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을 다루기 때문에 역사의 '대상'은 '인물'이나 '장소'의 역사보다 더 자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 “훌륭한 역사가는 동화의 거장과도 같다. 그는 인간 육체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의 이야기 기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르크 블로크' 저서 인용) 당시에는 그 의미가 덜 분명해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직유법은 놀랍다. (p.125)
생각해보면 역사서를 좋아하고, 부지런히 읽는 편인 것 같은데 그 시작을 모르겠다. 몇 살부터 역사서를 좋아했는지, 제일 먼저 읽은 것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의미다. 한때 그것을 골똘히 고민해본 적 있으나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비로소 오늘 이 책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역사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구조 혹은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p.9)”는 저자의 말처럼, 명확한 선도 없고, 수시로 변해야 할 역사를 무슨 수로 내가 단답화할 수 있단 말인가.
한때는 나도 역사를 '암기과목'의 선상에 두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금도 왜 역사를 공부하냐는 물음에 지식의 확장, 서사적 재미 같은 고리타분한 말 말고는 대답할 길이 없었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삶이나 인구, 건강, 집단, 국가, 그리고 불평등이나 역할, 이념 같은 부분까지를 역사를 바탕으로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어서.”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역사를 쓸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몇몇 기본 선행조건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 과거의 특정 국면에 대한 사실을 기록할 수 있다. (p.173)
이 말을 틀어보자면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특정 성별에, 특정 사건에, 특정 인물로 인해 '빙산의 일각' 같은 역사를 알아 온 것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도 몰랐다. “알려진 모든 사실이 수집되고 그것들이 객관적으로 재현된다면 논쟁할 필요가 있겠는가. (p.198)”라는 저자의 말이 요샛말로 “뼈 때리는 말”같다. “의미는 끊임없이 유동한다. (p.299)“는 저자의 말처럼 더는 갇힌 의미로 역사를 묶어두기보다는 과거의 기록에 의문을 가지고 “어떻게 변화해왔고, 변화하는지”로 시야를 옮겨야 할 것이다. 특정 사람이나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지어 온 역사가 아닌 타 학문과 긴밀한 관계를 주고받고, 끝없이 논쟁하게 하는 역사 말이다. 그래야만 역사는 죽지 않고 흐르고, 만들어지고, 유의미할 테다.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수용하는 태도나 역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역사 자체가 변화해온 과정을 새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개념을 쌓아가는 것도 필요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누구의, 어디의, 무엇 등의 시각으로 키워온 시간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역사는 다른 학문보다 공공의 삶에 더 많이 관여하기 때문에 현세적 시각이 중요하다. 이 책의 또 다른 목적은 역사가 혼종의 영역임을 여러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요약하자면 역사학이 학문으로서 살아 있게 하는2개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하나는 학계와 공공의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로서의 역할이고,다른 하나는 역사학과,학교,박물관,심지어 정부 기구 내에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논쟁이다. (p.337)
늘 그렇지만, 역사를 담은 책들을 읽어내는 일은 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되고, 더 많이 고민하게 한다. 이런 고민과 흥미가 날카로워지는 것이 '목적 달성'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한걸음 깊이 다가갈수록 어려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생기니 말이다. 무작정 읽어왔던 역사서를 보다 명확하게 바라보게 하는 냉철한 책이었다.
감히 저자의 이름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이 책을)사라! 조금 더 깊어질 것이니.” “마자!(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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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따라 그림을 그리며 나도 몰래 내뱉은 한마디. “작가님 최소 마법사”
나처럼 캘리그라피에 욕심을 가진 이들은 더할 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림 잘 그리고 싶다.”라는 욕구를 가졌을 테다. 아기자기 귀여운 색연필 그림들은 또 어떻게 그려본다지만, 이놈의 수채화 앞에서는 늘 초라해졌다. 학창시절 붓을 잡아본 게 마지막인 내가 무슨 수로 그림을 잘 그린단 말인가. 몇 권 사들인 수채화 책은 그렇게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가 되어버린 것.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수성펜의 번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은 알았지만 정말 그럴듯한 수채화가 될까? 그런 의심의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는데, 이런 맙소사!
작가님, 도대체 제 손가락에 무슨 마법을 부리신거죠?
사실 수성펜은 내게 있어 제일 만만한 필기도구다. 직장생활에서도 “라떼”같이 플러스펜 검은색과 빨간색을 고수해왔고, 집에서도 뭔가 기록할 때 쉽게 손이 가는 게 플러스펜이다. 글씨는 플러스펜, 캘리그라피는 붓 펜. 그렇게 오래도록 내 손에 익힌 도구가 '물감'으로 변할 수 있다고하니 나에게 이 책은 부담감을 주지않는 그림책이었던 것. 마침 작가님도 그림을 배워본 적 없으나 쉽게 수채화를 그리고 싶어 만난 도구가 수성펜이었다고 기록하시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목차에서부터 이 작가님은 '찐'이라는 느낌이 왔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진 목차를 보며 “여기 있는 정도만 그릴 수 있으면 일 년 내내 캘리하며 충분히 그림 그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어떤 책에서는 “그래서 이 그림은 언제 써먹어요?” 하는, 작가의 사심이 묻어나는 그림이 가득할 때도 있었는데, 이 책은 오늘 배워 오늘 써먹을 그림들이 가득했다. 욕심내지 않고 그 계절에 맞는 그림들을 하나둘 따라 그리다 보면 그릴 수 있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재료 설명에서부터 선 긋는 법, 물이나 수성펜의 순서까지 상세히 기록해두셨기 때문에 진짜 생초보들도 충분히 수성펜 수채화 고수로 거듭나게 된다.
각 페이지의 구성은 단순하다. 글씨를 읽지 않고도 이해가 가능할 만큼 상세히 표현해주셨는데, 문장도 매우 쉽고 편안하게 써주셔서 그저 천천히 따라 하기만 해도 그림이 하나 뚝딱 완성된다. 7살짜리 우리 꼬마도 너무 재미있다며 그림을 따라 그렸는데, 7살짜리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그림들이 몇몇 탄생했다.
개인적으로는 완성작을 먼저 보여주시는 구조가 참 좋았던 게, 종이의 어디쯤에서 그림을 시작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도 있고, 글씨가 배치될 부분을 미리 계획할 수 있어 실용적이었다. 모든 페이지에는 동영상 QR코드가 삽입되어 있어, 살짝 애매하거나 손놀림이 어려운 부분은 영상을 보며 따라 할 수 있어 한결 쉽게 느껴졌다.
몇 년간 욕심내오던 보테니컬 수채화를, 이제 나도 그릴 수 있다. 종이의 크기도 구애 없고, 재료 매우 단출하다 보니 아이와 공원에 갔을 때도 돗자리에 앉아 쓱쓱 그림을 그리니 잊고 살던 감성이 가득 채워진 기분이었다.
감히 작가님께, 이 책의 2편을 권해드리고 싶다. 다음 책은 꽃, 사물, 풍경, 날씨 등의 주제는 어떨까. 사심을 가득 담아, 작가님의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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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 앞서, 이 책에는 작가의 정치적 견해가 다소 포함되어 있다. 이견도 있으나 도움을 얻은 바도 있어 정치적 견해는 되도록 배제하고 도서의 내용만을 리뷰하려 노력했다.
나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저 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의미함)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먼저,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 단 한 명의 대통령도 행복하게 퇴임한 사람이 없다. 행정부 수반 사고율이라는 통계가 있다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부 제도로 평가받을 것이다. (p.48)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를 알고 있었다. 몇 해 전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고, 최근 기고 글도 읽었다. 그래서 이 책을 편견 없이 잘 읽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고 책을 읽으며 몇몇 이견을 발견한 것도 맞다. 그러나 '당'을 떠나 현 정부의 오답 정리가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에 이 책을 열었다. (5년 뒤에도 정부의 오답을 잘 정리해주시기를.)
민주주의는 자유와 풍요를 추구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현대 정부의 구성 원리로 수용된 것이다. 그래서 고장 난 민주주의, 타락한 민주주의를 갱생시키려면 어떤 점에서 현재의 민주주의가 자유와 풍요와 증진에 비효율적인지 정확히 살펴야 한다. (p.86)
'대통령 잔혹사' 편에서는 대통령제와 역대 대통령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의원내각제 초안을 한 달 만에 대통령제로 바꾸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주장하였으나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말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나 멀었던 이승만 정부부터, 군권의 시대, 비상계엄을 지나 6월 항쟁, 그리고 지금의 정부에 이르기까지를 찬찬히 훑는다. 정경유착에 대해서도 꽤 짙게 이야기하고 있어 전반적인 정리에 도움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경제학에 반대하는 정치' 편은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데, 과연 정부의 잘못을 판단하고 반응하는 이들의 의견이 '여론'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때때로 선동당하고, 마녀사냥을 하기도 한다. 지역기이기주의와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뭉쳐지기도 한다. 그것은 '대다수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이나 겪는 일 아닌가.
한반도 지도자들이 최고로 현명한 선택을 했더라도, 과연 분단을 피할 수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p.145) /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어야 하는 시사점은 반일과 친북이 아니다. (p.159) / 타락한 민주주의는 안보를 지키지 못한다. (p.161) / 정세를 읽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전 국민이 큰 곤욕을 치른다. (p.189)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려운 책이다. 소리 없이 조금씩 다가온 위기를 우리가 피부로 느낄 때가 되면(특히나 나같은 우민에게는) 사실 그때는 '이미 위험한 중'이다. 아마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위기를 느끼고 있을 텐데, 그것이 과연 현 정부에만 국한된 잘못일까. 정말 인터넷 뉴스에 빼곡히 적힌 댓글처럼 한 대통령만의 잘못일까. 현 대통령만의 잘못이라면 국정 농단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5년마다'가 아니라 순간순간, 정책을 계획하고 실천할 때마다 시민들에게서든 반대 당에서든 과거의 사례에서든 타국에서든, 아무튼 순간마다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는 정치판이 “한 사람의 사저행, 감옥행”으로 평가되지 않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정치'를 벗어나, '대한민국의 정치'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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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베풀어야겠어.” (p.98)
쿠바댁 린다. 사실은 이 책을 만나기 전에 작가님을 알았다. 언제인가 브런치에서 이 작가님의 글을 읽었고, 유쾌한 문장 끝에 쿠바라는 나라가 내심 궁금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노랗고 파란, (가보지는 않았으나, 쿠바에 있을 것 같은 색인) 표지를 보며 처음에는 “요즘 쿠바가 유행인가?” 하다가 “어? 어! 그 작가님이다.”라며 이 책을 만났다.
위에도 표현했듯 문장 자체가 유쾌하고 거침이 없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 한번 때지 않고 책을 읽어내고도 뒷장이 더 없는 게 아쉬워 작가님의 브런치를 들여다보았다.
쿠바. 카리브에 자리 잡은 아메리카 대륙 유일의 공산주의 국가. '남자친구'라는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일 만큼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운 곳, 열정적인 음악, 그리고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 사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와 쉬이 연결되지 않는 나라인데,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니 마치 원래부터 친근한 나라였던 듯 느껴진다. 그래, 우리나라도 삼면이 바다잖아? 우리나라도 음악 없이는 살지 못하는 민족이야, 등등. 그만큼 작가님의 문장에서는 조 서방, 그리고 운명 같은 쿠바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느 곳에 갔을 때, 그곳을 오롯이 내 방식으로 느끼고 싶어서' 여행기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다. 타인의 감정이 보태진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한 듯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들며 한 권 두 권, 여행기를 늘려갔다. 그동안은 발견하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타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완벽했다. 단순히 쿠바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닌,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장소나 사람을 대하는 신념도 만날 수 있었다. 바뀐 마음으로 책을 만난 덕분인지, 작가님의 솔직담백한 문장 덕분인지 (비록 나의 한 평짜리 식탁에서였지만) 나는 조미료가 얹히지 않은 쿠바를, 그곳의 파란 하늘 같은 쿠바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하여 생각이 정리되었으니, 그야말로 나는 이제 천국에서 살일 만 남았다. (p.134)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겪지 않을 많은 새로운 일들을 이곳에서 경험하고, 이 에피소드들이 나에게 글감이 되어주니 내가 쿠바에 온 것은 분명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국 생활을 만끽해 보아야겠다. (p.200)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도 않고, 결혼은 '적당한 사람들의 새로운 가족화'라는 생각을 가졌던 나이기에, 낯선 문화를 가진 외국인과의 결혼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를 낯선 상황에 자신을 던져놓을 수 있었기에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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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소녀에게 동전을 던져주던 사람들이 모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느라 심장에 손을 얹고 멈춰선 순간, 소녀는 이 땅에서 갈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을 강간한 이조차 오빠라 부르며 따라붙었던 소녀가 사람들 사이를 무연히 걸어갈 때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공범자가 된다. (P.120)
'책과함께'출판사에서 이 책을 SNS에 올리시며 “솔직히 조금 어려운 책. 그러나 영화광들은 환영할 책”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만 빨려드는 책. 영화광들뿐 아니라 근현대사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빨려 들어갈 책”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 맞다. 쉬운 책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100년을 드러난 주제, 표현이나 표상의 변천사, 이념이나 사상, 시대적 흐름까지를 짚어낸 책이 쉬우면 우리의 100년이 너무 가볍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지나온 100년이 급변의 세월이었던 듯, 우리 영화가 지나온 100년 역시 우리의 삶을 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 100년의 세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담겨있다.
소녀 같은 눈망울 안에서 들끓고 있는 광기가 더해질 때 '엄마 김혜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엄마 이미지를 중층적으로 품으면서 모성의 이중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P.50) / 여성 캐릭터를 본질적인 모성성의 차원에서 포착하여 감정이 앞서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미지로 재현하는 관습은 법정영화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P.419)
이 책을 읽은 후,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책에서 제시하는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등을 떠올렸을 때 가족을 제외하고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떠올리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가족이야 내가 워낙 밀첩히 닿아있는 부분이니 내 가족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 이후에 영화나 드라마, 책 등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가족을 떠올림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것이 단순히 '연습 된 뇌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제까지의 나라면, 지금부터는 '영화에 담긴 시대상과 이념의 학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보는 매체'였던 영화가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수많은 서사를 영상화한 매체'라는 인식변화를 준 것 자체가 매우 큰 의미가 아닐까.
이제는 영화 한 편을 봐도 그냥 영화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 캐릭터들이 가지는 역할, 그 너머의 이념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는 내게 있어 '텔레비전'과 비슷한 존재가 아니라 '책'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플롯이나 만듦새가 관습적이어서 진부하든, 실제 사건 이상을 담아내지 못했든,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미국을 재현해온 역사에 의미 있는 변곡점을 드러내고 있다. (P.194) / 영화에서 각종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 영화에서는 결코 모호해질 수 없었던 '귀순'과 '잠입'의 구분, '국민'과 '간첩'의 분별 등이 어려워지면서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P.228)
당연한 말일지는 모르나 영화는 시대를 담는다. 물론 책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고쳐 말하면 문화는 시대를 담는다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 한 편, 잘 쓴 책 한 권에서는 세상을 한 단락 만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받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가 지나온 길을, 우리나라에서 특정 단어가 지니는 의미가 변화해온 과정을, 시대의 이념이나 사상을 모두 만났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를 아우르며 '한국영화 100년'이라는 제목쯤의 다큐멘터리 한편을 본 듯 많은 이야기를 얻었다.
며칠간 고전하며 읽은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결코 힘든 시간은 아니었다. 책에만 몰두하여 다소 무시해온 '영상매체'에 대한 새 발견이었고, 읽어온 책들과 영화가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요긴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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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겨야 할 유일한 상대는 '너 따위가 무슨 러너'냐고 비아냥대는 당신 머릿속 목소리다. (P.62)
“나는 달리기가 싫어♥” 뭐냐. 이 반어법적인 제목은!
이게 내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이다. 그런데 그 뜻은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운동을 몹시나 싫어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할 땐 조깅을 하는 나의 모순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 이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덮으면서 생각했다. “와, 이 사람 뭐지? 글 왜 이렇게 잘 써?”
자. 이 책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달리고 싫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임과 동시에 “하루하루 삶을 성실히 살아가야 할 우리를 위한 가이드”라고 말해주고 싶다. 맞다. 이 책은 달리는 습관을 잘 기르기 위한 책인 것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자신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그 모든 것들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싫다면서 하트를 박아놓은 표지처럼, 이 책은 일단 “예쁘다”. 읽는 내내 삽입된 표들이 너무 예뻐서 읽으면서도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내용도 너무 쉽게 잘 풀어져 있어서 이 책을 덮을 무렵엔 나도 그럴듯한 러너가 될 수 있을 듯한 강력한 느낌까지 들었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멈추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P.40)”는 말에서 위로를 얻기도 했고, 주말 새벽 아이와 남편이 자는 틈을 타 동네를 달리(걸으)며 봄을 만끽하기도 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열심히 노력한 끝에 보상을 얻는다고 여겼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보상 일부는 노력하는 과정 중에 얻을 수 있다. (P.128~129)
사실 나는 디스크환자다. 디스크가 증세가 심한 시즌에는 앉지도 못해서 서서 일을 하며, 사무실에서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고 서서 보고서를 살피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제대로 걷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휴직을 하고, 거짓말처럼 상태가 호전되었고, 요즘의 나는 다시 걷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뛰기도 한다. 노력의 의미를 찾고 고통을 견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P.69)는 작가의 말은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잘 뛸 수 있다는 말로 들려 많은 위로가 되었다.
당신이 3등이건 3천 등이건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열광할 것이다. (P.102)
맞다. 내가 몇 등을 하는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또 얼마나 많이 뛰는 지도 마찬가지다. 그저 내가 나만의 속도로 잘 걷고, 달리고 있는 것. 내가 나의 한계를 딛고 일어서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힘들었다면 일단 걷든 뛰어보라. 숨이 턱턱 막히면 힘든 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조금 달콤한 음료수 한잔을 마시도록. 세상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때로는 타인이 주는 위로보다 나 스스로가 주는 단맛의 위로가 더 클 때가 있음을, 달리기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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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즐겨보지 않아도 낯설지 않은 몇몇 그림책들이 있다. 아마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 꼬마에게는 눈사람 아저씨보다 “코끼리와 버릇없는 아기”가 더 인기였지만, 레이먼드 브릭스의 책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특유의 따뜻함과 섬세함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따뜻함을 담은 작품이 바로 이 “에델과 어니스트” 아닐까?
몇 해 전 같은 제목으로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오프닝에서 레이먼드 브릭스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내 부모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라는 인사를 하며 한 우유배달부와 가정부, 가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공개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 만날 때보다 두 번 세 번 만날 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레이먼드 브릭스라는 대단한 작가님의 부모 이야기이기에 특별하게 느꼈지만, 만날수록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 이야기 같아서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다. 물론 에델과 어니스트가 겪는 상황은 우리 부모님과 다르겠지만, 모두 각자의 역사를 품고 가족을 일구어가는 과정은 같기에 더 찡하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매력이라면, 두 번째 매력은 영국의 현대사를 한눈에 만난다는 것을 꼽고 싶다. 영국의 대공황, 2차 세계대전, 노동당의 집권 등 장면마다 런던의 풍경, 역사적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진격이나 히로시마 폭탄, 달 탐사선, 텔레비전, 전화 등의 출현 등 세계적인 역사의 순간들도 만날 수 있어 마치 현대사 책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신문물을 만나는 에델과 어니스트의 모습에서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봤던 이 이야기를 만나며 몇몇 부분에 인덱스를 붙였는데, 에델과 어니스트가 헐빈한 신혼살림을 차리고도 신이나 우리는 부자라고 외치는 장면, 유리창이 다 깨지고 현관문이 나뒹구는데도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아내를 위로하는 모습, 엄마의 마지막 모습 등이었다.
개인적으로 책과 영상이 모두 만들어진 작품을 만날 때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영상물이 책보다 쉽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같은 이유로 나의 상상력이나 이해가 아닌 “설정된 이해”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에델과 어니스트” 역시 영상물도 매우 좋았으나 책이 나에게 주는 여운이 더욱 컸다. 사실 책보다 영상을 먼저 만나면 책을 읽을 때도 그 영상의 장면들이 복기 되기 마련인데, 그림의 잔잔함 때문인지 온전히 책에만 빠져들어 집중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보통”의 힘을, 보통만큼의 행복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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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과 상실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모으고 전달해야 할까? 그동안의 피해를 마치 없었던 일처럼 덮어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폭력과 수탈과 상실의 역사가 박물관의 시선과 박물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두운 역사에 빛을 비춰야 한다. (p.55)
과거 읽었던 책에서 일본(42%!!), 프랑스 등지에 우리 문화재들이 “돌아오지 못한 채” 그곳의 박물관 등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문화재 돌봄 사업에 작게나마 기부도 했으나,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무뎌졌다. 최근 아이와 역사 공부를 시작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왜 대한민국이 아닌 프랑스ㅈ에 있냐는 아이의 질문을 들으며 또 한 번 문화재 약탈에 대해, 집단이기주의 등에 대해 생각하던 찰나 이 책을 만났고, 문화재를 넘어 그 이념과 민족 문화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에게 “아이가 정당하다 받아들일 이유”를 말해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당시 자행된 폭력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이 모든 작은 전쟁과 원정들이 사실은 하나의 연속적인 정복 작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p.113) / 목적은 타자의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기업적, 군국적 식민주의의 중심에 원주민 대량학살과 추방이 있었다면 시간의 정치학 중심에는 왕실유물과 성물에 대한 파괴와 분산이 있었다. (p.174) / 불을 지르고 약탈을 저지른 행위는 명백하고 고의적인 모독이며, 신성한 왕의 휴식처를 더럽히는 행위였다. (p.182)
우리는 문화와 영토를 빼앗겼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박물관의 이면을 잊어버린 듯하다. 박물관이라는 단어를 고요함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당한 이들도 잊는데, 저지른 이들인들 잊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 풍자다. 철자 하나를 바꾸어 “영국박물관”을 “대약탈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건물과 경비원만 영국의 것이라는 유명한 말에 걸맞은 제목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세계의 메이저급 박물관은 “겁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이들의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시선은 어린이 수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환은 옹호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옹호를 멈추는 행동이며 아프리카의 박물관계와 동료, 공동체를 지지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양심과 기억의 장소로서의 서구 박물관의 역할을 새롭게 하는 행동이며 현재도 진행 중인 인종적 폭력을 중단하는 행동(p.310)”이라는 말을 읽으며 문화재반환은 단순히 빼앗긴 물건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빼앗겼던 시간과 문화, 민족의 이념 등까지도 돌려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나아가 그것이 인류 전체의 변화까지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뒤쪽으로 갈수록 약탈문화재 반환의 사회적 이념 등을 이야기할 때는 여러 번 쉬어 읽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은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빼앗겼던” 나라들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야만 잃어버렸던 우리의 물건, 그 안의 문화와 민족과 시간과 역사 등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나아가 현대에도 자행되는 그 모든 약탈들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나 하나 읽는다고 뭐가 달라져?” 가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알아야 하루라도 더 빠르게 문화와 정신, 그 너머의 모든 것들이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
지금이 희망과 낙관의 시간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행동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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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책의날#인생책
가끔은 너무 우울해서 물속에 잠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 근데 그게 왜 나쁜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 나는 우울했다가도 괜찮아질 거고 물속에 잠겼다고 햇빛에 마를 텐데. (p.29 / 28,002번째 통화)
아 이 책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울고 웃으며 지난 밤 홀린 듯 읽어놓고도 뭐라고 서평을 써야 하면 좋을까 생각하느라 몇 시간째 그냥 앉아있었다. “날 것의 아름다움, 미사여구 없는 말들의 진심”이라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난 이 책에 심취했던 거다. 사실 이 책은 “꾸미지 않은 날것의 진심”이라는 한 줄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맞다. 내가 리뷰를 쓰지 않아도 모두 공감할 그런 책이다.
엮은이는 “유리창 너머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 같다. (...) 타인의 일상 속엔 나에게 있는 슬픔, 고통, 외로움 같은 건 없어 보인다. (p.12, 프롤로그) / 그렇다면 우리가 하지 못한 말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흐르지 못하고 어딘가 묻혀 있는 말들은 신호가 왔지만 받지 않는 우리의 '부재중 통화'일 것이다. (p.112) “라며 혼자 끌어안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자유로워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단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이 말들은 전하지 못하고 품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듣고 싶었으나 듣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못 한 말이, 누군가에게로 다 듣지 못한 말이 된다. 누군가가 듣지 못했던 말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준다.
왜 이 말들이 이렇게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울었고 또 피식피식 웃기도 했고, 꽤 많이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다. 글을 쓰며 내 속의 말들을 많이 뱉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버리지 못한 말이 많았나 보다. 여전히 듣고 싶은 말도 많았나 보다.
사실 진정 내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 뿐이구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나머진 모두 장식일 뿐이구나. (p.213)
얼굴도 모르는, 심지어 몇 살인지도 성별도 모르는 이들의 문장에서 깊은 공감했다. 물론 어떤 통화들은 성별이나 나이가 표기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추정해볼 단서들이 있기는 하나 굳이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문장 자체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아니, 정확히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장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 문장들과 원래 내게 있던 이야기들이 만나 나만의 이야기로 재해석되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울었다.
나에게도 있었다. 들었어야 할 말들과 했어야 할 말들. 오늘 이 책에서 감히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내가 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울지 말고, 욕해버리고 잘 살아. (p.90 / 21,300번째 통화)”라는 말을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다. 또 그때 “함께 먼 길을 걷길 바랐어, 그뿐이었어. (p.137 / 69,050번째 통화)”라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독서 노트 한 켠에 1522-2290을 옮겨적었다. 언제인가 나도 무엇인가 말할 용기가 생기면, 내 안의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이 문장이 될 때가 오면 조용히 한번 전화를 걸어야지. 그때는 남에게서 빌려온 저 문장들을 놓아버리고, 진짜 괜찮아져야지.
그때까지 부디, 이 전화가 살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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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로폼을 사용했던 의사들은 여성이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성경을 들먹이는 성직자와 동료 의사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 그러나 대다수 성직자들과 달리 예민한 남성들은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에 고통으로 내지르는 절규를 차마 견디기 힘들어했고 절규의 행동이 신성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p.104)
출산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고통의 순간'을 지나와야 경이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출산하는 여자'만 대단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출산의 순간'을 겪고 태어난 귀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요즘은 출산하다 산모가 죽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지만, 과거에는 꽤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분명 태아의 평균 신체는 과거보다 커졌을 텐데 왜일까. '의학의 발전'이라는 당연한 걸 왜 묻냐 하겠지. 맞다. 의학의 발전에 의해서다. 그런데 그게 왜 당연해?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았던 때'가 주는 교훈은 몹시 크다.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일 테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당연하게 바꾸어준 이들'에 관한 책이다.
'어떤 혁명은 소리 없이 시작되기도 한다. (p.8)'는 말로 문을 연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당연하다 생각해온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겪어온 시간이 쉽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코로나를 겪으며 더 당연해진 손 씻기 조차 1847년에서야 시작되었다고 하니 놀라움은 당연했다.
유럽을 휩쓴 전염병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질병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기도 했고, 클로로폼이나 코카인 같은 마취제에 대한 부분에서는 과하면 독이 되는 많은 것을 떠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체통을 괴롭히는(?) 종이로 전락해버린 적십자가 초창기 어떤 모습으로 구호 활동을 했었는지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어 “아는 것의 힘”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구겨버린 지로용지에 사과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던 부분은 “과학의 나라 독일” 편이었다. 부끄럽지만 해당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나, “암세포의 지나친 성장과 같이 신체 세포의 변화를 질병의 원인으로 보았다”(p.292)라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아는 의료보험의 시작점이 된 비스마르크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 가운데 하나다. 고대부터 전염병이나 유행병은 시시때때로 도시나 나라 전역을 공포에 밀어 넣었으며 때로 유럽-지중해 문화권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부분에 퍼져 수많은 문명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전염병은 거의 항상 사회질서와 통치체계, 경제 체계를 뒤흔들었다. 종종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식과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p.158)
최근 몇 년간 코로나라는 무서운 바이러스는 우리를 흔들고, 세상을 바꾸었다. 19세기에도 세상을 흔든 전염병이 종류와 모습이 달라지긴 했지만, 현재를 흔들고 있다. 치료제나 예방제 등의 발달, 모두의 선진의식 등이 이 무서운 사태를 종료시킬 수 있겠지만, 이 사태가 끝난 후의 상황들도 고려해보아야 할 중요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은 지나간 것들을 의미 없는 것들로 취급하지만 과거의 사례에서 현명한 대처법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와 이 시대에 살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생겨야 할 '내성'들은 고민했다. 과거의 사례들에서 오늘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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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깎이고 다듬어지며 쓸모없는 것들은 털어내고 덜어내는 중이다.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돋을 때면 전보다 질긴 표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 변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and since i made it here, i can make it anywhere! (여기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어디에선들 못 하겠어!)”를 모토로 삼고 나아갈 생각이다. (p.277)
그녀가 가수로 섰던 무대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도, 호흡도 기억난다. 사실 아직도 그녀의 노래 한두 곡은 내 차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친구들이 “토토가”라고 부르는 차답게 내 차의 노래들은 나의 10대를, 20대를, 30대를 함께 함께 해오다 보니 노래들도 각자의 추억을 켜켜이 쌓고 있는 셈이다. (그녀가 김동률과 부른 '기적'은 나의 첫사랑을 추억하게 한다) 아무튼 그녀의 아버지 책(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 이규천/ 수오서재)을 통해 그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오히려 이번 책은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해야겠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라는 꿀벌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늘 함께 하는 것일까. (P.39)
이 문장을 읽는데 코가 시큰했다. 나의 지난 시간이 떠올라서였을까. 물론 나는 그녀에 비해 이룬 것이 너무 없지만, 이룬 것이 없다고 한들 지나온 시간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바쁘고, 슬프고, 괴로운 꿀벌이었던 나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글들을 통해 단단한 위로를 얻었다. 조금 울기도 하고, 결심하기도 하며 나의 밤들을 그녀의 문장으로 채웠다.
나 자신이 되어라. 나는 이 말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고, 무조건적으로 긍정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고 타인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으며, 중심을 내 안에 두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가장 멋진 방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P.10) / 네 마음의 소요를 지켜보며, 너를 참아내고 위로해주어라. 네 속에 있는 너를 다독이고, 용기를 주고,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넉넉한 주인이 되어라. (P.218)
늘 그녀의 목소리는 “청아함의 대표주자”였다. 나는 맑은 목소리를 이야기할 때 늘 그녀의 이름을 꼽았던 것 같다. 청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그것이 내가 그녀를 형용하는 말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는 영혼까지 청아하고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선지 공책을 찢어 자신의 곡을 쓰던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을 차분히 그려온 것이 아닐까. 코스모스의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쉬이 꺾이는 것이 아니듯, 그녀는 여리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살아온 것 같다. 나아가되 아프지는 말자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을 둥둥 울린다. 늦은 사춘기를 겪는 중이지만, 그래도 매일 나의 길을 걷기 위해 느린 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쉼 없이 응원을 건네는 것 같다. 최근 몇 년간의 독서 중에서 가장 많은 인덱스를 책 곳곳에 붙이며, 나는 독자가 아닌 사람으로 위로를 얻었다.
점을 옮기고,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변화시키고,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에서 벗어나도 좋다. 계획에 없던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비포장도로를 걷기도 하고, 잠시 멈추고 쉬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된다. (P.76)
얼마 전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하다는 글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실 때 그저 커피만 마셔도 된다는 걸 알았다는 말을 썼다. 나는 그토록 바쁜 꿀벌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30대의 사춘기를 보내는 내게 그녀는 비포장도로를 건너도 되고, 다른 길로 가도 된다고 말해준다. 나조차도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고. 여전히 두렵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이 책을 만나는 내내 나는 온전히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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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결에 따라 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자유로웠고, 쓸쓸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혼자 걸으며 무수히 많은 것들을 채집한다. 물리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둥둥 떠다니는 대책 없는 마음을 애써 메모로라도 부여잡는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그렇게 지켜간다. (p.62)
봄빛이 가득한 연 오렌지의 표지. 제주도. 여행기. 사실은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책이었다. 그저 신나고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하겠지, 하는 얕은 기대감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눈물 콧물 흘리는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모슬포 같은 마음을 털어내고자 혼자 떠난 제주도. 제주를 걸으며 자신의 지나온 길을 다시 걷고, 바다를 보며 50년이라는 삶을 되돌아보는 일기 같은 책이다. “내가 아닌 나는 될 수 없지만(p.27) 찌그러진 마음이 조금 펴지고, 어둡게 밝아 적당한(p.5)”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게 짠한데 때때로는 달콤한 유배기. 그리고 그 여행에서 그녀는 결심한다. “바람이 분다고, 나를 향해 부는 것이 아닌 것을. 겁먹고 살지 말자. (...) 개 떨듯 떨더라도, 뛰쳐나오고, 걷고, 살자. (p.61)”고.
어린 시절의 한 순간순간이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우리가 쉬이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어른의 순간도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꽤 괜찮은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어른이 되어 겪은 순간순간이 여전히 아프고, 버거웠는데 나는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주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벗어나는 길도 눈에 들어왔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는 나보다 한발 앞서 이미 자신의 터널을 잘 빠져나오고 계심을 느꼈다. 같이 울고 웃으며 나도 이제 그 터널에 발을 디딜 용기가 나더라.
느슨한 일상과 느린 걸음, 푸근한 자연은 걸음을 잡아주었다. 나하고만 사이좋게 지내면 되는 생활은 안팎으로 여유를 주었다. 심장이 느려졌다. (...)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느리게 걸어야지. 조금 더 느리면서 열렬한 생활을 격하게 누려야겠다. (p.145)
숲이 너무 좋아 나도 숲인 것처럼, 나도 자연의 하나로 배어든 것처럼 자연을 편드는, 식물과 동물을 편드는 생각이 걸음을 따라 이어졌다. (p.178)
느리게 살기. 사실 요즈음의 내가 가장 격렬히 지지하고 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책을 보지도 않은 채 가만히 커피만 마시기. 그냥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기. 요즈음의 지지하는 내 삶의 한 조각. 막상 해보니 아무것도 어려울 것이 없었는데 그동안의 나에게는 왜 그리도 남 이야기 같았을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꼭 쥐고 있는 그 무언가! 그건 바로 나(p.6)”였음을 다 놓아보고서야 아는 미련함을 이제야 실컷 부려보는 중인 거다. 그러면서도 종종 친구에게 마흔을 목전에 두고 나는 왜 이러는지 쓸쓸한 웃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린 삶을 조금 더 지속할 예정이다. 내 영혼이 잘 따라올 수 있게 말이다. 책의 나이가 현재형이라면 나와 띠동갑일 작가님을 핑계로 조금 더 느린 나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찮은 글도 읽히면 괜찮은 글이 된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언젠가는 바다처럼 짜고, 귤처럼 달콤한 이야기를,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조금 더 '나'로 잘살아 보아야겠다.
작가님. 저 오늘부터 작가님 팬 할 거니까, 일단 술이나 한잔 다정하게 따라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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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금은 모르는 사이에 원청징수되고 강제로 징수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강제로 가져가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장 요원이 억지로 빼앗아 가지는 않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강제라고 한 말은 세금을 안 내면 전과자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교도소에 갈 기회조차 없다. 세금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이다. (p.35)
다양한 역사서를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세금의 역사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전과자가 될 기회도 없이 원천징수되기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각종 세금을 내는 서민이면서도 그냥 당연한 무엇인가로 받아들이고 살았나 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세금이 역사 속에서 엄청난 흐름을 담당하고, 판도를 바꿀 “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연한 듯 역사 속에 숨어있던 세금들을 만나며 알았던 과거는 새롭게 보이고, 몰랐던 과거는 다시 알게 된 읽기였던 듯하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에 6억 파운드 이상의 추가 부채를 안겼다. (...) 소득세 때문에 채무의존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정부 지출의 반 이상은 채무로 충당했다. (p.126) / 루스벨트는 뉴딜정책 실시를 위해 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1932년 선거 캠페인에서 맥주에 부과하는 주세만으로도 수억 달러의 정부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마도 뉴딜정책에 대한 기대보다 금주법 폐지 공약 덕택일지도 모른다. (p.171)
우리가 당연한 듯 알아온 역사의 순간들에, 늘 세금이 존재했다. 그것도 우리의 생각보다 깊게, 때로는 주인공으로. 세금으로 인해 농노의 난이 발생하고, 조세개혁으로 인해 영국의 권력 구조가 바뀐다. 노예제도로 인해 대립한 결과로 발생했다고 배운 남북전쟁 역시 미국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관세로 시작되었다니 그동안 만나온 역사의 새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과거에 조세가 미친 영향들에 정신이 빠져 읽다 보니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명쾌한 분석들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모습을 너무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글로벌 시대의 개인과 기업에게 강력한 사유재산보호법과 우대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가장 많은 기업을 유치하게 되어 있다. (p.295) / 디지털 기술은 또한 징세효율을 높인다. 무인 자동차에 내장된 컴퓨터가 주행거리에 따라 자동적으로 세금을 낼 것이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p.265) / 노마드족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도 없고 점포도 없다. 생활비도 선진국보다 적게 든다. 게다가 가장 큰 비용, 즉 국가에 내는 돈을 안 낸다. (...) 소득세는 얼마나 내야 할까? 낸다면 누구에게 낼까? (p.223)
후반으로 갈수록 미래의 경제까지를 전망하는 책이라서 더욱 진지한 태도로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다른 역사서에도 느꼈듯, 과거가 단순히 과거로 끝난다면 그것이 전래동화를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전래동화도 많은 교훈을 남기지 않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과거의 사례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또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세금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방법(p.313)”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연하게 낼 일”이 아니라 공부하고 의논하고 토론해야 할 주제인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세금에 대한 의구가 아닌 “불만”만을 품어왔던 나지만 이제는 세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져봐야겠다. 우리가 큰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세금은 또다시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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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공 안에 쇠망의 씨앗이 들어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p.96)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내가 언젠가 역사서를 읽다가 생각한 것을 시작으로 책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에서였다. '제국은 왜 흥망을 반복하는가?' 말이다. 여러 역사서를 읽다 보면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제국도 결국 서서히 무너지고, 절대 커지지 못할 것 같은 제국도 서서히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장한 제국도 결국에는 무너진다. 그저 생태계의 원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동안 읽은 책 앞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글로 써오신 저자의 저력을 완전히 느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확한 포인트로 짚어내고, 간결한 부제로 묶음으로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저 오랜 역사 속 이야기들을 마치 오늘날의 이야기로 바꿔주는 느낌이랄까.
경고음이 처음 울릴 때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주의해야 한다. (...) 로마공화정 말기에도 현명한 정치가가 있어 꼭 필요한 개혁을 과감히 시행했더라면 어떠했을까. (p.77) / 지도자의 능력이 몽골제국의 역사를 좌우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88) / 누구든 안팎으로 문을 모두 걸어 잠그면 스스로 질식하고 만다. 전성기에 오스만제국이 보여준 개방성과 종교적 관용에서 터키공화국이 새 희망을 발견하였으면 한다. (p.167)
이 문장들은 나라에도, 조직에도, 어쩌면 개인에게도 참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부분의 실패는 경고음이 처음 울릴 때만 해도 바로잡을 수 있다. 비록 아픔이 따르겠지만, 그런데도 바로잡을 수는 있다. 수많은 역사는 그저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삶에 거름으로 삼아야 하기에 우리나라에, 우리 조직에, 내 내면에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반대로 나라가, 조직이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의 경고음이 될 필요도 있겠다. “애초에 시민은 공직에 나갈 길이 차단되어 있었고, 귀족과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시민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기원전 494년부터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200년 동안 시민은 점점 많은 권리를 쟁취하였다. 고대 역사에서 보기 드문 쾌거였다. (p.41)”의 문장에서 느낄 수 있듯, 혼자서는 작은 목소리라도 모이면 큰 경고음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하나하나가 모이면 무서운 경고음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고 이끌어가셔야 할 테고.
이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과거의 것을 정리하고 풀이해주는 느낌이 아니라,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흐를지를 이야기해주는 느낌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역사를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라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유행도 돌고 돈다. 유행이 10년이나 5년을 주기로 돈다면 역사는 조금 더 큰 주기로 돌고 돌아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좋은 점은 살리고, 나쁜 점은 미리 대비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역사를 고쳐 말하고 싶다. “지난 시간으로 내일을 대비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마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역사를 어렵다고 생각하여 피하기만 했다면, 이 책을 권해본다. 아마 이 책을 통해 역사도 재미있는 거구나, 뭔가 많은 것을 남기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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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헌법 제 10조 / p10)
아마 이 문장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윤리(지금은 배우...나….)시간에도 배웠고, 언론에도 자주 나오며, 드라마나 영화에도 종종 나온다. 나 역시 많은 곳에서 헌법 제 10조를 읽고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헌법을 읽어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법학과를 나왔으면 읽어봤으려나. 법학개론, 행정법, 사회행정학 등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읽었는데 헌법은 그저 남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해온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저자의 “헌법이 알려지면 주인이 주인다워집니다. 권력이 권력다워집니다. 평등이 시작됩니다. 행복할 권리가 옵니다. (p.228)” 라는 말이 진짜 꼭 필요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요즘 법 위에 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법을 수호하고 잘 지키라고 그 자리에 앉혀둔 높은 '분'들이 법을 기만하는 때도 많고, 자신의 욕구나 삐뚤어진 마음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도 세상 탓을 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등 남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너무 많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국민이 헌법을 알고 지키면 세상이 정리된다. 국민은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지키고 의무를 이행하고 부모는 자녀를 교육하고 지키며,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은 나라의 일꾼답게 일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문득 나의 윗세대, 그리고 나의 세대들은 먹고살기에 바빠서, 성공하기에 바빠서, 경쟁하기에 바빠서 헌법을 배우거나 천천히 읽어볼 시간 조차 없었던 까닭은 아닐까. 당장 오늘부터 모든 국민이 헌법을 지키고 살면 좋겠지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테고, 우리부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헌법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고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지켜주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면 세상이 참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합니다. (제 69조 대통령선서 / p.186)
하물며 나처럼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도 이 책을 보며 잘 지키지 못했던 것들을 반성하고, 나도 아이도 헌법을 읽고 나의 권리와 의무, 타인의 권리 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법을 공부하고, 평생 법으로 업으로 삼아온 대통령 당선인이기에 이 대통령선서문을 더욱 잘 지켜주기를 바라보았다. 다시 공수가 전환된 청와대(공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씁쓸하지만 아직은 이만큼 맞는 표현도 없는 듯하다. 있다면 부디 알려주시길)의 5년은, 현 정권에게 가졌던 야당의 “국민을 위한 일들”을 실천하고, 여당이 되어서는 “야당의 의견도 잘 듣는” 귀를 가지시길. 여야의 싸움보다는 올바른 논의가, 질책보다는 협동이, 비방보다는 격려가 가득하여야 그사이 조금 더 똑똑해진 국민의 질책을 받지 않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길!
아. 그사이 우리도 더 공부해야 함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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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를 늘리고 농업 생산량을 늘리려면 많은 농민이 필요했다. 오랜 전쟁으로 이미 많은 주민이 죽거나 고향을 떠나버린 농경지에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p.93) /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던가. (...) 혹자는 박쥐 같은 놈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나, 누군가는 '생존'이라는 궁금의 꿈을 이뤄낸 대단한 망명객이라 평가하지 않을까. (p.98)
이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런 남자랑 맥주 한 잔 먹으며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고. 의미 없는 생각을 고이 접어두며 꽤 의미 없는 생각으로 전환했다. 내가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해서,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줘야지. 맞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주 재미있다”다. 내가 역사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진짜 역사서를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다고 할 거다. 자신 있게 “강력추천도서”라고 써놓고 나의 독서감상문을 시작해본다.
한국사회의 역사 인식과 교육은 '다문화사회'라는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사 교육체계는 폐쇄적 혈연 의식과 인종적 편견을 지양하는 국경 없는 교육을 실행하고 있을까. (p.144)
이 책은 문장 자체가 매끄럽고 조리 있어 술술 읽히는 것도 장점이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현대식으로 읽어낸다. 단순히 승자와 패자를 벗어나 상황을 보여주고, 살짝 비켜낸 시각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그래서 마치 이야기를 한 편 듣는 것 같다. 유튜브 등에서 맛있게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영상을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다. 매우 다양한 사료들이 녹아있어 쉽게 읽었는데 남는 것은 꽤 묵직하다. 이런 책이야말로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어, 아이들의 실질적인 “재미있는 역사 공부 책”으로 사용되면 좋겠다.
풍덩 빠져 책을 읽다가 종종 날카로운 문장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 문장들을 통해 현재의 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과거의 역사를 학습하고 그것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많이 생각했다. 그러한 시각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내가 그래도 처음 역사서를 펼치던 때보다는 성장해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평생의 노력을 통해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p.174)
요즈음의 동아시아 정세를 놓고 보면 마치 예전의 그것과 같다는 느낌은 지나친 억측일까. “왜”가 중요한 나라로 인식되지 않았던 과거처럼 일본은 다소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과 러시아가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니는 느낌. 그래서 요즈음의 나는 뉴스를 보며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는 것에 퍽 관심이 많다. 나의 편협한 시선은 모두 틀린 것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과거의 역사가 “그저 지나간 것을 학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오늘을 잘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냉정하게 되짚어보면서 현재 동아시아 각국 정상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치열한 이해타산과 그 밑바닥의 욕망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안목이 더해지면 그만 (p.39)”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조금 더 너른 눈을 가지도록 더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우리가 부지런히 읽고 알아야, 큰 분들이 공든 탑을 쉬이 무너트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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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줄인 리뷰입니다. 원문은 블로그로.
아침을 먹은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라고 두 세 번 타이르시며 조금도 이별하는 것을 탄식하지는 않으셨다. (난중일기 1954.01.12)
난중일기를 읽고 오래 남은 부분은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하는 문장과 어머니를 잃고 탄식하는 이순신의 비통함이었다. 이순신을 이야기할 때 효심을 빼놓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나 말고도 그러한 듯하다. 충무공 이순신, 거북선, 난중일기, 삼도수군통제사.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등 그를 표현할 말들은 너무나 많고, 그를 주제로 한 책 역시 너무나 많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책은 그가 아닌 이순신의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역사 속에서 유명한 어머니들이 몇몇 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은 신사임당이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지만(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 본인과 아들은 지폐에 나란히 얼굴을 새겼다. 다음은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로 죽으라”라는 가슴 아픈 편지를 안중근에게 남긴 조마리아 여사. 그리고 그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부족함이 없을 어머니, 초계 변씨가 바로 이순신의 어머니다. 그녀를 제대로 이야기한 책은 거의 없어 안타까웠던 찰나 이 책을 만났다. (저자의 배경이나 논란은 접어두고 책만을 놓고 말하자면 초계 변씨 역사관이라도 다녀온 듯 명확하고 깔끔했다.)
순신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학문하는 자세도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니 과거까지 갈 수 있게 준비해야겠어. (p.27) / 서울에서 왜 이주를 강행했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 아산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는 짐작이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p.96) / 내가 여수로 가자. 내 아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게 하지 말고 고달파도 내가 고달파야 하고 힘들어도 내가 힘드는 게 낫다. (p.143)
이 문장들만 봐도 변씨의 성향이 보인다. 어린 순신을 두고 학문하는 자세와 성향을 판단했으며, 자녀들을 위해 이사를 강행하고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망설이지조차 않았다. 저자 역시 여러 차례 이순신의 올곧음이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효심이 그냥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존경받을 모습, 헌신적인 모습 등이나 혹은 소수의 케이스로 정반대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자라며 학습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중일기에 절절히 표현된 그의 효심은 어머니의 강직함, 헌신적인 사랑이 바탕이 되어 생겨난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이순신은 자신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p.141) / 이제는 잠을 자는 것조차 아깝다.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의 만남 아닌가. (p.178)
최근 떠났던 여수여행에서 엄마와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못난 자식이라 주저앉아 사는 것을 미안해하자 “온 동네가 이순신으로 먹고 살 만큼 대단한데, 그 이순신이 바다에 나갈 때마다 가족들의 애간장은 얼마나 탔겠어. 엄마는 그런 거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늘 곁에 사는 자식이라서 훨씬 좋아.”라고. 그때 생각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애간장 자체가 없었겠구나. 자식이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해도 불안할 텐데, 화살이 날아다니고 총포가 오가는 바다에, 늘 불리한 전쟁에 자식을 내어놓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데도 귀한 아들에게 자립심, 충성심 등을 기르게 하고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강단을 심어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여수에서 거북선 빵을 사 먹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변씨처럼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발굴해내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역사 속 그들이 아닌, 그들 뒤에 서 계셨을 수많은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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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줄인 리뷰입니다. 원문은 블로그로.
걷고 또 걷다 보면, 내 열망과 걱정으로부터, 내 슬픔과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는 점이 좋다.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목이 말라 물을 찾게 될 때까지 걷다 보면 어느덧 나를 괴롭히던 그 문제가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내가 집착하던 나 자신의 욕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p.53)
나는 월든을 두 번 읽었다. 아니 세 번째 읽고 있다. 첫 번째는 맹렬한 독서기였고, 두 번째는 독서 모임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두 번의 월든은 내게 그리 깊은 감흥을 주지 못했다. 소로가 현실로부터 도망쳐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월든을 꺼내 든 것은, '자신만의 온도'를 나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어제의 나에 비해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게 산다. 분명 타인의 잣대로는 놓'친' 것이 더 많을 것인데, 나는 “놓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괜찮아진 거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많이 나아져 있음을 더 많이 느꼈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지금 나를 위한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관계와 접촉들에서 오는 피곤함, 감정노동을 내려놓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 깊은 희열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다(p.276)'라고 했던가. 소로가 또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지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만 해도 왜 하필 월든일까 생각했다. 내가 큰 감흥이 없었던 책이기에 작가의 열광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만난 소로는 내게 울림을 준다. “평화로운 것은 사랑하는 엄마랑 좋아하는 책을 보면서 천천히 마시는 우유 같은 것”이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수많은 평화로운 순간들을 그것이 평화인지도 모르고 흘려보냈다 싶어 아득해졌었다. 그런데 소로는 빗속에서 자신이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소로도 정여울도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의 가치를 느끼는 법을 알아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적정온도는 스스로에게도 한발 물러서 줄 수 있고, 타인이나 물건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함을 통해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오두막집에서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팠던 곳을 보듬으며 치유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의 고독이 그토록 아름답게 반짝인 것은 처음이었다. (...) 자연 속에 폭 안겨 있는 작은 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존재임을. (p.301) 이 부분을 읽으며 문득, 우리는 고독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해 왔음을 깨달았다.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더 많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고독이 가지는 순기능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혼자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할 줄 아는 눈부신 단독자로 거듭나자(p.305)는 말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꿈을 생각해내느라 고민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뭐든 되어야만 한다'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느라 정작 오늘 하루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p.121)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가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기를 기도하려 한다. 나 역시 각진 마음을 내려놓고 흔들리되 내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나도 마침내 나의 적정온도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모두가 여름일지도 나만은 봄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나만 움직이지 않고 이 자리에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싶다면 세상의 속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p.99)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이 책 전반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나의 속도로 잘 걸어가는 것. 대신 대충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정성을 다해 풍경도 보며 온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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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광해의 실패를 통해 왕이 한 집단에 너무 의존해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서운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적당한 배분이 중요했다. 정책이나 결재만으로 배분이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가치와 마음을 공유해야 한다. 진심으로 같은 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P.199)
“후금이 성장하며 무리한 요구를 해왔고 조선에는 척화파가 생겨났다. 후금이 민가의 마필을 빼앗아 달아나던 중 평안도관찰사의 유문을 손에 넣는 바람에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악화한다. 인조 14년, 후금이 조선을 침입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가 삼전도로 나가 항복을 한 전쟁” 이것이 학교에서 배운 병자호란이다. 그러나 내게 강하게 남은 병자호란은 이덕화 님이 이마에 피를 흘리며 삼전도에서 절을 하는, 삼전도 굴욕의 모습이다. 이게 나에게만 강한 인상은 아니었던지, 삼전도 굴욕은 조선 최고의 굴욕, 인조는 최악의 군주라 불린다. 인조는 정말 최악의 군주인가, 다른 왕이었다고 한들 병자호란을 피할 수 있나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분을 제대로 짚어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속을 시원히 풀어준 책이 한 권 등장했으니, 임용한 소장의 “병자호란”이다.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라니. 역사를 잘 모르지만, 알고 싶어 좋아하는 역덕으로서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임용한 소장님의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얼마나 재미있던가. 불구경,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지만 전쟁 구경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프로그램 아니었나. 그런 사람의 “시간순삭전쟁사”라니.
세종이었다면 일단 밤새도록 고민하면서 대신들을 불러모으고 해결책이 안 나오면 전체 관료회의라도 열어 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는 아무 말 없이 바로 비변사에 안건을 넘겼다. 그래도 노련한 비변사 대신들은 묘수를 찾아냈다. 묘수라기보다는 꼼수였다. “성문과 몇 군데를 수리하는 척합시다.” (P.95)
그 순간 인조는 본성을 드러내고 만다. “내 할 일은 이미 다했다. 이제부터는 경들의 몫이다.” (P.204)
개인적으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열린 눈과 귀”라는 생각을 해본다. 완벽할 수 없으므로 적재적소에 알맞은 인재를 두고자 열린 눈으로 보고, 올바른 말을 듣는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조 본인도 장님에 귀머거리였고, 대신들은 인조에게 선글라스와 이어폰을 끼워주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책을 너무 재미있게 쓴 탓인지는 모르지만 책을 읽다가 여러 번 책장을 덮어야 했다. 분통이 터져서였다. 배낭도 메지 못할 양반님들에게 둘러싸여 그저 “나는 몰라”는 식의 정치를 했다. 요즈음처럼 총칼이 아닌 지식과 경제로 전쟁을 하는 시대에 인조처럼 정치한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모든 것을 빼앗긴 빈껍데기가 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총칼을 든 적에게도 대응하지 않는 리더가 보이지도 않는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을까. 인조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열린 눈으로 위기를 바라보고, 그 위기에 대한 바른 조언을 듣는 귀를 가진 리더만이 여러 위기에 노출된 지금 시기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했을 인조는 자신의 왕위를 유지했고, 싸움을 회피하여 수많은 백성의 목숨을 잃게 한 김자점은 영의정에 올랐으니 조선의 치욕과 멸망은 당연한 순서는 아니었나.
군대가 있어도 적을 막을 수 없다면 군대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선명했다. 학창시절부터 품어온 궁금증도 다 풀었고,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궁금했던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오히려 더 많이 얻었다. 그런데 사실 잘 몰랐을 때보다 착잡하다. 아마 그것은 우민이 아주 조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간다는 뜻이겠지.
책을 한 번 더 읽을 예정이다. 한 번만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이 책이 품은 이야기가 너무 크다. 그러나 이 품은 이야기들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바닥을 딛고 올라야 할 내일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본 도서는 레드리버출판사에서 지원 받았으며, 리뷰는 제 생각을 기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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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 그냥
오래오래
고맙다는 말만 하고 살자.
-'고맙다는 말' 중에서
온 집안이 가톨릭 신자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이해인 수녀님 문장을 자연스럽게 접해왔다. 언제인가는 수녀님이신 고모가 조카가 글을 쓴다는 말을 하셨는지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늘 글을 쓰는 고운 마음으로 자라라”는 취지의 메모를 남겨 보내주셨더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에서 늘 따뜻한 봄 햇살 같은 느낌이 났다. 꽃이 피는 봄 언덕에 이는 아지랑이처럼 생명이 돋는 그런 따뜻함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그늘질 때마다 수녀님의 문장을 읽곤 했다. 수녀님의 문장은 늘 내게 민들레 홀씨가 꽃을 피우듯 온기를 채워주셨다.
이번 책을 펼쳐 들고 속표지에서부터 코가 찡했다. “오늘을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살아가는 간절한 마음이 갈수록 더 필요하다.” 평생 자신을 수련하는 종교인으로 살아오셨고, 어느새 희수를 맞은 수녀님께서 간절한 마음이 갈수록 더 필요하다니. 수녀님의 절반을 살고도 꽤 많이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나는 얼마나 철부지인가.
책을 한 장 한 장 아껴 읽었다. 읽을 책을 몇 권이나 쌓아놓고도 이 책을 유달리 아껴 읽은 것은, 그저 쉬이 읽고 덮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녀님의 문장들이 내 마음에 가득히 피어나도록 천천히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온 마음이 따뜻했다. 시기적으로 답답한 마음, 개인적으로 복잡한 마음 등을 마치 그래 다 알아, 하고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며 코로나 등으로 느끼는 시기적인 마음,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을 고민까지- 위로받는 느낌이 들 문장으로 가득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지만 스님들의 책도 즐겨 읽는 편이다. 종교의 벽을 넘어온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마 이 책도 독자들에게 그런 마음을 줄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라면 한 층 더 종교적으로, 신자가 아니라면 그저 곱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이해인 수녀님 초보'들도 무리 없을 것 같은데 시와 산문이 고루 섞어야 있어서 시 울렁증이 있는 분들에게도 좋은 문장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고,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심층적으로 읽을 것들이 있어 더 좋을 듯하다.
이 책의 뒤표지에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 꽃잎 한 장의 무게로'라는 말이 적혀있다. 나는 이 말이 참 시리게 아팠다. 흐드러진 벚꽃 잎이, 툭툭 떨어지는 목련 잎이 얼마나 슬픈가. 그 정도의 무게로 살아간다고 하시는 말이 시렸다. 한편으로는 그러면서도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문득 종교인들은 가진 것이 없어 가벼우면서도, 짊어진 것들이 아주 무거운 분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 역시 가볍고 아름다운 문장이면서도, 세상을 묵직이 안은 것이 아닐까 싶고.
어느새 봄이다. 겨울의 묵은 것을 툭툭 털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워야 하는 시기. 내 마음을 녹여내 새로운 나를 피워내야 하는 시기. 이 시기에 정말 맞춤처럼 딱 맞는 책이다. 묵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해인 수녀님 덕분에 조금 일찍 봄을 만났고, 조금 일찍 묵은 눈을 녹여낸다. 이번 책도 감사한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었다. 부디 수녀님의 고운 문장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온 마음의 묵은 것들을 털어야지.
안녕, 새 봄아. 안녕, 새 마음아. 반가워, 새로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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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알던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자료가 얻어지기도 하니까요. (p.8)
아이가 훌쩍 자랐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작년에 입은 옷이 작아졌다거나, 조금 더 느긋한 자세로 기다린다거나 할 때도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물을 때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 아이의 경우 독서량이 많은 편이기도 하나, 타고난 기질 자체가 눈썰미가 좋고 꼼꼼한 성향이라 책 하나를 읽어도, 지나가며 현수막 하나를 보아도 꼭 무엇인가를 묻곤 한다. 최근에는 아이의 질문 난이도가 높아져 “엄마도 좀 어렵네. 같이 찾아보자”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 중 가장 대답해주기 어려운 영역이 수학과 과학! 엄마도 늘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매번.
그런 나를 서포터해준 두가지 책이 “기발하고괴상하고웃긴과학사전”시리즈와 최근 접하고 톡톡히 효과보는 “매일 똑똑해지는 1분”시리즈다. 이 책은 아이도 열심히 읽지만 나도 재미있어서 자꾸 읽게 되는 마법의 책! 이 두 시리즈 중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매일똑똑해지는1분과학”이다. 이 시리즈는 분야가 매우 명확히 나눠져있어서 아이가 혼자 학습하기에도, 같이 읽기에도 너무 좋다. 역사, 기술, 지구, 과학 등 4권으로 나누어진 과학상식이라 어느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다. 아이들의 질문이 두려운 엄마들이여! 이 책을 들이시라.
우리가 며칠동안 읽은 '과학'을 자세히 소개하자면 일단 선명한 삽화와 간결한 문장으로 아이들에게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도표도 간결하고 명확하여 아이가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특히나 좋은 점은 본문과 참고글이 구분된다는 점인데, 요점을 따로 정리해준 덕분에 같이 읽고, 요점은 아이가 직접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기에 너무 좋다. 용어가 따로 설명되어 있는 점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 적합했고, 쉬운 단어로 잘 설명되어 있어 엄마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주제 안의 작은 꼭지들을 선명하게 표시해두어, 그 부분만을 찾아보기에도 너무 좋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1분만에 한 주제에 대해 알기도 좋은 책이고, 그 주제를 파고 들어가기에도 너무 좋았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와 읽으며 여러가지 실험이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잉크 분리하기, 소금물 끓여서 소금만들기, 가스불이 타오르는 실험, 가정에서 쉽게 만나는 소음들의 데시벨 구분 등 아이와 일상생활에서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재미있게 제시해주어,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집이 과학실같았다. 그렇게 학습한 것은 아이도 오래 기억하여 목욕을 하면서도 기체와 액체를 쫑알쫑알거리는 귀엽고 기특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사실 엄마가 되며 훗날 아이에게 수학과 과학을 어떻게 가르쳐주지 하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좋은 책들이 있어서 걱정이 많이 줄어든다. 엄마가 수포자, 과포자라고 해도 괜찮다. 아이랑 얼마든 공부할 수 있으니까. 아이와 엄마가 함께 똑똑해지는 책 덕분에, 오늘도 우리집은 즐거운 과학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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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누구나 덜 힘든 길로 가길 원하고 기회만 있다면 지름길로 빠지려 한다. 문제는 무의식적으로 쉬운 길을 택하면 택할수록 제때 벗어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p.26)
돌아보면 나는 지금이 뭔가를 가장 많이 결정하고 변화하는 상태인 것 같다. 대학교에 갈 때도 취업을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아닌 지금이라니 뭔가 이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순간마다 고민하고 사는 사람들이 사실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길을 걷는 것에 나이가 중요한가. 작은 습관을 바꾸는 것부터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 자기 결단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세상에는 지금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고, 방향을 미세하게만 틀면 강인함으로 이어지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변명의 거의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104)
사실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읽을 때마다 늘 생각하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어떤 자기계발서는 늘 책상 위에 두고 읽게 되고, 어떤 것은 읽음과 동시에 폐기순서를 밟는다. 이 책은 어떻냐고? 한동안 내 책상 위에서 플래너와 함께하지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요점정리가 명확하다. 목차부터 명확하고 내용도 분명하다. 워낙 명확하다보니 재독 시 찾아 읽기가 좋다. 주제와 내용이 분명하고 문장이 간결하여 읽는 이가 전혀 헷갈리지 않고 원하는 것에 대해 빠르게 습득하는 독서가 가능하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자기계발서로서의 의의는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탄탄한 이론까지 뒷받침되어 신뢰를 준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연습방법은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메모할 일이 많았다.
집중력도 근육과 다를 바 없다. 사용하면 할수록 강해진다. (p.197)
자기 결단이란 결국 내가 감정을 통제하느냐, 감정이 나를 통제하게 내버려 두느냐의 문제이다. (p.240)
개인적으로 각 장의 마지막에 제시된 tip이 생각 정리에 꽤 도움을 주었다. 아무리 좋은 글도 내가 소화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고, 아무리 좋은 내용도 계속 나열만 하면 잔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끊임없이 길이 어디에 있을까를 물어준다. 길이 여기잖아, 하고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길은 어디야, 이렇게 제시하면 네 길이 보일까?” 하고 물어준다.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대답을 강요하지 않아 오히려 더 편안히 느껴졌다. “부끄러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스스로 알고만 있어도 돼”라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만나는 결정의 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좋아서 박수를 치는 날도 있고 이불을 발로 차는 날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선택의 순간들을 아주 작게 잘라준다. 한두 개쯤 실패해도 “낮은 실패율”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 대신 다음 선택은 조금 더 신중하라고 충고한다.
오래도록 고민하던 일을 이 책을 읽는 중에 매듭지었다. 물론 이 책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이 내게 준 분명한 한가지는, 나를 작은 단위로 설계하여 더 촘촘히 계획하라는 것이 아닐까. 또 설사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그리 높은 비율이 아니니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응원도 함께 말이다.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그러니 하라”. 그 말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았으나 실천은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 이 책이 그 말에 한마디를 더한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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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광 덕분에 초승달 주변이 보인다면 그 빛이 가져온 길이 얼마나 특별한지 생각해보자.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의 낮 지역에 떠 있는 구름에 반사돼 달로 이동하고, 달 표면에서 다시 반사돼 지구를 비추는 것이다. (p.148)
거의 매일 아침 하늘의 색을 관찰하며 눈을 뜨고, 잠들기 전 달님의 색이나 밤하늘의 색을 이야기하며 잠드는 아름다운 아이와 살고 있다. 덕분에 나도 매일 하늘을 관찰하는 호사를 누리지만 종종 아이가 하늘색이 어제와 왜 다른지, 오늘의 구름은 왜 양 모양인지, 파란 별과 노랑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어온다면 제대로 대답해줄 수 있는 엄마는 몇이나 될까. 때때로는 “오늘은 천사가 하늘에 양떼목장을 만들었네~”하는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이 오늘은 “왜” 그런지를 제대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사실 그런 생각에서 몇몇 천체도서를 읽었다. 아동서적도 찾아보았고, 성인 서적도 보았는데 하늘만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또 그 하늘을 제대로 보여준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낮과 밤, 하늘의 신비를 찾아서”. 일단 너무 과학서적 같은 딱딱한 제목이 아니라 더 눈이 갔고(완전한 문과 엄마), 표지를 채우는 신비한 하늘 사진은 이 책 안에 얼마나 멋진 하늘이 들어있을지를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상상 그 이상의 하늘을 선사해줬음을 밝혀둔다. (우리 아이가 하늘을 보며 자주 사용하는 “what a wonderful”이 여기에 다 있다.)
군살 없는 사실적인 표현과 온갖 시를 옮겨놓은 것 같은 사진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 책은 펼쳐진 채 한동안 우리 집 식탁 위에서 “틈새 빛살”을 자랑했고, 우리가 본 하늘과 비슷한 사진을 대조해가며 읽는 사전형태의 독서가 이어졌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재미있게 읽혔다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지식제공이 주목적인 책들은 정독하며 중간중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완벽한 현실이지만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들은 그 집중력을 다시 잡게 했고, 실제의 하늘과 비교하며 발췌독하다 보니 이불 위에서 느긋하게 누리는 책의 맛을 완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울 하늘의 모습도, 살면서 만나지 말아야 할 하늘의 모습도, 인간이 만들어낸 두려운 모습도, 이 책 속에서 대신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때때로는 아무 글씨도 읽지 않고 사진만을 바라보기도 했다. 최근 스스로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던 아이가 이 책은 내내 읽어달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읽는 것에 신경을 빼앗기고 싶지 않단다. 제대로 잘 듣고, 잘 알아두고 싶어서 자기는 눈으로 읽고, 소리로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정말 아이는 책을 읽는 내내 소리한 번 내지 않고 가만히 사진을 보거나 눈으로 텍스트를 따라 읽으며 집중했다. (며칠 전 올린 책 읽는 동영상 참조)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보다 완벽한 하늘 공부가 또 있을까 하고 여러 번 생각했다.
이 책은 사진만을 보기에도 너무 좋고, 진지한 태도로 앉아 정독하기도 좋다. 또 나처럼 소리 내 읽으며 조금씩 아껴 읽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하늘을 다 만나는 데 어떤 방법이 더 나은지 따져서 무얼 하는가. 경이로운 모습은 어떤 방법으로 만나도 경이롭다.
아마 이 책은 우리의 침대맡에서 오래오래 함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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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 파이프가 왜 S인지 아는 사람?
국기의 가로세로 비율은?
요리사가 긴 모양의 모자를 쓰는 이유는?
어려운가? 그럼 조금 더 쉬운 걸 묻지. 도넛이 왜 O 모양일까?
이것도 어렵다고? 맞다. 나도 불과 이틀 전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알아두면 쓸모있는 모양 잡학사전”을 읽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잡학을 알아서 어디에 쓰냐고? 솔직히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모양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뭔가 이유가 있으니 만들었겠지, 하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평소에는 크게 관심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 눈을 돌려보면 의외의 역사나 개발의 비화, 혹은 그 모양에 담긴 사명 등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라던 작가의 말이 이해가 된다. 정말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많은 모양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먼저 한가지 짚고 가자면,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 문화에 대해 몇 가지 거론된다. 그러나 그게 거슬린다면 가볍게 넘겨 다른 이야기를 읽어도 되고, 이웃 나라 일본은 이렇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도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선별이 가능한 책이다. 굳이 1페이지부터 읽지 않아도 군데군데 펼치며 필요한 정보를 얻고 닫아도 된다. 그렇게 다음에 또 한번, 또 한 번 읽다 보면 다양한 잡학지식을 얻게 되는 거다. 정말 부담 없이 막간을 이용해 읽는 책. 이 책이 딱 그렇게 부담 없고 쉬운 책이다.
그렇다고 한없이 가볍냐,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거의 흥미로웠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모양들에 대한 비화나, 여러 모양에 담긴 이야기들을 직접 읽다 보니 금방 한 권을 다 읽었다. 아직 텍스트가 많은 책은 부담스러워하는 우리 집 미취학 아동도 몇 페이지나 읽을 만큼 쉽고 간결하고, 그에 비해 주는 정보는 크다.
책을 평소에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사실 추천해주지 않아도 잘 골라 읽는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잘 읽는다. 그러나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고 시작해도 끝까지 읽기 어렵다. 그런 분들이 책을 문의할 때 내가 자주 추천해드리는 것이 가벼운 에세이나, 이렇게 한 페이지 정도로 끝나는 이야기들이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줄을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은 분명 다를 거다.
무겁게 읽어야만 책도 아니고, 가벼이 읽은 것이 지식도 가볍지는 않은 법이다.
이제 나는 요구르트를 먹을 때마다 왜 허리가 잘록한지, 연필을 쓸 때마다 왜 육각형인지, 초콜릿을 먹을 때마다 왜 선을 그어두었는지를 떠올리게 되겠지.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이제 당신이 이 책을 읽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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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해야 하는 일'에 쫓깁니다. 원래는 하고 싶었던 일이라도 예정에 넣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이 쌓여가면 그 일은 때로 우리를 괴롭게 만듭니다. (p.180)
오늘이 가득히 행복하다면, 단 하나의 고민이나 걱정이 없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처럼 마흔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휘청이고,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을 한 번쯤 만나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3,500번의 죽음을 만난 호스피스 의사. 물론 그에게도 여전히 타인의 죽음일 테다. 그러나 그 죽음들을 바라보며 아마 그들이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게 무엇인지를 3,500번 본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그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내내 좀 울었다. 아니 정확히는 읽기도 전에 1년 뒤 오늘 날짜를 적으라고 할 때부터 눈물이 좀 났다. 나는 아직 못 이룬 것이 많은데. 아직 앞길이 구억구백만 리쯤 되는 어린애도 있는데. 그러나 이 책을 덮을 무렵에는 그래도 내가 꽤 많은 것을 이루고 누리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앞길이 구억구백만 리쯤 되는 어린애는 여전한 걸 보면 내 수양이 여전히 부족하구나.)
이 책은 내 삶이 1년 뒤에 끝난다는 가정으로 시작한다. 그동안 내가 이룩한 성취, 행복의 기준을 묻고 절망, 슬픔을 어루만지게 한다. 사실 이런 식의 책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뜬구름 잡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꽤 직설적인 편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소중한 사람을 만날 것 같냐는 질문은 칼에 베인 듯 가슴이 시큰했다. 언제인가 한 작가님이 앞으로 많아야 열 번 남짓 엄마의 김장김치를 먹을 수 있을 듯하다고 쓴 글이 선명히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것에 시간을 소비하느라, 가장 중요한 이들을 뒷전에 둔다.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건강할 때나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아무래도 일인칭 행복, 눈에 보이는 행복, 알기 쉬운 행복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일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버는 것, 남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 사는 것 등을 행복이라 생각하고 이들을 쫓게 되지요. (p.125)
이 문장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좋을 때 더 나를 돌보지 못하고 욕심만을 쫓으며 살아온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랄까. 그러나 후회는 짧아야 한다.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항상 무언가를 선택할 때 결정해야 하고, 아무리 고민을 거듭하여 더 좋은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때 다른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은 남는 법. (p.100)”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래도 나는 그 당시에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선택했었다. 그 과정들까지 후회하지는 말자고 내 마음을 도닥였다. 그러다 문득, 비로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다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도 났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사실 아직 미래를 기대할 자유는 남아있습니다. (p.152)
지금까지 인생에서 즐거웠던 일, 자신이 가장 반짝반짝하던 때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것과 지난 과거에서 중요하게 여긴 일들이 마음속에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끝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p.201)
서두에도 거론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춘기다. 진짜 눈 깜빡하면 마흔이 될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 흔들리고, 여전히 꿈을 이루고 싶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런 내 모습을 괴로워했더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이 그런다. 쉰이 되어도, 예순이 되어도 그렇다고. 그러니 이루지 못한 것보다는 이룬 것을 보고 살고,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가진 것에 감사하자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늘 고개를 끄덕이지만 뒤돌아서서 나는 또 흔들린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명확해졌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곁가지를 쳐냈다. 굳이 하고 살지 않아도 될 고민을 몇 개 잘라내고 나니 (자르기까지는 힘들었지만) 머리숱을 친 마냥 속이 시원하다.
우리의 삶이 사실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내일이 마지막 날이 되는 경우도 세상에는 너무나 허다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전전긍긍하는 수많은 것들이 참 부질없이 느껴진다. 맞다. 극단적 가정이다. 그러나 분명 그 가정은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하게 알게 한다.
극단적 상상 속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생각. 사실 그것만 바라보고 걸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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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아는 범위 안에서 머무르는 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도 자아의 확장도 요원한 일일 겁니다. 벽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들은 무작정 나를 죽이려는 존재가 아니며 그들과 함께 얼마든지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게 되는 날이 있을까요. (p.345)
이 문단으로 리뷰를 시작함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늘 단절, 철벽 등의 단어를 느껴왔는데 그것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민족적, 문화적 등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문단을 읽은 후에야 '선을 긋는 일본인'이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작년, 한 책을 읽고 “우리 깊숙이 들어있는 공통의 감정 중, 반일 혹은 혐일 감정은 아마 그리 낯선 일이 아닐 것이다. -@책과함께#한국과일본은왜 의 리뷰 참조-” 라고 썼다. 리뷰 끝에 “이 한 권으로 모두의 사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듯, 지금도 한국과 일본은 평행선을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미움으로 등 돌린 평행선이었다면, 요즘은 너는 너, 나는 나. 같은 느낌이랄까. 일본의 참혹함을 겪은 세대들이 팔순이 되어 미움도 사그라든 것인지, 우리나라의 분골쇄신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의 미움보다는 새로운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자리에 채워야 할 것은 묵은 감정이 아니라, 올바른 마침표와 선한 경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지피지기를 제대로 실천한 책이다. 이 책에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가득 들어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교”가 아니라, “이해” 관점이다. 특히나 좋았던 점은, 단순한 현상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대중심리, 민족심리 등을 반영하여 그것이 끼치는 영향과 결과를 자세히 분석해냈다. 단순히 '먹방의 나라'와 '야동의 나라'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심리에서, 어떤 욕구에서 기인했는지를 제대로 풀어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드백하며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는 것.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사회적 교류의 방법입니다. 각자의 영역에 선을 긋고 그 안으로 침범하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들과는 다른 방식이죠. (p.25)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을 위한 또 다른 모습을 내세우는 일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솔직하게 드러내는 한국인. 이러한 차이는 한국과 일본의 '나와 타인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p.107)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하는 책 중,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가장 쉽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와 유행, 그 요소들이 일상적이어서였을까. 재미있게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릴 때쯤 되면, 냉철한 어퍼컷 한 방에 얼얼해진다. 이런 사람들이 강의하면 일타강사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재미있는 주제를 미끼로 던지고, 핵심으로 낚아채는 기술이라니.
그야말로 백전백승의 문장력이다.
작가가 이 책이 무심히 보아온 문화적 요소들에 숨어 있는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 (p.99)가 되기를 바랐듯,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감정적이었고, 그들을 다소 곡해해왔음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독자의 깨달음은 다를 테고, 때때로 어떤 사례는 들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뭔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이 '옳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나도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문화가 옳고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p.189)”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아는 것 아닐까. 너와 내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 그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문화의 맥을, 심리적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낸 책이다.
'지피지기'는 작가가 도와주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백전불패'를 할지, '이해와 발전'일지 결정하는 것 역시 각자 몫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나아감을 위해 후자인 편이 좋겠지만 말이다.
훌륭한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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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능력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결국 떨어지고 말거든요. 그러면 만회하기가 힘듭니다. 천천히 능력을 갖춰가면서 올라가면 오래갈 수 있어요. 성장하는 기쁨도 누리고요. (p.118)
이 책을 단 한 줄로 표현하자면, “천천히 읽으며 종종 눈물을 훔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 연휴가 끼어서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읽었는데, 그렇게 읽어 더 의미가 있던 책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아마도 내가 잘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 종종 이 책을 뒤적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김형석 철학자님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 (내가 알기로는 다 읽은 것 같다) 그동안의 책들도 다 좋았지만, 이 책은 현인의 말씀을 듣듯 그저 편안하게, 오늘 몇 장 읽고 내일 또 몇 장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나도 올해에는 책 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진 누구라도 아이스크림을 고르듯 31개의 문답을 뒤적여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10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러나 꼰대가 아닌 “오호 그랬구나. 그럼 이렇게도 생각해볼까.” 하며 따뜻한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주는 할아버지가 딱 이 책의 느낌 아닐까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정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조차 알 것 같은 그런 따뜻함.
인생은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까지가 내가 내 인생을 완성하는 길이에요. (p.29)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말고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우정을 나눠야 해요. (p.97)
사실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세수하며, 밥을 먹으며, 청소하며 여러 번 곱씹어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계산 없이 주는 마음과, 온전하게 받는 태도 모두가 중요하겠다고. 내가 가진 행복을 계산하지 않고 잘 퍼주는 것도 중요한데,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때 그것이 행복인지 알고 온전하게 받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잘 받아야 주는 사람도 더 행복해지고, 나도 더 잘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이래서 현인이구나. 이래서 현답이구나 하고. 그의 지혜가 몽매한 내게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것은 정말 깊은 생각이라서가 아닐까. 우직하게 책을 읽어온 이유가 이거다.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아주 조금씩이라도 키우기 때문에. 인생의 좌표로 잡아 온 '우공이산'에 김형석 철학자님이 몇 삽을 보태어 주신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길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내 인생의 잣대를 갖고 남을 평가하거나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에요. (p.48)
매일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흔들리며 살아온 나지만 이제는 정말 좀 많이 괜찮아졌다. 이제야 헐벗은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고, 이제야 내가 가진 아픔을 스스로 물 위로 꺼냈으니 말이다. 괜찮다는 말로 덮어두기만 했던 나에게 이 책이 말한다.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라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고,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았다.
추신) 당신이 올해는 책을 한 권쯤 읽어볼까 생각했다면, 이 책이 참으로 그럴듯하겠다. 책을 너무 오래 읽지 않아 읽을 자신이 없어도 되고, 이해력이 없어도 된다. 이 책이 당신에게 어린 시절 이후 다시 읽는 “컴백도서”가 되어도 되고, 올해의 마지막 책이 되어도 좋다. 일단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만이라도 가졌다면, 이 책의 목차를 펼쳐 제일 마음이 닿는 물음을 먼저 읽어라. 나머지는 이 책이 알아서 해준다. 책이 알아서 그 누구라도 천천히 편안하게 읽어놓고 때로는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문장이나 눈물이 울컥 차는 문장을 만나게 하는 마법을 부려줄 테니 당신은 그저 목차만 펼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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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의 말로 리뷰를 시작하는 것은 이 말이 내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꽤 많은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편이기는 하나 나의 복지가, 자유가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저 빨대를 쓰지 않고, 텀블러를 쓰는 등의 행위를 벗어나 의식적으로 진짜 웰빙을 지켜왔던가. 그래서 오늘 리뷰는 반성문이 될 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진짜 더불어 사는 것을 생각해보자는 권유로 시작하고 싶다.
오늘날을 지배하는 체계는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의 뿌리를 뽑아내는 일을 진보의 길이라고 간주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일이 오늘날의 '발전' 모델에서 가장 폭력적인 측면으로 자리 잡았다. (p.44)
저자를 급진주의자라 불러야 할지 보수주의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저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녀는 둘 다라고 말하는 편이 맞다.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이며, 그것을 전파하는 강인함은 급진적에 가깝다. 환경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나의 시야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인류가 만나게 될 미래에 대해 서늘함이 들기도 했다.
진정한 지성, 진정한 종자, 진정한 식량, 진정한 부, 진정한 자유의 부활은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자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자각할 때 우리의 상상력을 못 쓰게 만들고 우리를 노예로 전락시킨 1퍼센트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p.53)
그렇다면 그 1%는 누구인가? 맞다. 금융이고 기술이다. 조금 보태자면 자연이 인간의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으로 착취하고 있는 일부 금융과 기술로, 우리에게 깊숙이 교육된 기계론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잠재력을 축소해 모든 자연이나 인간을 “금융의 원료”로 환원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정체성을 바로잡으면 기술과 금융이 환경과 공존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공상과학에서 늘 이야기해왔듯, 화성 등 “지구의 대체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한 마음을 느낄지도 모르고, '빌런'처럼 거론된 몇몇은 쓴웃음을 지을지도. 그러나 나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르는 사이, 언제인가 지구가 생명을 다하면 화성 등의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만큼 과학이 발전했으리라고 학습 당해왔다. 그러나 지구가 목숨을 다한 시점에 인류가 살아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또 다른 행성은 지구인들에게 자신을 내어준다는 보장은? (만약 내가 지구라면 그 행성에 카톡을 보내줄 것 같다. 나를 이렇게 만든 빌런들이 너에게 가고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지구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나와 자연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 역시 재화로 평가되고 있음도 씁쓸했고.
나는 '보호주의'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구, 가정, 가족, 문화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생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지탱하기 위해 있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p.223)
이 문단을 풀어보자면 지구, 가정, 가족, 문화를 보호하는 것을 나의 삶을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지탱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즉, 내가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살아가려면 지구를, 가정을, 가족을, 문화를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냐고? 그 당연한 것을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을 너무 쉽게 믿고 너무 쉬이 배워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와 같은 방향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와 지구의 상관관계만큼은 다시 정립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해졌다.
자. 이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는 당부와 함께 질문을 던진다.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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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P.103)
솔직히는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읽다 보니 사실 그 말이 그 말 같고, 다 비슷한 말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는 “매일 쉬지 않고 걷는 삶과 가끔 뛰더라도 종종 멈추어 쉬는 삶.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일 뿐. 그러니 오늘이 혹시 그런 날이라면 오늘 당신,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p.143)”라는 말을 읽다가 울어버렸다. 늘 “오늘 걷지 않으면 뛰어야 한다”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정말 매일매일 부지런히 걷던, 때로는 경보라도 하듯 숨차게 걷던 내게 남은 것은 디스크뿐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 멈춰 있는 것이 종종 불안했는데. 마치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괜찮다는 말을 건넨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나를 달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도 된다고 나를 위로한다.
오늘도 내게는 바람이 차다.
아무래도 나의 봄은 좀 더 더디게 오려나보다. (P.30)
돌아보면 나란 아이는 참으로 꾸준했다. 아니 좋은 말로는 꾸준하고 나쁜 말로는 징글징글하다. 뭘 하나 좋아하면 미련하게도 놓지를 못한다. (이놈의 책도 글씨를 읽을 수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한결같다. 한때는 이것으로 밥을 벌어 먹고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해 꺼이꺼이 운 날도 있었으나 나도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그저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둘 때 아름다움을) 취미도, 사람도, 옷도, 성향도 참으로 한결같아서 사실 나는 휴직을 결정하고 마지막 근무를 하던 날 아무와도 인사를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상사의 말도 몸이 안 좋다며 거절했다. 솔직히는 내일의 나를 만날 자신이 없어서였다. 출근의 관성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회사에 가지 않는 내 모습이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다음날이 되니 아무렇지 않더라. 그저 커피도 맛있고, 햇살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쳇바퀴를 벗어나 진짜 사람답게 사는 길을 향해 걸을 준비를 한 것 같다.
작가는 말한다. 멍때리는 것도 건강에 좋으니 죄책감은 내려놓으라고. 시간에도 여백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지금의 나처럼 이래저래 놀라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나의 단단한 행복을 위해 내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고작 커피 한 잔으로도, 고작 책 한 권으로도, 고작 햇빛 쐬기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며 더 잘 놀아보기로 했다. 뭐 어때.
이 “뭐 어때”라는 말이 딱 이 책의 느낌이라고 하면 작가님이 섭섭하실까. 그러나 내가 느낀 이 책의 감상은 엄마가 아닌 이모다. 엄마의 잔소리보다 조금 더 유하고, 조금 더 느슨하고 한발 물러서 있는 그런 것. 이런 류의 다른 책에 비해 작가는 잔소리를 덜한다. 대신 그래도 괜찮아,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문장이 많다. 그래서 편안하게 읽어지기도 하고, 작가가 묻는 말들에 그저 잠시 시간을 내어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하는 생각도 편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 말은, 작가의 말을 빌려 적어보려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 새날에 내어줄 심신의 공간을 '버리기'를 통해 미리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비는 시간은 많고 불필요한 만남은 적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없다. 머지않아 분명히 올봄, '진짜 봄'을 그리며 오늘도 먼지 쌓인 집과 마음을 쓸어 담는다. (P.177)
맞다. 내 쉼의 시작이 나였든, 타의 의도였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정말 온전히 내가 쉬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기회를 통해 버릴 것과 취할 것이 분명해지니 이보다 더할 나위는 없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오늘을 더 천천히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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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실은, 가스라이터는 한번도 당신의 친구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p.268)
이토록 자극적인 문장으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함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혹시라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으면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부디 하루라도 빨리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장을 택했다. 사실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다만 받아들이지 못할 뿐.
우리가 그들의 가스라이팅을 쉬이 가스라이팅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들은 당신이 괴로워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러나 증명하기엔 불충분할 정도로만 괴롭힌다. (p.117)” 그래서 스스로도 이게 정말 가스라이팅인지, 내가 가스라이터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지 헷갈려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 반복적으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 맞을까? 그 선상에서 생각해보면 결론을 내는 일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이 책을 쉽게 읽지 못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도 가스라이터일까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열었고, 이 책을 덮을 때에는 이 사람은 가스라이터이자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딱한 영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내가 이 말을 굳이 적는 이유는, 사실 대부분 가스라이팅에 노출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특별히 나약한 누군가만 당하는 일도 아니고, 특별히 사악한 누군가만 가하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모두 가스라이터가 되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그게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을 더욱 권하고 싶은 이유는 구성이 너무나 좋다.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굳이 차례대로 모든 장을 읽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이유를 너무나 절절히 알겠더라. 감정적 호소에서 전문적 지식까지를 모두 담아냈기에, 정말 누군가에게는 한줄기 빛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던 내게도 저자는 계속 말했다. “stop. 너 자신을 위해서 이제는 stop.”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고 당신의 감정을 인정해줌으로써 이해받는다는 기분이 들도록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터는 당신에게 얻을 게 있을 때에만 사과한다. (p.28)
가스라이팅에서 우리는 “후버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당신이 멀어진다 싶을 때, 가스라이터가 당신을 다시 흡입하는 방식을 묘사하는 말이다. (p.69)
만약 가스라이터를 향한 애정이, 가스라이터로 인한 괴로움보다 큰 상태라면 이 책은 다소 아프게 읽힐 수도 있다. 저자는 끈임없이 그 덫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로움이 즐거움보다 큰 관계라면 당장 아플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벗어나야하기에, 치유되어야 하기에 이 책이 던지는 쓴소리는 약이 될 것이다. 아주 작은 의심의 씨앗이라도 든 채 이 책을 찾은 것이라면, 꼭 그 약을 먹고 더는 아프지않기를 바란다.
책의 말미에 치유법이 담겨있는데, 이 파트의 소제목이 “당신 스스로를 도와라”였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도울 생각이 없을 때 주변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그것은 마음에 닿지 못하기에 이 소제목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파트는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꽤 다양한 치료법을 담고 있기에 각각에게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주리라 생각된다. 우리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각기의 성향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고, 우리가 맺는 관계들도 과거의 그것과는 점점 다른 양상으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을 한가지는 “나를 도울 절대적 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김혼비 작가가 한 말처럼 누구에게도 늦지 않게 이 책이 건네져야 하는 이유도 아마 그 점에서 일 것이다.
세상에는 분명 다양한 가스라이터가 존재한다. 그들은 때때로 선의 얼굴을 쓰고 있고, 내게 필요한 것을 제시할 때도 있겟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신이 그들을 참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p.252)”는 말을 부디 그냥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이 책이 쓰지만 좋은 약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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