. 나는 영적 공동체의 온기가 그리웠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돌리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도하는 버락이 보였다.
찰스턴에서 장례식이 열린 2015년 6월 26일, 연방대법원이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렸다. 미국 50개 주 모두에서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이 여러 주와 여러 법정에서 차례차례 체계적으로 법적 싸움을 벌여온 결과였으며, 모든 인권운동이 그렇듯이 많은 사람의 끈기와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다. 그날 나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간간이 미국인들이 그 소식에 기뻐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환희에 찬 군중이 연방대법원 앞 계단에서 “사랑이 이겼다!”라고 외쳤다. 동성 커플들이 전국의 시청과 지방법원에 밀려들어서 이제 헌법이 인정하는 권리를 행사했다. 게이 바들은 일찍부터 문을 열었다. 전국의 길거리에서 무지개색 프라이드 깃발들이 펄럭였다.
이 일은 같은 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슬픔을 겪었던 버락과 나를 조금은 기운 내게 해주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장례식 복장을 벗고 아이들과 얼른 저녁을 먹었다. 그 후 버락은 ESPN을 켜놓고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트리티룸으로 사라졌다. 나는 드레스룸으로 가다가, 관저의 북면 창문들 중 하나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걸 보았다. 그제야 우리 직원들이 백악관 전면에 프라이드 깃발의 무지갯빛 조명을 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일이 기억났다.
어릴 때부터 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그러느라고 나까지 그 아이의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인즉, 우리는 이제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약자를 비하하고 전쟁 포로를 조롱하는 사람, 내뱉는 거의 모든 말이 국가의 품위를 해치는 사람. 나는 미국인들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TV에서 들리는 혐오의 언어가 미국의 진정한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그에 반대하여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주기를 바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품위였다. 품위는 내 가족이 여러 세대 동안 버틸 수 있게 해준 힘이었고, 우리가 나라 전체로도 그 중요한 가치에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품위는 늘 우리를 버티게 해주었다. 그것은 선택이고, 늘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지만, 내가 살면서 만난 존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일매일 몇 번이고 그런 선택을 내렸다. 그 문제에 관해서 버락과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모토가 있었는데, 그 말을 나는 그날 밤 무대에서 들려주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이고 선거일로부터 불과 몇 주 전, 도널드 트럼프가 2005년에 어느 TV 프로그램 진행자와 무대 뒤에서 대화하던 중 자신이 여성들을 성추행해온 일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그가 쓴 단어들은 너무 외설적이고 저질이어서, 매체들은 어떻게 하면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언론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다 결국에는 그냥 기준을 낮춰버렸다. 대통령 후보자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실어주기 위해서.
그 발언을 들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 영상에 담긴 위협과 남자들끼리의 농담에는 내게도 고통스러우리만치 익숙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너를 해치고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어. 그런 혐오 표현은 점잖은 공론의 장에서는 대체로 사라진 상태였지만, 문명화되었다고들 하는 우리 사회에도 골수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자가 그런 표현을 태연하게 내뱉고도 무사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고 널리 받아들여졌다. 내가 아는 모든 여성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타자’로 치부되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우리가 아이들만은 결코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아이들도 아마 겪을 것이었다.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나아가 그러겠다는 암시조차도, 상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다. 그것은 가장 추악한 형태의 힘이다.
온몸이 분노로 떨렸다. 다가오는 주에 예정된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유세 연설에서는 평이하게 그녀의 능력을 알리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트럼프의 말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로 그의 목소리에 반격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느라 입원한 월터 리드 육군병원의 병실에 앉아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궁리해보았다.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조롱과 위협을 받아보았다. 흑인이고 여성이고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비하되기도 했다. 그래서 트럼프의 조롱은 내 몸을, 말 그대로 내가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직접 겨냥한 것처럼 느껴졌다. 토론회 도중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뒤쫒는 사람처럼 곁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녀가 말할 때 주변을 맴돌았고, 너무 가까이 다가섰고, 자신의 존재로 그녀의 존재를 축소하려고 했다. 나는 너를 해치고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어. 여성들은 평생 그런 모욕을 겪는다. 길거리에서 듣는 성희롱, 더듬는 손길, 성폭력, 억압 행위를 통해서. 그런 일들은 우리를 상처 입힌다. 우리의 힘을 앗아간다. 어떤 상처는 간신히 눈에 보일 만큼 사소하다. 반면 어떤 상처
어느 쪽이든 상처는 누적된다. 여성들은 학교나 직장을 오갈 때도, 집에서 아이들을 기를 때도, 종교 활동을 하러 갈 때도, 한 발 전진하려고 애쓰는 모든 순간에 그런 상처를 품고 다닌다.
내게 트럼프의 발언은 또 한 번의 일격이었다. 그의 메시지가 이기도록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2008년부터 함께 일해온 유능한 연설문 작성자 세라 허위츠와 함께 내 분노를 말로 바꿔냈고, 곧이어—어머니가 수술에서 회복한 뒤—10월 어느 날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그 말을 청중에게 들려주었다. 한껏 고조된 청중 앞에서 내 감정을 똑똑히 밝혔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참아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느끼는 분노와 두려움을 전했고,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두 선택지의 본질을 잘 알고 있음을 이번 선거가 보여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연설에 내 모든 진심을 담았다.
그리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렸기를 기도하면서.
힐러리 클린턴은 총득표에서 상대보다 300만 표 가까이 더 얻었지만, 총 8만도 안 되는 표 차로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과 미시간 주에서 지는 바람에 선거인단 득표에서 트럼프가 앞섰다. 나는 정치적인 인간이 아니므로, 이 결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지는 않겠다. 누구의 책임이고 어떤 점이 부당했는가에 대한 의견을 내지도 않겠다. 그저 그날 더 많은 사람이 투표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특히 여성들이 유례없이 자격이 출중한 여성 후보자를 놔두고 여성 혐오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의아함을 평생 간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결과는 나왔고,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고 살아가야 했다.
에필로그
이양이란 곧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성경에 손이 올라가고, 선서가 복창된다. 한 대통령의 가구가 실려 나오고, 다른 대통령의 가구가 들어간다. 옷장이 비워지고, 새로 채워진다. 그렇게 간단히, 이제 새 베개에 새 머리가 눕는다. 새 성품과 새 꿈이 눕는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백악관을 떠난 사람은 여러 가지로 스스로를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나는 이제 인생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 시점에 섰다. 정말로 오랜만에, 정치인 배우자로서의 의무에서 자유롭고 사람들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황에 있다. 거의 다 자란 두 딸에게는 내 손길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다. 남편은 더 이상 국가의 무게를 짊어지고 다니지 않는다. 내가 느꼈던 책임감이—사샤와 말리아와 버락에게, 내 경력과 나라에 느꼈던 책임감이—살짝 달라지니,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도 살짝 달라졌다. 이제 생각할 시간이 더 많고, 자연스러운 나 자신으로 있을 시간이 더 많다. 쉰네 살인 나는 아직도 발전하는 중이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늘 그러면 좋겠다.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 여정에는 끝이 없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고 줄 것도 많다. 나는 아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하는 일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며 때로 그 어려움 앞에서 겸허해진다. 나는 어떻게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때때로 불안하고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다. 인내와 수고가 둘 다 필요하다.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언제까지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버락이 물러난 뒤로, 나는 속이 뒤집히는 뉴스를 너무 많이 접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면 분통이 터져서 밤에도 잠을 못 이루곤 한다. 현 대통령의 행동과 정치적 의제 때문에 많은 미국인이 자신을 의심하고 나아가 서로를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괴로웠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담아 세심하게 설계된 정책들이 역행하는 모습, 미국이 가까운 우방들과 멀어지는 모습,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모습, 그런 것들을 지켜보기도 괴로웠다. 가끔은 대체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로 냉소다. 너무 걱정되는 순간이면, 심호흡을 하면서 내가 평생 만나온 많은 사람이 보여준 품위와 우리가 이미 극복해낸 많은 장애물들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나처럼 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에게는 민주주의 세상에서 각자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우리는 모든 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이다. 그런 내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라는 바는 이로써 다른 이야기와 다른 목소리가 들릴 공간이 더 넓어졌으면,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운수 좋은 날>은 편한 문학이에요. 당연하고, 자기 이야기이고, 안온하고, 도취하기 쉬운. 시스 헤테로 남성에게는 그게 수천 가지의 버전으로 있다면, 여성 퀴어에게는 <캐롤> 하나뿐인 거죠.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요. 저는 영화를 볼 때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눈감아 줘야 하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내 것이 아닌, 사회의 필터로 걸러진 이야기임을 참작하고 보는 거죠. 그런데 <캐롤>은 내 이야기를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느낌이 들어요. 백인 여성과 아시안 여성 사이에는 물론 다른 점이 있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그래도 <캐롤>은 “맨눈으로 봤다”고 생각합니다. / 여성 퀴어 HO 님의 인터뷰 중.
지금까지 읽어 온 기욤뮈소의 소설이 ‘사랑’을 담는 것이었다면, 이번 소설 ‘종이 여자’는 작가에게 작품, 독자가 어떤 의미인지 반영해주는 소설같다.
베스트셀러 작가 ‘톰 보이드’와 그의 소설 속 여주인공 ‘빌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결말이 사실 ‘빌리’가 픽션세계 인물이 아닌 실제 현실세계의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기욤 뮈소 소설같지 않은 현실감에 좀 허무하기도하고 실망?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힘든상황이었던 주인공들이 모두 각자의 사랑을 만나 행복하게 해피앤딩이 되었으니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인상깊은 문장>
235p - 정신병원에서 도망나온 톰 보이드가 종이여자 빌리와 도주를 하던 중, 멕시코 어느 호텔에 머무를 때에 그의 절친 캘리와 밀로를 만나는 장면.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룸서비스나 메이드일 거라 생각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는데,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걸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정확하게 갖다 주기 위해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든다. 그 분은 하늘에 계신 창조자이며 그 은총의 순간은 모두 그 분이 계획한 것이다.
“안녕”
캐롤이 인사했다.
“안녕 친구.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가워.”
밀로의 목소리였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1부 6장
"여자들은 항시 그런 생각만 한다니까. 여자들은 상상력이 너무 빨라. 누가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게 사랑으로 이어지고 다음에는 결혼으로 이어지고. 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 짐작했다고."
다씨가 캐롤라인에게
> 참 이상하다. 남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나만그랬던건지?
1부 19장
"내 감정이 모든 면에서 그걸 허용하지 않으니까요."
엘리자베스가, 자신에게 청혼한 콜린스에게
> 결국 감정을 달래는게 중요하다. 결혼은 감정의 문제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현실속에서 이따금 우리는 이성에 치우쳐 생각한다. 감정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가 그녀를 보고서 고통이 더해졌는지, 즐거움이 더해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씨가 청혼후에 거절당하고나서 하는 혼자만의 생각
> 즐거움 역시 편안함과는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보며, 거절을 당하고나서 편히 생각할수 있을까?
3부 19장
"여러 달 동안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지는 거에요. 엘리자베스 양의 비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난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좀 더 신사적으로 행동했더라면' 하고 엘리자베스 양은 말했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대는 모를 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그 말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요."
청혼후 2번째 만남에서 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 한해서, 남자는 한없이 예민해진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꼭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렇게 된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 괴로움을 이해할수 있다. 굉장히 사소해보이는 점에서 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편지를 쓴 사람이나 받은 사람의 기분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으니 그당시의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돼요. 내 철학 중의 하나를 알아뒀으면 좋겠네요. 즐거운 기억만 남겨주는 과거만을 생각하라는 거에요.
엘리자베스가 다씨에게
> 좋은 생각이지만...엘리자베스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책에서 본바로 엘리자베스는 사려깊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괴로워하며 고민했었다. 과연 별거 아닌거처럼 그냥 넘길 수 있을까?
"다씨는 '허락'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말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가, 다씨가 빙리와 제인의 결혼을 '허락'했다는 표현을 쓴 뒤 다씨의 생각.
> 때로는 남이 나보다 나를 더 잘알고 있다
"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표현을 해대겠지만 저만큼 진실되지는 않을 거에요."
엘리자베스가 숙부와 숙모 부부에게 쓰는, 다씨와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편지중에서.
> 결혼은 당사자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다른이의 행복을 위한게 아니라.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콤한 과학이 어두운 종교를 몰아낼 것이다...... 개화된 종교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에드먼드 커시의 프레젠테이션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하기 충분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한 답변과 해결과정에선, 인간의 지적 능력과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합쳐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10억번 실수해도 다시 처음처럼 도전하는 컴퓨터'는 인간이 만든 가설을 검증하는 데 최적인 친구인것 같다. 에드먼드에게 윈스턴 처럼.
그래서인지, 아빌라를 고용해 커시를 살해하기까지 한 윈스턴을 보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거란 공포(매트릭스처럼) 보다는 오히려 기계가 인간의 동반자이자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에드먼드 커시의 발표처럼, '테크늄'이라는 제 7계의 종족이 인간을 흡수하고 멸종시키는게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생하고 협업하는 삶 말이다.
1편을 읽고나서 리뷰에 썼던, 과학과 종교의 대립 이야기는 2편을 읽고나서 이 책의 주제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종교는 악, 과학은 선이 아니었다. 스페인 국왕의 옆자리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발데스피노의 모습은, 악당이라기보다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오히려 과학과 종교의 화합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베냐 신부가 말한 것처럼, 아무리 과학이 진보해도 사람들이 신을 찾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전 EBS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으로 '정목스님'의 강연을 들었다. 정목스님은 불교방송DJ를 하면서 성탄절에 캐롤을 틀기도 하고, 자선합창단을 수행하면서 성당,교회 신도들과 함께 찬송가와 불교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간의 화합이 자리잡고, 서로 배척하지 않는 경지.. 에드먼드는 과학을 통해 하나의 신을 믿는 새로운 종교를 이루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톰 보이드는 <천사 3부작>시리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는 아티스트 오로르와
사랑에 빠졌지만 곧 헤어지게 되고
헤어짐의 후유증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같이 악몽같은 어린시절을 보낸
캐롤과 밀로가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때 자신의 소설에 여주인공이
나타나면서 종이여자가 시작된다.
.
마지막 부분에 반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라서 좋았다.
.
인쇄불량 책 하나로 여러 나라와 인물들을
만나보는것도 좋았고
마치 로맨스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이였다.
“사랑에 실패했다고 폐인이 된다면 미친 짓 아닐까?”
밀로가 분을 못 이겨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캐롤이 그런 그를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친 짓인지는 몰라도 세상에서 아주 흔한 일이기는 하지. 내 눈에는 그런 미친 짓이 오히려 퍽이나 인간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이기도 해.”
밀로가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더니 캐롤과 조금 거리를 두고 뒤떨어져 걸었다.
종이 여자 / 기욤 뮈소
너무나도 달달하고 매콤하면서도
짜릿짜릿한 러브스토리.
기상천외한 여자 주인공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내용을 상상하는 내 머릿속은
행복으로 가득차 있었다.
한번쯤은 누구나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빠른전개와 어렵지 않은 인과관계가
책을 읽는데 재미를 더해주어서
순식간에 읽었던 거 같다.
아찔하면서도 끝끝내 다시 찾게 되는 빌리(릴리)와 톰.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한 밀로와 캐롤.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라는 거 자체가..
끝맺음도 너무 좋았다.
단지 릴리가 계속 떠드는 것으로
이이야기는 독자들 머릿속에서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신선한 여운을 주고 떠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