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9-70 사람들은 왜 동경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질투하고 증오할까. 그래서 갖고 싶어 하고,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고 싶어 하고. 불쌍해하다가 미워하고 안타까워하다가 꺾어 버리고 싶어 할까.
p.232 치유라는 것은 새 옷으로, 새 기억으로 자신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오래된 옷장 안에 버려둔 낡은 외투를 꺼내 단단히 껴입는 일이라는 것을.
러시아 문학은 처음 읽었다.
읽으면서 러시아의 전래되어오는 설화들이 궁금했다. 니콜라이 고골의 이야기들이 신기했다.
해설 부분을 읽으면서 당시 러시아제국의 이 도시의 인간군상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단편소설에 대한 선입견으로 잘 읽지 않았는데,
작가의 진수를 맛보려면 단편소설을 읽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또 다른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말에 그만큼 중요한 작가라는 걸 느끼면서 첫 러시아문학 4점의 높은 만족감을 얻었다.
📚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오? 당신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고? 내가 당신에게 묻고 있잖소."
이 순간 고관은 발을 구르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무서워할 만큼 버럭 언성을 높였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완전히 넋이 나가 비틀거렸고, 온몸이 떨려 더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 그는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로 실려 나갔다. 기대 이상의 효과에 만족한 고관은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의 감각조차 빼앗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완전히 도취되어 친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보려고 슬쩍 곁눈질했다. 고관은 친구가 어쩔 줄 모르고 심지어 공포마저 느끼는 모습을 다소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57~58쪽)
☕️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윈드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인간 욕망의 아이러니와 인생의 복잡한 진실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오늘자 중앙SUNDAY)
여기 원하는 것을 얻었다가 뺏긴 사람이 있다.
말단 공무원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각종 문서를 종이에 정서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 그런 그가 어쩌다 값비싼 고급 외투를 맞춰 입게 된 후로 그를 멸시하던 사람들이 그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저녁 식사에까지 초대한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그런 생활을 마음껏 즐기기도 전에, 초대받았던 그 저녁 식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강도들에게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다. 다음날 경찰과 고관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요구가 좌절되자 분노에 차올라 열병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며칠 후 유령으로 다시 고관앞에 나타난다.고관의 권위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유령이 되어서야 고관에게 큰소리를 친다. 같은 지역의 경관들도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큰소리 치면서도 유령을 마주치면 벌벌 떨었다.
#소시민#작은사람
이 단순한 줄거리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고급 외투를 먼저 원한 것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수선공의 말에 넘어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맞춘 외투다. 예정에 없었으나 그렇게 맞추게 된 외투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전부가 되어 버렸고, 외투를 잃어버리자 그의 목숨도 다했다. 마치 운명의 장난에 휘둘린 것 같다. 이 작은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져야 할까,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상실감
모든 재산을 탈탈 털어 외투를 샀기에, 그에게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도 더한 분노가 남았다. 요즘으로 치면 영끌 뒤에 산 아파트 값이 추락하는 것? 빚내서 산 주식 값이 폭락하는 것? 모든 것을 걸고 치른 시험에서 불합격되는 것? 경기에 나가려고 열심히 훈련했는데 부상을 입는 것? 끝도 없이 많은 상황들이 떠오른다.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공을 위해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데, 그 끝이 좋지 못하다면, 상실감 뒤에 오는 것은 아마도 좌절 혹은 분노. 좌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우울증이, 분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폭력으로 양상이 변한다. 어쩌면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약함
혹은, 고작 외투 하나 잃었다고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구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비판할 수도 있다. 보기에 따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성실히 직장에 다니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상실을 겪어보지 않은 이에게 최초의 상실은 분명 크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것이 상실과 회복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고 멀리 보면 그저 인생의 중간에 한번씩 찾아오는 태풍일 뿐인 것을 지나온 사람은 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지나치게 나약했던 것은 아닐까.
#권위#권력
권위를 이용해 으스대는 경관과 고관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친구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고 일부러 방문객을 문밖에서 기다리게 만든다거나, 크게 겁을 준다거나 하는 모습이 그렇다.
계층이 있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보이는 모습이다. 가부장으로 군림하려는 집안의 맏어른, 회식 때 폭탄주를 말아주며 먹으라고 강요하는 상사,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무조건 시키는대로 하라는 윗사람들. 그들은 그 '자리' 빼고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인데 그렇게 위세를 떤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 것인 양 위세를 떠는 그 모습이 어쩌면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외투
이 책의 삽화를 맡은 노에미 비야무사 일러스트레이터는 속표지에 '내 최고의 외투, 어머니께'라고 헌정사를 썼다.
그렇게 보면 '외투'는 모진 풍파를 막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짧으면서도 다양하게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
작년, 인스파이어에서 했던 공연이 끝나고
비바람이 치던 길 위에서 데리러 오겠다는 쏭님을 기다리는데
평소라면 짜증이 났을텐데 이상하게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혼잡한 도로사정과 꼬여버린 픽업위치에
심기가 불편해진 쏭님에게 눈치없이
‘난 앞으로도 이 친구들을 영원히 좋아할 것 같아’란 말을 해서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
야구 밖에 모르던 내가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작가처럼 해외투어, 사인회, 사녹에 갈 열정은 없지만
그저 컨텐츠와 노래를 듣는 것, 이것만으로도 꽤나 즐겁다.
재미없는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다행인가.
심지어 야구 때문에 화나는 마음도 좀 줄여주고.ㅋㅋㅋ
앞으로도 열심히 응원해줘야지. 무탈하길 빌어주고.
#언젠가우리가같은별을바라본다면#차인표
아픈 역사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동화같으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부당함과 분노, 안타까움과 슬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 그들 😡
❝해와 바람의 내기❞가 생각났다. 🌞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해의 따뜻한 온기라는 것을.
따뜻한 엄마별을 바라보는 🌟
용이와 순이를 보며
많은 분들이 마음에 따스한 별을 띄울 수 있기를.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길... 🙏
저자를 배우 차인표가 아니라
작가 차인표로 기억하며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추천합니다#많은분들이만나보시길#위안부할머니#2025_8
이 책은 ‘그림자‘를 주제로 여러 SF 단편 소설을 엮은 책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매년 두 권씩 내는 ‘SF보다’ 시리즈인데, ‘시보다’ 시리즈를 재밌게 읽어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은 그림자가 빛의 외투에 불과하단 사실 즉,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란 기존 상식을 뒤집어 그림자의 세계를 역발상한다. 빛과 상호작용하며 떼어놓을 수 없는 공존과 상성의 의미, 보조 역할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존재의 자리를 대체하는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만 소설 내용을 여러 작가님의 단편으로 엮었다보니 어떤 소설은 좋았지만, 어떤 소설은 그저 그런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뒤로 갈수록 뻔하거나(그림자에 대한 발상) 좀 역겨운 내용도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챕터를 꼽자면 해도연 작가님의 <오 마이 크리스>다.
92. 펄롱은 외투를 걸치고 마당으로 나오면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밖으로 나와서, 강을 보고, 바깥공기를 마시니 얼마나 좋은지. (…) 마음 한편에는 오늘이 월요일 아침이어서 다른 건 다 잊고 그냥 도로로 나가 평일 일상의 노동에 기계적으로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이 너무나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책을 읽는 즐거움,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즐거움,
나는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한다.
나의 박사 과정은 교육철학이다.
그리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철학적 접근을 할 때 교과서 외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미한다. 그러나 지식이란 끝이 없다.
김영사에서 이 책이 나왔을 때 줄 곳 관심을 두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이다. 책 한 권에 내가 알고 싶었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토요일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학교 도서관에서 몇 주를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학부생들에게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사상을 이야기 할 때 가끔은 나의 사심이 들어갔다. 위대한 교육 사상가의 이면에 역기능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실망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책에서는 그의 행적을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매독 걱정을 하면서 그들과 상종했다. 그러다가 호텔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아가씨와 알게 되었고, 몹시 애를 써서 그녀에게 읽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23년 동안이나 함께 살고 난 다음 마침내 그녀와 결혼했다. 위대한 교육이론가인 루소는 자기 가족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자신의 다섯 아이를 모조리 고아원으로 보냈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고 또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던 점은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우리는 흔히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악처로 기억한다.
남편의 철학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창문에서 남편의 머리 위로 더러운 물을 쏟아 붓거나 남편의 뒤를 따라와 사람 많은 시장에서 외투를 벗겼다.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를 다룰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도 잘 다룰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다.
크산티페는 남편 소크라테스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무엇을 얻었을까?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의 악행을 피해 못마땅한 집을 떠나 더욱 열심히 철학적인 토론에 몰두했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유명한 사상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아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철학하기를 방해하려고 한 일로 그는 더욱 더 깊이 철학할 수 있었다.
17세기 초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근대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배우들이 이마에 부끄러움이 나타나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등장 하듯이 나도 세계라는 무대에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수수께끼의 철학자다. 오늘날 까지도 그의 가면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 속한 소아시아지역의 상업지역 밀레토스 출신의 영리한 남자 탈레스가 2500년 전에 최초로 철학을 시작한 이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34명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압축해 놓은 책이다.
많은 사상가 중에는 이전에 깊이 알지 못했던 철학자도 있다.
한 권으로 압축된 분량 속에서 대표적인 사상과 철학 세계가 너무 쉽게 풀이되어 있다. 소설을 읽듯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의 내면으로 들어가 본 시간이었다.
철학이란 용어의 딱딱함과 지겨움에 대한 고민을 지워버리는 책이다.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학부생들의 시험기간 그리고 토요일을 포함한 주말의 시간을 이 책과 함께 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과 곁들여서 첨가해 줄 내용은 요점을 정리해 저장해 두었다.
삶에서 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교육 철학 이란 학문을 만나면서 나에게 철학은 삶의 전반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철학 사상가의 전기나 그들의 저작을 통해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길 원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길다고 해도 짧기만 하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뀌어 있을 무상한 것들을 잠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았던 순간을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우리는 죽음이란 마지막 목표를 앞에 당도할 것이다. 본인의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세상일을 다시 본다면 아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소크라테스의 조산술, 산파술,
플라톤의 형이상학
돌이켜보면 사물의 본질에서부터 우리는 질문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철학자의 길을 따라가며 이어진 질문들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사상을 해석하는 시간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철학적 물음과 사유의 시간, 논리학을 파고드는 길고 긴 여정.
수학적인 정교함을 갖춘 논리체계의 철학에 언제나 매료 된다.
철학은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
자신의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많은 사유의 시간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순간들은
학문의 즐거움에 빠져있었던 나날이다.
2500년 서양철학사를 대변하는 사유의 전사 34명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철학#철학의뒷계단#책#김영사#헤겔#스피노자#파스칼#데카르트#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아우구스티누스#서양철학#독서#독서모임#루소#사상#책스타그램#북스타그램#책글귀#글귀스타그램
“너, 신이 있다는 거 알아?”
이 소설의 첫 문장이었다. 신이라니? <#스파이라>는 SF 장편소설이 아니었던가. 과학과 가장 대척점에 놓인, 전지전능한 존재를 갑자기 언급하다니. 흥미진진해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 소설에는 재밌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 인위적인 천국을 기술로 구현하고 홍보하는 거대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반대하는 종교 단체... 먼 미래 세계를 그린 소설이지만 몹시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이미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대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아래는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
- 죽음의 의미나 그 무게가 달라져서가 아니었다. 달리진 건 우리였다. 그렇게 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A(스포 방지)의 죽음에 의미를 찾아주는 일 말곤 없었다. P101
- 그는 오랜 시간 이 외투의 주인을 찾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마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B(스포 방지)가 말한 것처럼 누구도 보태준 것 없는 나약함인지도 몰랐다. P159
****
그간 나는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수상작을 주로 봐왔다. 늘 밀도가 높고 생각할 바가 많아서, 읽은 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다녔다. 이 공모전 수상작 좋다 좋다 외친 것치고는 희한하게 장편 수상작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기술과 과학 지식이 빼곡하게 적힌 책을 전부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추리스릴러와 로맨스 서정이 만났다는 이 작품의 소개 글을 접하고 나서 장편 수상작에도 관심이 생겼다. 어쩐지, 나같이 SF물에 그다지 빠삭하지 않는 사람들도 편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읽고 나니 확실히 그랬다. 세계관이 크지만 이해가 어렵지 않다. 암울한 세계지만 그럼에도 따뜻했다. 한국과학문학상 7회 장편 수상작다운 작품이었다. 휘몰아치는 서사에, 끝내 다른 선택을 한 두 인물의 행보에 몰두하며 읽었다.
그러니까 결론이 뭐냐고?
재밌다는 소리다! 주말에 좋은 소설을 잘 읽었다.
#스파이라#서평단#김아인작가@dongasiabook@hubble_books
‘자, 이제 당신에겐 딱 한 개의 소원만 남아 있군요.’
그가 말했네.
‘세번째 소원 말이오. 그 소원은 제발 좀 더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길 바라오. 약속할 수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을 꿀꺽 삼킨 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덧붙였어.
‘하지만 먼저 저를 다시금 자네라고 불러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그가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어.
‘좋아 젊은이.’
그러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지.
‘잘 살게나. 너무 불행해하진 말고. 자네의 하나 남은 소원은 조심해서 써야 하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엄숙하게 대답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지. 바람에 휙 날아간 것처럼.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그 뒤로 어르신은 행복하신가요?”
“아, 그거. 행복하냐고?”
나의 아웃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에서 모자와 외투를 꺼내 오더니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사십 년 동안 마지막 세 번째 소원에 손을 대지 않았네. 종종 그럴 뻔도 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네. 소원이란 아직 마음속에 품고 있을 때까지만 좋은 것이라네. 잘 살게나.”
“할머니, 할아버지, 나 왔어.”
신발과 함께 벗겨진 양말을 들고 뜨거운 방으로 들어온 아이. 외투와 상하의, 남은 한쪽 양말까지 훌러덩 벗어던진다. 뜨거운 이불 아래엔 곰이 반겨주는 찜질방이 있다. 개구리가 읽어주는 ’오늘의 유머‘를 듣고 꺄하하하 낄낄낄 하하하 킥킥킥 저마다의 웃음으로 공간이 꽉 찬다.
아이는 구석에서 몸을 지지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부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 우리 강아지 왔니?”
인자한 웃음으로 아이를 반겨주신다.
찜질방 필수메뉴인 식혜와 달걀, 겨울하면 떠오르는 간식 귤과 고구마, 군밤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유쾌한 찜질방이다.
겨울이 뜨끈하게 지나간다.
#그림책읽기
여름 외투
김은지 지음
문학동네 펴냄
구매 버튼
더이상 책을 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알라딘에 갔다가 충동구매했다.
나는 이런 걸 손이 미끄러져 구매했다고 이야기한다.
만듦새
너무 이쁘다. 파우더 바른 듯한 뽀얀 분홍색과 선명한 초록색이 잘 어울리는 시집이다.
감상
시집 『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로 김은지 시인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그때도 너무 어렵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넘어가는 소화 잘되는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부담없는 죽같은 시여서 좋았다.
시집 전체에 거리두기나 허세가 하나도 없는 느낌이다. 수수하고 친한 친구같다.
하지만 이번 죽은 더 깊은 맛이 났다고 표현해야 할까? 읽기에 난이도가 살짝 아주 살짝 올라간 것 같다. 조금 더 시를 공부한 시 같은 느낌.
하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마주치고 싶을 만큼 따뜻했다.
시를 처음으로 읽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
기억하고 싶은 시
1월의 트리
위생장갑
반깁스
종이열쇠
증폭
이 모든 이야기는 『천일야화』처럼 끝이 없다. 1930~1940년대 경성을 누볐던, '곡마단' 같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생산물들. 그것은 지금의 우리 유전자에 어떻게든 기억되고 있는,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문화유산이다. 슬프고도 찬란한 유산. (p.24, 까치집 머리, 털북숭이 수염의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외투를 입는 '구본웅'의 기묘한 조화가 곡마단 행차에 비유됐다.)
이 책은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렸던 책이다. 비록 나는 그림이나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지만, 그럼에도 '글'만큼 '예술'을(어쩌면 '예술사'를) '탐미'하는 나에게 한국의 천재들, 더욱이 '근대사'의 천재들 이야기, 「조선일보」 화제의 칼럼이었던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묶어놓은 이 책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살롱 드 경성』은 빼앗긴 나라의 설움, 전쟁의 비극 속에서 더 아프고 불안했기에 더욱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을 예술가들의 무성영화 같은 삶을 담은 책이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 편에서는 이상과 구본웅,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박수근과 박완서 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화가와 그의 아내' 편에서는 이중섭과 이남덕, 김환기와 김향안, 김기창과 박래현 등의 열렬한 응원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등이 화가의 삶, 김병기, 변시지, 문신 등 예술가들의 고뇌를 엿보기도 한다. 이미 접해본 내용도 있었고 처음 만나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새로이 배우고, 새로이 느끼고, 새로이 깨달았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원래도 극적이었을 예술가들의 삶에 어찌나 멋진 제목을 붙여두었는지.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그 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한 제목은 “그럼에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다”였다. 국가등록문화제인 '남향집'을 그린 오지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전혀 몰랐던 그의 삶에서 느끼는 바가 무척 많았다. “어둠 속에 직면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굳건한 정신세계를 지녔기에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p.263)”이라는 말이 마음에 짙게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훨씬 나은 환경에 살면서도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대지 않나.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라는 말을 읽는 내내 그동안의 나는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할 이유만을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이 어쨌든 총체적으로 환희가 될 수 있도록 더 부지런히 행복하리라 결심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다른 시대나 환경에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백 년을 앞선 생각을 살았던 이상이 지금 시대의 작가였더라면, 이중섭이 넉넉한 환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니 이미 멈춰진 그들의 시계 앞에 안타까움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넘어선 고통은 결국 후손들에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작품의 수, 성공의 여부를 떠나 그들이 시대에 남긴 것,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찬란하고 슬프고, 빛나고 아프다.
『살롱 드 경성』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후세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p.46)”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살롱 드 경성』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가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이 책을 통해 흑백으로 묻힐 뻔한 이야기의 먼지를 털어,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절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인 먼지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독자가 없이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부디- 시대에 가려진 많은 예술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완성되기를. 그 어떤 전시보다- 그 어떤 작품보다 감동 가득한 '삶'이 담겨있는 『살롱 드 경성』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무렵, 오늘 아이와 읽고 싶은 책 3권을 식탁에 얹어두었다. 사실 아이가 무엇을 가장 먼저 선택할지 예상이 되었기에 그 책을 가장 밑에 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책을 집어 들며 “점동이? 설마 그러면 박에스더 선생님 책인가!”하고 소리를 지른다.
맞다. 씨드북의 '바위를 뚫는 물방울'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 <점동아 어디 가니>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본명 김점동, 세례명 에스더. 남편 박규신의 성을 따라 박에스더로 의사 활동을 하시며 한국의 위생개선에도 큰 역할을 하심)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는 의사에게 몸을 보이기조차 어렵던 시절, 여자는 공부하는 것 자체가 힘겹던 시절, 엄청난 노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한국의료계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지만 이분에 대해 다룬 책이 그리 많지는 않기에 씨드북의 책은 우리 아이에게 더욱 반가운 존재.
씨드북의 '바위를 뚫는 물방울 시리즈'는 편견의 벽을 허문 위대한 인물들을 다룬 시리즈로 제인 오스틴, 템플 그랜딘, 메리 샐리 등의 인물을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책으로, 그림책을 읽듯 편안하게 위인에 대해 배우고 느낄 수 있어 좋은데, 특히 <점동아 어디 가니>는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운율 속에서 김점동의 생애, 업적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초등학생까지 너른 연령층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점동아 점동아, 어디 가니”만 읽어주고 나머지 내용은 아이가 직접 읽었는데, 처음에는 노래하듯 즐거워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젖어 드는 것을 느끼며 절제된 언어가 주는 감정의 증폭을 아이가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누구라도 이 책을 만나면, 덤덤한 문체에서 오는 여러 감정을 느끼실 수 있을 터. 작가님께서 워낙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가시기에 부모가 안내하지 않아도 아이는 김점동의 생애를 따라가며 기쁨과 슬픔, 성취와 절망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은 점동이의 여정을 따라가며 감정의 변화를 찾아보고, 또 한번은 마지막 페이지의 박에스더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까지 공부한다면 그림책으로서도 위인전으로서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섬세한 일러스트는 이런 책의 매력을 한층 높이는데, 점돔이의 섬세한 감정변화, 환경 등의 변화까지 세세히 엿볼 수 있다. 우리 아이는 점동이의 기분에 따라 눈썹이 변하는 것까지 찾아냈는데,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여러 점동이를 한데 모아볼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아이와 꽤 오랜 시간 그림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섬세한 책을 만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소위 '코로나 베이비'들은 타인의 감정이나 표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책을 통해서라도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들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섬세함이 그냥 그림책도 아닌 위인 그림책에서 표현된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부지런히 걸었다는 문구가 적힌 뒤 표지를 바라보며, 이 책이야말로 편견이 무엇인지, 또 편견을 이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이 아니냐고 생각해보았다. 편견을 넘어서는 일은 분명 고되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는 신념을 잃지 않는 아이로 키워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부족한 엄마를 대신해 '뚝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 이 책이 무척이나 고맙다.
초원장 여관의 정오
카운터 여자는 낮잠
얇은 벽 너머
한 사내가
구토하는 소리를 듣는 정오
느티나무 아래
벤치의 노인들이
말없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정오
양말 가게 남자가
수굿한 뒷모습으로
아들의 수학 문제에 열중하는 정오
우동집 앞
당신에게서 돌아서는 정오
돌아서 걷기 시작하는 정오
가는 비 내리고
손차양 한 사람들이
하나둘 처마 밑으로 모여드는 정오
신호대기 중인
버스기사가 창밖으로 내민
흰 손에서
날갯짓하는 작은 새의
심장소리를 듣는
거리의 나무에
빛이 무늬를 새겼다
사라지는
불시에
이별을 예감하는 정오
- ‘이별하는 정오’, 장혜령
그것은
물고기의 아가미 또는
지난밤에 깎은 사과 껍질
안쪽에서 만져진다
두꺼운 외투를 열어 보이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생각했다
겨울에도 철 지난 얇은 옷을 고집하는
가난하고 또 우아한, 어떤 취향에 관해
그들이 오래된 만큼
내 생각도 오래도록 이어졌고
빌려온 책을 읽을 때마다
누군가 몸속에 잠깐 불을 켰다
여긴 누구였을까
물결처럼 밀려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잠든다
떨어진 모과처럼 여기저기 뒹굴며
같은 의미에서, 나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겨울, 청어와 모래, 작은 북과 캐스터네츠, 빗방울과 앵두와••••••
길을 잃을 때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것의 목록을 적는다
실패가 거듭될 때,
매일 입술에서 닳아 없어지는
이름들처럼
걷잡을 수 없이 얇아질 때
그래서, 살고 있는 그것을 만질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
흔들리는 한
모두 같은 물속일 거야
물결의 말이다
- ‘물결의 말’, 장혜령
어느 날 우리 집 뒷마당에 판다가, 그것도 빨간 우산을 쓴 판다가 앉아있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 어른들은 경찰이나 동물협회 등에 신고할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가할 위험에 대비하여, 그에게 위협을 가할 무엇인가를 준비하며 말이다. 그러나 애디와 마이클, 칼은 그저 인사와 자기소개를 나눈다. 이게 스틸워터와 아이들의 첫 만남이다.
우연히 바람에 날아간 우산 덕분에 아이들과 처음 만나게 된 스틸워터는 아이들에게 주옥같은 이야기를 해주며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다. 애디에게는 도둑에게 줄 것이 외투밖에 없던 라이삼촌의 이야기를, 마이클에게는 모든 일에는 행운과 불운이 깃들어있음을, 칼에게는 마음으로 진정한 용서를 하는 법을 이야기해준다.
우리 아이는 애디가 되기도 하고, 마이클이나 칼이 되기도 하며 스틸워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고운 지혜를 마음에 담는다. 그저 찬찬히 그림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얻는 것이 많다. 존 무스의 그림책은 늘 그렇게 감동과 교훈, 웃음을 고루 남긴다.
문득 스틸워터가 동물이어야 했던 것은 어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꼰대'라 부르며 귀 기울여주지 않았을지도. 만약 우리였다면 하나뿐인 외투를 도둑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을까? 또 농부처럼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덤덤히 '글쎄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또 스님처럼 너그러이 상대의 허물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그만하면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스틸워터의 말에 오늘의 나를 또 반성하게 된다. 나도 그림책처럼 아이에게 좋은 본이 되는 엄마가 되어야지, 하고 다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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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의 시 외투가 마음에 걸린다.
펫친인 작가님의
책을 이제야
집으로 모셔왔다.
왕래가 있는 페친은 아니지만,
초설시인과 친분이 있는
이동훈 시인의 시라서 알게 되어
감사하다.
외투,
내게 주어진 외투는 내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인 네게 가야할것만 같아
마음이 머뭇거리게 된다.
몽실 탁구장은
이미 이율리아 선생님의 낭독으로 만나
마은 속에 오랫동안 박혀 있었던 터라,
아
귀한 생각의 시인을 만나 감사한 마음이
몽실 몽실 거려 오른다.
헬렌 던모어 저자의 작품 <외투>는 섬세한 긴장감이 감미롭게 흐르는 고스트 스토리이자, 열정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로맨스가 있는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전쟁의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던 영국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던 젊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신혼의 꿈이 지나간 뒤의 허망한 현실을 잘 표현해 냈고, 평온한 일상의 보이지 않는 균열 위로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와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을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안타깝게 생을 놓쳐버린 인간의 애절하고도 슬픈 절규를 잘 그려내었고,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남은 자의 비애를 다채롭게 그려내어 고스트 스토리가 반드시 길고 소름 끼치게 오싹할 필요는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우리는) 놀라움에 떨며 그를 읽었다
기형도 화자들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중절모를 쓴, 코트를 동여맨,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고개 숙여 거리를 걷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기형도가 떠오를 것이다. 그 뒤를 따라가,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기형도의 시가 아닐까. 등단작인 「안개」가 이 시집의 포문 또한 열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는 문장을 제시하며 시작하는 이 시는, 나와 시집 사이에도 안개를 흩뿌린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안개가 차츰 사라질 때쯤, 나는 거리를 본다. 앞서 뒤를 쫓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거리마다 기형도의 시가 가득한 것을 본다. 선후 관계를 따지고 들 수 없이 끈끈하게 묶여 있는 기형도의 시와, 거리. 그 거리에서 주운 몇 개의 문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조치원」이 좋았던 이유는 나 역시도 사내처럼 서울에서 타향살이하고 있으며 고향에 내려갈 때 열차를 타기 때문이다. 집에 가기 위해 무겁게 짐을 꾸리는 마음을 알고,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메고 역으로 향하는 기분을 알며, 플랫폼에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보며 이 열차가 나를 데려다줄 곳을 떠올리는 순간을 나는 안다. 가닿는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 어느 눈 내리는 밤, 그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스산함으로 가득한 거리로의 도착. 「조치원」을 읽으면서 나는 고향에 존재했다.
요즘은 시간에 대한 말들을 수집하고 있다. 박솔뫼 때문이기도 하고, 박봉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고,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역시도 나의 관심사다.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 나는 존재하는 것" 「오래된 서적」의 한 문장도 오려 놓았다. “미래가 나의 과거”라는 말을 내뱉기 위해, “미래가 나의 과거”라는 사실과 자신의 실존을 연결 짓기 위해 기형도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을지 모르겠다. 시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과거는 휘황찬란하다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도처에 존재했던 불행과 불능을 끊임없이 반추하게 하는 매개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미래를 그것과 잇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삶이라는 것이 결국 나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해도 말이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오후 4시의 희망」을 읽으면서는 우리 인생이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느꼈다. 일전에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서도 느꼈던 감정이다. 혼돈(chaos)의 상황 속에서도, 사실 그 모든 파괴와 폭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의 질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데, 나의 마음은 고요해서 마치 내가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순간. 생각만 해도 너무 아프다. 그러나 어떤 아픔은 사무치도록 연습해야 한다. 기형도의 이 시가 우리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 줄 것이다.
앞서 내가 떠올린 기형도의 화자들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는다. 기형도 시의 계절이 늦가을에서 겨울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옷을 입힌 것이다. 이맘때 읽기 좋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월」이라는 시를 보자.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 아무런 잘못도 없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것들이 많고, 그런 그리움은 보통 가을과 동시에 찾아온다. 9월에서 10월이 되고, 10월에서 11월이 되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이 되면 그리움이 스멀스멀 낙향한다. 내 마음속에 도착한다. 그리움이 얼마나 죽음에 맞닿아 있는 감정인지 나도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이 시를 읽으면서 아팠다. 기형도는 그러나 10월 탓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움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리움을 느끼는 나의 탓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겨울 판화 1」의 이 문장은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 기형도의 시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시가 바로 「엄마 걱정」인데, 교과서에서 마주한 이후로도 종종 찾아서 읊는 시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가 마침내 도착하여, 잠자리에 누워 '나'에게 해주는 말. 다시 한번 읊어볼까.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울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것. 그러나 울면서 견디는 것. 작은 목소리로. 울 수 있을 때, 꼭 그만큼의 몫의 울음을 수행하기.
카프카의 <변신>처럼, 고골의 <코>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코. 결함이자 수치의 상징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우리는 남과 다르면 불안해 한다. <외투>처럼 아끼고 아껴서 장만한 외투를 도난당한 아까끼의 비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상실이 마음까지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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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인 5편 단편 모음.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라고 말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도 고골의 작품 주인공이 비유로 여러명 등장한다.
당시 지배 권력을 찬양하는 고골(38세)의 책을 비판하던 비평가 벨린스키가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도스토(28세)가 낭독하다 당국에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는다. 1849년
<외투>의 '아까끼예비치'는 돈을 아껴 외투를 장만하는데, 바로 강도에 뺏겨 버리고, 찾아간 고위관료는 그를 쫓아낸다. 상심과 병으로 죽은 아까끼는 유령이 되어 외투를 빼앗고 다닌다.
<코> 1836년작으로, 카프카의 변신(1915)보다 앞서는데, 어느날 잘려진 자신의 코가 시내를 활보하며 사람 행세를 하는 기이한 이야기다.
연민과 욕망, 변신, 환상, 신분과 외모에 집착하는 도시 등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한 책.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겨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겠죠? 돈을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심리 상담사로서는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는 것.
"결정을 못 하겠어요". 은행강도는 말했다. 어쩌면 그날 한말 중에서 그게 가장 솔직한 말일지 몰랐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얼른 어른이 돼서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임을 깨닫는다. 항상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느 당에 투표하고 어떤 벽지를 좋아하며 성적 취향이 어떻게 되고 무슨 맛 요구르트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면 시종일관 시시때때로 선택하고 선택을 당해야 한다.
모두가 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다수는 타인으로 남고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지, 당신의 삶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모르고 지낸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 인파 속에서 허둥지둥 엇갈려 지나갔지만 서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당신이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가 내가 입은 외투의 실오라기를 스친 순간 서로 멀어졌을지 모른다.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거든, 오늘 하루가 끝나고 밤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심호흡을 한 번 하기 바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지 않은가.
날이 밝으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저 매미 소리
어깨에 날개 해달기 위해 십여 년을 땅속에서 기어다닌
저 매미의 소리
어깨 서늘한,
나도 쉰 몇 해를 땅바닥에서 기어다녔다.
매년 이삿짐 싸들고
전셋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꿈틀대며 울기도 고개 쳐들고 소리치기도 했다.
어두운 봄꽃도 환한 가을산도 있었다.
이제 간신히 알게 된 침묵,
쉰몇 해 만의 울음!
- ‘매미’, 황동규
오랜만에 시골서 묵는 밤
잠이 오지 않아 창문을 연다.
저수지 가득 피어오르는 밤안개 속에 새 우는 소리.
그 소리 귀에 익지만 이름 잊었다.
소쩍센가, 자규샌가, 아니면 안개 속에 길 잃은
외로운 가수(歌手)인가?
나도 자주 길을 잃었다.
때로는 사는 동네에서 길 잃고 헤맸다.
마음 구석구석 더듬어도
얼굴과 이름 떠오르지 않는다.
죽지 않고 지구 껍질에서 헤매다보면
다시 만날 날 있으리.
혹시 서로 못 알아보더라도
미소 머금고 지나가리.
- ‘지구 껍질에서’, 황동규
오늘은 안개비가 내리다 말고
다시 공중으로 올라갔습니다.
먼지 너무 많아 땅을 채 적시고 싶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 속에서 안 보이는 사람이 되어
거리를 걸을 때 그중 편안합니다
두리번대며 상점 속을 살피기도 합니다.
얼마 안 가 안개비도 나를 피하겠지요.
그때 나는 내 몸 적실 비를 찾아
계속 사람 속을 헤매겠습니다.
- ‘더 비린 사랑 노래 2’, 황동규
빛의 속도로 달리다
달리는 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튕겨나가도
빛의 두 배 속도는커녕 앞선 빛을 뒤따를 수밖에 없는
우주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참 떨어져 따라오는 내 모습이 보입니다.
(뒤를 보세요,
나의 살과 뼈 사라지고
대신 싱싱한 풀과 흙이 서로 얽고 얽힌 지붕 같은.)
그러나 지금은 앞서가는 그대 내내 한 모퉁이 앞서가고
앞이 캄캄할 뿐,
무작정 걸어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캄캄할 뿐,
광장 앞의 가로등 두 개와
역 시계에 불이 켜 있었습니다.
열두시 정각,
아 아직 시간이!
- ‘더욱더 비린 사랑 노래 5’, 황동규
며칠 병(病) 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
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
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
그 어깨를 쓰다듬는 시간의 손가락도.
눈이 밝아졌구나,
- 이 시체를 끌고 가라
- ‘풍장 45’, 황동규
<외투>
54. 유일한 지구책이라고는 초라한 외투 나부랭이로 몸을 가린 채 대여섯 개 거리를 단순에 달려가서 출근길에 얼어붙은 직무 능력이 녹을 때까지 발을 실컷 구르는 것이다.
63. 솔직히 나중에는 길이 들었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심지어 저녁을 굶는 게 습관이 되었다. 대신 미래의 외투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늘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하였다.
73. 경찰서장은 외투 강탈 사건에 참으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본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왜 그리 늦게 귀가했는지, 어딘가 좋지 못한 곳을 들은 것은 아닌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날 그는 온종일 관청에 나가지 않았도 이는 그의 삶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350.
외투나 계급은 곧 두 번째 자아로서
이것을 잃어버리면 첫 번째 자아를 인식할 수 없고
그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외투 , 코 재밌음
상징적임
감찰관은 노잼이고 여자 캐릭터가 평면적.
우화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들어 봤지만 막연했던 스토리의 뿌리를 읽다
토끼와 거북이, 태양의 외투벗기기, 금도끼 은도끼, 개미와 배짱이, 양치기의 거짓말, 읍내쥐와 시골쥐, 여우와 두루미, 소금 싣은 나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곰의 충고 등등등ㅡㅡㅡㅡ
주옥같은 삶의 통찰을 담고 있다.
특히 권력과 약속 배반 등 냉철한 사회적 관계를 사자과 나귀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2천년전 인간군상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 ‘홀린 사람’, 기형도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아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 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 번 열어보인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 ‘조치원’, 기형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은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 ‘10월’,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 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그 집 앞’,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빈집’,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 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 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 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착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인사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소읍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 ‘봄날은 간다’, 기형도
구겨진 불빛을 펴며
막차는 떠났다.
적막으로 무성해진 가슴 한켠 공지(空地)에서
캄캄하게 울고 있는 몇 점 불씨
가만히
그 스위치를 끄고 있는 한 사내의 쓸쓸한 손놀림.
- ‘388번 종점’, 기형도
당신이 세수하신 물에선
항상 짠 냄새가 나요
가끔은 몇 개씩
조개껍질이 둥둥 떠 있어요
고양이 털이 가늘게 부드러워
새벽에 흘린 코피가 아직까지 젖어 있고
집은 멀기만 한데
신발 끈이 자꾸만 풀어져요.
당신을 잊고 있는 밤이면, 어머니
우주비행사가 잃어버린
장갑 한 짝이
우리 집 꽃밭에 소리 없이
별똥처럼 내려앉을 것입니다.
- ‘귀가’, 기형도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풀리지 않으리란 것을, 설사
풀어도 이제는 쓸모없다는 것을
무섭게 깨닫고 있었다. 나는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구겨넣고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애초부터
우리가 빼앗을 것은 무형의 바람뿐이었다.
불빛 가득 찬 황량한 도시에서 우리의 삶이
한결같이 주린 얼굴로 서로 만나는 세상.
오, 서러운 모습으로 감히 누가 확연히 일어설 수 있는가.
나는 밤 깊어 얼어붙는 도시 앞에 서서
버릴 것 없어 부끄러웠다.
잠을 뿌리치며 일어선 빌딩의 환한 각에 꺾이며
몇 타래 눈발이 쏟아져 길을 막던 밤,
누구도 삶 가운데 이해(理解)의 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 겨울은 빈털털이였다.
숨어 있는 것 하나 없는 어둠 발뿌리에
몸부림치며 빛을 뿌려 넣는 수천의 헤드라이트!
그 날[刃]에 찍히며 나 또한 한 점 어둠이 되어
익숙한 자세로 쓰러질 뿐이다.
그래, 그렇게 쓰러지는 법을 배우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온몸에 시퍼런 절망의 채찍을 퍼붓던 겨울 속에서 나는!
- ‘겨울, 우리들의 도시’, 기형도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때로는 너무 심오하거나 초월적으로 느껴져서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줄리언 바지니는 이러한 인식이 얼마간 언어적 혼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 질문은 단일한 질문이 아니라 여러 질문을 묶어놓은 것이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걸까? 아니면 더 큰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인생일까? 타인을 돕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가?’ 등의 질문들을 한데 묶어놓은 복합 질문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 여전히 심오하기는 하지만 – 그렇게 낯선 질문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위와 같은 낯익은 명제들을 하나씩 검토함으로써 접근할 수 있고, 그 검토의 방법은 물론 철학적 질문에 답하는 마땅한 방법인 이성에 의거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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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란 각자에게 주관적인 것이어서 논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지니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널리 알려진 견해들 – 모종의 ‘대중철학’적 견해들 – 중 많은 것들이 건전하지 못한 논증에 기초해 있다. 예컨대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쾌락주의(‘Carpe Diem’)는 매우 높은 확률로 내일이 올 것이기 때문에 별로 좋은 지침이 되지 못한다. 조금 더 미묘하지만 정반대의 입장인 이타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이타주의가 삶의 의미를 근거짓는다고 한다면 그 도움을 받는 타인은 나의 도구적 목적에 종사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며, 이는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건전한 도덕감각을 위배한다. 무릇 논증의 미덕이란 이처럼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견해들의 명백한 오류를 밝혀내는 데 있다.
⠀
그러나 쾌락주의나 이타주의가 전혀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일이나 남을 돕는 일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가치있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요점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많은 견해들이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결코 완전한 그림을 그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쾌락주의나 이타주의는 모두 진실의 편린이다.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복합질문인 것처럼 그에 대한 답도 하나의 단일한 주의주장으로 정리될 수는 없다. (사실 세상사의 대부분이 그러하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여러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이와 같은 인생의 입체성이다. 미래의 어떤 보상을 위해 지금 여기(hic et nunc)의 삶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은 때로는 필요하지만 언제나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의 생존이 목전에 놓여 있다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택하라는 언명은 의미를 잃게 되지만,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것은 그닥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어느 한 시점에서 종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
주제는 심오하지만 이 책은 어렵지 않다. 바지니는 책을 쉽게 쓰는 대중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는 철학 에세이이지만 내용이 매우 쉽고 팝컬쳐에 대한 레퍼런스도 풍부하다. 그러나 이 책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따위의 여타 대중서와 다른 점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학서라는 것이다. 언급한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와 르상티망을 다루면서 여우와 신포도 우화처럼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정반대의 가치기준을 제시하는 마케팅 컨셉이 유효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당연히도 르상티망은 그런 뜻이 아니고, 철학자가 쓴 단어 하나를 가지고 그 철학자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외투를 뒤집어쓴 우화에 불과하다(아무런 인사이트도 제공하지 않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truism에 불과한 것도 물론이다). 바지니의 책은 비록 쉬울지언정 진정 철학적인 문제를 철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그 방법이란 이성에 의거한 논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지니는 - 인문학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따위의 사이비 인문학에 자리를 빼앗기는 시대에 - 철학이 여전히 삶의 의미와 같은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음을, 우리의 삶을 해명하는 데 있어 철학이 여전히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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