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절대악이란 악한 동기로 이해되거나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 바로 그 때문에 절대악은 용서하거나 응징할 수 없다. 절대악은 인간의 악한 동기와 무관하므로 인간의 죄성으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그 범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절대악의 내용은 '인간을 잉여적 존재, 불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또한 인간을 그렇게 만드는 '체계'와 연결된다."
"절대악이란 거대한 악을 의미하는 것으로,즉 악의 크기 내성을 말한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 탈출구인 죽음도 방해 정도로 편히 죽지도 못하는 체제, 어떠한 탈출도 허용되지 않는 최악의 지경이리는 말이다. 이 개념과 관련하여 아렌트는 정치 라는 어휘를 등장시킨다. 수용소는 정치가 완전히 중지된 곳이며. 인간이 인간이기를 멈춘 것은 정치의 중지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을."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 개념을 말과 사고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의도한 점이 있다. 나치스의 만행이 특수한 지정학적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 아이히만의 무사유는 현대인 누구에게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 정치적 행위의 바탕이 되는 사유와 판단의 작용 없이도 사회 내에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흉악한 일이 누구를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러한 일이나 책임을 조직이나 사회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각을 멈추고 기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악(evil'이란 말이 지칭하는 나쁨의 크기가 우리의 평범한 삶의 일상성과 직결된다는사실을 보여주는 단어가 '악의 평범성'이다."
"아이히민은 이처럼 많은 고위직과 사교모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더욱이 이들이 최종해결책이라는 피투성이의 문제를 놓고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자기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아이히만은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이라고 말했다. 아무 죄가
없는 예수에게 자신을 둘러싼 유대인의 청을 받아들여 십자가 사형선고를 내린 본디오 빌라도가 판결 이후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일과 무관하다며 스스로 면책했던 것처럼,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실무를 진행해야 하는 죄를 회의에 참석한 고위직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 죄책감으로부터, 즉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 회의 이후 아이히만은 모든 일이 점점 더 쉬워지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말이 하는 역할은 현실의 참모습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말은 우리를 현실과 연결한다. 나치스가 언어 규칙을 만든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몇 편의 소설과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로만 알던 로맹 가리를 산문으로 만났다.
때로 첫 만남보다 사귐을 시작한 남녀 사이가 더 어색하듯 <인간의 문제>로 만난 로맹 가리는 무척 낯설었다.
-- :)
매끄럽지 않은데다 로맹 가리 답지 않은 장황하고 딱딱한 문장은 읽는 동안 정신을 산만하게 했고, 진도는 몹시 더뎠다. 그런 지경이다보니 자꾸만 꼬투리를 잡게 됐는데, 문맥이 맞지 않고 주술 호응이 엉망이라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 하는 문장과 너무나 초보적인 오탈자, 번역투의 차이 따위다.
--
후반은 제법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는데, 문장 편집 상태가 앞부분보다 매끄러웠던 점도 유효했다. --
:)
이제야 할 수 있게 된 말이지만,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사람, 관심 있어 읽어보려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문제>는 다른 작품들을 충분히 읽은 후에 접하는 게 좋겠다.
<하늘의 뿌리>, <여자의 빛>, <흰 개>는 특히 그렇다.
--
<인간의 문제>는 로맹 가리가 대담과 기고, 집필한 글에서 '인간'과 엮인 글을 연대 순으로 모아 담은 책이다.
작품 세계에서 정치적 성향과 정세, 로맹 가리의 경험과 삶, 과학과 전쟁에 이르는 다양하고 넓은 분야를 두루 이야기 하고 있기에 너무 진지하게 읽다가는 정신이 쏙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기를 권한다.
-- :)
로맹 가리는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는데, <인간의 문제>를 읽다보면 로맹 가리가 지극한 휴머니스트이며 로맨티스트라는 게 저절로 느껴지리라.
--
로맹 가리는 카뮈의 이 문장을 사랑했다고 한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반대한다."
나 역시 이 문장에 동의하고 공감하며, 지지한다.
왜 로맹 가리가 자기 작품 속에서 그토록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로맹가리#인간의문제#마음산책#여성성#오만#작품#창작#인간문제#최종해결책#유머#심각한인간#아프리카#전쟁#환경#당나귀#마약#포르노#포착#비명#가면#카멜레온#광대
벌써 몇 달, 작년에 독서 모임에서 추천받은 책 <HHhH>.
2차대전, 하이드리히 암살에 얽힌 이야기라고 한다.
유대인 학살이 최종해결책으로 넘어간 결정적인 이유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학살을 담당하는 군인들이 느끼는 양심의 가책과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이야기.
그들은 인간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구나.
상경길의 길동무, 오늘은 너로 정했다.
#hhhh#로랑비네#하이드리히#힘러#나치#유대인학살#2차대전#전쟁소설#뒷이야기#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