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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하루

@yummyreading
Review content 1
#고딩엄마파란만장인생분투기 #차이경 제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 인생의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선 원조 '고딩엄마'의 영화같은 인생사 ❝삶은 계속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 감동적인 실화 에세이를 좋아한다면 ✔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 삶의 위기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한 마음을 배우고 싶다면 📕 책 소개 원조 '고딩엄마'의 파란만장 인생사를 담은 #에세이 주민등록증도 없는 아이가 아기를 낳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어른이 되는 이야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책 📕 파란만장 인생사 '파란만장하다'는 단어가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 주민등록증도 없는 나이에 아기를 낳고 ✔ 고된 시집살이에 남편의 외도 ✔ 사고뭉치 친정엄마 ✔ 교통사고로 인한 남편의 장애 ✔ 췌장암 ✔ 시어머니 간병 ✔ 아이의 사고 ✔ 희귀 난치성 질환까지 이것도 요약 버전이라니.. 정말 셀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 당당하고 꼿꼿하게, 삶을 마주하다 힘든 삶만 이야기했다면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속이 답답해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절대 무릎 꿇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삶을 마주해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내며 결국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반드시 지켜내는 그녀의 인생사. 이 영화같은 전개가 실화라니.. 실화가 아니길 바랐던 (마음이 아파서 ㅠ.ㅠ) 그녀의 꿋꿋한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저자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한다. 더이상의 파란만장은 없고 오직 유쾌상쾌통쾌한 일들만 가득하길. 🔖 한 줄 소감 수많은 고난이 가득하지만, 결국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실화 속에서 삶의 진짜 용기를 배운다. #추천합니다 #브런치북대상수상작 #고딩엄마 #브런치북 #2025_217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이야기장수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5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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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인

@hwasungin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과학, 역사, 정치 분야를 넘나드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놀랍고, 작가가 글을 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다. 이 작가의 다음 책도 읽어봐야겠다. 단위가 통일되지 않아 벌어진 '바사호' 이야기는 너무 안타깝다. 바사호가 침몰한 것이 너무 많은 함포를 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과욕이 부른 참사'라는 교훈을 말할 때 늘 예로 들었지만, 333년 후 바사호를 인양하고 보니 좌현이 우현보다 목재가 두껍고 길이도 더 길었다. 좌현은 스웨덴 조선공들이, 우현은 네덜란드 조선공들이 만들었는데, 인치와 피트를 사용하면서 서로의 단위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벌어진 참사였다. 그 이후 단위를 통일하려는 시도들을 통해 지금의 단위들이 자리를 잡게 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여전히 표준 단위가 아닌 피트, 파운도, 화씨 등의 단위가 쓰이고 있는 이유는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 중에 한 나라가 미국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플라스틱의 개발 과정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코끼리의 상아로 당구공을 만들던 시절, '당구공을 만들 새로운 물질을 가져오면 1만 달러를 주겠다'는 당구 물품 회사의 광고 때문에 존 하야트가 셀룰로이드를 발명하게 된 점, 그러나 이것이 플라스틱의 원조라고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알렉산더 파크스가 파크신이라는 플라스틱의 원조를 더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칫솔부터 스타킹까지 여러 곳에 널리 쓰이는 나일론의 창시자 캐러더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나일론이 시장에 자리잡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그런데 현재는 또 이 플라스틱을 분해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된 점도 아이러니다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웨일북
6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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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엄마곰

@k_jin
조금도 미련이 없었다. 포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팠다. 온 몸으로 아팠다. 아프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고통이었다. 내가 울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엄마라는 이름. (p.218) 제발, 누구든 이 책의 장르가 “소설”이라고 말해줘요. 제바알. 그러나 이 책의 표지에는 그 세월을 고스란히 겪어낸 작가의 웃는 얼굴 밑에 “원조 고딩엄마”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그러나 텔레비전만 돌리면 그저 쾌락의 결과로 아이만 낳아 제멋대로 길러버리는 그런 고딩엄마, 아빠가 아니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 살아낸, 진짜 전쟁같은 이야기,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를 소개한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제 12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주)문학동네의 동생(?)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이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장수에서 출간된 책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었던 터라, 이 책은 만나기도 전부터 기대중이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발 이 책은 문학동네라고 말해달라는 마음이 마구마구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빌언덕 하나 없는 딱한 아이가 아이를 낳아, 책임을 지고 사랑을 한단 말인가. 누군가 이 책을 두고 “현대판 애순이”라고 적었지만, 정작 애순이는 목숨걸고 사랑하는 엄마라도 있었고, '도희적 장학금'을 주는 새아빠네 새엄마(?)도 있었고, 알뜰살뜰 챙기는 이모들이라도 있었고, 애순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을 등질 수 있는 관식이라도 있었지! 우리의 차이경 작가는 가끔 책임감을 가지는 엄마와, 모진 구박에 병간호까지 얹어주는 시어머니, 얌채같은 동서들, 철없는 남편친구들, '은명이'에 살짝 '관식이'를 묻힌 듯한(중반까지 조마조마하기만 했던) 남편까지 누구하나 기댈 언덕이 없다. 진짜 비빌 언덕하나 없이 혼자다. 그러나 주민등록증도 없이 덜컥 엄마가 되었지만 기가 막히게 아이를 사랑하는 뜨거움과, 착하고 유순한 아이들 덕분인지 그녀는 어찌저찌 살아낸다. 남편의 군입대를 막기 위해 청와대에 편지도 쓰고, 딱 죽기 직전에 사고보상금을 받기도 하고, 죽음의 목전에 서서 절망할 때 처음으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피어나고, 다시 꽃을 맺으며 점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그녀에게 물을 주는 어른은 없었지만, 그녀는 혼자서 물길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다. 누구보다 크고 아름다운 꽃으로 존재들 드러낸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화가 치밀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불안에 떨기도 하며 같이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젠 그 정도에 내 기분이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p.335)”는 문장을 읽으며 그녀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고생했다고, 잘 자랐다고 토닥여주며 말이다. 아직 이 책을 만나지 않은 분들이 여기까지의 감상을 읽는다면, 혹자는 “일부러 눈물 빼려고 쓴 글 아니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절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미리 적어두고 싶다. 만약 청승맞은 시간들을 기록하지만 했다면,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는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배울 수 있는 깨달음이 가득했다. “내 삶의 끝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삶의 힘을 믿기로 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삶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우며 견고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힘에 몸을 싣고 나는 또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p.351)”는 그녀의 깨달음은 마치 발레리나의 굳은 살 가득한 발처럼 시큰하다. “장대비도 결국엔 그친다”.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그녀를 통해 결국 비가 그치고 무지개도 뜬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되었다.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이야기장수
6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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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엄마곰

@k_jin
요즘에야 엘리트 연예인이 무척 많다지만, 이분이야 말로 원조 엘리트 연예인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코미디언은 “딴따라”라는 평가절하를 받던 시절, 서울대 출신이라 더욱 놀라움을 안겨주었지. 그런 그의 브레인 타이틀은 여전하다. 방송인 최초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만점을 맞은 것은 물론, “그래서 경석”을 통해 맛있는 스토리텔링 한국사를 연재하는 등 꾸준한 걸음을 걸어왔다. 나 역시 그의 유튜브를 종종 시청해왔기에,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앞서 소개했던 『한 권으로 끝내는 로빈의 한국사』에서도 한 말이지만, 역사는 스토리텔링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을 더욱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영상을 통해서도 짤막하게 소개했지만,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은 한국사의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에 쉽게 기억하는 법을 연결해주어, 독자에게 역사가 팡팡 이어지게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학생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막연히 외우기만 했던 역사가 그의 재미있는 입담을 통해 입체적인 이야기로 살아나고, “청계고 비벼반”등의 익살넘치는 줄임말로 기억하기도 좋아진다니, 어떻게 역사가 가까워지지 않을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역사 선생님들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싶어진다. 선생님이 “고려 거란전쟁은 '서양강'장군~” 이러면서 서희, 양규, 강감찬 장군을 소개한다면 평생 그 수업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한국사와 관련한 책도 무척 다양하게 출간되기에, 딱 이 책이 “제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그럴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책도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종이가 아닌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읽히는 책”들이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은 진짜 펼치고 그 자리에 앉아서 마지막 장을 만났다. 그만큼 설명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다양한 주요 사건들을 딱딱 짚어주어 재미있는 한국사 수업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 딱딱 남는 한 줄 코드들을 보며 “이걸 학교 다닐 때 알았으면 내가 조금 더 성적이 좋았을걸”하며 아쉬워하기도 했고, “일오구이”같은 것들은 몇십 년 전에 배웠는데도 똑똑히 기억이 나서, 이 한 줄 코드 암기법이 얼마나 유용한지 확인하기도 했다. 학생이나 공시생, 또 어른도 다양한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기에 짧은 시간에 막강한 효과를 가지는 책들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시험이라는 제도 앞에 선 이들은 더욱 그럴 테고. 그럴 때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 같은 책들이 큰 역할을 하리라 싶어진다. 정말 재미있고, 정말 기억하기 좋은 한국사 책을 찾는다면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 강추!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 (한 줄 코드로 재밌게 읽고 평생 기억하는)

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 (한 줄 코드로 재밌게 읽고 평생 기억하는)

서경석
창비교육
7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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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산기슭

@jirisansankiseuk
#도서리뷰, #당신이모르는진짜농업경제이야기, #2024, #이주량, #세이지 농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경제 이야기 1. 식량이 산업이 되기 까지 트랙터의 등장, 비료의 등장 , 유전학 등장 (종자개량) 위에 나열한 것들로 인해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 졌고, 이는 바꿔 말해 노동력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 이며, 다른 산업발전(제조업, 서비스업) 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2. 세계 곡물의 80%는 ABCD 기업으로 대표되는 4개 기업이 독점 하고 있다. A 아처 대니얼 미들랜드, 미국 B 벙기, 미국 C 카길, 미국 D 루이 드레이퓌스, 유럽 이들 기업은 오늘날 생산부터 유통 전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신흥 기업 4곳 정도가 다크호스로 등장 (노블, 올램, 윌마, 글렌코어) 3. 세계 최강 농업국은 단연 미국 동부 지역 농업은 유럽 정착민의 전통 농업 기술 옥수수, 밀, 담배 등 자급 농업 중심으로 발달 남부 지역 농업은 면화 중심 , 노예제도 선호 서부개척 시대를 거치며 농지 확장 세계대전 이후 '마샬플랜' 이라는 유럽 재건, 원조 계획에는 농업 부분도 한 몫을 차지 한다 그에 반해 빈곤한 아프리카 정치적 부패, 종족갈등, 내전 등이 경제 발전을 막았다. 식민지 시대 유럽 농업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대륙을 위한 상업 작물 생산기지 역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식량 부족을 안보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생겨났다. 4. 현대 농업은 연구전쟁, 종자부터 GMO , 농약, 유기농 까지 동물과 식물, 가축과 작물을 가르는 경계는 품종개량 여부 야생종 상태로 진화 하고 있으면 동물과, 식물 그외 대량생산 형태로 진화 하고 있다면 가축과 작물 5. 유기농은 정말 좋은걸까? 유기농 식품은 농약 잔여물과 항생제 내성균 문제는 안전하지만, 식품 매개 질병, 중금속 오염 등에서는 일관된 우위를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기아와 미식 사이, 급변하는 세계 식량의 미래)

이주량
세이지(世利知)
8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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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 최경희

@cany
Review content 1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요즘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 중에는 동양 교육사와 서양 교육사가 있다.    때마침 좋은 책이 나와서 얼른 읽게 되었다. 임금이 묻고 신하가 답한 내용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최초로 인재 등용을 위한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오늘날의 수능 시험의 원조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과거시험은 사실 왕권 강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교육의 내재적, 외재적 목적을 깊이 들어가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의 자유 교육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 교육의 내재적 목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교육은 수단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외재적 목적에 더 부합한다.    고려시대부터 시행된 과거제도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성균관이라는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관리가 되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이 책은 임금이 출제한 문제 즉 '책문'에 과거 시험에 답안을 제출한 응시자의 답안  즉 '대책'을 다루고 있다.    유교 문화권인 조선사회는 관리 채용을 위해 공개 시험인 과거제를 시행했다. 임금이 직접 출제한 문제에 답을 적는 유생들의 다양성을 둘러보는 것 보다 얼마나 많은 충신이 얼마나 교훈적이 내용을 적어내었는지 그것이 궁금할 터이다.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는 임금의 혜안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과거의 응시자들은 중용을 실천하고 정성을 다하려면 꾸준히 학문에 증진하고 스스로를 수양해야 한다.    '법과 제도를 운용할 인재가 중요하다'란 세종의 물음에 신숙주는 다음과 같이 답을 적었다. "법에는 폐단이 없을 수 없으니, 마치 오성육률에도 음란한 음악이 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법은 애초에 모든 경우의 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져도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법의 폐단을 예방하고 다스리는 근본은 반드시 적임자를 얻어 임무를 맡기는 데 달려 있으니, 적합한 인재가 있는데도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말을 따르지 않거나 말을 따르더라도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비록 법을 하루에 백 번 바꾼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세종이 강희맹에게 묻고 답한 내용도 요즘 세상에 지도자라면 한번쯤 되새겨야 할 내용이다.      인재를 대하는 리더의 자세는?    "대자 세상에 완전한 재주란 없습니다. 적합한 자리에 그 재주를 쓰게 하소서.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책문과 대책에는 기본적으로 각 시대가 무엇을 현안으로 생각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봤는지 고민한 내용들이 담겨있어 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임금의 말에 충신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 까지 강직한 답변을 올렸고, 간신은 임시방편으로  임금에게 답변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 다른 것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지도자가 어디에 서 있는가? 책을 읽는 내내 한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훌륭한 임금이 훌륭한 인재를 알아보고 그러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에 나라를 살린다.    군주란  첫 번째가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학문에 증진하고 나라를 아끼는 인재를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학생들과 책의 내용을 심도 있게 논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항상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며 역량이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지도자가 아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부드러운독재자 #왕이절박하게묻고신하가목숨걸고답하다 #믹스커피 #김준태 #동양교육사 #한국교육 #교육 #책 #인문학 #교양 #책문  #역사 #독서 #독서모임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글쓰기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책문으로 조선의 국가경영을 구상하는 법)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책문으로 조선의 국가경영을 구상하는 법)

김준태|믹스커피
11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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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엄마곰

@k_jin
사람들은 무언가에 이름을 붙일 때 가능한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이고자 합니다.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뒤 맥락없이 갑자기 생성되지 않지요. 사람들이 삶을 살며 의미를 붙이고 생활 속에서 익히 아는 것들 가운데 차용하여 단어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단어를 공부하다 보면 세상을 공부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움직임과 세끼 먹는 식사와 걷는 모습 등 일상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듯 느껴질 거예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단어가 왜 이렇게 생겨났는지 아는 일은 시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자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 세상과 더 가까워지는 일일 것입니다. (p.240) 단어가 가진 힘을 믿는다. 긍정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결국 긍정에 이르게 되고, 부정적인 사람 역시 그런 결과에 닿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래서 의식하여 긍정적인 단어를, 힘이 나는 말을 사용하려 노력한다. 『단어가 품은 세계』라는 제목의 책이,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학의 교수님이 쓰신 책임을 알았을 때-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던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였다. 우리 삶을 담아내는 단어, 시간을 기록한 단어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단어가 품은 세계』는 수많은 단어에 담긴 세상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낸다. 익숙하게 쓰는 단어부터, 그 어원조차 헷갈릴만큼 낯선 단어까지. 또 그 단어가 품은 세상과 의미, 세월이 흐르며 함께 변화해온 단어의 의미까지를 다루고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단어는 세상과 함께 변화하는데, 놓쳐버리기 쉬운 그 순간순간을 어찌나 재미있게 표현해주셨는지 읽는 내내 거북목이 되는 것도 잊은 채 책에 풍덩 빠져들었다. 삽입된 사진들도 너무 멋져서, 눈도 호강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또 국어수업을 듣듯 단어가 품은 의미, 모르고 살던 단어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서로가 없이는 빛날 수 없는 단어들을 배우며 사람이 사는 모습을 생각했고, 고착되어진 단어들을 바꾸어과는 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했다. 한편으론 『단어가 품은 세계』를 읽는 내내, 죄스러움에 빠지기도 했다.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 영어나 한자를 제하고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을 때에도 '대체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나. 『단어가 품은 세계』를 읽으며 우리의 고운 단어들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수천년의 세월을 살아가려면 우리 모두가 더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가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쓰였는지를 아는 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을 이해하는 일 일것입니다. (p.230)”를 읽으며 어쩌면 사람과 단어는 태양과 지구같은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사용하는 단어로 그 사람의 인성이나 생활상을 유추하듯, 우리의 모슴을 톻해 시간의 지난 날을 비추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가 품은 세계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단어가 품은 세계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빛의서가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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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콘을 만들 남자

@izrin
경제가 흔들리면, 나의 주식이 마이너스가 되지만, 그들은 원조가 줄어 먹지 못해 죽는다 경제, 정치가 맞물려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리지 않는 이 현실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이 기분마저 역겹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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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

@doodeu
20240127 애거서 크리스티의 숨은 걸작. 아주 어렸을 때 목격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희미한 기억 속을 더듬어가는 스릴러의 원조가 크리스티임을 알았음. 설정과 전개가 단순해서 좋았고 용의자를 좁혀가는 올드스쿨 추리 소설이 오랜만이어서 더 좋았음.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완전판) - 잠자는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3 (완전판) - 잠자는 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2년 전
엽기부족
엽기부족@eyoooo

재미있을것같아요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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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헤드

@deobeulhedeu
결론은 명백하오. 오웬이라는 자는 우리 중의 하나요. P168 ⠀⠀⠀⠀⠀⠀⠀ ⠀⠀⠀⠀⠀⠀⠀ 섬이라는 밀실. 열 명의 사람들이 벽에 쓰여있는 동요의 암시대로 죽어가는 전개. 범인은 섬에 있는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결말. 모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작가를 탓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 소설이 처음 쓰인 연도를 확인해보니 1939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시대 내ㅋㅋ 오히려 이런 구성이 뻔하게 느껴지도록 만든 현대의 추리소설들이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짐작을 해보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원조 추리소설의 힘에 놀라야 하는 게 맞을지도. 오랜만에 읽어 본 외국 소설은 나를 영국의 어느 작은 섬으로 데려가 준 듯했고, 역시 오랜만에 읽어 본 추리 소설은 흥미로운 전개로 빠르게 책을 넘기는 일에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내가 언제 이 책을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추천이었다. 그 누군가는 나의 기간제 베프였고 그녀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책 제목이랑 잘 어울리네……ㅋ #북스타그램 #책 #독서 #bookstargram #bookreview #book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사 크리스티
황금가지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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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goldstarsky
일제치하 36년, 그 중에서도 경제적 침탈이 집요했던 2차 대전 시기를 겪어내며 한국의 양조장과 양조 기법이 씨가 마른 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나마 만들기 쉽고 기법이 구전돼 온 막걸리 등 쌀 발효 탁주도 곡물이 많이 들어가는 탓에 권장되지 못했다. 희석식 소주는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특별한 술이다. 제조업이 일반화된 나라에서 필요한 알코올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초래한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다. 맥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미국식 라거맥주, 그것도 유럽에 비해 맥아를 중시하지 않던 맥주가 일반화된 건 미군 주둔과 미국의 원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동안, 심지어는 자국민에게조차 ‘맛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두 주종을 섞어 마시는 게 유행한 건 이런 아픈 역사에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술에 취한 세계사>가 한국 등 아시아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무관한 이야기라 볼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우리 역시 알코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러시아·미국·아이슬란드·노르웨이·뉴질랜드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역사상 단 한 번도 금주령이 지켜진 적이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국가인 것이다. 술에도 공부가 필요하단 건 이 책을 읽은 내가 스스로 느끼는 바다. 정말이지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알면 다르게 보인다. 술도 그렇다.
술에 취한 세계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술에 취한 세계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마크 포사이스
미래의창
2년 전
더더
더더@ggoij

오오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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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엄마곰

@k_jin
연말이라 주변에 선물하기 좋은 책을 몇 권 소개해드렸던 것, 기억하실 거에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써서 선물하기 좋은 “어바웃 유”나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긍정 확언 일력” 등 연말을 맞아 사랑을 전파할 수 있는 몇몇 책들을 소개해드렸지요! 물론 연말이 되면 주변에 많은 선물을 하고 마음을 전하기도 하는데, 정작 나에게는 어떤 선물을 해주시나요? 1년간 수고한 나의 마음은 누가 다독이고, 나의 내일은 누가 응원해주나요? 저는 이 질문에 “그것은 바로 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저를 무척 사랑하기에 타인의 응원도 힘을 얻지만, 나의 응원이 더욱 짙은 격려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유행하는 말 “꺽그마”처럼 내년에는, 또 그다음 해에는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처럼 단단해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을 해보심은 어떨까요? 그러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 『5년 후 나에게』입니다. 사실 이런 류의 다이어리 북, 무척 다양하지만 사실 『5년 후 나에게』가 원조라고 합니다。 그러니 유사품에 주의하시고~“정품 다이어리북”으로 내 마음을 한번 달래봄은 어떨까요? 『5년 후 나에게』는 한가지 의미 있는 질문에 5년 동안 답할 수 있는 스타일의 책입니다. 사실 몇 년 더 어릴 때만 해도 과연 이게 의미가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작년의 나의 기록과 생각, 마음가짐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해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이기 때문에 ('윤00' 나이 말고 '헌'나이로) 앞으로의 5년은 더욱 단단하게, 더욱 소중하게 사용해볼 마음으로 『5년 후 나에게』를 더 진지한 마음으로 채워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나의 기록들을 더 성실히 실천하고자 노력해볼까 합니다. 그래서 『5년 후 나에게』는 저에게 큰 응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5년 후 나에게』의 질문들이 어찌나 중요한 것들이 많은지 한 줄 한 줄 깊은 생각을 하게 하고, 한 문장도 허투루 지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새해를 시작하며, 새 마음으로 무엇인가에 발을 딛는 분들께 아주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5년간 이것을 쓸 자신이 없다, 하시는 분이라면 가족끼리 『5년 후 나에게』를 같이 써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려요. 우리 아이가 글씨를 막 쓰게 될 무렵에 『5년 후 나에게』를 써보았는데 아이와 나의 대답이 나란히 써진 부분들을 후에 보니 눈물이 핑 도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반짝이는 표지와 오로라 빛의 글씨가 더욱 아름다운 『5년 후 나에게』.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선물해보시면 어떨까요? 분명, 5년 뒤 더 큰 선물로- 응답으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5년 후 나에게 Q&A a Day (2022 오리지널, Q&A 다이어리)

5년 후 나에게 Q&A a Day (2022 오리지널, Q&A 다이어리)

포터 스타일
토네이도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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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shirin
Review content 1Review content 2
주재원으로 시작하여 법인장으로서 어느덧 베트남 생활 7년차에 접어든 저자가 회사 업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해 나갔던 과정을 담았다. 우리 회사 역시 베트남에 있는 큰 공장이 먹여 살리고 있기에 관심이 가서 신청했던 서평단이다. _ 서로 다른 문화에 매번 당황하고 잊을만 하면 믿었던 직원들에게 뒤통수를 한대씩 맞는 파란만장한 외국 생활이지만, 편견없이 베트남 사람들을 바라보며 애정을 갖고 대하는 모습에 직원들이 오래 함께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_ 외국살이의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역시 음식인 듯. ‘베트남 음식, 어디까지 먹어봤니?’ 챕터에서 거래처를 찾아 갔다가 지렁이 전문 음식점을 가게된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에 사는 지렁이(a.k.a 갯지렁이)로 만든 전이라고 하길래 상상이 되지 않아 읭?하고 뒷장으로 넘겼는데 실제 음식 사진이 2페이지를 그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와, 진짜 놀랬네. 베트남 사람도 흔하게 먹는 건 아닌 모양인지 함께 간 베트남인 통역 직원조차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로 인해 더더욱 안먹을 수 없게 된 저자(법인장이니까...)의 다짐이 날 웃게 만들었다. 📖 ‘나는 먹어야 되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솟아났다. ’일단 작은 것부터 시도를 해 보자. 별거 아닐 거야. 그리고 집에 가면 기생충 약 먹고 집 앞 스타벅스에 가자.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랑 프라푸치노 시키자'는 최면을 걸고 먹기 시작했다. (p.142~143) _ 📖 베트남 사람이라서 특별히 이상한 케이스를 마주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 사는 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일 뿐. 그냥 그런 사람 앞에 일부러 베트남'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싫다. (p.91) _ 📖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우연과 불확실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늘 어그러질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p.113)
베트남에서 살 만하니? (7년 차 주재원이 알려주는 리얼 베트남)

베트남에서 살 만하니? (7년 차 주재원이 알려주는 리얼 베트남)

임민수|미다스북스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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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enowxcml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세상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빈곤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이 책은 "낙수 효과에 따른 부의 이전은 꿈이었던 것일까? 왜 아직도 빈곤에 노출된 인구가 다수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우리는 흔히 직접적 원조를 통해 빈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직접적 원조는 빈곤을 해결하기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물이 부족한 곳에 우물을 지어주는 사업은 단순히 해당 상황만 모면한 것으로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해 유지되지 못한다. 결국 상황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빈곤은 이어진다. 이에 크리스텐슨은 여러 혁신 중 시장창조혁신을 통해 인프라, 제도 등을 끌여당겨야 그 사회의 빈곤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시장창조혁신은 대단한 영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비소비를 바라보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여러 국가의 상황에 따라 해결책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텐슨이 주장한 시장창조혁신은 우리에게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번영의 역설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번영의 역설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 2명
부키
want
읽고싶어요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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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러리

@delreori
명탐정들은 얼핏 봤을 땐 현실에 있을 법합니다. 그들는 초능력도 없고, 하이테크 슈트도 없어요. 그저 뛰어난 두뇌를 가졌을 뿐이예요. 그들이 내놓는 추론을 보면 독자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어렸을 땐 명탐정 흉내를 내면서 이런 저런 추리를 하고 놀았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외관을 관찰해서 어떤 사람인지 추리를 하곤 했죠. 하지만 명탐정의 추리가 척척 맞아떨어지는건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해요. 작가가 짜놓은 퍼즐이기 때문이죠. 현실에선 그런 활약이 불가능 합니다. 그들의 추리가 척척 정답인건 작가가 그걸 정답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거예요. [Z의 비극]에서 명탐정 드루리 레인은 범인이 약속 시간을 바꿨던 걸 근거로, 그가 사형집행에 참석한 사람이란 추론을 합니다. 하지만 꼭 그러란 법은 없지요. 단지 그날 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레인의 추리는 정답이었어요. 작가가 그것이 정답이라고 정했으니까요. 자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죠. 명탐정이 내놓는 추리를 작가가 부정한다면? 소설 속 명탐정이 멋진 추리를 내놓지만 작가가 그걸 부정하는 새로운 단서를 내놓습니다. 그럴경우 명탐정은 속절없이 당하는거예요. 이 책의 명탐정인 트렌트가 당한 일이 바로 그겁니다. 사건 현장을 관찰하고 그럴싸한 추리를 내놓습니다만, 작가는 잔인하게 그 추리를 파괴합니다. 이런 식으로 작가가 작품 속 명탐정을 괴롭히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컨셉의 원조는 이 작품이죠. 황금기 이전에 나온 작품이란걸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선 컨셉이예요. 과연 도로시 L 세이어스가 읽고 감탄했을 법합니다. 추리적인 면에서 평가를 하자면, 상당히 좋았어요. 트렌트가 내놓은 추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현장의 기괴함을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는 추리였어요. 제겐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반면 진상은 그에 비해 조금 아쉬웠습니다. 너무 탐정의 추리를 파괴하는데 집중한 느낌이랄까요? 거외 말 싸움 할 때 설득이 아니라 그저 비방 하기위해서 싸우는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요. 굉장히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트렌트 최후의 사건 (화가 트렌트 사건에 뛰어들다)

트렌트 최후의 사건 (화가 트렌트 사건에 뛰어들다)

에드먼드 클러리휴 벤틀리
엘릭시르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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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 Yeom

@stellayeom
(스포주의,결말감상평) 디테일함은 없지만 막장드라마의 원조격인듯!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되어 20년 동안 복수를 꿈꾸는 당테스. 결국에는 그것이 의미없음을 깨닫게 된다. 14년의 억울함을 위해 20년 동안 복수를 준비했던 자신의 안일함을 후회하고 모든 것을 내려두고 자취를 감춘다. 정말로 남을 미워하는 건 쓸모가 없다. 남을 미워하면서 괴롭힘를 당하는 건 내 자신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몬테크리스토 백작

알렉상드르 뒤마
지식의숲(넥서스)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추천!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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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sejinyiwc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컨텐츠팀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책으로 역사, 과학, 생활문화 그리고 경제로 총 4권의 시리즈인다. 이 책은 그 중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5개의 장에 50개의 이야기들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전혀 몰랐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읽으면서 놀랍기도 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실제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키가 작다는 소문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나폴레옹 사후에 부검을 했는데, 그 부검 기록서에 기재된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식 야드파운드법으로 5피에(pied) 2푸스(pouce)였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5피트(feet) 2인치(inch)가 된 것이다. 즉,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것은 나라 간의 단위 차이로 생겨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1피에는 32.48센티미터이고 1피트는 30.48센티미터이므로 프랑스 피에는 영국의 피트보다 1.06배(약 2센티미터) 더 계산해야 한다. 프랑스의 5피에 2푸스를 미터로 계산하면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의 5피트 2인치를 미터로 계산하면 약 158센티미터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키가 150센티미터대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실제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였고, 당시 프랑스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오히려 큰 키에 속했다.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소문이 확산하는 데 한몫한 것은 주변 환경 탓일 수도 있다. 황제가 된 후에 나폴레옹은 근위대와 늘 함께했는데 당시 근위대는 평균 170센티미터대 후반의 장신들이었다. 이들로 인해 나폴레옹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던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다른 직업 우리가 흔히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는 독특한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에겐 탐정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었다. 53세에 오랫동안 교수로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을 떠난 뉴턴은 런던으로 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사람이나 상황을 관리하는 일에 학식도 경험도 별 관심도 없었겠지만 조폐국 감사로서는 탁월했다. 그가 조폐국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당시 영국에서의 화폐문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전을 금과 은으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조폐국 내부 인사들과 공모해 무거운 동전을 사들여 녹인 후 가벼운 동전으로 만들거나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서 나온 금을 모으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 재무장관 윌리험 라운스는 1695년 뉴턴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렇게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화폐를 표준화하는 화폐 개혁을 추진했다. 위조화폐를 방지하기 위해 동전 테두리에 톱니무늬를 새겨넣게 했고 이렇게 하자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사람들이 사라져 위조화폐를 방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한 또다른 일은 위폐범들을 잡는 일이었다. 뉴턴은 위폐범들을 잡기 위해 수사관으로서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뉴턴은 1696년부터 3년간 조폐국 감사로 재임하면서 위폐범 수십명을 추적, 체포하고 기소했고 1699년부터 죽기전인 1727년까지 약 39년간 영국 조폐국장으로 일했다. 천재 과학자가 탐정으로 위페범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 아니다?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달러는 원래 유럽에서 통용되던 은화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은화의 원조는 독일에서 화폐로 쓰던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인데, 탈러(thaler, taler)라고도 불렀다. 이 이름은 지금은 체코의 영토인 보헤미아 지방의 도시 성 요아힘(St. Joachim)에 있는 한 골짜기에서 유래했다. 1516년 이 골짜기에서 양질의 은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산골 촌락을 이루자 이 지역을 간단히 ‘골짜기(das Tal)’라고 불렀다. 몰려드는 인파로 주민 수가 약 5,000명에 달하자 루트비히(Ludwig) 왕이 이 촌락을 자유 산악도시로 격상하면서 ‘요아힘의 계곡’이라는 의미로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은화가 요아힘스탈을 따서 요아힘스탈러 또는 탈러그로셴(thalergroschen)이라고 부르다가 탈러로 통일된 것이다. 탈러의 품질은 전 유럽에서 호평을 받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탈러가 발행되었다. 탈러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주화로 떠오르면서 점차 화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탈러는 국경을 넘어 다른 고가 은화들의 이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에서는 ‘tallero’, 네덜란드에서는 ‘daalder’,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daler’, 영국에서는 ‘dallar’로 각국에서 발행하는 은화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달러의 기원이 된 독일은 1873년에 탈러에서 마르크로 화폐 이름을 바꾸었다.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달러가 어떻게 미국 화폐가 되었는지는 미국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시기는 물론이고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이후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1785년 7월 6일에 대륙 의회에서 “미합중국의 화폐 단위는 달러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공표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외국 화폐와 각 주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혼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92년 달러를 미국의 공식 화폐로 지정하면서 근대 국가 최초로 10진법 화폐체계를 도입했다. 그 후 1913년 미국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은행을 출범하고 흔히 달러로 일컬어지는 연방준비권을 발행하면서도 이 전에 발행된 국법은행권, 금증서, 은증서 등의 유통을 허용해 화폐체계는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나 이후에 연방준비권을 제외한 나머지 화폐의 추가 발행이 중지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유통 지폐의 99퍼센트가 연방준비권, 지금의 달러로 단순화된 것이다. 달러가 미국 공식 화폐로 채택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 파운드화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에스파냐의 중남미 식민지 통화로 널리 유통되고 있던 다레라 은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다레라의 영어 발음이 바로 달러다. 미국이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반감으로 달러화를 채택했던 사실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기록이 조선시대에 이미 등장한다. 때는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때에 있었다. 1430년에 세종대왕은 조세제도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세종대왕은 기존의 조세제도인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답험손실법은 관리나 토지 주인이 직접 농작의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면 작황의 손결에 따라 세금을 덜어주거나 면제하던 세율 규정법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작과 부정부패가 많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이 추진한 공법은 전국 각 도를 토질에 따라 나누고 모두 27종의 전등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해 조세하는 제도로 세종대왕은 이 공법의 제정을 두고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의 결과 찬성이 57.1%로 나왔고 세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결국 시행까지 17년이 걸리게 되지만 백성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 세종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고 잠깐씩 읽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긴 역사책이 아니라 흥미롭고 짧고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출퇴근이나 이동 시 읽기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EBS 오디오 콘텐츠팀
EBS BOOKS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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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

@doodeu
20221024 그럭저럭 볼만 한 올드스쿨 추리소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진부한 스파이 소설이지만 사실은 스파이 소설 클리세의 원조이며 당시에는 굉장히 신선했을 것 같음. 60년대 007 영화를 본 기분이었음.
N 또는 M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완전판) 50)

N 또는 M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완전판) 50)

애거사 크리스티
황금가지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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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sejinyiwc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권 - 강준만 ​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을 선포하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90년대가 ‘역사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대사건을 포함한 여러 역사적 사실의 발생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였다. 오늘날 사실상 모든 선진국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이고 있으며, 따라서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 사회의 폭넓은 진화라는 맑스주의적·헤겔주의적 의미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선언은 성급한 것임이 드러났지만, ‘역사의 종말’은 90년대를 지배한 정서였음에 틀림없다. ​ 1990년 한국에선 민주화 투사 김영삼이 1990년 1월 22일 그가 평생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세력과 손을 잡고 살을 섞음으로써 역사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결단에 의해 ‘이념의 시대’가 몰락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90년대는 ‘문화의 시대’라고 했다. 그러나 그 문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화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논리의 지배를 받는 소비문화였다. 90년대는 ‘소비의 시대’였다. 절제 없는 소비였다. 허세가 난무했다. 그건 지도층까지 지배한 시대정신이었다. 이른바 ‘IMF 환란’은 그 틈을 파고들었고, 한국 사회는 한동안 통곡하고 신음했다. ​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자연합 1990년 1월 22일 전국은 눈으로 뒤덮였다. 바로 그날 대통령이자 민주정의당 총재 노태우,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 3인의 청와대 회동과 더불어 3당합당 공동발표문이 나왔다. 이들은 “4당으로 갈라진 현재의 구조로는 나라 안팎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헤쳐 나라의 앞날을 개척할 수 없다”며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 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해 “당파적 이해로 분열, 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 놀라운 선언이었다. 김종필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투사 김영삼이 그간 불구대천의 원수쯤으로 여겨왔던 노태우와 당을 합쳐 동지가 되겠다니! 평소 “왔다 갔다 하거나 야당하다가 여당으로 간 사람 중에 국민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해 온 김영삼이 아니었던가. ​ 김영삼의 마음을 3당합당 쪽으로 몰아간 결정적 계기가 동해 보궐선거 후보매수 사건 이후 김영삼을 겨냥하고 쳐들어오는 검찰의 칼이었다. 당시 매수의 장본인은 서석재였지만, 매수자금은 김영삼의 은행구좌에서 나왔기 때문에 김영삼으로선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당시 김영삼의 비서실장이었던 서청원이 증언하듯이, “3당통합은 사실 동해 보궐선거 후보매수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이용식은 김영삼에 대해 “어디를 가든 정치적으로 두 번째를 싫어한다. 3당통합을 결행하게 된 원인 중에는 제2야당 처지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 수많은 ‘진보적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들까지 김영삼의 뒤를 따라 3당합당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는 한국인의 ‘지도자 추종주의’와 ‘줄서기 문화’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이념의 경계선은 모호해졌고 이념의 실체조차 우연적·상황적인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을 확산시켰다. ​ 3당합당으로 인해 이념은 약화되었지만 투쟁은 건재했다. 3당합당 발표일 전국을 뒤덮었던 눈은 통합을 상징했는지 몰라도 눈이 녹으면서 각기 다른 셈법이 노출되면서 격렬한 투쟁이 드러나게 되었다. ​ 보안사 민간인 사찰과 ‘범죄와의 전쟁’ 윤석양의 양심선언 1990년 10월 4일, 열흘 전(9월 23일) 탈영한 육군 이병 윤석양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탈영시 갖고 나온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기록을 공개했다. 정치인 등 주요 인사 1,600여 명에 대한 불법사찰 실태가 폭로되자 정국은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였고, 그 결과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이 해임되고 보안사는 기무사로 개편됐다. ​ 10월 7일 오전 8시 30분 보안사의 집중적인 사찰을 받아 온 야당과 재야단체회원 등 70여 명은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향린교회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성명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불법사찰에 관련돼 있는지 여부가 명백히 밝혀져야 하며 관련이 있다면 즉시 대통령직을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사찰에 직접 관련된 보안사령관을 해임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며 즉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이와 함께 민간인까지 사찰하는 방대한 보안사를 즉각 해체하고 군 관련 정보는 각 군 방첩대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6시 평민·민주·민중당 등 각 정당 대표와 국민연합·통추회의·13개 지역 업종별노련·각 종교단체 대표 등 21명은 향린교회에 모여 확대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하고 보안사의 불법사찰에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윤석양의 양심선언은 노태우 정권에 치명타를 안겼다. 그대로 앉아서 당할 것인가? 노 정권 수뇌부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보라매공원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규탄하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린 1990년 10월 13일 대통령 노태우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 선전포고는 TV로 생중계되었고 거의 모든 일간지들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노태우가 직접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쓴 이 선전포고는 정략적인 상징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표현만 안 썼다 뿐이지 노태우 정부가 범죄와 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선전포고를 한 건 이미 오래전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5개월 전인 5월 7일 노태우는 특별담화를 통해 법질서 확립에 대한 비상한 결의를 표명했으며, 3일 후 치안관계 장관들은 유례 없는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범죄와 폭력을 발본색원할 것을 재다짐했었다. ​ ‘범죄와의 전쟁’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분노의 확산을 막기 위한 상징조작으로서의 ‘홍보전쟁’이었다. 그 홍보전쟁은 처음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당시 살인 사건이 평균 이틀에 3건, 강간 사건이 하루에 12건씩 발생하고 있었으니, 범죄에 염증을 느낀 국민 입장에선 거창하게 벌인 ‘범죄와의 전쟁’에 호의적 평가를 내릴 법한 일이었다.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77%가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잘한 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들도 오직 홍보뿐인 ‘범죄와의 전쟁’에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건 각종 ‘관제운동’의 전개와 홍보물 설치뿐만 아니라 무장 군인의 시내 순찰과 실적 위주의 인권유린이 가세된 공포분위기 조성용 ‘홍보’로 나타났다. ​ ‘범죄와의 전쟁’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피해 가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국민에게 정의와 안정과 질서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동시에 국민을 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자 기획된 상징조작술의 성격이 강했다. ​ 1991년 수서사건: 정치부패와 언론부패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 1991년 1월 22일 국회 상공위 뇌물외유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이재근 상공위원장(평민당) 및 민자, 평민당의 간사인 박진구, 이돈만 의원이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무역협회로부터 미화 7만 7,000달러(한화 5,500만 원)의 경비를 지원받아 미국, 캐나다 등을 여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2월 3일에는 ‘노태우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라는 수서사건이 시작됐다. 『세계일보』의 특종 보도로 드러난 수서택지 분양특혜 사건은 정(政)-경(經)-관(官)이 유착한 대형 스캔들이었다. 이는 서울시가 한보그룹 소유의 서울 강남구 수서택지 개발예정지구내 3만 5,500평을 26개 연합 직장주택조합에 특별공급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울시에 대한 압력이 가해졌다는 것이었다. ​ 수서사건의 진상은 4년 후 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은 노태우가 90년 청와대 안가에서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로부터 수서택지 분양 청탁과 함께 4차례에 걸쳐 1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91년 당시 노태우는 대통령이었으니, 그걸 밝혀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2월 11일에는 뇌물외유 사건에 연루된 의원 3명이, 2월 16일에는 수서사건 관련 의원 5명과 청와대 비서관 장병조가 2억 6,000만 원에서 3,000만 원씩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잇따라 구속됐다. 수서사건을 특종 보도한 이용식은 상공위사건과 수서사건이 정치권 세대교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김영삼·김대중 대(對) 노재봉’의 권력투쟁과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았다. 90년 12월 27일 대대적인 개각에서 강영훈에 이어 국무총리에 오른 노재봉은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용식은 “모든 비리의 근본 원인과 책임이 정치권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 “수서 관련 보도가 고개를 들 무렵인 90년 12월 이미 서울시청 출입기자들이 작게는 기십만 원에서 크게는 기백만 원씩의 한보 촌지를 받았으며, 그 이후 일부 신문방송사의 사회부장, 편집국장 급에게 1,000∼2,000만 원 이상의 촌지가 뿌려졌다는 게 정설이다.” ​ 사실 당시 언론계에는 한보그룹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이 언론계 간부들에게 전달됐다는 소문이 나돌아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5억 수수설, 80명 연루설 등이 유포되고 구체적으로 개인의 이름과 액수까지 검찰 주변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보그룹 홍보 담당 상무 이정웅은 검찰 조사에서 언론계 일부 간부 이름까지 거명하고 “언론인들에게 섭섭하지 않게 해 주었는데 수서 관련 보도를 보니 너무 섭섭하다”는 얘기까지 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검찰은 곧 “언론인 관련 부분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정부 측도 “언론계의 자체 정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랬을까? 그 이후 언론의 수서 비리 관련 보도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또 수서 비리를 최초로 그리고 가장 성실하게 보도했던 『세계일보』 편집국장 이두석과 부사장 손병우가 인사 보복을 당하고 『세계일보』를 소유한 통일그룹이 세무조사를 받는 보복을 당해도 다른 언론이 이를 외면했다는 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 이와 관련, 이용식은 “이로써 정치권력과 저돌적으로 맞부딪쳤던 한 신생 언론의 시도는 50여 일 만에 완전항복으로 막을 내렸다”고 했다. 당시 권력과 언론 사이엔 묵계의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닐까? 권력이 언론계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신 언론도 수서 비리를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 거래를 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언권선거 1992년 5월 15일 정주영, 5월 19일 김영삼, 5월 26일 김대중이 각각 국민당, 민자당,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대선은 본격적인 국면에 이르게 되었다. 6월 1일 민주당 대표 김대중은 민자당 대표 김영삼이 제의한 대통령선거운동 중지 및 여야대표 회담과 관련, “소모적인 선거운동을 자제하기 위해 당분간 옥외집회 등 정치, 경제안정을 해치는 행동은 자제하자”면서 “그 대신 산적한 국정현안에 대해 3당 후보가 TV공개토론을 갖고 국민에게 각 당의 입장을 밝히자”고 제의했다. ​ 이에 민자당 대변인 박희태는 “대통령 후보 3인이 TV토론을 하게 되면 대선 분위기가 조기에 과열될 우려가 높다”면서 “이렇게 되면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김대중에게 “자신의 장점을 너무 내세우지 말라”고 충고했다. 결국 TV토론의 당위성에 대한 판단은 언론이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별 시시콜콜한 문제도 사설로 다루던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켰다. 『한겨레신문』만이 6월 3일자에서 ‘텔레비전 토론을 왜 거부하는가-정치왜곡 막기 위해서도 토론은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TV토론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뿐이었다. 반면 『조선일보』 6월 5일자 관련 기사는 “대선일이 200일 정도나 남아 있고, 그때까지 선거유세를 통한 지나친 국력낭비를 피하자는 여론이 우세”하다고 주장했다. ​ 대선후보 선출 직후 재벌해체론으로 논란을 빚었던 정주영은 『시사저널』 6월 18일자 ‘패널 토론회’에선 국가보안법 관련 질문을 받고 철폐를 찬성한다고 말하는 와중에 공산당 허용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92년 7월 14일 정주영은 민주당과의 야당 대표회담에서 민주당 대표 김대중에게 ‘이봐’라고 했대서 신문 가십란에 올랐다. 오랜 입버릇이 튀어 나왔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1992년 7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표현된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현대, 대우, 삼성, 럭키금성 등 기존의 4대 통신장비 제조업체는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에 5위인 선경이 가장 유리했다. 그런데 선경은 노태우와 사돈관계였다. 그래서 특혜 의혹이 떠돌았다. ​ 7월 23일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이젠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된 김영삼은 노태우에게 이동통신을 둘러싼 의혹이 차기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니 사업자 선정을 대선 이후로 연기하자고 건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김영삼의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월 20일 제2이동통신 사업의 최종 사업자로 선경그룹이 낙착됐다. 체신부장관은 “대학총장의 자식이라고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학생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반발은 컸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연기를 요청했던 사업자 선정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날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은 일간지들에 ‘6공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는 정치광고를 게재해 공세를 퍼부었다. ​ 발표 직후 노태우와 김영삼은 정면 충돌했다. 김영삼은 언론을 통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노태우는 크게 분노했다. 노태우의 입에서 “갈라서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노태우의 측근인 이원조와 동서 금진호는 이미 김영삼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터라 노태우를 설득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래서 선경이 사업권을 자진반납하는 쪽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 당선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대선은 김영삼의 승리로 끝났다. 김영삼은 총 유효표의 41.4%(997만 7,646표)를 얻어 2위인 김대중 민주당 후보(804만 1,690표)를 8.0%(193만 5,956표) 차이로 앞질렀다. 3위는 정주영 국민당 후보로 388만 167표(16.1%)를 얻었다. 신정당 후보 박찬종은 151만 6,047표를 얻었다. 『한겨레신문』 1993년 1월 7일자 사설은 “총득표에서 두 사람의 차이는 193만 5,956표였다. 김영삼 씨가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에서 얻은 표는 474만 7,184표, 김대중 씨가 광주·전남과 전북에서 얻은 표는 281만 4,226표였다. 그 차이는 193만 2,958표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김영삼 씨 표에서 영남을, 김대중 씨 표에서 호남을 빼고 두 사람의 차이를 계산하면 놀랍게도 2,998표가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선거의 결과를 결정한 것이 영남과 호남의 인구 차이라는 주장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선거의 승패가 지역의 인구 수로만 결정된다면 아이를 많이 낳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있겠느냐’는 극단적인 탄식이 이성의 소리라는 뜻은 아니다.” ​ 1993년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하기가 무섭게 김영삼은 ‘윗물맑기 운동’을 외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밀어붙였다. 대단한 뚝심이었다. 그는 취임 3일째인 2월 27일 자신의 재산을 먼저 공개했는데, 총 17억 7,800만 원이었다. 경제부총리 이경식이 뒤를 이었고, 3월 5일 민자당 당무회의에서는 재산공개를 결정했다. 김영삼은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를 가리켜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라고 했으며,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에게는 멸망의 길밖에 없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강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국민은 환호했다. 허용범은 “드디어 민자당 의원들이 3월 21일 재산을 공개하자 한마디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했다. ​ “평소 정치인들의 속사정에는 비교적 밝은 정치부 기자들도 놀란 일이 수두룩했다. 미성년 손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빌딩을 11개, 주택을 11채 보유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시가 수백억짜리 땅을 50억에 신고한 이도 있었다. 명백히 ‘파렴치한 투기꾼’이라는 말 외엔 그에게 붙일 말이 없는 의원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 재산공개는 김 대통령이 주도한 사정(司正)의 첫 시동이었고, 그 결과는 흔히 ‘무혈혁명’으로 비유된다.” 부패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3월 하순경 김영삼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70∼80%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보수파는 ‘인민재판’이라고 펄펄 뛰었지만,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김영삼을 막을 길은 없었다. ​ 세간에는 “김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김대중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은 환영하고 정작 김영삼 후보를 찍었던 사람들은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리고 만년 여당지 『서울신문』은 『한겨레신문』보다 더 개혁적인 논조로 신바람을 냈다. 정말 『서울신문』의 전성기였다. 늘 ‘어용’으로 지탄받던 KBS도 신이 났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파문으로 한동안 TV 저녁 뉴스는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요즘 TV뉴스를 보는 맛으로 산다”고 말하는 서민들도 적지 않았다. ​ 하나회 척결 1993년 3월 8일 육군참모총장 김진영과 기무사령관 서완수의 전격 경질이 이루어졌다. 5공 인맥으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의 신호탄이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군인들 사이에서는 ‘대단하군, 역시 대단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마디로 충격을 넘어 경악이었다. 5·16쿠데타 이후 32년 만에 되찾은 문민정부의 위력이 이날만큼 실감나게 느껴진 적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런 ‘경악’을 간파한 김영삼은 다음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모두 깜짝 놀랬제”, “저쪽 사람들(하나회 군인들을 지칭) 깜짝 놀랬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 수석비서관은 “각하, 저희들도 그렇지만 국민 모두 얼떨떨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참석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 이어, 4월엔 대령 백승도가 육사 20∼36기 하나회원 125명의 명단을 만들어 살포한 뒤 하나회와 육사 내부에 결성돼 있는 예비 하나회인 알자회가 철퇴를 맞아 대대적인 군부 내 물갈이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석 달 만에 옷 벗은 장군만 18명이었고 ‘떨어진’ 별만 40개에 달했다. 이는 전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간 절대 성역으로 간주된 온 군부가 문민정부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된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 김영삼은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한동안 최고 94%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국민으로부터 얻어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정적(政敵)을 치거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될 일을 하는 데엔 개혁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도 했던 일이었고, 이 이후로도 벌어질 일이었다. 그 일이 끝나고 나면 ‘개혁’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곤 했다. 김영삼의 경우엔 그가 워낙 ‘승리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인지라, 자신의 승리에 도움이 되는 한 개혁적일 수 있었지만, 승리를 위해선 극우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곧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김영삼의 큰 치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에 대해서도 훗날 “군부독재의 잔존세력과 민정당 출신 정치인들을 몰아내는 방편으로 공직자 재산등록제를 밀어붙인 것”이라는 평가마저 나오게 되었다. ​ 김영삼이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도 문제였다. 그가 경제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경제참모들에게 잘해 달라고 격려하거나 경제수석 박재윤에게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호통을 치는 게 전부였다. 정주영에 대한 보복심으로 정주영과 현대그룹을 구분하지 못한 채 현대그룹에 대해 향후 2년간 금융 제재를 가한 것도 문제였다. 그 덕분에 현대는 훗날 IMF 사태에 타격을 덜 받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는 1993년 3월 22일에 열린 ‘제2창업 5주년 기념식’에서 “먼 훗날 삼성의 역사에서 여러분과 내가 함께 이 시대를 빛낸 주인공으로 기록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는 기념사의 마지막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인 모습을 보였다. 이미 그때에 무언가 큰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이건희는 93년 3월 3월부터 로스앤젤레스-프랑크푸르트-오사카-도쿄-런던으로 이어지는 4개월에 걸친 대장정에서 1,800여 명의 임직원을 해외로 불러 놓고 500여 시간 동안 열변을 토해냈다. 삼성의 ‘신경영’ 혁명을 위해서라고 했다. ​ 신문과 방송은 앞 다투어 이건희의 발언 내용을 크게 보도했고 사람들은 이건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는 이른바 ‘이건희 신드롬’을 낳았다. ‘이건희 신드롬’은 단지 삼성그룹과 이건희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막강한 위상 때문에 생겨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게 전제되긴 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그 발언의 방식과 내용의 파격성이었다. 이건희는 전혀 재벌총수답지 않은 말을 많이 했다. 그는 삼성인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은 모든 봉급 생활자들, 아니 이 나라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었다. 절실했다. 이건희가 93년 6월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그룹 유럽 주재원 간담회를 가지면서 한 일련의 발언은 언론에 의해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려졌다.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선 우선 의식혁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과격한 발언을 하였으니 언론이 그렇게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삼성의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일반인들에게까지 가시적으로 나타난 건 근무 시간 변경이었다. 7월 7일 삼성전자 회장 강진구 주재로 열린 사장단 회의는 이건희의 지시에 따라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라는 파격적인 근무 시간을 결정했다. 이른바 7·4제였다.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심지어는 사장들까지도 말이다. 한 직원은 이건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팩스를 보냈다고 한다. “그룹의 조기 출퇴근 방침에 따라 하오 4시에 퇴근하고 있는데 4시가 되자마자 퇴근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사장이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이건희는 곧바로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사장들을 매섭게 질책했다. 이 외에도 93년에 우르과이라운드와 해외 농수산물 개방으로 전국이 난리가 났던 이야기와 1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아 대박이 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 90년대 초반의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기 바란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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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bimileuibang
속이 꽉 찬 알배추 처럼 든것이 묵직하고 단단하다. 그래 이 맛이야~~~오랜만에 추리소설 본고장 맛을 보았다. 알싸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맛. 1분 3/4지점까지는 약간 지루함을 느껴 별점 1개 뺐었다. 그 뒤부터는 정신없이 몰아친다. 휘모리 장단으로 사건전개를 몰아치는데 정신이 없다. 일본 추리소설과 전혀 다른 맛이다. 묵직하고 찐~한 맛이 난다. 한동안 원조의 맛에 사로잡혀 있을 것 같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THE LINCOLN LAWYER)

마이클 코넬리
알에이치코리아(RHK)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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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enowxcml
"인간의 시발점은 어디이며 어디로 나아가는가?" 1990년대에 출간된 도서임에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통찰력은 시대를 초월한다. 인류의 기원부터 인류가 도달할 미래상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작성되었다. 인류를 제3의 침팬지라고 규정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DNA는 침팬지와 1.6%밖에 다르지 않다. 고작 1.6%가 인류의 특성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대약진의 이유를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성대와 관련된 세부적인 근육의 존재로 인한 음성언어의 발전을 꼽았다. 다른 동물과 다르게 복잡한 음성언어를 사용하게 된 인류는 어순과 활용 어미, 시제 등의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혁신의 능력이 뒤따라오게 된 것이다.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다른 성 행동을 진화시켰다. 이러한 진화의 방향은 우발적이지 않고 생존에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방향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인류의 독특한 성 행동과 관련된 사항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고릴라보다 왜소한 인류가 왜 더 큰 성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성행위의 횟수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인간의 성행위 횟수가 고릴라보다 많기에 더 큰 성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왜 남 앞에서 성행위를 하지 않을까? 또한 왜 여성의 배란기는 다른 동물과 달리 외적으로 표현되지 않을까?(암컷 원숭이는 배란기에 엉덩이가 빨갛게 바뀐다.) 이러한 질문에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남성 중심적인 답도 여성 중심적인 답도 있어 불편할 수 있지만 활발한 논의를 위해 소개하려고 한다. -남자들의 단결에 영향을 미친다. 무분별하게 성관계가 이뤄지면 인간 사회가 성과에 있어 비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모두가 보고 있는 와중에 성행위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여성의 배란기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남성을 자녀 양육에 구속하고 성관계로 보상해 준다. -여성이 항상 성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은 성관계를 제공하고 음식을 얻으려는 이유다. -배란기를 모르기에 남성은 수정을 위해 자주 성관계를 해야 하고 이로 인해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릴 시간이 없어진다. 또한 배란기가 티가 안 나기에 남성은 여성이 다른 남성을 유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배란기를 숨겨 누가 아버지인지 모르게 함으로써 많은 남성으로부터 원조를 받기 위함이다. -여성의 출산은 죽음을 동반할 수 있어 위험하다. 그러기에 여성은 외적으로 배란을 나타내는 요소를 숨겨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속임수로 진화하였다. (3) 왜 인간은 일부일처제인가? -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자식은 혼자 생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기에 남성은 여성을 임신시킨 뒤에도 태어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그 여성과 장기간 관계를 유지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생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남성은 아이의 모친과만 성관계를 함으로써 자신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진다. 진화의 관점에서 남성은 자신이 친부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적 설명은 인간의 행동의 기원을 아는 데만 유효하다. 현재는 진화적 논리를 넘어서 윤리적 논리가 존재하기에 위의 진화적 설명이 남성 중심적인 주장이나 또는 여성 중심적인 주장에 절대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또한 사람의 피부색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지역마다 다른 성적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주장도 있을 만큼 성과 관련된 요소가 인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라고 알고 있는 예술의 영역은 인간의 고유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침팬지와 코끼리가 그린 그림을 구별하지 못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예술이 발전한 것은 잉여 자원으로 인한 여유로움이라고 말한다. 침팬지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난다면 훨씬 많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농업은 단순히 축복만은 아니었다. 과거에 농업은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자연환경이 좋았던 곳에서는 수렵과 채집이 농업보다 가성비가 좋았다. 또한 농업은 인간의 밀집도를 높여 병과 계급 등을 발생시켜 인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인구수가 증가함에 따라 수렵, 채집만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농업으로 떠밀려가게 되었다. 풍요로움에 잠식된 인간은 왜 생명을 위협하는 음주와 마약에 빠질까? 이러한 행동의 이유를 다른 동물로부터 알 수 있다. 가젤은 사자를 만나고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점프를 한다.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가젤의 점프는 사자에게 "나는 강하고 우수하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신호를 경험을 통해 학습한 사자는 가젤의 점프를 보고 사냥의 실패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여 가젤을 쫓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도 은연중에 담배, 음주, 문신 등을 함으로써 가젤의 점프와 같은 신호를 보낸다. 이러한 행동은 진화적인 측면에서 본능에 충실하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오히려 음(-)의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글의 후반부에는 지리적 특성에 따른 인류의 발달, 언어와 관련된 역사, 정복의 역사(제노사이드 등)을 나열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또한 현재 닥친 환경 파괴와 핵 관련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제를 만든 인간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시각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예전에 인류는 환경 파괴 등이 미칠 영향을 모르고 행동했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환경 파괴 등을 자행한다. 또한 우리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제노사이드 문제에 대해 감정적 마비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류는 부정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범 지구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 "그들"이라는 이분법적인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당장 행동해야 한다.
제3의 침팬지

제3의 침팬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사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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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belami
미국이 세계제국으로서 후진국을 지배하는 방식을 보여주네요. 원조나 융자라는 형식으로 과잉 인프라 투자를 하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부실과 부도의 상황에서 빚의 덫에 빠지게 해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군요. 이것도 안먹히면 CIA가 공작에 나서고, 최종적으로는 군대가 동원되는 구조라 합니다. 이런 구조하에서 우리나라는 용케도 덫에 깊게 빠지지 않고 반쯤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본다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적트로 벌이고 있는 사업도 미국을 벤치마킹한 것이네요. 스리랑카 부도가 그렇고. 우리도 국력이 커지면 그 비슷한 경로를 따라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자본의 생리가 그대로 반영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경제 저격수의 고백 1 (세계 경제의 뒷무대에서 미국이 벌여 온 은밀한 전쟁의 기록)

경제 저격수의 고백 1 (세계 경제의 뒷무대에서 미국이 벌여 온 은밀한 전쟁의 기록)

존 퍼킨스
황금가지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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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달

@umzv5dsqw8lk
월하노인의 붉은 실을 꽤나 자주 떠올리게 되는 소설이다. 물론 그 연이 이어진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신선이라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원조 선협 BL이라는 소개에 여느 작품들과는 다른 결을 가지려나 싶었지만 그저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을 담은 보통의 작품들과 같았던 듯싶다. 전혀 낯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고요하고 맑기만 한 이야기랄까. 지루하다고 느낀 부분도 많았지만 다행히 이야기의 후반부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길고 긴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말이 매우 만족스럽기도 했고. 소설의 제목과 꼭 어울리는 이야기 덕에 쉬이 잊히진 않을 것 같다.
도화채

도화채

대풍괄과 (지은이), 강은혜 (옮긴이)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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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범

@choesangbum
미국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린다. 약 3,400km의 거리는 우리나라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의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2배나 된다. 이런 체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거리의 공간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삶은 단순하게 되고 시간의 의미도 멈춰지며 어떤 약속이나 의무,속박,임무,특별한 야망이나 필요한 것도 없게 된다. "투쟁의 자리"애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가 되며, 걸어가는 길은 매우 크고 출구가 없는 하나의 원이다. 대장정이 힘들고 위험함에도 단순한 삶에서의 행복감과 종주의 성취감, 그리고 대자연 앞에서의 경이로움과 겸손함을 느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여행기를 풀어 나가면서 파괴된 자연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여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생명 경시를 지적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남아 있는 대자연이 경이감을 느끼기에 충분함을 표현하고 있다.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함도 있었지만 끊임 없이 나오는 유쾌하고 유머스런 표현에 집중하게 되고, 긴 종주의 성공은 저자의 이러한 유머와 여유가 큰 힘이 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빌 브라이슨
까치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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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

@cosmodmwp
💡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 지구의 식량 생산 능력은 이미 모든 인류를 먹이고도 남을 정도이지만, 기아와 기근으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자그마치 하루에 10만 명 이상이, 5초에 한 명 이상이 사망하며 그 직접적 원인이 영양실조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저자는 그러한 기아의 참상과 원인을 대화의 형식으로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엔 식량 특별조사관이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우선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기아 현상’을 파악하는 부분이 첫 번째이다. 다음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 즉 ‘기아 원인’을 열악한 현장에서 밀도 있게 체험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현상과 원인을 밝혔으니 자연스럽게 효과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현황] - ‘극도의 빈곤’을 사는 사람이 지구상 22억 명 - 매일 지구상에서 3만 7,000명이 기아 또는 굶주림에 따른 합병증으로 죽어간다. - 6명당 1명이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통받는다. - FAO에 통계에 따르면 2000년 8억 5,000만 명 이상이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 - 주식 가격의 폭등 -> 농업연료 :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디젤 -> 투기(농업 원자재에 대한) : 투기 세력들이 증권에서 주식으로 투자처 변경 - 저조한 단위 면적당 수확량 -> 비료, 품종이 우수한 종자, 제초제, 농사를 도울 가축, 트랙터 등이 부족 -> 선진 국가들이 자행하는 농업 덤핑(농산물을 정상 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수출하는 정책) - 다국적 민간 기업, 헤지펀드, 사우디, 중국 등의 국가 펀드로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토지 매입’ -> 제철이 아닐 때 채소나 과일 등을 길러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 판매 -> 팜유를 얻기 위해 종려나무 숲 강제 조성 -> 바이오 에탄올이나 바이오디젤 같은 농업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탕수수밭 조성 기아로 인한 죽음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없다. 기아로 죽는 어린아이는 살해당하는 것이다. [해결 방안] - 주식(주로 먹는, 주가되는 음식)을 대상으로 하는 투기 금지 - 헤지펀드들의 남반구 농경지 약탈 금지 - 농업연료 금지 - 진정한 인간성 회복 - 유럽연합이 세계 식량 시장에서 자행하는 농업 덤핑 금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저자인 장 지글러는 1)주식 가격의 폭등 2)저조한 단위면적당 수확량 3)투기적 토지 매입으로 보았다. 예상보다 심각하게 만연된 기아에 놀라기도 했지만, 저자가 언급한 기아의 근본적인 원인이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 다국적 기업, 이익단체 등의 이기적인 만행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칠레에서 발생한 ‘아옌데’ 대통령의 비극과 사하라 남단 부르키나파소의 혁명가 ‘상카라’의 비극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낄 정도였다.신자유주의의 팽창으로 부의 양극화는 더욱 첨예해지고 능력 만능주의는 부가 집중된 소수계층의 윤리적 방어기제로 몰락해버렸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유럽 국가들도 제국주의라는 명분아래 아프리카 대륙에 자행한 식민지배의 적폐가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한된 품종만 식민지(아프리카)에 재배하게 함으로써 기아와 기근에 허약한 체질을 남긴 것이다. 결국 식량수급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되고 이는 또 다시 지배국의 경제적 침략으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부와 이득은 선진국이 일방적으로 얻게되며, 반면에 식민지였던 아프리카는 기아와 위기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도 ‘위기의 외주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악의 연대’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것이 분명하다. 📖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아 문제에 있어서 학자이자 전문가이며 활동가로 평가되는 장 지글러는 1)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2)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3)인프라 정비로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이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성 회복 이전에 기아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이 필요하며 그러한 목적에 가장 적합한 책이 바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갈라파고스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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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왕

@jinkyowang
2500년 전 그리스인의 지혜와 우화가 담긴 207편의 짧은 이야기. 익히 알고 있는 신 포도(3), 토끼와 거북이(66), 나그네 옷 벗기기(143), 금도끼, 은도끼(156), 양치기 소년(196) 등이 실려 있다. 물론 금도끼에 등장하는 건 산신령이 아니고 원조는 헤르메스 신이다. 세어 본 바, 대략 동물(여우, 나귀, 개, 뱀)이 주인공으로 등장이 80%, 제우스나 헤르메르 10%, 나머지는 자연, 나무 10%다.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사용한 그리스인들이 인간을 빗대어 담았을 것이고, 이솝은 모아서 적어 냈을터, 1~2쪽의 짧은 이야기가 어린이, 어른에게도 삶의 지혜와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현대 소설의 원형이 되지 않았을까, 마을 그늘에 둘러 앉아 노인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그때나 지금이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2500년 전이 아주 멀게 만 느껴지진 않는다.
이솝 우화집

이솝 우화집

이솝
민음사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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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음

@jinma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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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감상: 어른들의 싸움이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 속의 한 줄: 🏷조선학교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다니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을까. 의문을 품은 인간은 묵묵히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학교에 다니는 위험이란 과연 뭘 말하는 걸까. (p.162) 지니는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이다. 지니가 다니는 조선학교는 북조선의 독재자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교실에 걸어 놓고 학생들을 그 앞에서 고개 숙이게 한다. 또 학생들이 극우 일본인들로부터 받는 위협에 대해 학교는 안일하게 대처한다. 지니는 이런 상황에 부당함을 느끼다가 결국 김씨 일가의 초상화를 교실 밖으로 던져버린다. 하지만 그 결과 지니는 문제아로 찍혀 부모님을 슬프게 하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니나는 사건의 충격으로 등교도 못 하게 된다. 위 구절은 그런 일을 겪은 지니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장면이다. 조선학교의 상황에 부당함을 느끼는 자신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자신은 나쁜 아이가 아닐까 고민한다.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지니는 분명 속 깊고 착한 아이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지 못해 너무 안타깝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많은 부조리를 겪고 방황하고 자책해야 하다니. 학교에서 유일하게 깨어있는 지니가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혼자 깨어있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테니.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그 사람을 더 아프게 한다. 사건을 겪은 후 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지니는 그래서 더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에게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지니가 스테퍼니의 세심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감동받는 것을 보면 눈물날 정도다. 지니가 스테퍼니에게 힘을 받고 과거를 극복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소설도 인상적이었지만 작품해설과 옮긴이의 글도 좋았다. 특히 옮긴이인 정수윤 선생님이 써주신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정수윤 선생님은 2009년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계 류 남매의 한국어 선생님이었는데, 류 남매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보도된 후 학교에서 눈치를 보게 된다. 아래는 정수윤 선생님과 남매의 대화 내용이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특별한 건……, 그냥 분위기가 이상했어." "애들이 무섭다고, 전쟁 나면 어떻게 하냐면서, 나를 흘겨봤어." (p.191) 주눅 든 아이들은 기분을 풀어주려는 선생님을 보면서도 평소처럼 나뒹굴며 웃지 못하고, 씁쓸하고 희미하게만 웃는다. 소설의 배경은 1998년이었는데, 10년이 넘게 지난 2009년에도 소설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유도 국가대표로 동메달을 딴 안창림 선수님도 유퀴즈에 나와 재일교포로서 겪은 고충을 이야기하셨다. 재일교포가 겪는 차별은 분명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문경수 선생님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민족 교육을 옹호하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선학교가 가진 모순과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게 터부시되고 있다고 한다. (p.189) 심하면 '우익'이나 '반동분자'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그래서 『지니의 퍼즐』과 관련해서도 그런 몰지각한 비난 글들이 SNS상에 오갔다고 한다. 복잡한 문제여서 한쪽에 동조하기 쉽진 않지만, 난 소설 속 지니의 입장이 매우 공감됐다. 물론 재일조선인을 혐오하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잘못됐고 그들이 변화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인 집단을 바꾸긴 쉽지 않다. 일본인 집단은 재일조선인 집단에 비해 너무나 규모가 크니까.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위협받지 않도록 재일조선인 집단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재일조선인이 아니라 도를 넘은 참견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같은 민족으로서 나도 앞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한국은 한국전쟁 후 재일교포에 대한 원조를 끊었다. 심각한 빈곤 때문에 재일교포까지 돌볼 상황이 못 돼서 그랬을 수 있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을 '배신자'로 봤을 수도 있겠고.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빈부격차는 아직도 문제가 되지만, 분명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 조선의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기에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재일교포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너무 정치적인 이야기로 리뷰를 끝맺었나 싶다.ㅎㅎ 내가 리뷰를 이렇게 써서 그렇지, 소설은 중학생 박지니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서 그렇게까지 어렵고 정치적이지 않다. 지니의 답답하고 화나고 슬픈 심정이 너무도 잘 와닿아서, 그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지니가 너무 안타까워서...ㅠㅠ 지니를 보면서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만큼 지니의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지니를 응원하고 싶었다. 지니야, 난 널 이해해, 네가 행복하길 바라.😢
지니의 퍼즐

지니의 퍼즐

최실|은행나무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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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케

@koroke
주식투자에 대한 바이블이라는데 그 명성에 걸맞는 책이다. 주식투자하고 있거나 하려는 사람들은 필히 봐야할것같다. 다른 주식책에도 많이 언급되는 필수적인 주식투자관련 내용들의 원조격이 되는 책이다.그러면서 쉽게 읽히고 유머러스하면서 재미가 있다.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주식투자에서 상식으로 성공하는 법, 2021 최신개정판)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주식투자에서 상식으로 성공하는 법, 2021 최신개정판)

피터 린치, 존 로스차일드 (지은이), 이건 (옮긴이), 홍진채 (감수)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답답할 때
추천!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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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yihyunseung
일본 근대사에서 가쓰라 고고로는 사쓰마 번薩摩藩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함께 메이지유신을 완성한 유신 3걸로 불리는 인물이다. 료마가 주목한 것은 조키센의 그 엄청난 규모와 신기술이었다. 자신들이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대양을 건너 대륙을 돌아 일본에 내항한 구로후네의 존재를 통해서 료마는 앞으로의 세상은 바다를 정복한 사람들이 지배할 것이라는 영감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 료마는 오로지 바다를이용한 새로운 사업에 골몰하여 후일 일본 해군과 해운업의 바탕이 되는카이엔타이海援隊를 창설하여 나가사키를 무대로 활동하게 된다. 일본재벌의 원조격인 미쓰비시三菱그룹은 바로 이 카이엔타이에서 사카모토료마의 오른팔로 활동했던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가 사카모토 료마가남긴 유산을 밑천으로 창업한 기업이다. 와다 쇼류가 앞장서 개국을 주장하게 된 연유는 그 자신의 특별한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표손기략漂巽紀略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손巽은 동남쪽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을 의미했다. 말하자면 미국 표류기라는 뜻이었다. 그 자신의 경험담은 아니었고,도사 어부인 나카하마 만지로에게 직접 듣고 쓴 것이다. 만지로는 1841년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어선이 표류하여 미국 포경선에 구출돼 12년간 미국을 유랑하다가 귀국했다. 가와다 쇼류는 만지로가 이런 이력 때문에 막부에 특채되어 에도로 올라가기 전에 찾아가 미국 표류기를 구술 받아 집필했다. 동시에 구로후네를 목격했던 세 사람 중 요시다 쇼인은 신분이 병학 사범이었기 때문에 군사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으려고 했다. 페리 함대의 위용에 큰 충격을 받고 군비를 서양식으로 고치지 않으면 일본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쇼인은 러시아 함대가 나가사키에 입항해 있다는 말을듣고 그해 9월 에도를 떠나 10월에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러시아로 밀항을 기도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함대가 이미 떠나버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는데, 도중에 구마모토에 들러 사쿠마 쇼잔과 함께 당대최고의 개화 지식인이었던 요코이 쇼난橫井小楠(구마모토 출신의 사상가이자 개혁가로서 메이지유신에 큰 영향을 끼침)을 만나게 된다. 요시다 쇼인은 아이자와 세이시사이에서 사쿠마 쇼잔, 그리고 요코이 쇼난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직접적으로 교유하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했다. 이렇게 섭렵한 지식과 사상관으로 내로라하는 제자들을 길러내어 메이지유신의 초석을 닦았는데, 그 전환점이 바로 구로후네의 목격이었다. 러시아에 기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속히 다시 일본을 찾은 페리 함대는 함정 수도 7척으로 늘었고, 증기선 군함도 포헤탄 호(2,415톤) 1척이추가됐다. 막부 측은 최초 접선 장소였던 우라가 앞바다로 돌아가 달라고요청했으나 페리 제독은 거부하고 첫 내항 때와 같이 에도 만 내부를 측량하는가 하면,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대포를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했다. 양측의 기 싸움에 더해 회담 장소인 조약관條約館을 신축하느라고 거의 한 달이 흘러 2월 10일 요코하마橫濱에서최초 교섭이 시작됐다. 미국 함대가 바로 코앞에서 버티고 있는데도 한달을 끌면서 조약 체결을 위한 모양새를 만들어 놓고 협상 테이블에 나온것이다. 하야시 라잔으로 이어지는 일본 성리학의 계보를 계승한 당대 제일의 학자였다. 또 1850년부터 막부의 대외 교섭 자료집인 통항일람通航一覽(345책)을 저술한 대외교섭 전문가이기도 했다. 페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편전쟁 이후 막부는 일본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고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항상준비를 하고 있는 자에게 걸려든다는 이치는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막부 측 대표가 1853년 6월 페리 제독과의 첫 접촉에서 미국 대통령의국서 수령만 하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때와는 달리, 하야시 후쿠사이는 페리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하고 일본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회담을 이끌어 갔다. 통항일람 편찬 과정에서 축적된 대외 교섭의 노하우가 빛을 발휘했다. 준비된 후에 칼을 뽑는 사무라이의기질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특히 이 과정에서 일본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페리를 맞이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최초 개항지인 시모다와 하코다테에서 미국인이 돌아다닐 수 있는 유보遊步 구역을 정하는 협상에서 하야시는 5리,페리는 10리를 주장했다. 유보 구역은 서양인이 일본인의 생활권 내에서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왔던 페리는 요코하마에 오기 전에 들렀던 하코다테에서 저지른 실책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하코다테에 먼저 들렀던 페리는 처음에 시찰만 하겠다고 약속하고는상륙하자마자 조약 교섭에 응하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항해 경비를배상하라고 협박했다. 하코다테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10일 만에시모다로 상륙했던 페리는 에도에서 그 일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의 후진성을 감안할 때 적어도 50일은 걸려야 보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부는 페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하코다테에서의 상세한 전말을 보고받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결국 시모다는 7리, 하코다테는 5리로 유보 구역이 정해졌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것은 그 전해 9월에 일본이 운요호雲楊號를 보내 강화도에서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조정은 이 배가 일본 함선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운요호에 대한포격을 유도하기 위해 일본이 의도적으로 식별기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운요호가 조선에 전혀 생소한 함선은 아니었다. 당시 운요호는 강화도 침투 전 1875년 9월에 부산의 량왜관(倭館. 일본의 상관이 있는 일본인 거주 지역)에 먼저 들렀다. 내항 목적을 묻는 조선의 관리를 승선시켜함포 사격 훈련을 참관시키며 위력 시범까지 보여주고 나서 강화도까지올라와서 포격 사건을 일으켰다. 이 운요호가 남해안을 거쳐 서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강화도에서 충돌이 일어날 때까지 조선 조정은 전혀 운요호의 동태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일본의 유도 작전에 말려들어포격 사건이 일어나고, 일본은 이를 빌미로 1876년 2월에 강압적으로강화도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페리 함대의 항로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왜 태평양을건 바로 일본으로 오지 않고 반대편의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돌아 6개월에 걸친 머나먼 항로를 거쳐 왔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미국이 왜일본을 강압적으로라도 개항시켜 통상조약을 체결하려고 했는가 하는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개항을 원했던 대상이 왜 조선이 아니고 일본이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숨어 있다.증기선의 주 연료는 석탄인데, 한 번 항해에 실을 수 있는 물량은 일주일 치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양 항로를 개척하려면 석탄의 중간 보급 기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대서양과 인도양 항로는 유럽 제국의 식민지 개척으로 중간 보급 기지가 개발되어 있었지만,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바로중국으로 항해하려면 유일한 중간 기착지인 일본에서 연료 보급을 받지않고는 불가능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서유럽 제국에 거의 무장해제를 당하다시피 하여 대 중국 무역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있었다.신생 무역국인 미국은 영국, 프랑스에 이어 1844년에 중국과 통상조약을체결하면서 태평양을 통한 중국 항로의 개설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유일한 중간 보급지였던 일본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무역 항로 개척을 위한 목적보다 더 절실한 이유도 있었다. 미국은1858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유전을 발견하기 전까지 고래 기름으로 램프의 불을 밝히고 난방을 했다. 고래 기름을 조달하기 위한 포경선단은 주로 대서양을 어장으로 하고 있었는데, 대서양의 포경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미국 동부에 포경 항구만 50개, 포경선이 600여 척에 이르렀다.그러나 남획으로 인해 대서양의 어획고가 줄어들자 포경선단은 북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1840년대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함께태평양 연안 항구가 개발되자 태평양의 포경업은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당시 하와이는 포경선단의 모항으로 500여 척의 포경선이 기항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문제는 하와이를 떠나면 중간 보급 기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벌어진 교섭에서 두 나라는 에도 만(도쿄 만)의 입구인 시모다下田와 홋카이도의 하코다테箱館, 두 곳의 개항에 합의했다. 미국이 북쪽의 하코다테를 먼저 개항지로 선택한 이유는 북태평양 조업에 나선 포경선단의 중간 기착지로 지리적 접근성을 고려한 것이었다. 시모다는 태평양을 횡단하여 중국으로 항해하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로 선정됐다. 이때 미국은 당시 유럽 제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 강요한 치외법권을 유보구역 내에서 요구하지 않았다. 영국이 치외법권을 악용하여 중국에서 저지른 횡포로 민족주의적 갈등을 유발한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오히려 영국의 아편전쟁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여 일본 측의 호감을샀다.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이런 사탕발림에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수교 조약에 따라 1856년 시모다에 총영사로 부임한 해리스는 1857년 10월 막부 수뇌부와의 회담에서 일본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미국은 다른 곳에영토를 획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영토를 획득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 전해에 일어난 제2차 아편전쟁에 대해서도 미국은아편을 전쟁보다 위험하게 생각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막말 유신幕末維新에서. 이노우에 가쓰오). 영국이 중국을 손보고 일본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미국과 빨리 통상 조약을 체결하라는 노림수였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있는 네덜란드 상관에서 입수한 정보를 통해 미국이 멕시코전쟁(18461848)에서캘리포니아를 약취하였으며, 전쟁 배상금 대신에 뉴멕시코를 빼앗았고,중국에서는 터키 아편 1천여 상자를 반입하려다 중국에 발각된 사실을거론하며 손을 내저었다. 미국에 밀리기는 했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2개 항구의 개항과 지정된 항구에서 물자와 석탄을 공급받고 대가를 지불하기로 함으로써 핵심적인 사항이 모두 타결되었다. 1854년 3월3일에 화친 조약이 체결되었고, 페리의 참모장이 조약 등본을 가지고 전함 사라토가 호를 타고 워싱턴의 비준을 받으러 갔다. 미국 상원의 비준을 받아 양국 사이에 비준서가 교환되고 조약의 효력이 발효된 때는 다음해인 1855년 2월이었다. 미국과의 화친(수교) 조약 체결을 계기로 막부는서구 열강의 개국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영국(1854년 8월), 러시아(1854년 12월), 네덜란드(1855년 12월)와 연속적으로 화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1년 만에 서구 주요국과의 수교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미국(1858년 6월),러시아영국네덜란드(1858년 7월), 프랑스(1858년 9월)와 각각 통상 조약을체결하여 당시 서구 열강 5개국과의 수교 및 통상 조약 체결을 완료했다.조선이 1876년 2월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뒤 서구 열강과본격적인 수교에 나선 것은 미국(1882년 5월)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시작이었다. 그 후 영국독일(1883년 11월), 이탈리아(1884년 6월), 러시아(1885년 10월)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이 수교를 위한 화친 조약을 선행하고 34년의 시간이 흐른 뒤 통상(무역) 조약을 체결한데 비해, 조선은 수교와 통상 조약을 동시에 체결했다는 사실이다.일찍 문을 연 일본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단계적으로 시장을 열면서 시행착오를 교정해 나갔지만, 출발이 늦었던 조선은 그와 같은 시행착오를 교정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조선과 일본의 개국(수교) 시점 자체도22년(일본 1854년 : 미국조선 1876년 : 일본)의 격차가 있지만, 서구 열강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인 개항(통상)을 따지면 그 격차는 24년(일본 1858년 : 미국조선 1882년 :미국)으로 벌어진다. 이 기간에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국체 변경(왕정복고)과 국가 제도의 개혁(폐번치현 :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을 거의 마무리했고, 조선은 이 24년간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에 합병됐다. 가나가와조약 체결 당시 페리는일본에 줄 선물로 매우 의미 있는 신문물을 준비했다. 페리는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이었던 증기기관차를 실제 작동이 가능하도록 정교하게 축소한 모형을 가져온 것이다. 길이 3.2미터, 폭 2.2미터에 이르는 제법 큰 모형으로, 100미터의 레일까지 가져와 실제 조립하여 작동 시범을 보였다. 일본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872년 10월에 도쿄 신바시新橋와 요코하마를잇는 최초의 철도 노선을 개통하게 된다. 일본이 철도 강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899년 9월에 개통된 조선 최초의 경인선 철도보다27년이나 빨랐다. 시간적인 격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미국, 일본 자본과 기술을 들여와 땅과 노동력만 제공하고 철도를 개설했지만, 일본은 영국 유학을 다녀온 국내 기술진의 힘으로 건설했다. 근대화라는 변혁이 세월이 라는 물리적 공간을 거슬러 이루어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철도부설의 시간적 격차에서도 나타난다. 근대화에는 좀 더 많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은 더 분발했어야 했고 더 깨어 있어야 했으나, 그때까지도 조선은 조용한 은자隱者의 나라였다. <조선을_탐한_사무라이> 중에서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상투 잡은 선비, 상투 자른 사무라이)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상투 잡은 선비, 상투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지은이)
포북(for book)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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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기분

@readingmood
"월급만으로 부족해! 우리에겐 일확천금이 필요하다!" 책 띠지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 그리고 표지 무엇😍 너무 이뻐서 노트까지 사버렸다🤩 정말 페이지 터너! 흡입력있는 전개! 떡상할땐 나도 같이 흥분하고, 떡락할때 나도 같이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읽으면서 나와는 상황은 다르지만, 정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조금은 위로되고,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짜증나고 복잡미묘한 감정들... 난 뭐했나 싶기도 하고...😂 나도 달까지 가고싶다ㅋㅋㅋ 🌕 📖 이런 식의 박음질은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한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 J -98P 📖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거야." -332p
달까지 가자 (장류진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장류진 장편소설)

장류진 (지은이)
창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4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