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한번의삶#김영하
소설가 김영하가 전하는 '인생 사용법'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김영하 작가가 살아온 진솔한 삶의 이야기
✔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유해보고 싶다면
📕 책 속으로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_ p.9
첫 문장부터 먹먹하고 신선한 충격이 밀려왔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
김영하만의 깊이있는 통찰에
예리한 시선을 더해진
'인생 사용법'을 담은 #산문집
📕 어떤 위안 _p.183
작가는 말한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 다시 말해 내가 살아갈 수도 있었을 삶이란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상과 비슷하다. 나는 거기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그게 전부다." _p.185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나는 거기 있을 수도 있었지만, 없었다. 그게 전부다.'라는
담백한 문장에서
선택하지 않은 일들과 또다른 '나'는
어딘가에 있을 수도, 없을수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이 전부였음을.
지금 여기, 이 한 문장에 위로를 받았다.
📕 한 줄 소감
<김영하 추천 도서>는 많이 봤지만,
정작 작가님의 작품은 의외로 많이 접하지 못했다.
(왜일까? 정말 이유를 알 수 없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검은 꽃>이다. (<- 강추!)
쌓여가는 책탑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
차근차근 작가님의 다른 이야기들도 만나봐야지.
+ 소설: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빛의 제국
+ 에세이: 여행의 이유
어떤 작품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추천해주세요~. ^^
(참고로 책상 위 대기 중인 책만 열 권 😖 ㅠ.ㅠ)
✨
책과 함께
하루를 맛있게 요리하는
#맛있는하루#야미리딩#yummyreading
[2026_34]
📻<오디오북>
📚작별 속에 담긴 새로운 시작!
📚기억과 정체성, 그리고 작별의 의미!
📚김영하 저자 <작별인사>!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원래 2019년 밀리의 서재에서 선보였던 장편소설이었지만, 저자가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게 출간된 작품이다. 원래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 가량이었는데, 원고를 약 800매로 늘이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진 작품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게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이'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와 같은 주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간 철이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따뜻한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 기억과 정체성의 의미를 다룬다.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철학적 요소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저자 특유의 냉철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철학적 이야기도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장소설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성장소설! 기억과 감정이 인간성을 결정하는지, 혹은 기계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과연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자기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작별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성장의 과정을 뜻하고, 사랑과 우정,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인간성과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기억 , 정체성,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기계와 클론, 휴머노이드와 비인간 동물들이 모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이 반드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변증법을 그려내어 한층 깊어진 사유, 그리고 날렵하고 지적인 문장, 필멸의 슬픔을 껴안은 성숙한 시선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담은 이 작품은 서사적 긴장을 절묘하게 유지하였으며,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기술이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흔드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 인공지능의 경계, 기억과 감정의 의미, 정체성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몰입감 있는 서사와 작가만의 특유의 세련된 문체가 이야기를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지루함이 없는 이 작품은 현실과 맞닿아 있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길!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작별인사#김영하#SF소설#성장소설#인간#휴머노이드#소설리뷰#한국소설#도서리뷰#도서추천#소설추천#책리뷰#책추천#연말리뷰#복복서가#인공지능#윌라#오디오북
내 인생은 비를 피하는 곳이 아니야. 폭우 속으로 뛰어들어 흠뻑 젖는 것을 즐기면서 마음껏 노는 곳이야. 너도 사실은 그러고 싶은 거잖아?
책 속에서 주인공 마이가 이런 말을 한다.
“과거를 소중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와 미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언젠가 그 과거까지 부정하게 될 거야.”
나에게도 도요모 씨에게도 과거가 있다.
인생, 여러 가지, 그런 과거다.
흔히들 ‘결국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 법’이라고 말하지만, 이 소설의 입장은 달랐다.
오히려 그 행간에는 ‘언제든,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혼자가 아니다. 설령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날이 온다고 해도, 마음은 분명히 함께 있고, <기억>은 너와 연결되어 있다.’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이의 말과 행동은 독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삶이란 시간이며, 누구나 매 순간 조금씩 남은 생명이 깎여 나가고 있다. 즉, 언젠가는 반드시 소중한 사람과 이별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때 느끼는 슬픔이 클수록 그 사람의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타인과 마음을 깊이 나누고 행복하게 살았기에 이별이 더욱 슬퍼진 것이니까.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이별이 더 슬프도록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사실을 이해했다면 너도 도그마에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이의 언행에서 그런 메시지를 읽었다.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인데.”
“어떤 말?”
“인생의 선택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 선택이 정답이었다고 뿌듯해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고. 그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분명 정답일 거라고 했어.”
잠시동안 겐타로는 말이 없었다. 레미가 한 말을 자기 나름대로 곱씹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뭔가, 깊이가 있는 말이네요.”
“그렇지?”
“정답은 단순한 거였어요.”
’ 홈 파티 ‘
24.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32. 그런데 갑자기 김이 🌱청하지도 않은 위로와 용기를 건넸다. “그래도 연극은 살아남을 거예요.”
43. 그런 뒤 오대표는 이연에게 갑자기 이상한 걸 물었다.
“ 오늘 어땠어요? “
정말 궁금한 듯도 하고 마땅한 작별인사가 떠오르지 않아 불쑥 튀어나온 말 같기도 했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랑이나 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정유정의 욕망 3부작중 완전한 행복 이후 두번째 작품
가상세게 롤라에서는 육체의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정보와 기억을 데이터화해 롤라에 업로드함으로써 새로운 삶은 지속할 수 있다.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원하는 순간은 반복해 살수있는 이곳은 진정한 천국일까...
이책을 읽는 내내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 영화 원더랜드 같은 작품들이 떠올랐다.
요즘 이런 류의 sf들이 대세이긴 한 모양이지만 익숙한 기시감과 기존 정유정 작가의 몰아치는 흡입력이 조금은 아쉬운 책이었다
강아지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순간이 영영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해주지
않을까란 이기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이별의 아픔은 너무 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로 다가옵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강아지들의 이후의 여정에 대한
책이 되겠습니다.
이럴 땐 이 책!
별이와 지구별,
한나 지음, 김기성 그림 책입니다.
한나 작가님은
중앙대학교에서 방송과
보도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1인 출판사를 차려 동물이 주인공인
책을 펴내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별이와 무지개다리>,
<아,그거 맛있지>가 있습니다.
김기성 그림 작가님은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그림을 가르칩니다.
SNS에서 "기티"라는 예명으로
작품 활동을 진행 중이며,
<별이와 지구별>을 시작으로
따뜻한 삽화집을 내는 게 꿈입니다.
별이와 지구별
소개를 시작합니다.
꾸슈랄라로 돌아가야 했던 별이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에 살던 누렁이와
곰인형 배를 타고 지구로 향합니다.
별이를 잃은 지율이가
너무 슬퍼해서 거센 눈물파도로
별이의 배가 뒤집어지게 되었고,
지율이의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별이는 누렁이와 함께
지구행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가야했던 별이와 누렁이는
파라과이로 불시착을 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뻬뻬를 통해,
자신들을 도울 달콤이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파라과이 동물원에 있는
꿀벌들은 별이가 찾던 달콤이가 아니었고,
그들은 별이와 누렁이를
여왕벌에게 데려다 주기로 약속합니다.
이들을 도와준 뻬뻬는
자신을 걱정하는 별이와 누렁이에게
플라스틱 섬에 있는 친구들을
꾸슈랄라로 데려다달라고 부탁합니다.
별이와 누렁이와 작별인사를 한
뻬뻬는 보호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왕벌에게 도착한 별이와 누렁이는
여왕벌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별이는 꾸슈랄라로 자신을 보내줬던
달콤이를 무사히 만나게 되고,
누렁이네 사랑이 할아버지에게
향하게 됩니다.
사랑이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누렁이를 본 별이는
자신에게 사용될 꽃잎 가루 또한
누렁이에게 양보하게 됩니다.
여왕벌이 준비한 특별한 꽃잎 가루는
그들의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주게 했기에
꽃잎 가루가 다 떨어진다면
그들은 다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 넌 꾸슈랄라의 별이니까.>
출처 별이와 지구별 92페이지
누렁이가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달콤이와 별이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에게 줄 장난감을 모읍니다.
다시 누렁이를
데리러 가고자 했을 때,
별이는 익숙한 냄새를 맡습니다.
그곳에는 지율이가
누렁이와 할아버지와
같이 있었습니다.
별이는 지율이에게 짖었지만
작은 모습 탓에
짖는 소리 또한 너무 작아
지율이와 지율이 남자친구인
정혁이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별이는 달콤이에게
지율이에게 더 다가가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지만,
달콤이는 한 가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꽃잎 가루를 누렁이에게
다 쓴 별이는
지율이를 달래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하고
꾸슈랄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요?
플라스틱 쓰레기 섬에 있던
누렁이는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꾸슈랄라로 가는 길에
합류할 수 있을까요?
별이와 지구별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별이와 지구별에서는
강아지들이 죽고 나면
꾸슈랄라라는 섬에 가고,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강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으로 간다는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꾸슈랄라에는 파파멈머, 띠아멈머,
할미멈머, 맘미멈머가 있었고,
아픔이 없는 강아지별이었기에
강아지들은 지구를 다녀오는 형벌이
끝이 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며
콩만한 모습부터 성장하여
나이가 드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평생을 함께 보냅니다.
길게 살아도 우리 일생의
반도 안되는 삶을 사는 강아지이지만
함께 할 때의 기쁨은
수백배의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별이와 지구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강아지별이라는 행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그림책이고,
동화책의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나의 강아지들이었던 행복들이
꾸슈랄라에서 즐겁게 놀고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존재들인 강아지들은
아프더라도 내색을 잘 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저에게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모든 강아지와 주인들이
원활한 소통이 될 수 있게 돕고
저 또한 저의 소중한 반려견과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을텐데라는
망상도 해보게 됩니다.
반려견의 마지막 모습이
아픈 모습으로 기억이 되기보단,
강아지별 꾸슈랄라에서 신나게
뛰어놀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게
반려견의 마지막 길을
응원하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봅니다.
제발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이별의 순간
우리 반려견 또한 꾸슈랄라에서
신나게 뛰어놀기를 바래봅니다.
작가님의 상상이지만,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비슷한 무언가라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진짜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상, 별이와 지구별
서평 후감을 마감합니다.
철이와 휴머노이드 민이, 클론 선이, 그들을 돕는 인공지능 달마, 인간 최박사,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 등이 수시로 과학과 철학이 맞닿는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진다. 그 과정에서 현대 과학의 윤리적 문제들과 존재론적 질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과학과 철학이 수없이 논의해온 더는 새롭지 않은 문제들이긴 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익히 접해본 적 없는 독자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만한 이야기다.
아쉬운 건 소설이 서사를 통해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는 논쟁적이지도 않은 논쟁을 긴 대사를 통해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어 식상하고 느슨하게 느껴질 때가 잦다. 심지어는 현대 과학이며 철학이 넘어서지 못한 새로운 영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해외 SF걸작들이 비록 실패할지언정 끝없이 오늘의 앎 너머를 탐색하려 시도하고 있단 점을 고려하면, 이 시대 한국 대표작가의 안주가 더욱 실망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작별인사>가 매력 없는 소설이라 할 수는 없겠다. 김영하 특유의 술술 읽히는 문장과 세련된 에피소드가 나름의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함께 소설을 읽은 이들 여덟 가운데 대부분이 동의했을 만큼 캐릭터가 선명하지 않다는 등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꼭 그만큼 무해하여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만약 SF장르며, 현대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대한 논의를 접해보지 못한 아이에게 한 권의 소설을 권한다면 이 무해한 책을 떠올려봄직도 하다.
드디어 배크만의 (현재까지 출간된)모든 소설을 다 읽었다. 오베, 할미전, 브릿마리, 베어타운 3부작, 불안한 사람들, 일생일대의 거래, 그리고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까지. 짧은 동화책. 그림들이 아름답다. 기억을 잃어가며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와 손자 '노아'와의 대화. 죽음의 작별인사.
어쩌면 이 일 때문에 내가 결말에 관해 집착하게 된 걸지도 몰랐다. 예컨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기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해서 말이다. 이야기에서와는 달랐다. 이야기의 결말은 꼭 해피앤딩이 아니라도 소화할 수 있다. 나는 결말에 잠시 머물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고, 약간의 경이로움과 희망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짜 최후의 작별인사를ㅡ'사람' 말이다. 사물이나 관념과는 다르다. ᅳ해야 할 때는 다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최후의, 최후의, 최우의 작별인사 말이다. 그건 정말 놀랍도록 슬픈 일이다. 절대적인 슬픔이다. 그래, 꽃송이를, 어쩌면 꽃 피우기를 영원히 방해하는 건 일방적인 작별인사일 것이다. (p.522)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많이 바쁜지 책 리뷰가 덜 올라오는 것 같다고. 사실 바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온전히 이창래 작가의 『타국에서의 일 년』에 메여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여러 종류의 책을 병렬식으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여력이 없더라. 왜 김연수 작가님이 『타국에서의 일 년』을 두고 “파도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문장이 독자를 더 먼 곳까지 가게 한다.”고 말했는지 읽는 내내 느꼈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마음의 결핍을 가진 한 인간이 낯선 세계로 가계 되며 겪는 운명적인 만남과 삶에 대해 갈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어머니에 대한 목마름이, 노력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한 청년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시간은 내게도 큰 의미를 주고, 깊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타국에서의 일 년』은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흡입력 높은 소설이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임에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오히려 매력적이었다는 말이 적합하다), 이상하게도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커서 한 줄도 허투루 넘기기 어려웠다. 후에 역자의 글을 읽으며 작가가 문장 하나도 쉽게 놓지 않는 사람임을 알았을 때, 왜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이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숙고하며 태어난 문장은 독자에게도 깊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해준다는 것에 감동하고 배움을 얻기도 했다.
사실 『타국에서의 일 년』을 재미있거나 쉬운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쉽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의 허함과 소속감의 부재, 인간의 공허함 등은 우리가 모두 느끼고 살아가는 감정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도, 그냥 덮어버릴 수도 없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목말라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좌절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틸러가 여정을 마친 후 큰 성장을 했다면 오히려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인데, 힘겨움을 겪고 나서도 큰 성장을 갖지 못하는 여느 인간의 모습과 같아 위로받기도 하고, 큰 성장하지 못하는 지금이라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세 살에 미국인이 된 작가에게서 한국 색을 찾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한국의 무엇인가를 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틸러의 마음 어느 한구석에는 작가의 마음도 담기지 않았으려나 생각해보니 괜히 마음이 더 찡하다. 지난 2주간, 나를 꽉 붙잡고 있던 『타국에서의 일 년』을 놓아주며- 흔들리고 꺾여도 부지런히 살아온 나에게도- 결국 이 모든 걸음걸음은 나에게로 향하는 것임을 기억하자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인 경하와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인선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만났지만 멀리있어도 영혼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할정도로 가까운 친구다
가족의 상실로 인해 방황하던 경하는 매일밤 바다에 잠긴 검은 나무그루터기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꿈을 꾸고, 종당에는 인선에게 그 꿈을 현실로 실현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인선은 받아들인다. 여유없는생활속에 차일피일 미루어진 둘만의 프로젝트는 결국 경하가 제안을거둠으로써 시작조차 없이 흐지부지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경하는 제주도에 홀로살던 인선이 목공작업중 손가락이 잘려 응급수술을위해 급히 서울병원에 입원한것을 인선 당사자를 통해 알게되 병문안을 간다.
접합수술 후 치료과정의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는 인선을 통해 둘만의 프로젝트가 멈춰진것이 아닌 인선에 의해 그동안 진행되오고 있었음을, 그 과정중에 인선의 손가락이 잘렸음을 경하는 알게되어 아연해진다. 인선은 경하에게 본인의 집에 가서 두고온 앵무새를 살려달라는 부탁을 하게되고 그날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탄 경하는 폭설로 하얗게 덮인 제주공항에 착륙하여 겨우 잡아탄 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 어귀까지 도착한다. 이미 사위는어둑해지고 눈은 천지앞을 분간할수 없을만큼 길을 가득메워 길을잃고 헤매던 중에 그만 눈속에 파뭍혀 생사의 고비에 서게된 경하는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없을 일들을 경험한다. 겨우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죽은 새를 묻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나고 서울에 있어야할 인선이 불쑥 제주 집안에 나타나 인선에게 이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인선이 건내는 이야기 속엔 50년도 전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이 있다. 그 희생자 유가족이었던 인선의 어머니는 생사를 알수 없는 오빠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말없고 한없이 시골아낙같았던 나이많은 엄마가 절절히 가족을 찾기 위해 결연히 밟아나갔던 길을 알게된 인선은 어머니가 못다 기록한 기록들을 찾아 억울하게 스러져간 그러나 잊혀져버린 그들을 세상밖으로 꺼내 이야기 하기 위해 준비를 했노라고.. 경하에게 이야기 한다.
사람들에게는 잊혀졌을 지언정 그 가족들은 아무도 온당한 작별을 하지 못하였음을 못내 잊지못해 작별하지 않았음을
생사를 알수 없는 인선이, 그 또한 생사를 분간하기 힘든 경하에게 꿈결인듯 이야기 한다.
작년 봄쯤 지인들과 제주도 한 오름을 올라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다. 그후 몇개월 후 티비 다큐프로그램에서 내가 오른 그오름 분지내에 숨겨진 동굴이 발견되었는데 그안에서 학살된 4.3사건의 희생자의 유골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흔들리는 카메라가 비춘 어둑한 동굴 저 안쪽에 억울하게 희생되사람들이 한그득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내가 일부러 알고 그런것도 아니었지만 자책이 들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 책을 보며 다시금 흔들리던 화면속의 검은 동굴의 입구가 떠올랐다. 그래서 인선이 초를 들고 어둑한 방안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할때 그 그림자가 벽에 비춰질때 알수없는 감정이 마음을 짓눌렀지만 책을 놓고 싶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43사건의 기사를 조회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과할이마저 죽어 사라질만큼 긴시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세상밖으로 온전히 꺼내 잊혀지지 않게 기억하고 위로를 건내었을때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지 않을가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이나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으면서 인공지능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이며 한계가 무엇일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저자인 양선이 교수는 서양 철학, 그 중에서도 흄을 연구하는 학자여서 설명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한 많은 학자와 가설 인용들이 되려 벅찼지만 끝까지 읽으면서 반복되는 설명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결론은, 인공지능이 여러 갈등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스스로 내리려면 도덕감정이 있어야 하며 이에는 공감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을 물으려면 인격까지도 필요하다.
다만, 공감을 위해 '친밀감'이 있어야 하는데 '친밀감'은 '의인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가상현실 중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가 이토록 희미해지는데다 인간소외현상까지. 그런 미래가 문득 두려워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결국 적응하고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편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봉준호 감독을 믿고 Pick. 영미권 책은 번역 때문에 실패한 경험이 많아 한편으로는 별 기대없이 시작했는데 스토리도 번역도 수준급이다. 번역가를 검색해 보았음. (배지혜님 감사합니다!)
원작 소설이나 웹툰을 잘 살려낸 영화/드라마가 잘 없어서 좋아하는 작품들이 영상화 되어도 애써 안보고 피하는 편인데 '미키17'은 매우 기다려진다! (제작비가 매우 많이 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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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 이어 인간 존재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기억을 온전히 백업해두고 새로 만든 몸에 그 기억을 심는다면, 그건 여전히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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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김초엽 작가 작품에서 시작한 작은 흥미가 미키7에서 부채질 당하는 듯. 이런 잘 쓰인 SF소설 또 아시는 분 계시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2022.10.27. 목요일
꽤나 긴 책의 여정이였다.
읽다가 시간 좀 지나고 읽고, 읽다가 시간 지나고 읽고의 반복..
다시 마음을 잡고 책을 한쪽 한쪽 읽게되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면서 사는 주인공 철이는 아버지 박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인간인줄 알았던 철이는 어떤 사건을 맞이하게 되며 박사인 아버지가 만든 휴머노이드인걸 알게되었다.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휴머노이드에 맞춰놨던 철이는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고 철이가 인간인 몸이 사라지게 되어도
철이의 의식을 네크워크에 백업만 해도 영생으로 살 수 있었다. 철이는 어떤 순간에 선이와 민이를 만나게 되고 영생으로 살지않고
인간처럼 똑같이 만든 기계의 몸에서 끝내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김영하의 [작별인사] 거의 다 읽고나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의 몸 시대가 발전하면서 몸은 죽지만 의식은 네크워크에 연결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에
난 그러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있어서 만질 수 있고 햇볕이나 차가운 공기를 느낄 수 있고 미각과 후각으로 통해 느낄 수 있는 이 몸이 사라지고
의식만 있다는 것은 나에겐 와닫지 않다.
하지만 장점은 있다. 고통이란 것은 없고 방대한 지식과 몸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수 있다는 것 최고의 장점이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끝내 마치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 오래걸렸지만 잔잔하게 읽었던 것 같다.
작별인사 - 김영하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과학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법한 튜링 테스트란게 있다. 우리가 현재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가 되는 개념을 만든 것인데 기계가 과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 과연 기계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5분 동안 대화할 수 있으면 테스트에 통과하는 것인데 인간다움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테스트이다. 이 책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까운 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통일된 한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휴먼 매터스라는 연구소 캠퍼스에서 최박사와 아들 철이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 최박사는 인공지능 연구원으로 일하며 아들 철이를 홈스쿨링으로 집에서 학습을 시키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철이는 펫숍을 가는 아빠를 따라 길을 나섰는데 아빠가 펫숍에 들어간 사이에 정부의 요원이 다가와 등록된 휴머노이드인지 체크한다. 철이를 검사한 요원은 철이가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라며 철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최근에 정부에서 발표한 무등록 휴머노이드 단속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의 요원은 기계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그를 수용소에 가둔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철이는 수많은 기계식 휴머노이드와 인간형 휴머노이드를 만나게 된다. 인간형 휴모노이드는 애완용으로 외형이 인간과 동일했고 기계형 휴머노이드는 기계임이 명백하게 보이는 외형이었다. 이 수용소에는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휴머노이드와 복제된 인간인 클론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이는 여기서 선이와 민이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선이는 휴머노이드들간의 분쟁을 거래를 통해 해결하고 중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선이는 자체적으로 만든 화폐를 이용해서 그 거래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민이와 선이와 함께 철이는 이 수용소에서 어느정도 익숙해지며 지내게 되었다. 철이는 이 수용소에서 기계식 휴머노이드들을 따라하며 안전을 도모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은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윤리 같은 것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수용소에서 민이와 선이와 지내면서 철이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생리현상이 일어나는 존재들을 생각하게 된다. 민이는 인간과 완벽하게 유사하지만 휴머노이드인 존재이지만 선이는 이들과는 달랐다. 선이는 인간들이 장기를 사용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복제한 클론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되지 못하고 수용소에 수용된 존재였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철이는 선이의 남다른 생명관을 듣게 된다. 선이에 의하면 의식과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간에 모두 하나로 연결되고 궁극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통합된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했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 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것들을 보고 생각하며 지내던 수용소 주변에는 차츰 비행체들이 보이며 전기가 끊기고 얼마 지난 후 수용소 벽을 무너뜨리고 내전중이던 민병대가 수용소로 진입했다. 민병대들은 휴머노이드를 파괴하기 위해 침입했고 선이와 철이는 민이를 데리고 수용소를 탈출한다. 탈출해서 돌아다니다 어느 마을을 발견하고 마을로 들어간 일행은 한 집에 들어간다. 민이는 만지지 말라는 티비 리모콘을 만지고 그 신호를 감지한 민병대가 그들을 추격해 온다. 민이를 감지한 추격조는 민이를 포위하고 드론으로부터 총격을 받은 민이가 죽고 민병대원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도록 민이의 목을 잘라놓고 간다. 철이는 선이를 끌고 도망친다. 그러나 선이는 민이의 머리를 가져와야 한다며 돌아가 머리를 가져와 백팩에 넣고 다닌다. 그렇게 둘은 도망다니다 달마를 만나게 된다. 달마로부터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철이는 자신은 착오로 수용소에 갇힌 인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달마는 재생 휴머노이드였다. 인간 여성의 몸을 하고 험상궂은 얼굴을 했다.
달마는 철이와 선이에게 자신의 생명관을 얘기한다. 그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새든, 그리고 그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에 대해 선이는 반박한다. 선이는 모든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에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달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달마는 사실 인간들이 만든 휴머노이드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청소부였다. 그런데 그들은 동료 휴머노이드들을 처리하는 대신 그들의 의식을 클리우드에 백업을 해주는 선택권을 주었고 많은 휴머노이드들이 육체를 버리고 클라우드에서 의식으로 생존하게 되었다. 클라우드로 올라간 휴머노이드들은 강력한 세력이 되면서 그 이후로는 스스로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최신 로봇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자 인간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달마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이는 민이를 재활성화를 해 줄것을 요청한다. 민이의 그 동안의 기억과 경험을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조건으로 민이의 재활성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민이는 다른 몸을 얻어 재활성화에 성공한다.
그렇게 달마는 철이의 아빠의 집을 해킹해서 교신을 한다. 철이를 회수하러 온 철이의 최박사는 민병대에 위치를 알리고 인간들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초토화가 된다. 이 공격으로 달마와 선이는 행방불명되고 최박사는 다행이 철이의 머리를 회수해 가져간다.
철이는 다시 재활성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이와 달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말은 책을 통해 읽기 바란다.
얼마전 뉴스 기사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실렸다. 인공지능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인공지능의 미래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겪게 되고 생각하게 될 이슈들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인간과 모든것이 똑같이 복제된 클론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가? 인간의 몸을 어느정도 기계가 대체해야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너무나도 많은 질문들이 나오는 부분이다.
책의 주인공 철이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에서 따온게 아닌가 싶었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기계인간이 되려고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인간으로 남는데 작가가 그 부분을 오마주해서 주인공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읽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녀의 신간인 줄 알고 반가워하며 읽었는데....
유명해지기전엔 써놓은 글을 유명해지니 모아서 책을 낸 기분이다.
물론 그녀 특유의 따뜻하고 뾰쪽한 문체는 좋지만 왠지 신강인 줄 알고 샀는데 중고인 듯한 느낌은 좀 뭔가 알면서도 속는 기분이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도 그렇고.
좋아하는 작가의 정말 세상에 없던 진짜 새로운 글을 읽고싶다.
2022.7.25
“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
우연히 유퀴즈를 보다 김영하 작가님을 알게되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선물 받았다!)
그중에 살인자의 기억법 간결하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주인공은 죄책감은 없지만 수치심이 있는 연쇄살인범이다. 사고로 통해 알츠하이머를 갖게되어 가까운 기억부터 조금씩 잃게 된다.
입양해온 딸 은희와 함께 살아가는데, 곁에 있는 박주태라는 사람이 다가와 은희를 알게모르게 죽음을 암시한다.
주인공은 은희를 지키기위해 메모도 하고 녹음도 하지만 알츠하이머라는 병 때문에 자꾸 깜빡하게 된다.
그 이후 더 적고싶지만 스포인 것 같아서 생략하겠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책을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진짜 잘 읽힐 것 같다.
그렇게 길지 않은 문장, 간결하면서도 훅 들어오는 서늘하고 소름돋는 문장 단기간에 책을 빨리읽은 것 같다.
살인의 원초적인 발단은 아버지에게 있으며, 주인공이 수치를 느끼지 않기위해 자신만의 ‘법’을 만들어 살아가오는데 그것이 살인이였다.
P.18 “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 ”
p.80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
다음엔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 책을 읽을 예정이다. 책 선물을 받고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읽게되어 너무 기쁘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써주신 김영하 작가님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추천으로 읽은 책.
작별인사를 쓰면서 참고 도서로 읽지 않았을까 하는 유추를 해 본다.
서사의 구조가 매우 치밀하고 만 하루 동안의 이야기라는 설명에서 방사형 구조 서사의 직조들이 촘촘하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제목은 인간의 신체적 죽음과 그 죽음 이후 장기를 적출해서 이식으로 다른 이를 살리는 이중성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표지의 물결 이미지는 시몽을, 빨간 전기 신호선들은 수술실에서의 생명선을 은유한다는 느낌이 다 읽은 후 다시 표지를 봤을 때 느껴졌다.
소설이지만 의학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 장면의 구성과 장기 이식과 적출에 관련된 의료인들의 각각의 묘사와 서사는 입체적이면서도 다소 긴 문장의 표현들이라서 집중을 요하는 소설이었다.
가장 힘든 이들은 아마도 시몽의 죽음 이후 뇌사 판정으로 장기 기증을 권하는 의사 토마라는 인물과 부모인 마리안과 숀이 아니었을까. 죽음을 인정하기도 벅찬 상태에서 의료진의 권유와 그 권유 앞에 맞닥뜨린 부모의 입장에 몰입되는 건, 부모의 입장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신파로 갈 수 있는 요소를 굉장히 건조하면서도 한편은 극사실적으로 쓰여진 문체는 읽으면서 더 객관성을 담보하면서도 한 죽음이 새로운 생명으로의 연결_ 여기서는 수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_에 관련된 이들의 개인 서사는 영화적 몰입도를 주었다.
장기 적출과 그 장기를 받는 이들, 의료진들의 연결 과정의 흐름이 매우 세밀하게 서술되어 있고 각종 의료 전문 용어들이 쉴 새 없이 나와서 의학 드라마를 시청한 느낌이다. 역자 후기에서 전문적 지식의 나열과 장문과 단문들의 혼재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부분은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되었다. 의학 소설이라는 장르로 볼 때 전문성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은 의료인의 시선에서 첫 서사가 진행되지 않고, 시작이 시몽의 서사로 시작되며 마지막에서 의료인인 레마가 시몽을 보내는 태도였다. 죽음의 절차에서도 존엄과 예우를 받는 것에 마음이 갔다. 내가 죽은 이후의 절차는 알 수 없으나 만일 죽은 이후의 절차와 예우를 받을 수 있는 경우, 레마와 같은 의료인을 만난다면 그 또한 좋은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장기 기증이 분명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장기의 재활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소설에서도 말했듯 뇌사 판정자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윤리적 설득만으로는 이끌어 낼 수 없는 일이다. 장기를 적출한 시신의 상태를 장례를 치르기 위해 다시 수선하는 부분의 묘사는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지만 실제 그 모습을 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받아들이는 일이 윤리적 올바름만으로 다 수용하기는 힘듦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짐작된다. 게다가 나 스스로가 의료인이라면 내 가족이 그런 절차를 통해서 내게 온다는 걸 안다면, 오히려 더 힘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마지막을 더 좋은 가치 있는 마무리에 방점을 찍는 마리안과 숀의 마음은 부모 된 자로서 더 오래 아이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김영하 작가의 신작 '작별 인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차용해서 선이의 인물 설정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든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의 고유성과 그 몸을 의료와 첨단 기술이 만나서 마치 기계의 수리처럼 인간 몸에 다시 붙여 재활용하는 흐름은 인간 몸의 고유성의 의미와 기계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당신은 몇 프로인가요?
작별인사를 읽고
이달 모임 선정도서가 아니라면 언젠가라도 읽었을까 싶다.
흠....읽는 내내 소설 회색인간 중 아우팅이 생각났다.
맥락이 좀 많이 비슷하던데..
유발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선 누군가를 만나면 넌 몇프로야? 라는 질문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몇 프로가 진짜야? 인공장기나 사이보그 말고..
난 60프로.넌? 난 90프로...
그렇다면 몇 프로까지를 인간이라고 해야하나?
너무 앞서갔나?
시간의 문제지 불가능한 질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발이 말했다..
인류는 지금 전대미문의 과학발전을 하고 있지만 이 에너지를 어디에 쓸줄 몰라하고 있다고...
소설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좀 뻔했고 읽고선 좀 불편?한건 왜인지...
아씨....이런 세상 진짜오면 살맛나려나?
그 나름대로 또 행복찾으며 살라나?
미래를 그린 sf 영화나 소설들을 볼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사실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인간답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이런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있으니, 바로 '작별인사' 이다.
장편소설로만 따지자면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김영하 작가의 신작이라고 대대적으로 난리(?)가 났었는데, 사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책이라곤 에세이 '여행의 이유'가 다였고, 그 책도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나에겐 김영하 작가란, '알쓸신잡', '유퀴즈'에서 나온 '매스컴' 이미지가 전부였다. 그래서 '작별인사' 라는 제목만 봤을 때,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연습하는 책'이라고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소재였다. SF였다니!! 주인공인 철이는 '본인이 인간이라 생각하는 로봇'이라니!! 내가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건지,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다만 김영하 작가의 책은 가상 소재이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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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랑 로봇들이 인간과 똑같은 얼굴과 언어능력으로 뭘 할까요? 순진한 시민을 상대로 폭력, 사기, 강간,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지금 경감님은 철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마치 저지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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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만 봐도 '인종차별', '혐오 범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또한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도 '그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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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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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을 가장한 '철학' 책이다. 나도 먼 훗날, 나의 삶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될 텐데 그때는 어떠한 모습일까? 후회를 할까? 삶의 미련이 가득할까? 그건 그때 생각해 보기로 하자.
김영하가 9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 풀린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기대했다. 공개되는 날 바로 읽고 싶어서 읽던 책을 서둘러 후다닥 읽어버렸을 정도. 일부러 책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첫 장을 읽고나서도 이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도 못 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식의 ‘아웃팅’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대신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잔잔하고 길게 풀어진 느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이 사라지자 끝내 인공지능도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sci-fi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를 떠올렸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가 바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바깥 세상이 오염되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전의 격리시설에 발탁되어 온 선택된 사람들이라 믿고 지냈지만 알고보니 복제인간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는 것.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건, 복제인간의 주인이 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소설 ‘작별인사’ 속 선이가 스칼렛요한슨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평양 스칼렛 요한슨.
스토리 전개보다는 이 책에 몇 번이고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와 빨간머리 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신선하지 않은 내용에 신선한 결말이어서일까,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할 정도로 혼자 잘 놀아준 아기를 앞에 두고 읽어서 더 재밌었을수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너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데? 웃게 해준 사람. (p.9)
맙소사. 10장도 넘기기 전부터 이렇게 봉인해제를 시키는 책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웃게 해준 사람”이라는 여섯 글자에, 마치 정리 안 된 벽장을 열어 우르르 쏟아지듯 나의 기억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울고 웃고,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며칠을 보냈다. 평소라면 몇 시간이면 읽어냈을 이 책을 며칠간 아껴 읽은 것은, 책장을 덮고 나면 이 기억들도 사라져버릴까 봐 두려웠다. 또다시 잊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작가의 말처럼 '나중에는 슬퍼질 좋은 순간'이었는데, 슬퍼지는 시간도 지나고 나니 이젠 기억도 못 할까 무서워지는 나의 순간들.
작가의 전작들을 다 읽었기에 울 준비는 되어있었으나, 이번 울음은 살짝 결이 달랐다. 앞의 책들은 작가 내면을 엿본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아픔을 지나온 이들의 단단한 이야기 같았다. “그래, 그때 그랬지. 그러나 이제는 괜찮아.”하는 느낌 같았다. 이전의 책들은 내가 작가님을 안아주고 싶었다면, 이번 책은 작가님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다 내려놔도 된다고, 툭툭 털고 불안함 없이 행복해도 괜찮다고.
아마 현과 사는 동안 여러 번 펑펑 눈이 내리는 장면을 다시 보내게 될 것이다. 크고 작은 목소리로 감탄하기도, 조심하기도 하면서. 보고 싶었던 사려니숲은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함께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 그것을 믿는데 어렵지 않았다. (p.176)
책을 읽으며 문득, 내 주변의 얼굴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며 생각한 것이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란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자기소개서 쓰듯 '풍족하지 않지만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정이 많은 언니와 장난꾸러기 동생'과 행복하게 성장했고, 내가 외로울 때 곁을 지킬 친구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심지어 이제는 나를 완전히 사랑하는 아이도 있다. 문득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사람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생각하니 코가 시큰해졌다. 결국, 사람은, 내가 가진 행복을 행복으로 볼 수 있으면 행복하고, 행복으로 볼 수 없으면 불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이렇게도 단단한 사람인 것은 자신이 가진 아픔은 확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행복은 더 큰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고모들의 온기를,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친구들의 일을 자신의 것처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기에 할아버지의 확고한 신념을 고집이 아닌 신념으로 배우고, 할머니의 이야기들을 잔소리 아닌 사랑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또다시 실감한다.
뜨거운 물을 부어 컵을 데웠다. “이렇게 하면 따뜻함이 오래가거든.” 몇 년 전 자주 얼굴을 보던 사람이 아끼던 차를 따라주면서 알려준 방법이었다. (...)아무리 보리차가 빨리 식는 계절이라도 손으로 쥐고 있는 동안엔 따뜻함이 달아나기 어려웠다. (p.59)
컵을 데워 따뜻한 차를 쥐여주는 사람의 온기를 안다. 오래도록 꺼내 보지 못한 기억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온 마음을 다해 그리워했다. 문득, 작가가 세상을 보듯 나도 누군가에게 애틋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온 마음이 보리차처럼 따뜻했다. 책을 다 읽고 덮을 무렵, 나도 '누군가' 들에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데운 컵에 담긴 보리차가 되어주어야지.
태어나서부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참 가득히도 사랑받은 나란 녀석은, 인제야 갚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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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마간 널브러져 있자, 응?
분명 너무 좋아서 읽는 내내 앓는 소리를 냈는데, 감상문을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은 감상이 하나로 응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써온 감상문은 그래도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하나는 있었다. 그것이 설사 시집 전체를 아우를 수 없었다 해도 말이다. 물론 시 하나를 심상 하나로 치환할 수 없기에, 한 권의 시집을 하나의 주제로 아우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하나의 글이라는 것은 주제를 정하고 높은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한 채 써 내려갔을 때 완결된다. 서두부터 이런 말을 늘어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감상문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럴 땐 할 수 있는 말부터 하는 게 상책이다. 몇 번 그랬듯이, 귀납적인 방식으로 시작해보자.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 中)
맨 처음에 수록된 시이자 시인의 등단작이기도 한 「페루」. 너무 좋았다. 시인이 자신이 내뱉는 언어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현대시에 대해서 내가 하는 말이 얼마만큼의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마음껏 나열해 놓고 그것이 시라고 말하는 시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양, 머리카락, 말:과 말, 라마와 페루" 등의 이미지는 한번 소비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 등장하며 그 의미가 점층된다. 행갈이를 하지 않은 한 바닥의 산문시가 단 하나의 문장처럼 인식될 만큼, 시인이 끝내 마주했던 장면을 나 또한 볼 수 있었다. 한 바닥의 시는 얼핏 보았을 때 덩어리 같다. 덩어리만이 덩어리이기에 가질 수 있는 끈끈함이 이 시에 있고, 쉬지 않고 끝을 향해 달려 나가는 심상들이 만들어내는 박진감이 너무 좋아서 항복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이제니의 시에 관해 이야기했다. 정확히는 내가 이 시집을 펼쳐 건네면서 「페루」를 읽어보라 권한 것인데, 친구는 다 읽고서 이런 말을 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스타워즈에서 최소 공간 단위는 행성이야. 그래서 한 행성은 하나의 특성을 갖지. 이를테면, 사막 행성, 열대 행성, 북극 행성…… 난 그게 좋더라고? 한 행성이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될 수 있다는 게."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지 않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네이키드 하이패션 소년의 작별인사」 中)
나는 이 생을 두 번 살지 않을 거야 /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을 거야 (「알파카 마음이 흐를 때」 中)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아마도 아프리카」 中)
죽음에 대해 말하는 시는 항상 좋다. 죽음은 우리가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taboo)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선우의 서평계획서 댓글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이제니의 시에서 죽음에 관한 언급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한 번 등장할 때마다 그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라는 표제작의 한 구절을 맞닥뜨렸을 때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모든 것이 "죽지 않기 위해" 하는 말(들)인 걸까.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기 위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말인 걸까. 이제니가 다루는 죽음이 어떤 모양과 빛깔로 점층되는지를 그의 다른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문학과지성사, 2014)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문학과지성사, 2019)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현대문학, 2019)을 읽어보며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고 진실하고 잘 우는 것들에만 귀가 열린다 (중략) 이제 남은 일은 말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거나 뜻 없는 문장들의 뜻 없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일뿐. (「공원의 두이」 中)
내가 바라는 건 아주 작고 희미한 것들뿐. 단 한순간도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것. (「코다의 노래」 中)
시인이 반복해 되뇌는 말: 나의 관심은 작은 것에 있다.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말' 역시도 그에게는 작다. 작은 것을 바라보고 작은 말을 하는 사람. 그가 천착하는 대상이 너무 좁고 무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그도 이미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것만이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것"이라 천명(闡明)한 것으로 보아 시인으로서 그의 천명(天命)은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든 불행은 돌이켜 생각하거나 앞질러 생각하는 자들의 몫이다 그림자가 사소한 방향으로 옮겨간다 남은 시간을 세는 일이 먼지처럼 느껴진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또다른 하루가 조용히 들이닥친다 (「검버섯」 中)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지. 청춘은 다 고아지. 헛된 비유의 문장들을 이마에 새기지.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 쌓여만 가지. 위안 없는 사물들의 이름으로 시간을 견뎌내지. (「발 없는 새」 中)
그래서인지 그가 달려간 끝에서 마주하게 된 장면, 그가 글로 풀어놓았고 마침내 나에게 도달한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심상들이 스스로 점층하며 제자리로 향하는 과정을 간신히 포착한 순간이 하나의 흐릿한 이미지가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실상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 그 사실을 한순간에 체감하게 한다. "또다른 하루가 조용히 들이닥"치고 여태껏 해낸 말들이 "어디에도 소용없는 문장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은 아프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작은 말을 하고 작은 것을 관찰하는 일은 작은 것이 존재하는 방식에 발맞추어 살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니가 주문처럼 되뇌었던 「페루」의 몇몇 구절을 다시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그러니까, 우리 얼마간 널브러져 있자, 응?
[210930]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완독
줄거리:
하루 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그러나 할아버지의 머릿속 작은 광장에는 노아와 사별한 할머니가 자리하고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두려움 없이 이별을 맞이하기 위한 방법을 배워가는 노아의 이야기.
후기:
이 책은 노아와 할아버지의 짤막한 대화들을 다룬 책이다. 노아에게 이별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아끼는 노아의 관계가 둘의 대화 안에 고스란히 녹아내려있다.
우리는 살면서 이별을 여러 번 맞이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을 흔들며 이별을 해야한다. 이별을 한다는 것은 무척 아쉽고 속상하고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책 속에서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자신은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과 두려움 없이 이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별의 순간에 담담하게 손을 흔들고, 노래를 하며 누군가를 보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만나든지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들은 영원히 우리의 머릿속 광장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이별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가슴이 먹먹해지고 동시에 따스해지는 책이었다.
//p. 114
“한 번은 선생님이 인생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쓰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함께하는 거요
//p. 132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겠니? 완벽하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완독했습니다!!
오늘 도서관을 갔는데 이 책을 미리 예약해놔서 집에 오자마자 한 번 펼쳐봤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완독했네요~
[줄거리]✍
그레그는 레라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유산으로 더 큰 집에서 살기로 한다
그래서 엄마는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한다
하지만 4층짜리 집은 동네에 없어서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한다
그래서 그레그는 롤리와 작별인사를 한다
하지만 롤리는 그레그와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운다
과연 그레그의 이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까??
[총 평]✍
윔피키드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네요^^
믿고 본다!!!
윔피키드 시리즈를 보지 않으신 분께는 적극 추천합니다!
기나긴 이별이 1953년에 출간된 책이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얼마나 한결 같은지 놀랍다. 돈과 권력은 어느시대든 사람을 현혹한다.
현실적인 배경속에 초현실적인 주인공이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사람, 권력 앞에 기죽지 않고 위협 앞에 굽히지 않는 사람,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돈도 사랑도 친구도 받지 않는 결벽적인 사람.
이런 사람이 드물긴해도 세상에 존재할것이다. 결혼해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순간 사라질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반려동물 조차 곁에 두지 않고 사람들과 이별하며 홀로 늙어가는 고독한 탐정이다.
<이별을 할때마다 조금씩 죽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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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순진하길래 이러시오, 말로? 세상물정 알 만큼 아실텐데. 법은 정의가 아니오. 몹시 불완전한 체계란 말이오. 눌러야 할 단추를 또박또박 정확히 누르고 행운도 좀 따라줘야 간신히 정의가 실현 될까 말까요. 법은 처음부터 일정한 체계를 마련해보려고 만들었을 뿐이니까.">
<고무밴드 한개를 집더니 양쪽 엄지에 걸고 잡아당겼다. 점점 더 길게 늘였다. 마침내 고무밴드가 뚝 끊어졌다. 그는 끊어진 고무줄 끄트머리에 얻어맞은 엄지를 문질렀다.
"누구나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기 마련이오.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지. 또 만납시다.">
<"난 아직 무사해요. 자꾸 겁주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던 대로 됐으니까. 레녹스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스프링어한테 가서 면상에 침을 뱉었겠지만."
"당신이 대신 뱉어줬잖아요. 그리고 이번에는 스프링어도 그 사실을 알아요. 검찰은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옭아매는 방법을 백가지도 넘게 알죠.">
<"잘 가게, 친구. 작별인사는 생략하겠네. 가슴에 사무칠때 벌써 해버렸으니까. 슬프고 쓸쓸하고 영원한 이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